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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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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부코스키야말로 '독보적인 감수성'을 지닌 작가. 독자들의 흔해 빠진 감성 따위 신경쓰지 않는 저 천박한 도도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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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12-02-2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봤다. 여전히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 처음 읽을 때도 느꼈는데, 대략 100쪽 이후부터 재밌어졌다. 별점 다섯 개는 좀 많은 것 같고, 한 네 개 반 정도?
 
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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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뻬드로 빠라모]를 [중남미문학]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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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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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연 한국문학의 적은 누구인가. 바로 당신. 혹은 우리들.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든, 혹은 외부에 의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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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와 바틀비들]에서 호프만스탈의 "찬도스 경의 편지"



26-27p.


'아니오'의 상징이 되는 호프만스탈의 텍스트 "찬도스 경의 편지"(*각주: "찬도스 경의 편지"는 현대 작가의 고질적인 문제인 침묵으로의 추락과 언어에 대한 위기의식을 최초로 서술한 시론적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이 단편소설에서 찬도스 경은, 자신이 어떤 것에 관해서 일관성 있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총체적으로 상실해버렸다고 말하며 글쓰기를 그만둔다)



156-158p.


  호프만스탈은, 문학에 있어 천재적인 어린이로 평가받으며 눈부시게 높이 올라갔지만, 나중에 그를 덮친 글쓰기의 위기 때문에(부정의 예술을 상징하는 작품인 그의 "찬도스 경의 편지"가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지속적이고 신중한 진로 수정 때문에, 부정의 예술에서 가장 독특하고 쟁점이 되는 경우로 평가되는 작가이다.


  호프만스탈에게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세 단계가 있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사춘기 소년의 절대적인 천재성이 빛을 발휘했으나, 그의 글은 평이하고 공허한 단어들로 물들어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완전한 위기가 그를 지배했다. 그 이유는 "찬도스 경의 편지"가 글쓰기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호프만스탈 자신의 시학에서 0등급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찬도스 경의 편지"는 단어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이제 더 이상 언어에 의해 지칭될 수도 없고 통제당할 수도 없는 사물들이 발작적이고 불분명하게 흐름으로써 '나'의 존재가 조난당했음을 선포한 것이다. "찬도스 경의 편지"에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경우는 이렇다. 나는 어떤 사물에 관해서든 일관성 있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모두 상실해버렸다>>고 쓰여 있다. (*곽복록 역: <<나의 증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뭔가 다른 것과 관련해서 생각하거나 말을 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121p)>>) 이는 그 어떤 단어도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에 편지 발신인이 자신의 소명 의식과 직업의식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단계는 호프만스탈이, 위기를 극복하고 단어의 파산을 확인한 뒤에 글쓰기로 되돌아간 랭보처럼, 우아하게 문학으로 복귀한 시기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고, 자기를 찾아오는 문필가들을 접대해야 하는 인기 작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위치함으로써, 출판사 편집자들과 대화를 하고, 각종 문학 모임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작품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하고, 각종 잡지를 이끌었다. (...) 이 세 번째 단계에서 보이는 것은, 호프만스탈이 "찬도스 경의 편지"가 유발한 위기를 맞았을 때 놀랄 만한 조숙성을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자기를 절대적인 침묵의 언저리에 위치시켰던 그 심오한 잠재 능력을 폭발시킴으로써 그가 이루어낸 특이한 기적을, 결코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천재성의 단계와 "찬도스 경의 편지"에 의해 구체화된 위기의 단계 뒤에 나온 호프만스탈의 작품들, 그의 멋진 글들, "앙드레아스"의 단락, 그리고 그의 다른 수작들을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일부러 이렇게 썼다. <<그는 왕립 극장 및 당대의 관심사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그리고 더 원대한 야망을 품게 됨으로써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이 지녔던 순수한 영감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찬도스 경이 글쓰기를 포기했다고(왜냐하면 <<우리의 눈이 지극히 무심하게, 슬쩍 훑고 지나가는 들판의 살수기 하나, 방치된 갈퀴 하나, 햇볕을 쬐고 있는 개 한 마리, (......) 이들 사물의 각자, 그리고 이와 유사한 수많은 다른 사물이 갑자기, 어느 순간이든, 내가 보기에는 모든 어휘를 다 동원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숭고하고 감동적인 특성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곽복록 역: <<가령 한 개의 물뿌리개, 들판에 내버려둔 써레, 햇빛을 쬐는 개, (...) 이 대상물들 중 어떤 것도, 또 이와 비슷한 많은 것은 모두 평상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 눈길을 보내지 않고 지나쳐 버렸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 이 순간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 마음을 움직이는 숭고한 인상을 띠고, 어떠한 말로도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빈약하기 그지없게 보이는 것입니다.(123-124p)>>) 알리면서 프랜시스 베이컨 경에게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편지, 예를들어 프란츠 카프카의 [주정꾼과의 대화](이 책에서는 사물이 더 이상 제자리에 있지 않고, 말이 더 이상 사물을 제대로 지칭하지 않는다)와 유사한 찬도스 경의 편지는, 비엔나의 19세기 말에 영향을 미쳤던 문학적 표현의 위기의 본질을 요약하고, 문학적 표현과 인간 소통의 기본적인 본질에 대한 믿음이 위기에 처한 것에 관해 말하고, 각각의 언어를 특별하게 구별하지 않은 채 보편적이라 생각되는 언어에 관해 말하고 있다.



160p.


  비록 바틀비증후군이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문학은 "찬도스 경의 편지"와 더불어 이미 자신의 불충분성과 불가능성을 모두 드러냈고, 이렇게 공개를 함으로써(이 텍스트 없는 주석이 그러는 것처럼)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 필연적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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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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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질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글쓰기에 대한 결코 이룰 수 없는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밤낮으로 뒤적여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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