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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백두산을 오른 후 어렵게 일정을 맞추어 용정을 찾아갔다. 안내자는 '아무 볼 것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가기를 꺼려했지만 윤동주가 자란 용정은 꼭 가보고 싶었고 용정하면 떠오르는 선구자 노래속의 소나무 자취라도  혹 볼 수 있을까 싶어 어렵게 일정을 맞추었다.


자욱한 안개속에서 해란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소나무 대신 일송정비가 말없이 우뚝 서있었다.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시 전경

인적없이 낮으막한 산 언덕, 일송정비 양 옆으로 고향의 봄 노래비와  선구자 노래비가 서있었는데 세련되지는 못하여도 개인들이 사비를 들여 장만한 마음이 묻어나 보였다.


 

 

 

 

 

 

 

 

 

 

 

노래비가 양쪽에 서있는 일송정비

중국을 통해서 가게 되었기에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푯말을 배경으로 천지 사진을 찍어야 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내내  착잡하였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용정을 어렵게 찾아가서 언덕 위에 외롭게 솟아있는 일송정비 앞에 서니 그 옛날 먼 이역 땅에서 외롭게 독립 투쟁에 앞장섰던 님들의 높은 뜻을 잠시나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황무지처럼 붉은 땅,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기념비가 서있고...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찾아오는 조국의 후손들 때문에 넋이라도 있다면 선구자, 님들은 외롭지 않겠지...



 

 

 

 

 

 

 

 

 

 

 

일송정비 뒷면 하단 복원기


 

 

 

 

 

 

 

 

 

 

 

고향의 봄 노래비


 

 

 

 

 

 

 

 

 

 

 

선구자 노래비

그랬는데... 그랬는데...

3월 5일 뉴스를 보니 지난 9월 중국 당국이 그 선구자비를 시멘트로 무참하게 훼손시켜 버렸다한다. 고구려사 말살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는 속통인가?  왜? 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어지러운 정국속에서 약소국의 슬픔을 새삼스럽게 되새겨본다.  

다음에 꼭 다시  연변에 오리라 아이들과 약속하였는데 그래서 백두산 푯말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자고 하였는데...  선구자 노래속의 그 용정 일송정을 다시 찾자 하였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백업해둔 자료를 뒤져 안개로 그늘이 드리워진 사진이라도 올려 보지만 마음은 사진과 같이 어둡기만 하다.


훼손된 선구자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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