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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2주년 기념 리커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방금 떠나온 세계](김초엽, 한겨레출판사)
오랜만에 SF소설을 읽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처럼 단편소설집이라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이건 개인적 취향).
팔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헤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에도 그 사람을 이해하며 사랑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126쪽)
길고 긴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계의 사람을 만나며 겪는 어려움을 쓴 이야기도 있었다.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182쪽)
엄마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엄마를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지. 그래도 지금은 엄마가 힘이 빠진 게 느껴지니 미워하는 마음이 많이 가시긴 했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흥미로웠던 이야기였다. 다른 행성에 가서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은 이유는, 그 행성에 원래 서식하고 있던 거대 생명체 때문인데, 사람은 그 거대 생명체를 먹어야 살 수 있고, 행성은 그 거대 생명체가 있어야 살 수 있다. 길고 긴 싸움 끝에,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협약을 만든다. 그 생명체는 깊은 잠을 선택하고, 사람은 짧은 수명을 선택하며 그 생명체를 종교화한다.
우리는 당장의 삶을 갈구하여 협약을 위협했던 사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어요. 그렇기에 벨라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앎이 아닌 무지이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절제하게 만드는 것은 평생에 걸쳐 우리를 지배하는 규율이고 신앙이며, 금기에 대한 복종입니다.(226쪽)
그리고 모두가 공유하는 인지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몸이 너무 약해서 그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인물은, 그래서 왕따를 당하고 상처를 받는다. 사람은 공동체가 있어야 살 수 있지만, 그 공동체의 신념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씁쓸하다. 교회 공동체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래도 이걸 모두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어. 내가 당했던 일들은 다 어디로 가는데? 그런 건 사라지지 않아.˝(237쪽)
불변하는 진리는 모두의 인지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스피어가 정말로 분열일까? 스피어를 갖게 된 우리는 정말로 같은 격자를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공동 인지 공간을 거닐면서도 각자의 스피어를 통해 진리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268쪽)
어쩌면,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유신진화론이 스피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읽은 김초엽 작가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온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