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즐겨찾기에 대해 신경 끄는 이유 - 매너의 공식 반응
분별, 그리고 분별력. 매너의 정신세계를 결정짓는 강력한 단어 중 하나다. 어느 환경에 처음 떨궈졌을 때 매너는 그 환경을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에 매너가 몸 담았던 환경과 어떻게 다른가 분별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동아리나 학회 생활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의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제정신이 붙어있는 한 극단까지 그걸 밀어내려 애쓴다. 좌충우돌에 덤벙쟁이, 성격마저 모난 매너가 이제까지 그럭저럭 사람 노릇을 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절반 이상이 저 분별력 탓이다.
on-liner(사전적 의미, 리터럴한 의미의 네티즌. 으로 받아들여주시길. 매너는 한국에서 주둥이만 살아 무책임한 소리 지껄이는 포유류들을 싸잡아 말하는 네티즌. 이라는 말의 어감을 극도로 싫어한다) mannerist의 이력은 중학교때 나우누리에 빠져들며 시작된다. INsight, 혹은 pcmlucid(People Call Me Lucid!의 약자), Cinderella로, 이후 하이텔과 다음, 프리첼과 개인 홈피를 전전하던 매너는 현재 알라딘 나의 서재에 주 서식지를 정하고 있다. 그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박혀 있는 on-liner 생활의 대전제는 한마디로 축약된다. "온라인의 것은 온라인에게, 오프라인의 것은 오프라인에게(Special thanks to the Jesus!)" 이 구분은 극단적인 형태까지 구현된다. 이런저런 인터넷 동호회에서 무슨 '사단'이 벌어지면 매너는 철저하게 온라인에서만 반응을 했다. 이러이러한 일로 오해가 많으니 만나서 얘기 좀 하자는 말이 나오면 '온라인에서 생긴 일 온라인에서 매듭지읍시다.'란 말로 일축해 버리고 전화도 꺼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별스럽게 극단적인 반응이나 그때 생각은 그랬다. 온라인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모든 온라이너들이 그 사태의 해결 과정을 목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반, 온라인의 문제로 오프라인에서까지 나와 언쟁을 거듭하기 싫다는 생각이 절반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둘로 딱 쪼갤 수 있냐, 너무 딱딱하게 구는 거 아니냐, 네가 뭔데 비싸게 구느냐 등등의 별의 별 사람의 오만가지 공식 반응과 오해를 접하고 살아오긴 했지만 이런 대응 방식을 취한 결과 매너가 사과 받았으면 받았지 매너가 먼저 사과할 정도로 잘못한 적은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없었다.
조금 긴 길을 돌아왔다. 짧고 간결하게 적어야 하는 '공식반응'에 저리 긴 넋두리를 늘어놓은데는 즐겨찾기 수에 유별난 감흥이 없는 이 회사원의 기반을 조금이나마 드러내야 이 글에 설득력이 부여될 듯 해서다. 이상스럽고, 혹은 지나친 분별력에 기인한 사고방식일 수도 있으니 '이양반은 이래서 신경 끄고 살 수 있구나'정도로 받아들여주시는 게 딱 좋겠다.
매너의 서재를 즐겨찾는 분들의 수는 현재 273이다. 몽상자님에게 끌려 알라딘에 발을 들여놓은 이년 전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매너는 저 숫자에 별다른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매너가 구분하는 것 만큼, mannerist란 모난 녀석과 스물 일곱 살의 청년 김대중은 다른 사람. 이라는 구분을 짓기 때문이다.
매너의 경우, 온라인의 mannerist는 오프라인의 김대중의 부분집합이다. 온라인에서 보이는 mannerist는 오프라인의 김대중이 온라인에 드러낸 모습만으로 이루어지는 인물이다. 이 과정은 맨눈으로 김대중을 마주하며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몸짓, 습관을 타인의 눈에 노출시키는 것과는 천지차이이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거짓말을 해대며 멋지게 꾸며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실제 세상의 자신을 100% 온라인에 투영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온라인에서 쓰는 말과 글은 어차피 누군가 보라고 쓰는 글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본질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 결국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자신이 보여도 괜찮겠다. 하는 모습들만 드러내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습관과 버릇을, 완전히는 제어하지 못하겠지만 상당 부분은 제거하고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군더더기가 제거된 사람들의 '분신'들이 사회를 이루는 곳이 온라인 세계다. 이것은 축복일수도, 저주일수도 있다. 실제 세상이 아닌 이 또다른 사회 자체가 실제 세상의 군더더기가 제거된 사람들이 무리 없이 돌아갈 때 저 특성은 축복이 되고, 실제 세상과의 괴리감에 '분신'들이, 사람들이 괴로워할 때 그건 저주가 된다.
즐찾이 줄고 늘고는, 실제 세상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즐찾이 줄었다면 그건 알라딘 마을이라는 '온라인 세계'에서 매너를 조금 덜 드러냈기때문에, 혹은 매너의 취향과 성향이 모났기 때문이지 실제 세상의 김대중이 뻘짓을 해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줘서가 아니다. 성의있는 글과 리뷰를 올리면 즐찾이 느는 게, 사람들과 좀 더 즐겁게 댓글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어느 '한계'라는 게 있을 것이다. 매너는 플라시보님처럼 한달음에 술술 읽히는 글을 쓸 재주도, 마태우스님의 유머감각도, 평범한여대생^^님의 지성도 없다. 그저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이것저것 생각한 걸 넋두리 읆어댈 수 있는 게 매너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들을 시샘하고 질투할 생각은 없다. 그런 사람들과는 댓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매너'와 '김대중'이 조금 더 자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매너'혹은 '김대중'의 세계관이 더 자랄 수 있다면 최선인거다. 그래서다. 매너는 즐겨찾기. 를 매너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지표도, 매너에게 호의 혹은 악의를 지닌 사람의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매너. 라는 인간이 쓴 글, 사진, 혹은 뻘소리를 그래도 귀한 시간 쪼개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는 걸 말해주는 지표라 생각한다. 딱 그정도 의미다.
알라딘 서재의 구조는 일방적. 이다. 실시간 대화방은 커녕, 여러 사람들의 글이 자리하는 게시판도 없다. 서로의 방문 앞에 달린 메모판에 언제 볼 지 모르는 메모지를 한 장씩 붙여놓고 생각날 때 다시 그 메모판을 보고 다시 답쪽지를 붙이는 시스템이다. 이 메모판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장이 언제 볼지도, 답메모를 남길 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군대에서 써봤던 무전기처럼, 동시에 말이 오고가지 못한다. 한 사람이 말하면 한 사람은 들어야 한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일방향이기때문에 알라딘의 모든 사람의 관계가 일방향이라는 데 매너는 동의하지 않는다. 승질나고 답답할 때 남겨놓은 감정찌꺼기에 불과한 글 나부랭이에 달린 따뜻한 답글 하나하나는 아무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매너라고 하더라도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하게 뎁힌다. 만만치않게 모서리진 글에 담긴 조심스럽고도 날선 댓글에 답글을 달 때도 그렇다. 그래서다. 일방향, 양방향은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매체에 담는 글과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고 매너는 생각한다.
싸이월드가 온라인적이라고, 인간적이라고, 쌍방향적이라고 간혹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방명록을 한번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안녕 잘 있어? 내 싸이 와서 글 좀 남겨.'포스팅도 답글도 몇 줄을 수이 넘기지 않는다. 사회적 인간 관계의 연장 - 1촌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 이 되다 보니 기존 맻어진 인간관계의 확인사살 정도의 의미 이상을 쉽게 가지지 못한다. 이는 인간 관계 자체에 사람 개개인의 글과 생각이 매몰된 사례라 생각한다.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화되다보니 사람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실어나르기 힘들어진 게 싸이가 아닐까. 그래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일방향, 양방향은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에 담는 글과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고 매너는 생각한다.
그래서다. 273분 중 매너에게 댓글을 통해 말을 걸어오시는 분은 절반이 채 안 된다. 그 분들에 대해 궁금증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호기심을 닫는다. 말 붙이지 않고, 그저 김대중이, 매너가 좌충우돌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적당한 시간 때우기, 혹은 즐거움이 되는 사람들이겠지 싶어서다. 그런 게 편할 때 있지 않나. 한 발자욱 물러나서 바라보기. 그런 걸 굳이 알려 하지 않는 게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분들에게 최선의 예의는 좀 더 성의있게 포스팅을 하는 것이 아닐까.
'닫힌 사람의 열린 연대' 정혜신씨가 준만이형을 가리켜 한 말이다. 나는 알라딘마을을 보며 매번 이 말을 생각한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책 이외의 세상에는 닫혀 있다. 그러나 책을 닫고 나면 그 사람은 책으로 인해 얻은 생각을 세상을 통해 연다. 그 통로 중 하나는 알라딘 마을의 페이퍼이다. 오늘도 알라딘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잠시 닫아 얻은 이런저런 생각을 종이에 비죽배죽, 혹은 깨끗이 써서 자신의 서재 방문에 붙인다. 또다른 이들은 그걸 읽고 답글을 쪽지에 적어 메모판에 압정으로 박는다. 그 과정이 매너에게는 아름답고 또 즐겁다. 관계를 결정짓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매체에 실어날라지는 글과 생각의 성의라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너는 현재의 알라딘 마을을 긍정하고, 즐겨찾는 분들의 수 슥 한 번 보고 만다.
그저 이곳에서 신경쓰는 건, 얼마나 성의있게 포스팅을 할 수 있느냐, 성의있는 댓글에 얼마나 정중하고 사려깊게 답하냐, 이런 거다. 이는 적당한 무신경함도, 매너의 성격 탓도 아니다. 원래 온라인이란 데가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 절반, 그에 대해 최선이라 생각한 매너의 공식 반응 탓이 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