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8집 - State Of The Art
신화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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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스크라는 이름으로 신화가 다시 돌아왔다.

나는 신화의 음악보다는  디지털 디스크라는 새로운 매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

1982년 소니와 필립스에 의해 compact disc라는 이름으로 CD가 발매된 이후 음반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LP에 비해 생산과정에서 음질의 열화가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곡을 맘대로 취사선택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LP에 비해 가벼웠으며 단단했다. 콘크리트 벽에 집어던져도 깨지지 않았다 ^^

LP의 크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했던 멋진 자켓은 사라져  버렸지만, 대신 휴대성이 더욱 용이해졌고, 시시때때로 LP의 표면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안경 닦는 천"으로 닦아내야만 했던 수고도 없어졌다. 그렇게 CD는 LP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최근 MP3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음원에 대한 손쉬운 copy가 가능해지면서 음반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리바다를 비롯한 p2p서비스 업체에 대한 음악저작권단체의 무더기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의 새로운 매체였던 CD가 등장하면서부터 기존의 LP시장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키고 기술이 수요를 이끌어 내었던 1990년대 초반과는 달리 MP3라는 새로운 매체는 수요를 전혀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다. 음원에 대한 손쉬운 확보와 카피가 음원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이제 아무도 음원을 돈을 주고 "굳이" 구입하려 하지 않게 되버렸다.

디지털 디스크의 외양은 일단 MP3와 유사하다.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칭찬 받아 마땅 하지만 투박한 플라스틱으로 된 외양은 왠지 촌스럽다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이어폰을 따로 갖고 다녀야 하며 건전지도 사서 넣어야 한다. 이쯤되면 디지털 디스크가 기존의 MP3를 대신할 수 없다라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디지털 디스크는 MP3 플레이어를 대신할 만한 매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가볍고 휴대가 용이하지만 그건 MP3 플레이어도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이다. 게다가 MP3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처럼 반복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디지털 디스크는?

아마도 디지털 디스크가 기존의 MP3 플레이어나 CD 시장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신화의 8집에 대해서는...

휴! 신화가 1998년 데뷔한 이래로 8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음악이 만약 예술이라고 가정한다면 거기엔 예술 혼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뛰어난 장인의 손에는 환타지가 있다라는 말 처럼 음악에도 환타지가 있어야 한다. 대중가요나 Classic 음악이든 음악에는 그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며 혼이 들어 있어야 한다. 아이돌 그룹에게 예술 혼 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 수도 있으나,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혹은 개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색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일 수 있을까?

음반이 아닌 사진집같은 컨셉! 그들은 진정으로 음악이란 예술을 하고 있나?

그나마 별3개라도 준 것은 리뷰어로 선정되어 받은 것이기에 차마 인륜을 거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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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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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ear babies crying I watch them grow

They'll learn much more than I'll ever know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가사 중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곳에는 약동하는 알래스카의 대자연의 숨결과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멋진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 있었다. 아직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한!

 


콜롬비아의 낡은 구식 오두막에서 고향의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는  알두 브렌드(p.61)


“저는 콜롬비아의 자연을 찍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콜롬비아하면 마약과 범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략... 우리 고향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봤자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 아마존의 밀림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아마존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표정이 담긴 한 장의 사진으로 얼마든지 아마존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입니다.”


홋카이도의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하며 글을 썼던 사카모도 나오유키(p 96-97)


“관을 실은 썰매가 태평양이 보이는 벌판 묘지로 이동했다 나는 설원 저편으로 멀어져 가는 우기치 노인의 외로운 넋을 시야에서 살아질 때까지 전송했다. 아무런 짐도 남겨져 있지 않은 텅 빈 오두막이 주인을 잃은 쓸쓸함에 조용히 울고 있었다. 한쪽 벽에 우기치 노인이 애용했던 낡은 장총이 걸려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 덮인 벌판으로 말을 달렸다. 노인이 생전에 자주 찾았던 누프카베츠 상류를 지나 오모샤누프리 산 정상까지 한달음에 도착했다. 저녁노을로 빛나는 밤하늘은 노인이 가장 사랑했던 풍경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누프카(벌판)만이 내 심정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외부로 통하는 길이라곤 비행기와 배뿐인 문명과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헌책방 <옵서버 트리>를 운영하는 D 할머니(P.112)


“지도가 역사보다 재미있어. 지도는 땅과 바다를 그린 것이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 주제야. 그 땅에 누가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거든, 그래서 지도를 볼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게 됐는지 알 수 있지.”


미드웨이 해전에서 남편을 잃은 한 미군 병사의 아내(P.190-191)


“왜 사람들이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아요. 왜 죽은 자를 잊지 못하고 신앙을 찾는지 알겠어요. 한때 서로 사랑하며 의지해온 사람이 이제는 내 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의 힘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난날을 추억하고, 신앙에 의지하는 것이지요.”


70세의 나이에 일본어에 이어 스페인어에 도전하고 있는 빌 플로(P.224)


“사람의 인생은 강물과 같아.그런데 사람들은 물가를 더 좋아하지. 조금만 더 참으면 바다로 나아갈 텐데 말야.”


알래스카의 숲속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제이미(P.276-277)


"나도 때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뼈에 사무칠 정도로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마음의 균형을 되찾게 되죠. 가끔 아이들이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는데, 그때마다 혼자 생각해보죠. 과연 도시는 여기보다 덜 외로울까, 거기 가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곳 사람들도 외롭긴 마찬가지잖아요. 단지 리모컨과 몇 명의 친구들이 있을 뿐이요. 사람마다 고독이 다르다는 것을 여기에서 배웠어요. 어떤 사람은 수십명에 둘러싸여도 외로워해요. 또 누군가와 헤어지면 외로움이 밀려오죠. 그런데 여기서는 외로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는 고독도 친구랍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죠.”


문명과 가장 동떨어진 곳일지도 모르는 알래스카. 그곳의 주화(州花)는 물망초(Forget-me-not)라고 한다. 우리가 진보(進步)라고 말하는 그 모든 것에는 우리가 상실해서는 안 될 그 어떤 것을 희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것은 소수의 몇 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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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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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리고 싶다"라는 질주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베른트 하인리히!

그는 41살에 전미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하여 100km의  대장정 끝에 마침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에게 있어 하얗게 그어진 결승선은 "지상의 낙원" 그 자체였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만끽하는 승리에의 감격은 오로지 " 나무 그늘 아래 부드럽고 시원한 풀밭위에 눕고 싶다."라는 단 한가지 욕구 때문이었다. 그저 누워 쉬기 위해서라면 그는  왜 굳이 100km라는 먼거리를 뛰어야만 했을까?

이 책은 가만히 풀밭위에 누워서 쉴 수 만은 없는 "질주본능"을 가슴속 깊숙히 간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베른트 하인리히,  그 역시도 그런 질주본능이 가슴 속 가득히 채워진 사나이였다.  그는 오로지 달려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삶을 선택해 나갔다. 처음엔 단순히 달리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크로스 컨트리" 는 그에게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고,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거칠게, 보다 더 멀리 달리고 싶다라는 욕망은 동물생리학과 동물 행동학을 공부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생물학과 교수"라는 그의 직업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가슴 속 가득히 질주본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의 성서가 될 것이다.

몸만들기, 마인드 콘트롤, 체력을 재 충전하기 위한 올바른 식이요법에 이르기 까지 비록 친절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더 빠르고, 멀리 달릴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준다.

하지만  당신이 달리는 것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이 책은 인류가 다른 동물과의 진화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생물학적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당신에게 선사해줄 것이다.  달리기 위해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직립보행을 선택함으로써 인류는 어떤 생물학적 진화를 밟아나갔고, 어떻게 최종적으로 진화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재미난 사실들을 최신 과학이론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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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DG Originals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 / DG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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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입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자신도 함께 끝나버렸다고 말입니다.”

Written by Joseph Conrad의 Lord Jim 중에서


시리우스(Sirius)란 별을 아시는가?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 들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백과사전에서 시리우스란 별을 찾아보면,

“시리우스는 큰개자리의 α별로, 태양에서 8.7광년 떨어진 분광형 A1형의 주계열성입니다. 시등급 -1.5등급으로 전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태양을 제외하고) 중 가장 밝습니다. 시등급 8.7등급의 동반성을 가지고 있는 안시쌍성으로 두 별은 49.98년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음반 가운데서도 유난히도 빛을 발하고 있는 시리우스 같은 녀석이 하나 있다.

 

 그 녀석은 바로 요 녀석으로



Sviatoslav Richter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함께 커플링 되어있는 정말 정말 매력적이고 황홀한 음반이다.

언젠가 음악 칼럼니스트 정만섭씨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조금만 훈련된 음악 애호가라면 음반을 처음 듣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것이 Richter의 연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리히터는 아주 강력한 개성을 소유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개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개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란 말로는 설명되어 질 수 없는... 뭐랄까?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 하다.

 

가끔 나는 리히터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지독한 <악령>에 버금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우린 ‘Liszt 나 Paganini의 연주가 정말 대단했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들의 연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문헌으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리히터의 연주는 어떠한가? 그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살아남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경외와 절망을 함께 안겨다 주고 있다.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Conductor: Stanislaw Wislocki

Orchestra: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리히터: 나는 내가 녹음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다시 들었지. 작품 그 자체의 수준에 상응되는 제법 잘 된 연주였어.


: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는 연주셨습니다. Maestro! 투우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마에스트로께서는 Matador셨습니다.

붉은 물레타(muleta) 하나로 작곡가와 청중과 피아니스트들을 유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달아오른 심장에 차디찬 검을 꽂으셨지요.

 

연주가 끝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도 함께 말이지요


Tchaikovski Piano concerto NO. 1

Conductor: Herbert Von Karajan

Orchestra: Wiener Symphoniker


리히터: 난 원래부터 카라얀을 좋아하지 않았네.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지. 나와 그는 함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함께 녹음한 바가 있었는데, 이 녹음에는 악보를 터무니없이 잘못 해석한 부분이 남아있다네. 그 오류는 오로지 카라얀의 고집 때문이었지. 제 2악장의 카덴차가 끝나고 주제가 회귀하는 곳이 있는데, 내가 카라얀에게 상박(上拍)을 지시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자를 맞추기를 거부해 버렸지. 나는 그저 리듬의 정확성을 요구했을 뿐이었는데도 그는 철저히 나를 무시했어! 정말 고약한 일이었지.


: 네! 그런이유로 몇몇의 음악애호가들은 마에스트로의 이 녹음을 그다지 신통치 않게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마에스트로께서는 전혀 굴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카라얀의 고집에 팽팽히 맞서시더군요. 그래요! 마치 동. 서 진영간에 벌어진 냉전(COLD WAR)같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선율안으로 두 분의 뜨거운 열정과 힘이 느껴지던데요. 두 분간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인해 특히 1악장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않게, 장엄하게)는 마치 음표의 융단폭격과도 같았습니다. 전 오히려 그 부분이 맘에 듭니다만...


리히터: 하하.. 자네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그래! 그런데 자넨 “어느 별에서 왔나?”(리히터가 신인 피아니스트들에게 종종 장남삼아 던지곤 했던 말)

 

나:  ^^;  Maestro...


PS> Richter의 음반에 관한 자신의 말은<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을 참조하여 제가 약간 손질하였음을 밝힙니다.

 

세간에선 흔히들 결정반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만큼은 바로 결정반이 존재하는듯 합니다. 바로 리히터의 이 음반이죠

반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경우에는... 물론 이 곡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만큼은 아직 결정반이 나오지 않은 듯 합니다. 호로비츠, 지메르만, 베르초프스키, 아르헤리치, 라자르 베르만 등등 많은 명반이 있습니다만, "바로 이거다!"하는 결정반은 없죠. 리히터가 라흐 3번을 녹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 부분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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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을 들킨 위대한 예술가들 - 은밀하게 엿보는 그들의 숨겨진 욕망 읽기
서지형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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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표면임과 동시에 상징이다.

Written by Oscar Wilde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했다.

“욕망과 증오로 가득한 자에게 진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서지형씨는 “당돌하게도”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욕망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꽤나 “발칙한” 시도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시도가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들로 하고 있다면?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빈센트 반 고흐, 카미유 클로델, 살바도르 달리, 뭉크, 에곤 쉴레, 심지어 앤디 워홀에 이르기 까지 “예술”이라는 위선의 장막 뒤에 숨어있는 은밀하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실재의 “어둠의 욕망”들을 끄집어내어 “진실의 빛”밖으로 드러낸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인가를 욕망한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다. 마치 그 욕망을 품고 있다라는 것만으로도 "정신질환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보통사람과 정신질환자의 차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얼굴의 뒤로 숨기느냐 아니면 얼굴로 통해서 드러내느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철학자 Emile Cioran

"누군가 모든일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가 병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우리의 세계는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의 자아 또한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니다. 깨어진 거울의 파편처럼 일그러지고 비틀어져 있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인 것이다.


모나리자에게서 다 빈치의 동성애 코드를, 고흐의 의자에게서 나르시시즘을, 달리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읽어내었다고 해서 그 위대한 작품들이 추악한 욕망의 배설물로 퇴락해 버리는 것일까? 황폐하고 혹독한 사막을 끊임없이 걸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우리에게 오아시스의 신기루라도 없다면, 우리는 그 잔혹한 폭력 앞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며, 욕망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는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는 그들 또한 우리와 동일한 것을 겪고, 상처 받으며, 욕망한다라는 진리를 이 책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도 “가까이 하기엔 아직은 너무나 먼” 자크 라캉(Jacques Lacan:1901-1989)과 함께라면 올 한해의 독서는 이 책 한권만으로도 풍족했다라고 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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