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의 안경 - 쉽게 풀어 쓴 신국원의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
신국원 지음 / IVP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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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소유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벽한(?) 기독교 세계관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왜곡된 가치관도 조금 있었던 탓이다. 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삼박자의 하나님 계획. 창조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다. 창세기 공부를 하며, 일대일을 몇 번이나 했지만 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인본주의에 물들어있던 내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섭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해 있었던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행하는 것은 바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요즘 안 그래도 사람은 정말 작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주와 지구 속의 인간을 비교해 볼 때,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인간관 역시 얼마나 인본주의에 물들어 있었나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가치관이었다. "인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교만했던 내 모습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락은 방향의 문제이다."

구속의 문제가 중요하긴 한데.. 잘은 모르겠다. 구속에 대해서만큼은 그래도 좀 바르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을 하고 책 이야기를 끝낼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에게 너무나 내세적이었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현세적으로 될 필요는 없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며,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나라라고.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완성될 나라라고. 천국은 우주 한 구석에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내세적으로 느끼게 될 때 신앙은 소극적이 된다." 이 말에 공감했다. 내 신앙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적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임해 있다는 사실을 왜 자꾸 까먹는 걸까.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세계관에 대한 책이라 처음에는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읽다보니 나의 세계관과 비교하게 되었고, 점점 재미를 느꼈다. 내가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니고데모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어느 누구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 객관적이라는 사실조차 인간이 만든 기준일 뿐이다. 그것도 또 하나의 틀이고 안경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옳긴 하다.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안경으로 보아야 함을 느낀다. 맹목적인 수용은 자신을 잃게 만드는 것 같다. 맹목적인 수용조차 또 하나의 안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보이는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으로, 저자는 샬롬이란 단어를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 평안이라는 것은 중요한 거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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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선생님
린다 A. 앤더슨 지음 / 가치창조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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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후 느낌을 묻는다면, 한 마디로 깨는(?!) 책이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그만큼 튀었고 하나님에 대해 순수했다. 어른들이 잘 볼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볼 수 있었다. 마치 영희 언니, 선지 언니랑 일대일 할 때 가끔씩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올 때 아이가 했던 말. "봤어? 봤어? 하나님이 온 세상을 하얗게 칠하셨어." 그리고 교회 문을 잘 열 수 없자 아이가 했던 말. "하나님, 우리가 여기 왔어요! 빨리 나와서 문 열어주세요."

이런 대목들을 읽을 때마다 실무실습 때가 계속 떠올랐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말해보라니까 "아무 데나 가서 쉰다."고 답했던 아이. 이런 아이들이 있기에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들은 보고 있다. 그게 좋아서 나는 교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낮아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고민했다. 나는 이때까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이렇게 해야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예배 시간에 장난 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무란 적이 있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군데 계속 그러냐고. 아이들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어릴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6학년 2월 27일까지는 예배 드리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음을 잊고 있었다.

"왜?"라는 질문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의 눈에서 생각한다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 어른들의 또다른 선생님 아이들. 가르칠 아이들이 기대된다. 어떤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깨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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