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교정 호숫가에 닿을락 말락 늘어진 실버들이 온통 연두색이다.
이맘때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월의 시...
물론 희자매의 노래로 말이지만

실버들을/천만사 늘어놓고/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몸이 아무리 아쉽다 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슬금슬금 다가오던 봄날이 이곳 용현골에서도 만개하려는 순간인데
바야흐로 바닷바람을 덮히는 인천의 봄바람이로구나

식구들은 모두 감기에 걸렸고
아침상을 겨우 차리고 후다닥 어제와 똑같은 옷차림으로 출근하였고
밤늦게까지  마치지 못한 부서 Mission에 관한 보고서가 나의 머리속에서 Impossible을 외치고
결정적으로 난 봄날을 돌려받지 못한 몸꽝아줌마지만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찬란한 봄이고 그리고 즐거운 주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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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이면 오르는 산이지만 봄날의 산은 지난주에 오른 산과 너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봄과 가을엔 청계산도 몸살을 앓는군요.
초입부터 산구경을 온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늘어섰기에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개나리 산림욕장으로 코스를 바꾸어 산에 올랐습니다. 그 길엔 젖소도 있고 비닐하우스도 있고 거름냄새 물씬한 밭도 있습니다. 너무 완만하여 보통때는 잘 택하지 않는 길이지만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느라 피곤한 근교의  봄산을 피할 수 있는 한가한 산책길 같은 등산로입니다.

진달래가 참 고즈넉하더군요.
문득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저만치 서서 연분홍의 자태로 수줍게 봄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는 참 소박하면서도 화사합니다.
한 5분남짓 걸어가노라니 저 산봉우리 쯤에서 섹소폰의 멋드러진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데 아련하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보통 경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화사한 봄날과는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누굴까 자꾸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정상에 오르면 일견 허무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지요.
봄볕은 따뜻하고 봄바람은 서늘합니다.

양재동 꽃시장 비닐하우스는 작은 봄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집에서 조금씩 길러먹을 수 있는 야채모종들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상추모종을 한판 사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졸라서 방울토마토 모종을 조금 샀습니다.
고추모종도 조금 샀지만  딸기는 참기로 했습니다. 작은 베란다가 가득차서 이제 놓을 데가 없거든요.
지난 주에 심은 상추가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제법 잘 자라서 두번이나 상추쌈을 사먹었답니다.
남편의 손을 거치면 뭐든지 잘 자란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신게 맞는 것 같습니다.

방울토마토와 고추 모종을 작은 화분들에 옴겨 꼭꼭 눌러 심고 물을 듬뿍 주면서 우리 꼬맹이만 대학교 들어가면 서울을 뜨자... 과연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이 약속을 합니다.
촌사람 남편과 나는 이렇게 4월의 첫봄을 맞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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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4-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언덕님과 저는 한 동네에 사는가 봅니다.^^ 청계산이 지척인데도 전 아직 아보질 못했습니다. 조만간 한번 가야할텐데...
 

오늘 제일 작은 책방이 문을 연 이래 가장 많은 분이 다녀가셨네요.
지금까지 모두 27분.
많이 오시는 날이 10분 남짓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많이 다녀 가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기분은 좋은데 혹시... 방문자 카운트가 중복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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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잘 받는 화단엔 백목련이 만개하여 어느새 질 채비를 하고 있다. 좀더 격조있어 보이는 자목련은 이제 자주색 입술을  벌려 하얀 속살을 보인채 본격적인 봄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는 듯한데... 새벽같이 나오고 저녁늦게 퇴근하니 꽃이 피었는지  잎이 지는지 도통 알 길이 없던 내가 주말에 모처럼  아파트를 산책하니  어느새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인천 바닷가에 있는 직장은 서울보다 2~3도는 기온이 낮은 것 같다. 바닷 바람은  항상 출근길의 내 옷차림을 고민하게 만들어서 남들보다 겨울을  못견디게 아쉬워 하는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게 만든다. 교정의 꽃 소식도 늦기만 하여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새삼스럽게 둘러보니 목련은 이제야 하얀 봉우리가 엄지 손가락만하게 맺혀있고 벚꽃 새순은 아직 몽올 몽올한 채로 마악 움트려하고 있다. 그나마 개나리는 노란 꽃잎을 피웠지만 아침 추위에 잎을 오므리고 얌전하게 서있고...

그러나 한반도 어디든지 봄은 오고 있으려니 봄이 늦은게 아니라 내 마음이 봄을 맞을 채비를 하지 못한 것이겠지. 진달래는 어느새 드문 드문 피어 연초록 색을 띄기 시작한 나무들 속에서 수줍게 서있었는데  산수유는 이제 만개하여 절정을 향해 노란 빛을 뿜어대고 있는데 뭐가 그리 피곤한 나는 그 고운색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겨울 이부자리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잠만 자고 있었는지... 

오늘은 점심을 서둘러 먹고 나무들이  연한 색 옷을 차려입고 수줍은 듯 그러나 지지않으려  뽐내는 교정을 찬찬히 거닐며 그들을 만져보아야 겠다.  수줍은 봄이 발그레해지도록 그들을 애무하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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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30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장을 하는 여자.

한 시간 남짓 되는 출근길은 여러모로 유용한 시간이다. 학생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다른 버스보다 책을 읽는 이도, 이어폰을 낀 사람도 눈에 많이 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만 대다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졸린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내 옆에 앉은 남학생은 미처 마치지 못한 리포트를 열심히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감기가 들었는지 연방 코를 훌쩍인다. 남들보다 냄새,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인 나는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 눈을 감지만 일정한 박자로 훌쩍... 고개를 들면 좀 나으련만 숙제를 하느라 그러지도 못하는 눈치다.

통로를 넘어 옆에 앉은 아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다란 가방을 열고 화장품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석 달 넘게 같은 시간대의 버스를 타다보니 대략 듣게 된 휴대전화 내용으로 모 고교에 다니는 기간제 교사임을 알게 되었다. 이 아가씨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줄은 선 사람들 사이에서 앞이 지나치게 간격이 떨어지던 상관 않고 멍하니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기 일쑤여서 뒤에서 보는 내가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항상 젖은 머리로 버스에 올라타서 시작하는 일은 커다란 체크무늬 가방을 열고 기초 화장품부터 꺼내어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것이다. 아가씨가 스킨, 로션, 에센스, 영양크림을 정성들여 바르고 나니 한 십분은 훌쩍 가는 것 같다. 달리는 버스에서는 눈이 어지러워 책을 읽지도 못하고 옆의 학생이 훌쩍이는 소리에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는 마침 옆에 앉은 아가씨의 화장하는 진지한 동작을 옆 눈으로 다 보게 되었다.

난 화장도 잘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일 뿐 아니라 거울을 보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어색한 좀 내숭스러운 성격이여서 남이 있으면 화장실에서 거울도 슬쩍 한번 보고 마는데 아가씨는 사람이 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화장을 하니 내가 관심을 가져도 크게 실례는 아닐 것 같다.

기초화장을 끝낸 아가씨는 이제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느라 한 오 분, 파운데이션을 바르느라 또 오 분을 보낸다. 그 작은 얼굴에 그렇게 꼼꼼하게 바르는 파운데이션은 거의 예술의 경지이다. 버스 앞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가방위에 올려놓은 거을을 보며 얼굴 구석구석 찾아서 바르고 두드리는 그 세밀함. 마지막으로 명암을 주는 작업까지 끝내고 이제 콤팩트를 꺼내어 살짝 두드리듯 찬찬히 구석구석 눌러대기 시작한다. 상표를 보니 'CLIO'다. 처음 보는 상표라서 나도 모르게 클리오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제 도화지를 원하는 색으로 꼼꼼히 채운 예술가는 가방에서 하나씩 기묘한 작업도구를 꺼내어 본격적으로 화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곱게 밀어서 거의 보이지 않던 눈썹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어찌 저리 날렵한 손놀림으로 가벼운 Touch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본격적으로 감탄하기 시작한다. 눈을 살포시 아래로 뜨고 연필로 속눈썹이 난 부분의 아이라인을 살짝 그릴 때는 난 신기(神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계속 가방 속으로 손은 들락거리고 그럼에 따라 아가씨의 얼굴은 세수만 한 애 띈 얼굴에서 직장 생활에 익숙한 사회인으로 변해간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불편하여 몸을 뒤채던 말던 아가씨의 다소 부산스러운 창조생활은 계속되고 난 그 큰 가방 속에서 속눈썹을 위로 올리는 집게가 나오지 않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시계는 이제 버스를 탄지 40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다. 작업은 거의 끝나가고 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입술라인 형성 작업과 입술 면을 채우는 가장 진지한 작업이 남았음을 알고 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나의 짓궂은 기대(?)와 어긋나게 아가씨는 화룡정점을 하듯 커다란 붓으로 립그로스까지 바른 후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젖었던 머리도 이제 말랐고 버스에 타던 사람과 지금 옆에 앉은 사람은 너무도 달라서 새삼스럽게 그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인조인간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변한 아가씨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 그런가? 한 시간 여 동안 저토록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는 아가씨는 마음과 머릿속을 화장하는 데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까? 반성해, 오늘도 대충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며 립스틱 몇번 칠하는 너는 직장 여성으로서 예의가 없다고 말을 듣잖아? 아 난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중에 우리 아들이 저런 아가씨를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군. 내 터무니없는 상상은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다. 아니야. 저 타입은 아닐 거야. 저 엉뚱하도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함을 우리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거지 뭐. 아니 그보다도 저렇게 두꺼운 화장품으로 감춘 젊은 피부가 너무 안타깝군. 그냥 말그레한 피부가 훨씬 예쁘던데 그걸 본인은 모르나보지...  아 나도 늙었군. 별 걱정을 다하고... 이크 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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