전출처 : 진/우맘 > 우리집에도 괴물이 우글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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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이혜리 그림, 홍인순 글 / 보림 / 2005년 5월
평점 :
아무리, 내키는대로 써대는 막가파 리뷰어지만, 나름대로 몇 개의 물렁한 원칙은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 그림책 리뷰는 최소 일주일 가량은 묵혀서(?) 쓴다는 것.
내가 읽은 책 리뷰야 그냥저냥 느낀 바 그대로 끄적거려도 되지만, 그림책 리뷰는 그 효용에 완전히 관심을 끊기가 어렵다.
주관적이나마 아이들의 반응과 장단점까지 잘 갈무리해서,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꼬마 독자들의 총체적인 반응을 살피자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기 마련.
그런데 오늘, 그 원칙을 깨고 받아든 지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리뷰를 쓰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우리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이걸 인연이라 그래야 하나, feel이라 그래야 하나....좋은 책을 만나게 될 때는 대개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림책 같은 경우, 처음 본 순간 어쩐지 씨익, 미소가 떠오르는, 그리고 손바닥으로 자꾸 쓸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표지가 사랑의 전조인 샘이다.
딱, 이 책이 그러하다. 제법 큼지막한 크기에 개성있는 빛깔, 묘하게 반짝이는 은회색의 표지....색깔이란 건 참 신기하다. 차가운 금속성인 은회색이, 약간의 베이지가 가미된 것 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해 보이다니.
표지를 열면, 큐비즘의 영향이라 했던가? 묘하게 분할된 집안의 전개도가 나오고.... 책이 나와 아이에게 속삭인다.
'그날 밤 강이는 그걸 발견했어.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려 온 것처럼
입을 딱 벌리고 반기는 커다란 껍데기.'
아니.....껍데기? 마치 소라고동의 껍질 같은 이건 뭐지?
제목이 다시 한 번 나오는 속지 전에 불시에 끼어든 이 한 페이지는, 마치 재미있는 영화의 예고편 같다. 딸아이가 말한다.
"음...엄마, 이 껍질의 구멍 속에서 괴물이 나오는 거 아닐까?"
"엄마 생각에도 그래~"
어느덧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고 있는 모녀, 본격적인 괴물 탐방에 나선다!
'커다란 애벌레 한 마리가 모험을 시작했어.(본문 1~2p)
괴물이 우글거리는 불빛 도시를 지나 작은 숲으로 가는 거야.(본문 3p)
괴물들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가면 아무에게도 방해 안 받고 놀 수 있어.(본문 4p)'
주인공 강이는 꼬마 장난꾸러기, 지금 이불을 돌돌 말고 애벌레처럼 뽁뽁 기어 거실과 부엌을 통과, 자기 방에 무사히 도착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방귀쟁이 아빠 괴물, 잔소리쟁이 엄마 괴물, 놀아달라 조르는 동생 괴물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아....김 빠져라. 이 환상적인 그림책의 뼈다귀, 줄거리를 몇 줄로 정리하고 나니 속이 상할 지경이다. 저걸로는 '우리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의 재미를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담아내질 못한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유명한 두 그림책이 연상되었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우리 나라 그림책인 '우리 몸의 구멍'.
마치 주문을 거는 듯 읽는 이를 휘어잡아 버리는 간결한 문장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유사한 분위기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기교도 그러하고. 그러나, 괴물들이 사는 나라보다 이 책이 한 수 위라고 느껴진다. 아이의 머리 속 공상만이 아니고, 정겨운 집 안의 구조와 가족까지도 고스란히 살려가며 환상의 세계를 꾸린 때문이리라.
어쩐지 읽는 데 하나도 힘이 들어가질 않고 절로 속도가 나는 점은 '우리 몸의 구멍'과 참 비슷했다. 그런데, 어....글이 문제가 아니라 이 그림....낯이 익다. 그러다가 강이가 방귀불을 맞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장면에서 무릎을 쳤다. '우리 몸의 구멍'과 같은 이가 그렸구나!
참 신기하다. 그린이는 같아도 글쓴이는 다른데, 어쩜 이렇게 읽는 맛이 비슷할까?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책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여섯 살 딸아이, 서너 살 무렵엔 새로운 그림책이 오면 앵콜 요청은 기본이었다. 그러던 것이 머리가 커지고, 나름대로 이해의 속도...기억력 같은 게 발달해서일까? 왠만큼 재미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두 번 이상 되풀이 해서 읽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은 자그마치 다섯 번의 앵콜 요청을 받았다! (나 역시, 다섯 번이나 되읽으면서도 새록새록 재미났다.^^)
책은 다섯 번을 읽고 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괴물 놀이'를 하고 놀았다. 딸아이는 애벌레, 나는 매번 컨셉이 바뀌는 괴물, 그리고 엄마 머리맡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둘째는 '엄마 괴물에 붙어 있는 찐드기 괴물.' ㅎㅎㅎ
참 오랜만에, 그림책과 함께 신나게 뛰어 논 기분이다. 정말 좋은 그림책은, 아이와 더불어 놀아준다. 그리고 그 중 한두 권은 이렇게, 엄마하고까지 놀아준다. ^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