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터 불었다

한동안 먹구름이 웅성거리고

회초리처럼 비가 쏟아졌다


몸이 얻어터지는 동안 

마음은 동정이 넘쳤다

내 마음이 다 아프다고 했다


그것은 다 사랑의 매

때리는 마음이 더 아픈 법이지

멍들지 않는 마음들은 

반창고 대신 폼나는 명찰을 붙여줬다 


내 어깨에 가려 

발 밑에 그늘이 졌다

운동화코로 

콕 콕 콕


마음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들은 

실은, 

그렇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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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었다

가난이 두려워 

그는 죽었다


사랑의 고백이 두 쪽

재산의 행방이 여덟 쪽


의연하게 잘

폼나게 가족을 위해 

그는 죽었다


제 나이 훌쩍 넘는 근사한 빚도 

제 몸뚱이 하나로 퉁칠 수 있다는 

뻔뻔한 계산법이 이번에도 통했다


살 만큼 살고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모저모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그의 알뜰한 죽음은 

가족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훌륭한 가장이었다


아무튼 감동한 가족들은

그 남자의 유서를 얼른 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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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가 바뀌었다. 나의 열세 번째 행성 지구에서. 바뀐 가위는 잘 들지 않았다. 물론 예전 가위도 잘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지구의 자전축을 본 적 있니? 핫도그 막대처럼 그것은 지구를 관통해. 그래 북극. 북극에 가면 있어. 지구는 돌고 나는 어지럽지. 소리는 또 얼마나 큰데!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들으면 너는 그만 죽고 싶어질걸. 그래서 지구에서는 다들 죽어. 


거짓말. 지구라면 나도 조금은 알아. 


지구가 어지러워도 나는 지구에 가고 싶었다. 나의 열세 번째 행성. 가위를 잃어버린 곳. 잘 들지 않는 나의 가위를 잃어버린 곳. 지구에는 분실물 센터가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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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서 손잡이가 
함부로 덜그럭거린다

누구세요? 물으니 
누구세요? 묻는다

침대 위 202호의 마음과
문밖 302호의 마음은 
지금 바로
가위 바위 보!

엇, 미안합니다―후다다닥―띠리리링
그렇지, 문은 저렇게 열리는 거지

문이, 가끔 열리지 않는 문이 있지
번호도 맞게 입력했고
열쇠도 틀림없이 맞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은 열리지 않고
마음만 덜그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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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봐야 

소용없다


한참을 울고 

며칠을 울고 

몇 년을 울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번 죽더니


살아 있어야 다 너 때문이고

살아 있어야 가만두지 않을 텐데


죽음 앞에서 나는

스티커를 어디에 붙여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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