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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ㅣ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이토록 책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내 생각을 만들기 위함이다. 거침없이 문장을 만들어내고 거침없이 내 속의 것들을 거리낌 없이 내놓아도 흠이 잡히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쓰는 동안 쓰는 과정에서 의심하고 머뭇거리는 태도가 아니라, 내가 먼저 검열하고 내가 먼저 소심하게 걱정하여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내 글이 되려면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먼저 단단하고 지속적인 독서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어디서 더 나올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는다. 오늘도 수많은 책들이 시장에 나와서 독자의 손을 기다리고 읽어주길 고대하는 마음으로 책장에 누워 기다린다. 만져주기만 해도, 들어다가 내려만 놓아도 좋은 일일 정도로 독서 인구가 없다고 걱정한다. 그래도 새로운 갈증과 욕망을 채워주는 책들은 선택을 받는다. 수많은 책들이 유혹을 한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무엇을 들어야 할지 망설인다. 제대로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소비 충동에 구매했다가 묵혀두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의 종이가 변해서야 다시 꺼내 읽기도 하는 책도 있다.
사는 것이 녹녹치 않은 세상이다.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힐링이 한때 유행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별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가 그런 세상을 만들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기계문명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인간 상호 간의 능동적인 소통을 구식이라고 팽개쳐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지혜로운 삶은 검색 도구를 이용해서 지식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곳에서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소통 과정에서 얻고 잃어버리는 것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세상에서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책이다. 책 중에서도 시가 내게는 그러한 존재이다. 장편소설, 전기, 사회과학, 인문 분야의 다양한 책들 속에서 시는 문장이 길지 않다. 여백이 많다. 여백이 많다는 것이 문장이 빈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시인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기록하고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을 기록한다. 짧지만 강렬하다. 여운을 남긴다. 뭐라고 콕 꼬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한 아름 선사한다.
때로는 삶의 고통을 줄여주는 '마이신'이다. 때로는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소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놓는 엔진이기도 하다.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그러한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이다. 시인의 손을 떠난 시는 읽는 이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 독자에게 남는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인 장석주가 내놓은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를 더욱 시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좋은 시는 삶을 정화시켜주는 옹달샘이기도 하다. 시에는 삶의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 힘이 들어 있다. 시인의 삶의 깨달음이 담겨 있기에 때로는 뜨겁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다양한 시인들의 시 하나를 뽑아 이러한
시인들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고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숨은 뜻을 파헤쳐 갈피를 잡게 해준다. 저자는 시 안에 흐르는 눈물,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가며 왜 그토록 삶이 뜨거워야 하는지, 왜 고통스러운지를 갈래 가래 풀어놓어가며 독자의 이해를 도우며 앞으로 이끌어간다. 자칫 놓치고 갈 수 있는 곳들에 밑줄을 긋게 한다.
시인들의 삶의 단편을 소개하면서 시인의 시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는 이 책은 저자의 독서력으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사회현상과 버무려져서 다양한 생각들을 불러 모으도록 한다.
“오늘날 깨끗하게 사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세상이 온통 불의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 불의에 알게 모르게 연루되어 있다. 마치 제 옷이 아무리 백옥같이 희다 해도 숯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숯 검댕을 묻히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과 같다. 양심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점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부끄러운 것은 내 고결에의 의지가 시인만큼 단호하거나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를 자주 읽는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오탁의 얼룩과 근심, 어지러움 들이 황홀히 헹구어지는 까닭이다. ‘별을 보며’의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는 내 비루한 가난과 구질구질한 삶의 내역조차 알 수 없는 투명함을 머금는다.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시인들이란 저를 희생하여 독자들을 세속의 더러움에 대한 대속에 이르게 하는 하염없는 자들이 아닌가! 이성선 시인은 그것을 시로써, 생명을 거는 실천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77페이지, 본문 중에서
이처럼 시인의 시와 그의 해석이 어우러진 문장들이 이 책을 지배한다. 고은, 정끝별, 김광규, 조용미, 황동규, 나희덕 등 시인들의 시 한 편씩을 통해서, 우리 삶을 깊고 맑게 바라보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삶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시인들의 노래를 저자의 해석으로 좀 더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무게, 당신의 무게는 얼마 되는가. 시 한 편이 오늘 그 무게를 줄여줄 수 있다면 이 책이 그러한 길을 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