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문학실험실
남종신.손예원.정인교 지음 / 작업실유령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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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언컨대˝ <잠재문학실험실>은, 심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하에서 산보중인 방랑자들에게 매혹적인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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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2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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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미미한 물줄기들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이고 모여 마침내 장엄한 강물을 이룬다. 그러나 그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강물은 거대한 폭포가 되어 파국적으로 추락한다. 두 번 아름답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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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788쪽) 


1994년 7월, 마드리드 도서전, 페레 오르도녜스.


옛날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위반하고 개혁하고 태우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공론의 장에 들어갔다.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보통 부유하거나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집안 출신이고, 이들이 펜을 잡을 때는 그 지위를 거부하거나 이에 저항한다. 창작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고, 거절하는 일이고, 가끔은 자살하는 일이다. 그것은 가문에 반대하는 길이었다.


오늘날 스페인(그리고 스페인어권 아메리카) 문인들은 하층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와 룸펜 프롤레타리아 집안 출신인 경우가 놀랄 만큼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계급 피라미드에서 상승하기 위한 글쓰기를, 즉 아무것도 위반하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하면서 자리를 굳히는 글쓰기를 한다. 그들이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 문인들처럼 아니 거의 예전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교양이 있다.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예전 문인들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훨씬 천박한 사람들이가. 기업가나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한다.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만 거부한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거나 제일 힘없는 사람 중에서 적을 선택한다. 광기나 격노 때문이라면 모를까 신념 때문에 자살하지는 않는다. 결국 문학판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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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볼라뇨가 "절친한 벗인 마리오 산티아고 파파스키아로와 함께 보낸 젊은 날을 기억하면서 같이 웃고 즐기기 위해서 쓴 작품"(983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좋다. 나도 좀 웃고 즐겨보겠다. 그러니 이 페이퍼는 웃고 즐기기 위한 농담이다. 물론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법한 농담. 그리고 대부분의 농담 속엔 말로 표현되지 못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그건 진심일 수도 있고 무의식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슬픔일지도 모른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10년이나 20년 후, 혹은 지금 당장의 우리 아이를 위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큰 말썽 없이 자라오던 우리 아이가 어느날 갑자가 문학을 하고 싶다고, 문학을 해야겠다고 선언해온다. 아이들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것에,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 모른 채 이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신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덜컥, 걱정이 한가득 생길 것이다. 문학을 한다니, 도대체 얘가 뭘 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 역시 문학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기는 매한가지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지 말라고 타일러야 하는지,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래야 하는지. 이럴 때를 대비해 우리는 이 책을 구입해뒀다. 우리는 그저 말 없이, 책장 구석 어딘가에 꽂혀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을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면 된다.

그리고 한마디.

"이 책을 다 보고 나서도 문학을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아이는 책의 두께를 보고 순간 움찔,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책을 받아들 것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당장 책을 읽어나가겠지.

조숙한 여자 아이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소설의 1부를 보며 조금 당황해할 것이다. 왜 아빠가 나한테 이런 책을? 그날 이후 어떤 여자아이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잠시 아빠를 멀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시간은 흐를 것이고, 결국 아이도 아빠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며, 무엇보다 앞으로 문학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텐데.

조숙하거나 말거나 남자 아이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야동에만 익숙하던 우리 아이들은, 응? 아빠도 이런 거 보나? 하며 의아해할 것이다람쥐... 그렇게 약간의 공황 상태에 빠져, 그러나 어느새 불쑥 솟아오른 성기를 보며 (...뒷말은 생략한다.)  

어쨌거나 다수의 아이들은 1부를 다 보고 2부를 볼 것이다. 그리고 잠당하건대(정말?), 열 명 중 예닐곱 명 정도의 아이들은 2부를 보다가, 가끔 졸다가, 보다가 안 보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다시 보려 했다가 졸다가, 결국 자연스레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한두 명 정도의 아이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것이고, 어쩌면 제법 장문의 감상문까지 써서 자신의 의지를 보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제가 이렇게나 문학을 하고 싶답니다래끼. 이런 공황상태가 찾아올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아이는 문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을 하고 있기엔 그의 문학적 재능이 너무 크다.

영특한 한 명 정도의 아이들은 이 책을 무사히 다 볼 것이고, 아버지가 왜 이 책을 보라고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이며, 덜컥, 문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감지할 것이며, 순순히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역시나 인내를 갖고 악착같이 이 책을 완독한, 어쩌면 다 읽지 못했을 수도 있는, 열에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 한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없길 바란다. 그 아이는 아마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드래곤 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고작 며칠 동안 몇 년의 시간을 보내기라도 한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문학을 할지 하지 않을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는 꽤 오랫동안 방황할 것이다. 문학 언저리를 끊임없이 맴돌겠지. 드러내지는 못한 채, 많이 힘들어 할 것이다.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페이퍼는 농담이지만(비록 아무도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일지언정),
이 책이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말만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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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6-12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없, 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혹시 아세요 '야만없'?

닉네임을뭐라하지 2012-06-12 19:27   좋아요 0 | URL
앐라면 아는데...
 
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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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코스키 형님! 당신은 개마초 찌질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작가로군요. 작가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를 해냈으니까요. 걸작을 쓰는 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 [여자들] 얘기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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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12-02-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알라디너들에게 일 년에 딱 세 번 정도,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에 부여할 수 있도록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별점 같은 걸 줬으면 좋겠다. [여자들]에 별점을 다섯 개밖에 주지 못하다니, 속상하다.

아돌0식 2012-02-2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랑님이 이토록 극찬을 마지하지 않아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진짜 걸작이란 비평 자체를 불가하게 만드는, 책을 덮자마자 멍해지게 만드는 작품같습니다. 연랑님의 100자평이 마치 그런 반응인듯^^ 갑자기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한재호 씨의 『부코스키가 간다』라는 작품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12-02-26 13:29   좋아요 0 | URL
음... 좀 부끄부끄 하네요 (수줍) 재독이라는 비평을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해서 다시 읽고 있는데, 처음 볼 땐 못 느꼈던 약간 재미없는 부분을 발견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좋아요. 저도 [부코스키가 간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