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북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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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것보다 참지 못할 일은 없다.

Written by Jane Austin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더랬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영화화하기는 코끼리를 가방에 넣는 것처럼 어려운데 비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스위스 시계처럼 잘 맞아 떨어진다.”

그칠지 모르고 유난히도 불어대는, 오스틴 열풍을 단적으로 꼬집는 글이라 난 한참을 박장대소 했더랬다. 정말 그렇다. 제인 오스틴 소설의 소설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패보고 치는 고스톱”이랄까?

그만큼 빤한 공식이 있다는 얘기다. 이미 레시피가 다 공개되어 있는 음식을 굳이 <제인 오스틴>이라는 레스토랑까지 가서 돈 주고 사먹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응! 사먹을 만 해.”라는 것이다. 멋지고 돈 많은 남자를 향한 지극히 속물스런 구애와 약간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오스틴의 공식은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지만, 그 속에 넘쳐나는 위트와 맛깔스런 대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즐거움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스틴을 읽는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 또한 오스틴의 이런 글쓰기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들, 짜증나는 이웃과 친지들, 적당히 착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작가가 괜히 제인 오스틴을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뭐 굳이 비꼬자면 ‘나 오스틴처럼 쓸 거니까 팬 북이라 생각하고 읽어!’랄까.

따분한 일상들과 누구나 한번 씩은 겪었을만한 얘기들로 무려 30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을 굳이 써야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대부분의 우리가 고대의 서사시에나 등장하는 장엄하고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따분하고 지루한 반복되는 일상들 속에서 고만고만한 이웃들과 요모조모 부대끼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편견분별력과 감수성을 조금씩 갖춘 우리는 꽤 오만한 이웃들과 요모조모 부닥치며 때로는 설득하기도 하고 때로는 설득당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는 괜찮다고 생각되어지는 배우자들과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작가는 분명 오스틴처럼 쓰면 팔릴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읽는 것이고!

언제나 오스틴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곳이 서울이든 뉴욕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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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카이에 소바주 5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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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욕망에 정확히 부합되는 이미지를 만난다는 것은 매일 있는 일은 아니다

written by 자크 라캉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 책의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원화된 비대칭적 사고로 형성된, 오늘날의 현대문명은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국가질서와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적이며, 무분별한 개발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대칭적 사고(유동성 지성)로 제 2의 형이상학 혁명을 이루어 내어 현대문명의 이런 문제점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제시한 유동적 지성이 과연 현대문명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의 백신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접기로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사상의 논거로 제시한 예들에서 발생합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합한 사실 데이터(Fact Data)의 제시에 있다고 봅니다. 사상의 논거로 제시한 예시가 사실이 아닌 가설이거나 불확실한 정보만을 담고 있다면 신뢰성을 갖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가 제시한 몇 가지 실례들을 살펴보면,


첫째>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증거

 

저자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진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네안데르탈인 보다 훨씬 더 긴 미숙아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상징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진화경쟁에 있어서 생물학적 우위가 반드시 진화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입니다. 진화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작용하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라는 법칙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극히 소수이며, 완전한 모습이 갖추어진 채 발견된 적도 없습니다. 하물며 이런 극소량의 화석화된 해부학적 증거만으로 네안데르탈인의 마음의 구조를 밝힌다는 것은 다소 무모한 행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둘째> 행복론

 

저자는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대칭성의 원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담당하고 있다고 저술하고, 성(性)적 체험이나 종교적 체험, 예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양감등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적 체험이나 종교적 체험 같은 경우는 너무나 개인적이며, 그것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증언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논거로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성녀 테레사”의 종교적 체험을 몇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괴담이야기에나 어울릴 듯한 것이지 전문적인 학술서나 사상서에서 다룰만한 것은 아닙니다.

예술이 주는 열락과 같은 행복감도 개인의 환경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리 적합한 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저자는 모네의 <수련>을 보고 행복의 파편들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저자를 제외한 60억 인구 모두가 수련을 보고 마냥 행복감만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저자가 제시하는 교환/증여론의 논거들도 엄밀하지 못하며 때로는 어설프기 까지 합니다. 물론 이 책이 대학교 1,2학년을 상대로 하여 매우 쉽게 쓰인 교양서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학술서나 사상서의 이름을 달고 있다면 그 학문적 논거는 엄밀하고 단단한 사실만을 다루어야 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나 소수의 개인적 증언에만 의지하여 논증을 펼친다면 그 누구도 신뢰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이라면, 대부분의 인문교양서들이 흔히 가지는 지루함이나 따분함 등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흥미를 끄는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고, 저자의 알기 쉬운 친절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인류학의 입문서로는 적당한 듯싶습니다.

저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루고만 있었던,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대양으로 나아가는 좋은 길잡이를 구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책의 제본이 충실하지 못하고 해제나 각주가 불충분하여 읽어나가는 동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원초적 억압> 같은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은 알기 쉽게 밑에 각주를 달아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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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2-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사성녀의 종교적 신비체험을 괴담이야기에나 어울릴만한 이야기라고 한말은 무척 잘못된 시각입니다. 님은 어떤 체험의 진위여부를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로서 판단하시는가요? 역사적으로 테레사성녀와 같은 신비체험을 했던 사람은 꽤 많습니다..단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없을 뿐이지요. 님말대로라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신비체험은 다 믿을수없는 괴담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지..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가 적어서라는 얼토당토한 논리로 말이죠. 예술적/종교적 체험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질적으로 체험할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카자와 신이치가 이야기하듯..대칭적 체험/사유가 되는 것이지요..님이 그것을 "괴담"이다라고 이야기하는것 자체가 님이 바로 비대칭적 사유에 매몰되어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보르헤스 2006-02-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빌라의 테레사"의 종교체험을 단지 종교체험만으로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테레사는 아주 부유한 귀족출신이었으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당시 사회적 필요에 의해 12살에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수녀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병이 났고, 그로 인해 환속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아빌라에 돌아온 테레사는 곧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아버지 반대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테레사가 살던 시기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유별난 종교체험"들을 많이 하였고, 그 중에서도 테레사의 종교체험이 역사적 사료로 남게 된 것은 테레사의 아버지가 수도원에 한 막대한 기부에도 적지않은 영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테레사는 그냥 수녀가 아니었습니다. 귀족에다 부유한 출신의 수녀입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보자면 테레사의 증언은 일반 민중이 아무렇게나 지껄인 신비체험과는 다른 강도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또한 그녀의 체험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사실 억압된 성적충동의 발현이라고 보는 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증언만으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것이고, 그래서 정신분석학도 '과학의 이름을 빌은 문학'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yoonta 2006-02-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아빌라의 테레사의 체험이 단순한 종교체험이냐 아니냐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저는 종교적 체험/신비체험/무의식 체험등과 같은 합리적으로는 설명불가능한 불가해한 체험/사유가 실제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리고 위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그 체험자가 극히 소수이고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체험이기 때문에 님처럼 괴담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실제성은 부인하기 힘들죠..정신분석에서의 무의식분석도 이러한 인간의 심리속에 잠재되어있는 불가해한 실체를 밝혀내려는 시도이고 그렇기 때문에 님의 표현처럼 '과학의 이름을 빌은 문학'이라는 평가도 받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을 모두 괴담이다라고 보는 시선은 지극히 편협하고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러한 편협한 시선이나 논리야말로 비대칭적인 것이라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 인류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고요.

보르헤스 2006-02-2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체험/신비체험/무의식체험 등의 사유가 있나 없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기에 저로서는 그것의 실재성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오늘날 현대문명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는 여러 문제들이 대칭적 사고로의 전환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칭적 논리가 지배하던 고대사회에는 오늘날의 현대문명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점이 없었을까요? 설사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는 또다른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했을거라고 봅니다. 고대사회에서도 인간/동물에 대한 대량학살은 쭉 있어왔고, 여러 역사적 사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나카자와 신이치가 이른바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칭적 사고로의 전환을 설명함에 있어서, 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사실 데이터의 제시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예시가 불충분하였고, 자신의 전제를 입증하기 위한 논리 또한 엄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단순히 이론이나 가설을 소개하는데에서 그쳤다면, 테레사의 성녀의 예도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하였고, 그 주장을 뒷바침하기 위한 논지로 테레사의 성녀를 예로 들었습니다. 테레사의 성녀의 증언은 사실 검증하기도 검증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증언을 예시로 삼는 것은 논제를 전개하기에는 불충분하다라는 것입니다.
 
납치된 공주
카렌 두베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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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할 수 있는 기본 구성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결말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점이라면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곤 하는 인물들의 전형성에서 탈피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인물들의 개성들이 파격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기사문학이나 판타지 문학에서 주로 등장하는 영웅적 기상의 왕자라던가 아님 청순가련하며 낭만적인 공주라는 획일적인 인물상에서는 확실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기사문학의 형식을 빌어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현대적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부재하는 이들이다. 그들 모두는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자들이며, 이를 자신들의 내면 내지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외부로만 눈을 돌릴 뿐이다.


애정없는 결혼관계로 맺어져, 마치 타인처럼 살아가는 바스카리아의 국왕부처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태어난 아들을 증오하는 아버지를 둔 기사 브레두르

어머니의 사랑을 끊임없이 간구하지만 결코 어머니로부터 사랑은 받지 못한 불행한 디에고 왕자

아름답고 현숙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리스바나 공주.

이 밖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난장이 페드시나 리스바나 공주의 시녀 로자문데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은 모두 결핍과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개성있는 각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재미난 얘깃거리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우리 현대인이 느끼는 상실감, 공허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상실감과 공허감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를 <납치된 공주>의 작가 카렌 두베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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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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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인한 폭력은 견딜 수 있지만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다.

Written by Oscar Wilde


우린-니체가 말했던-삶을 피해 사막으로 달아나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끊임없이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가혹한 사막에서 끝없는 갈증에 몰린 나머지 자신의 곁을 지켰던 무리에게조차 날카로운 이빨을 곤두세우며, 그들의 피로 자신의 갈증을 풀고자 하는 사나운 짐승들은 대체 누구인가?


오늘날의 고도로 조직화된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대량생산이 가져온 풍요로 인해 수많은 산물과 상품이 거리 곳곳에 넘쳐나도록 하였지만, 그 풍요는 오로지 돈이란 것을 가져야지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써 그 풍요의 대가로 우리에게 동정보다는 비정을, 정의보다는 이익을, 삶보다는 생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그 사나운 짐승들에 관해 함께 얘기 하고자 한다.

인간의 삶이 아닌 짐승으로서의 생존을 선택한 그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풀기 위해 무리 중 가장 약한 이를 희생자로 선별한다. 그리고는 선택된 희생자 앞에서 차가운 냉소와 비수 같은 적의로 이루어진 그들의 이빨을 천천히 드러낸다. 잔인한 이성은 어느새 증오로 일그러진 짐승의 얼굴들을 친절과 교양이란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다.


희생자의 피로 자신들의 갈증을 푼 짐승들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 희생자가 자신과 같은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희생물로 선택되었기에 그건 자신들과 같은 무리가 아닌 그저 희생물일 뿐인 것이다. 자신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물을 애도하는 장례식에서 짐승들은 슬픔을 가장한 희미한 미소만을 머금을 나름이었다. 미칠 것 같았던 갈증을 희생자의 피로 푼 짐승들은 다시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는 언젠가 짐승들은 다시 모이겠지. 다음 희생물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PS>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집을 읽으면서 그녀의 전작 <태양은 가득히>,<열차안의 낯선승객> 두 편을 영화로 보았는데,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안의 낯선승객>의 시나리오를 레이몬드 챈들러가 썼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그냥 모르고 넘어갔었는데, 마치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듯 너무 기뻤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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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er Marie - Make This Moment
Inger Marie 노래 / 미디어신나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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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은 오로지 지름을 목적으로 쓰여진 다분히 의도성 짙은 글입니다. 연말(年末) 여기저기 돈 쓰실 곳이 많아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 분은 조용히 ← 키를 눌러주시면 되겠습니다.


Inger Marie 를 처음 만난 건 그녀가 살고 있다는 7개의 섬 위에 세워진- 호수와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피요르드 협곡이 너무나 아름답다던 노르웨이의 작은 항구도시- 아렌달이 아닌, 밤새 내린 서리로 하얗게 변해버려 앞이 잘 보이지 않던 차디찬 차 안이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트 안에 아직 덜 풀린 몸을 애써 구겨넣은채 난 작업장(?)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깨어난다는 아침이었지만, 나의 몸뚱아리는 여전히 Hypnus의 魔手 아래에 놓여 있었다. 잠에 취해있던 난 무심코 카 오디오의 play 버튼을 눌렀고, 그 곳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는 것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음악은 비언어적 예술로 음악 그 자체로는 어떤 것을 말해줄 수도 보여줄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 OP. 67번의 “솔솔솔 미”를 듣고 운명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그건 순전히 거짓말에 불과하다. 교향곡 5번 1악장의 주제 Motive는 그저 단 3도로 이루어진 음정에 불과할 뿐 운명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습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Jazz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표제나 가사가 붙어있지 않다면, 우리가 그 음악을 어떻게 느끼냐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재량에 달려있다는 말이다.(내 쪼대로 다 할꺼야 ^^)

그래서 음악은 여타의 다른 예술보다 자유롭다. jazz의 경우 싱코페이션,프레이즈,악기의 편성을 어떻게 두냐에 따라 그 음악은 전혀 다른 음악으로 들리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한 Jazz의 Standard 곡들을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고해서 전혀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다. 그건 당연한 거니까...

또한 그것이 바로 Jazz의 매력이 아닌가?


Inger Marie는 노래를 정말 맛깔스럽게 부른다. 노래에 자신만의 색깔을,감정을,분위기를 버무려 정말 맛깔스럽게 내 놓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타인을 압도할만한 풍부한 성량도, 화려한 기교도 없지만 그녀만의 눈부신 생명력이 있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평범하지만 독특하다.


Inger Marie의 <Let it be me>는 그런 그녀의 매력이 담뿍 담겨 있는데, 원곡은 로커빌리 가수로 유명했던 Everly Brothers의 1960년 발표,히트곡이다.


Let it be me


I bless the day I found you

I want to stay around you

And so I beg you

Let it be me

당신과 만난 그 날을 축복합니다.

난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간구합니다.

당신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


Don't take this heaven from one

If you must cling to someone

Now and forever

Let it be me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가버린다고 해도

나에게서 이 천국같은 행복을 앗아가지 마세요

지금이나 언제까지나

절 당신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


Each time we meet love,

I find complete love

Without your sweet love

Tell me, what would life be?

우리가 매번 사랑을 나눌때마다

난 완전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말해주세요

당신의 달콤한 사랑없이는

어떻게 살아갈수 있을까요?


So never leave me lonely

Tell me you love me only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절 외롭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당신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


귓끝을 아리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왔다.


창가에 어리는 서리를 입김으로 호호 녹이며 따뜻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바로 그런 계절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반이다


이 음반은 여러 면에서 평범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편안하다. 그 심플함이야 말로 이 메마른 겨울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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