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20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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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헛살았나 하고 뒤를 돌아볼 만큼 책이 던지는 주제는 파급력이 크다. 과연 베스트셀러라는 작품은 이런 위엄을 가져야 하는것인가.

당돌하게도 책은 지금까지 나의 삶을 지태해온 생각,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생 토대자체를 뒤집으려 시도한다. 작가의 태도에서 낯선이의 친절한 위화감과 사적 영역을 고치려드는 주제넘은 당혹감, 그 사이에서 나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한 채 비집고 들어설 작은 틈새를 내보이며 마음을 이내 현옥당한다. 이것은 하면 안되고, 이것은 이렇게 해석해야하며, 이것은 이렇게 받아들여야한다며 차근차근 논리를 만들고 사람을 이끄는 탄복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나는 종교에 귀의한 신생아처럼 작가 앞에서 모든것이 낯설었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접하는 기분으로 주고받는 대화형식의 그들과 같이 진정으로 그들이 무엇을 감화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였다.

책을 덮고나서 작가는 논란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혹자는 그가 아들러를 사칭하며 그의 역할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논리를 주창하는 사이비로 여겼다. 그의 해결책은 공동의 사회가 아닌, 개인 극소의 단위에 머무른 한계로 논리의 한계성이 엿보인다 지적되었다.

어찌되었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기준이 되어온 현재에 있어 작가가 대변하고자한 아들러는 불분명하고 황당한 면을 그대로 담고있어 타인에게는 그가 낯섦 그 자체이다. 때문에 본인 스스로 미움의 대상이되고자 하는 책의 타이틀과 무관하지않은 미움받는 길을 걷는다는 점은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일관되게 통찰력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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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양장)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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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저는 한 사람의 마음에 아주 작은 의도를 심어서 그 사람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영화가 떠올랐어요. 영화 ‘인셉션‘은 의도한 마음의 파장이 결국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표현했는데, 저는 그게 결코 영화의 허구성에 그치지 않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닌가 했어요.

우리가 오늘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것을 접하든 모든것이 내재화되어 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한 얘기이면서 소스라치게 놀랍지는 않는건지 저자는 새삼 꼬집어서 다시 한 번 깨닳게 해주는 걸까요.
예민한 감수성으로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구에 휘둘리지 않게 오늘도 주변을 돌아보며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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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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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소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벌써 시리즈로 4권째라는 사실은 책을 판촉하려는 출판사의 자세한 설명을 읽지않았다면 알 수도 없었다.
작가가 창조한 이라부라는 정신나간 정신병원장은 여전히 오락가락 재치가 넘치며, 난리를 치지 못해 안달난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병원도 의사도 똑같은데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은 변했다. 그들은 코로나라는 현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고, 화를 누르고 예스맨인척 자신을 감추는 착한사람 콤플렉스를, 과도한 자아제어에 지친 누군가를 반영했다. 이렇게 뻗어나간다면 환자의 무수한 가짓수로 소설은 무한한 증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원대한 계획에 혀를 내두르며 여전히 ‘이라부 시리즈’에 부담감을 토로하며 말을 아끼는 작가의 모습은 못내 장난스럽기 그지없다.
챕터에 담긴 실없는 유머와 위트에 실소를 자아내면서 뭔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감동이 어울리지 않는 친절처럼 부담스러웠다. 지금을 위로한다는 작가의 조언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이 남몰래 껴안고 살아가는 나약함을 광장으로 끄집어내려는 것 같아서 나는 정말인지 낯선 어색함을 느낀것이다. 지금처럼 있어도 된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누구나 쉽게 말버릇처럼 되새기고 읊어내려가지만, 이내 떠오르고 강박처럼 새겨내리는 마음가짐은 전혀 대단한 결심에 동요하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작가는 엉뚱하게 그려낸 무언의 대상으로 복잡한 당신을 희화화한 상황으로 치환하여 현실을 보다 쉽게 마주하게 도와주려 하지는 않는가?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을것이다. 그냥 실소하다가 잊어버려도 그걸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렇게 잊혀졌는데, 작가의 시리즈가 여전히 손에 잡힐 한 권으로 남아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다면. 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신간이 조금도 익숙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는 반가움을 느낀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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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 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
칩 히스 &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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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아가는데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것 같았다. 아니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노력이 삶을 채우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게는 당연한 것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도통 뭔소리인지 짐작도 안 될 헛소리들이 주절주절 나열되있다. 결국 원하는것을 취하려고 든다면 한번쯤 작가를 따라 시도해봄직은 어떠한지. 손해볼 필요도 없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 출발점에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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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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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대중은 자애스러운 화자의 위치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가볍게 말을 내뱉지만, 본인 자녀가 만약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는 직업을 희망한다면 결코 그들의 부모는 헛소리 같은 너그러움을 본인의 자식에게 내보일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기피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반드시 존재한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누군가의 희생을 위해 지속되는 사회의 균형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듯이. 때문에 특정집단의 노동을 통한 혜택은 당연하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만 동시에 매우 평범한 하루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존재는 반드시 망각되기 일쑤이다. 때때로 그것은 하찮다는 이유로, 누구나 대체가능한 역할이기에, 또한 그다지 많은 기술이 요하지 않다는 각종 편견으로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가치 평가에 있어 그들의 급여는 작은 숫자로 환산되어 노동에 가담하는 주체를 더욱더 사회 속에서 고립시키는데, 당연하게도 그들은 스스로 원해서 사회적으로 밀려난 직무를 떠맡고 있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 해야 할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또 왜 사람들은 누군가의 중요한 노동을 평가절하하며 존재의 의미를 애써 지워버리려 하는가. 그들은 애초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가? 무언가를 드높이고 경외의 대상임을 학습하듯이 우리는 이미 특정집단을 망각하고 무시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모른다. 불쾌하고, 더럽고 역겨운 감정은 늘 내 주변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기에 본능과도 같기에 동일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노동에서 비롯된 비슷한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려 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더티워크’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책에서 작가는 미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존재하는 직무를 한 꺼풀 드러낸다. ‘교도관’, ‘드론조종사’, ‘도살장 노동자’, ‘시추선노동자’, ‘실리콘밸리의 IT노동자(다만, 이들은 나열된 다른 직무와 지위가 조금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주체를 잊지 않으며, 의견을 내보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더티워커’이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누군가의 일은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질병으로 사회가 폐쇄되면서 오히려 다른 직업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강제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하찮은 역할들이 실로는 꽤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일상이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조차 의문이 들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도 바이러스와 직접 대치하는 의료진과 같이 평소에서 경외의 대상인 직업에 대중의 주목에 한하여 긍정할 뿐, 교도관이나, 드론조종사, 도살장 노동자와 같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들은 그 존재감이 미미하기는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범죄자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기 마땅한 이유로 인해 대중의 분노를 곧이곧대로 물려받은 교도관의 폭력적인 아웃풋으로 묵인되었다. 평화를 지킨다는 대단한 이유로 적인지 시민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순간에서도 불분명하지만 위험해 보인다는 주관적인 직관을 통해 (스스로가 위험성에 노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사살하는 버튼을 조종하는 자가 있었다. 전쟁을 위해 전쟁을 하는 계산된 국가의 논리 속에서 폭력이 정당화된 집단의 동의로 소수의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록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배당해야 마땅한 동물은 어떠한가.  단순히 기업의 실적을 부풀기 위한 마릿수일 뿐 사람과 공존하며 유용한 식량이 되는 식자재가 아니다.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한 숫자를 위한 관리 속에서 가금류는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평생의 시간을 알을 낳거나 자신의 살을 바쳐야 하는 생물체가 되어야 하며, 살아있음에도 전기충격을 받거나 숨을 쉬는 가운데 칼에 찔리며 사지를 갈기갈기 분해당하는 소들처럼 가장 빠른 시간에 가능한 많은 양을 처리해야 할 도축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할 뿐이다.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거나, 미사일 버튼을 누르는, 동물을 학대하는 듯 보이는 노동자가 나쁘다 비판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오해이다. 그들은 당신의 동의를 통한 사회의 일원으로 담담하게 오늘을 이끌어 가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오늘 점심으로 먹은 육식 메뉴가 소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타인의 잘못으로 치부한다면 이것만큼 어리석은 인간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늘을 그렇게 산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이라고 생각하며. 이렇듯 ‘더티노동’을 수행하는 집단은 일상의 대중과 물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그들과 또 다른 계층으로 분리되기 희망했던 것일까? 시스템으로 분리된 그룹화의 계층구조는 집단을 돈독하게 하며 나름 평온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일면으로 비치나, 그 이면에 가려진 불순하고 더러운 상태와 과정을 단순하고 조립된 이미지로 파편화하여 최대한 계층과 분리된 단계를 넘어서지 않는 강력한 구조를 강화했다. 때문에 대중은 미디어에서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으며 헐떡거리는 사람들 보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나도 그와 같이 먹고 싶다 생각할 뿐이지, 피를 흘리는 닭대가리를 나열한 축산 공장에서 오염된 역겨움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 죽임에 가담하는 노동자의 인권과 환경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사회의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대리인의 ‘더티노동자’는 그렇게 탄생하며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도 깨끗한 거리의 도로는 밤늦은 새벽사이에 미화원들의 일터로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금세 잊고 지내며, 식탁의 고기가 육즙이 풍부하고 마블링이 어떤지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을 뿐 전기로 소를 기절시키며 분뇨와 역겨움이 넘쳐나는 도축장의 불쾌한 공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노동을 통한 혜택을 기억하며 감사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밀려난 특정 집단을 위로하며 연민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분명하게도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으며, 나는 이에 과연 무엇을 취하고 어떤 의견을 사회에 던져야 할지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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