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부 - 완벽하지 않은 스무 살을 위한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의심하지 않으면 지루하다. 의심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늦은 시간 카페나 밝은 낮 도서관마다 빈자리가 없다. 무슨 공부에 그리 집중하는 걸까. 설마 공무원 시험 준비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 공무원이 되거나 건물주가 된다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씁쓸함은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사실 내가 책을 읽고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들도 나에게는 나름대로 공부다. 기억을 보충하고, 생각을 다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읽었는지 혹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찾아보기도 하면서 생각의 틈을 발견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공부다. 


스무 살에는 그런데 왜 그렇게 공부에 매달리지 못했을까. 


그때 좀 더 집중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길에 서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길이 달라진다면 공부 안 할 이유가 없다.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좀 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면 말이다. 공부는 다른 길을 알려준다. 공부는 다른 길을 그러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스무 살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넘어져도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다. 그런 스무 살을 위하여 진짜 필요한 공부가 무엇일까. 


의심하는 것?


내가 본 이 책의 주제는 의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의미로는 호기심과 관찰이지만 결국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 다른 답은 없는지, 아니 다른 답을 찾아내는 것, 그것의 시작은 의심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굳은 어른이 되지 않도록.


"대개 머리가 굳은 어른들이 그렇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과거의 상식에 매달려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못 본 척한다.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의심하는 눈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138쪽


21세기북스의 진짜 공부는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쓴 책이다. 기업 출신의 저자가 교육자로서 변신, 한 학교의 학생들을 변화시키며 교육 방향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정답만 찾는 데 급급한 교육 현실을 벗어나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랜 기간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공부의 원칙을 소개한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공부의 단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시스템으로 설명한다. 


'정답이 있다 vs 없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도 없다. 자신 있게 자유롭게 표현하라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정답만 찾는 일에 바쁘게 시간을 다 쏟지 않았나. 인생의 길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우리는 묻어버리고 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성장만을 외치며 살았지만 이제는 '마음의 풍요를 위한'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수업은 그래서 모든 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만 그의 주장 중 모든 것을 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왜 안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래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어쨌든 일의 시작은 관찰과 호기심이다. 그것이 공부의 시작이고 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좀 더 완벽한 공부를 위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저자는 이 책 본문을 통해 단계별로 설명한다. 


저자가 세운 공부의 원칙은 첫 번째가 시뮬레이션,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세 번째는 로지컬 씽킹 그리고 롤플레잉과 프레젠테이션 등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호기심을 갖고 의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다음 그 일에 대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생각을 조정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스무 살의 공부다. 


"지금까지 반복해서 설명한 크리티컬씽킹이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비판적 사고'다. 이것은 무엇이든 의심해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이든 그대도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의미다.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또는 자신이 내놓은 '답'이 정말로 옳은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확인 작업을 '검증'이라고 한다."-122쪽


이 책의 목차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는 0교시부터 5교시까지 수업 전개 과정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공부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지는지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폐교 위기의 중학교를 5년 만에 다시 최고의 학교로 바꿔놓은 후지하라 가즈히로, 그 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으로 이제  수무 살 청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사실, 지금 우리 스무 살 청춘의 삶이 쉽지 않다. 만만치 않다. 지금 그들이 가장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걸까. 호기심을 갖고 의심하고 관찰하라고 하는데,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실행 능력과 의지는 얼마나 충분한지 궁금하다. 


스무 살 청춘들이 올바르게 공부하고 삶을 경험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좀 더 넓어지는 것이 더 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사람의 가치, 사물의 재발견을 촉구한다. 이 책은 피곤한 삶 속에서 힘과 용기를 갖기를 재촉한다.  단조로운 삶을 개선하고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서툰 청춘들에게 또 다른 답이 될 것이다. 


왜, 정답은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정답은 아니다. 당신의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답일 뿐이다. 저자도 내 생각을 인정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독특한 방식의 수업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촉진시키고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 민간인 출신의 학교 교장으로서의 자리를 인정받았다. 


그가 구축한 체계적인 이론을 토대로 한 교육방식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우리 시대 진정으로 필요한 공부를 위해 어떠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청년 세대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미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자유로운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발언과 행동 무대'를 마련해주는 데도 관심 갖고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2016-082. 완벽하지 않은 스무 살을 위한 진짜 공부 - 후지하라 가즈히로
    from 젊은 공학도의 꿈 2016-04-04 12:48 
    우리는 누구나 학교를 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부한다. 앞에서는 교사가 지식을 설파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따라적거나 들으며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머리 속에 넣는다. 연 4회 중간/기말고사라는 이름으로 그 지식을 평가하고, 가끔 '쪽지'라는 기습시험으로 주기적으로 지식을 넣고 있는지 검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12년간 트레이닝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에 오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선택해서 하고 그 외 시간은 자..
 
 
 
생각의 모험 - 인생의 모서리에서 만난 질문들
신기주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뷰 전문 기자의 인터뷰 모음집. 이 책에는 신기주 기자가 <에스콰이어>와 <인물과 사상>에 썼던 16인과의 인터뷰가 들어 있다. 2015년 7월에 출간된 이 책은 오늘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이 현상들을 어떻게 예견했는지, 짚어봤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신 작가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인생, 글,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현상들을 짚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공격적이고 다소 거북한 질문들을 던졌다.  알면서도 한 번 더 던진 직설적인 질문들은 인터뷰이를 피곤하게도 했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질문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그리고 소위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 현상들을 지켜보고 있고 진단하는지 만나 볼 수 있다. 과거에서 현재를 찾는다. 

희망은 보이는가?

아직 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또 불현듯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기대도 가져본다. 이 책에서 신 작가가 만난 여러 인터뷰이 중 개인적으로 장하성과 표창원 편은 인상적이다.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뽑은 사람의 책임이 크다. 또 반복하지 않으려면 '복습'을 해야 한다.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고 그 답을 찾고,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의 모험>이 생각할 시간을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틀어 글쓰기 - 시선을 사로잡는 한 문장 만들기
김건호 지음, 전진우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간판을 보고 지나면서도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 저렇게 쓸까, 바꿔볼까 하고 말이다. 이전에 한 번 '카카오독(kakao dog)'이라는 간판을 보고 참 머리 잘 썼다 싶었다. 애견숍 이름이었다. 사진도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다. 카카오톡의 브랜드 이미지와 개들이 짖는 듯한, 혹은 말하는 듯한 그런 이미지를 풍겼다. 잘 패러디했다. 

비틀어 글쓰기는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보는 수많은 간판들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뭐 저렇게 심심하냐, 나라면 어떻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대박 난 가게들, 혹은 길거리 음식점들의 특징 중 하나는 가게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작은 포장마차도 이름 하나 어떻게 짓는가에 따라서 손님 줄이 다르지 않나. 물론 맛이 기본은 되어야겠지만.

카피라이터로 유쾌한 글쓰기를 시도한 저자는 포스터나 이벤트 등 고객과 만다는 매체에서 어떻게 제목을 다느냐에 따라서 댓글이 달라지고 참여도가 확 차이 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비틀어 쓰기에 달려 있음을 현장 경험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타이들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직접 연습문제를 통해 독자가 자신감 있게 글쓰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자, 이제 비틀어 볼 차례다. 

뭘 비틀까.

자음이나 모음 하나라도 더 빼고 더해보라고 한다. 띄어쓰기만 해도 뜻이 확 달라진다.

사는 재미가, 사람 사는 맛이, 글 쓰는 재미가 다르다.

비틀어 3원칙
-변형의 원칙
-반복의 원칙
-결합의 원칙

한두 들자 비틀어
단어 바꿔 비틀어
덧붙여 비틀어
순서 바꿔 비틀어
띄어 쓰는 비틀어
줄임말로 비틀어
끝 글자 비틀어
앞 글자 비틀어
같은 단어 반복 비틀어
둘이 합쳐 비틀어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전할 수 있는 말이 각각 있다. 잘 비틀어보자.

서울 지하철이나 시내를 걷다 보면 가끔 만나는 홍보물들, 그 속에 그의 작품들이 들어 있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했을까,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서울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이 더 풍부해져 다음 책에서도 그간의 경험을 다시 한 번 쏟아낼 수 있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찰스 M. 슐츠 지음, 이솔 옮김 / 유유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 독해 공부한다고 영자신문을 봤었다. 만화도 읽었다. 찰스 슐츠의 '피너츠'를 그렇게 만났었다. 4컷 만화에 담은 메시지는 언어의 부족함도 있지만 문화 차이로 인한 해석의 어려움도 있었다. 더 큰 것은 아마 유머의 부족이 아니었을까. 

찰스 슐츠의 코믹 스트립, '피너츠'만 알고 있었어 내게 이번에 나온 그의 책은 그를 새롭게 보게 했다. 그가 남긴 말과 글을 묶은 책이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이다. 

찰스 슐츠는 다른 길 가지 않고 오직 만화에만 집중을 했다. 다른 이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직접 했다. 남을 시키지 않았다. 그의 원칙이었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도 읽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서의 삶을 사람들이 존경할 수 있게 만든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삶의 경험이 그의 만화와 그 속의 캐릭터를 통해서 펼쳐졌다. 

이 책에서 슐츠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어떤 것들을 주장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어떤 영역에서든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제일 우선 되어야 할 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 일은 누구도 넘볼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는 일이다. 실패 헤도 남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자신의 만화를 받아들일 때까지 만화 투고를 놓지 않았다. 

그는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책 속에서 내가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하나 있다. 그는 만화가는 '매일 똑같은 것을 계속 그리면서도 자신을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또 내가 지루해질까 봐 엄청나게 두렵다. 주변에는 지루한 사람이 아주 많은데, 불운한 일이지만 나는 늙은 사람은 쉽게 지루해진다고 본다. 지루해지는 걸 막으려면 타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한다. "-108쪽

찰스 슐츠,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최고의 직업이 코믹 스트립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도 갖다 쓰지 않았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그렸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남아 있는 그의 분신 같은 캐릭터,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캐릭터 속에 그는 그 자신의 삶을 남겨두었다. 짧은 글 속에 담긴 그의 길고도 깊은 인생이 주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죽고 싶어 하는 젊은 의사, 그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다음 페이지를 먼저 넘겨보고 싶었다. 참았다. 차근차근 읽지 않고서는 이야기 흐름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는 왜 그토록 죽고 싶었던 건가.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그는 죽는 건가.

 

바티스트 보리유의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의 전작을 읽지 못 했다. 책날개에 소개된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는 종합병원의 실화를 담은 이야기라고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 한 쪽은 아픈 사람이고 다른 한 쪽은 아픈 사람을 살려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무슨 이야기일까.

 

이 책 <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가 그의 전작과 다르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하면 코믹하고 유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다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니 진지함도 함께 들어 있을 것이라 본다. 여기서 다룰 내용은 아니니 패스.

 

 

바티스트 보리유의 <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의사가 죽었다', '아니다'라고 말을 해버리면 영화의 엔딩을 다 알아버리고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일 것이다. 장례식을 앞둔 며칠이 지나면서 다소 그가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뭔가를 새롭게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의지가 너무 강했기에 작가는 그냥 죽게 놔두지 않을까 싶었다.

 

젊은 의사, 결국 그는 소원을 이루지 못 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이미 죽은 이, 그의 아내가 그를 살렸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죽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줘, 누군가 손을 내밀거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붙잡는다고. 꼭 약속해 줘. 약속 안 지키면 죽기 전에 먼저 미쳐버릴 거야."-191

 

거짓말쟁이 할머니와 약속을 한 남자. 그 약속은 실은 젊은 의사 아내가 죽기 전에 할머니에게 부탁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착실하게 실행한다. 물론 그러한 손을 내민 일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자네는 진짜 사랑스럽다니까! 내 생애 가장 환상적인 일주일을 보내는 중이야. 금은보화를 다 준다 해도 다른 시간과 맞바꿀 생각이 없을 만큼. 그리고 말이야. 난 성공할 거야. 자네는 살게 될 거고, 다 나을 거애. 그런데 아주 조용히 낫게 될 거야. 그걸 늙어간다고 하지."-213

 

여러 문장들이 와 닿는다. 그중 한 문장이 다음에 소개하는 문장이다. 면도를 하는 젊은 의사.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고, 감춰진 것들을 꺼내놓음으로 해서 삶과 죽음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살아야 할 이유를 더 꺼내놓고 살아야 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는 일에 더 앞을 다투지는 않는가.

 

"그는 창백한 알몸 상태로 똑바로 서 있었다. 스스로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달라진 모습이었다. 큼직한 초록색 눈동자 두 개가 새롭게 보였고, 햇빛 구경 한 번 한 적 없는 듯 새하얀 이마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도, 털도, 흉터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기억도 과거도 없는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43

 

소설의 재미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작고 작은 연결고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고리를 잡고 들어가서 보면 재미있고 때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작가 나름대로 복선을 깔아둔 것이다. 텍스트로 한 문장 두 문장으로 처리하지만 간혹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있다. 재치 있게 잘 깔아두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명료하다. 환상적인 스토리와 실 삶과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집중시킨다.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인 듯싶다. 혹은 어디서 만난 듯한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언제나 죽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산다. 어려워서, 힘들어서 죽겠다라고 입에 달고 산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남녀노소 구별 없이 사용한다. 드라마는 일상적인 대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냥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몇 번을 죽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죽음을 앞둔 이. 그 누군가 간절히 바라던 하루, 그 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추억이라는 시간을 다시 돌이켜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가득한 삶이 오늘을 지키고 내일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가벼이 여길 것이 없다.

 

"살아,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데. 이렇게 생각해. 내가 지금, 죽음이 삶에게 건네는 거울처럼 자네 앞에 서 있다고 말이야".-295

 

이 소설에서는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도 많이 등장을 한다. 그냥 막 흘려버리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작가 나름대로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 진중한 문장 들을 적절하게 삽입하여 글을 전개한다.

 

"사라, 정말 인생은 혼자인 건가요?"

"처절할 정도로 그런 거야, 마르크."

-237

 

현재 전문의로 일하면서 작가로 활동 중인 바티스트 보리유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유쾌하거나 기쁜 공간이 아니라 힘들고 지친 삶의 현장, 고단한 삶의 공간이지만 그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야기하는지를 자신의 블로그(http://www.alorsvoila.com/)를 통해서 소개했다.

 

포기해야 할 삶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하고 꾸준하게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작가가 추구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가 그렇게 '마르크'를 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