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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DG Originals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 / DG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저는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입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자신도 함께 끝나버렸다고 말입니다.”
Written by Joseph Conrad의 Lord Jim 중에서
시리우스(Sirius)란 별을 아시는가?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 들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백과사전에서 시리우스란 별을 찾아보면,
“시리우스는 큰개자리의 α별로, 태양에서 8.7광년 떨어진 분광형 A1형의 주계열성입니다. 시등급 -1.5등급으로 전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태양을 제외하고) 중 가장 밝습니다. 시등급 8.7등급의 동반성을 가지고 있는 안시쌍성으로 두 별은 49.98년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음반 가운데서도 유난히도 빛을 발하고 있는 시리우스 같은 녀석이 하나 있다.
그 녀석은 바로 요 녀석으로
Sviatoslav Richter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함께 커플링 되어있는 정말 정말 매력적이고 황홀한 음반이다.
언젠가 음악 칼럼니스트 정만섭씨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조금만 훈련된 음악 애호가라면 음반을 처음 듣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것이 Richter의 연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리히터는 아주 강력한 개성을 소유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개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개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란 말로는 설명되어 질 수 없는... 뭐랄까?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 하다.
가끔 나는 리히터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지독한 <악령>에 버금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우린 ‘Liszt 나 Paganini의 연주가 정말 대단했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들의 연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문헌으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리히터의 연주는 어떠한가? 그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남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경외와 절망을 함께 안겨다 주고 있다.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Conductor: Stanislaw Wislocki
Orchestra: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리히터: 나는 내가 녹음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다시 들었지. 작품 그 자체의 수준에 상응되는 제법 잘 된 연주였어.
나: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는 연주셨습니다. Maestro! 투우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에스트로께서는 Matador셨습니다.
붉은 물레타(muleta) 하나로 작곡가와 청중과 피아니스트들을 유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달아오른 심장에 차디찬 검을 꽂으셨지요.
연주가 끝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도 함께 말이지요
Tchaikovski Piano concerto NO. 1
Conductor: Herbert Von Karajan
Orchestra: Wiener Symphoniker
리히터: 난 원래부터 카라얀을 좋아하지 않았네.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지. 나와 그는 함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함께 녹음한 바가 있었는데, 이 녹음에는 악보를 터무니없이 잘못 해석한 부분이 남아있다네. 그 오류는 오로지 카라얀의 고집 때문이었지. 제 2악장의 카덴차가 끝나고 주제가 회귀하는 곳이 있는데, 내가 카라얀에게 상박(上拍)을 지시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자를 맞추기를 거부해 버렸지. 나는 그저 리듬의 정확성을 요구했을 뿐이었는데도 그는 철저히 나를 무시했어! 정말 고약한 일이었지.
나: 네! 그런이유로 몇몇의 음악애호가들은 마에스트로의 이 녹음을 그다지 신통치 않게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마에스트로께서는 전혀 굴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카라얀의 고집에 팽팽히 맞서시더군요. 그래요! 마치 동. 서 진영간에 벌어진 냉전(COLD WAR)같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선율안으로 두 분의 뜨거운 열정과 힘이 느껴지던데요. 두 분간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인해 특히 1악장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않게, 장엄하게)는 마치 음표의 융단폭격과도 같았습니다. 전 오히려 그 부분이 맘에 듭니다만...
리히터: 하하.. 자네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그래! 그런데 자넨 “어느 별에서 왔나?”(리히터가 신인 피아니스트들에게 종종 장남삼아 던지곤 했던 말)
나: ^^; Maestro...
PS> Richter의 음반에 관한 자신의 말은<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을 참조하여 제가 약간 손질하였음을 밝힙니다.
세간에선 흔히들 결정반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만큼은 바로 결정반이 존재하는듯 합니다. 바로 리히터의 이 음반이죠
반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경우에는... 물론 이 곡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만큼은 아직 결정반이 나오지 않은 듯 합니다. 호로비츠, 지메르만, 베르초프스키, 아르헤리치, 라자르 베르만 등등 많은 명반이 있습니다만, "바로 이거다!"하는 결정반은 없죠. 리히터가 라흐 3번을 녹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 부분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