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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오상고절(傲霜孤節)' 리영희선생님의 뜻과 사상,참지식의 발로를 잊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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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평전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기울어 가는 국운을 다스리고 동양의 평화,아니 세계의 평화를 갈구하며 대한독립의 의사로서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안중근 평전을 읽으면서 ’짧고 굵게’라는 말이 범인인 제게는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안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기리고 기념하는 이벤트가 열린다는 것을 들으면서 아직도 뤼순 감옥 형장 근처에 묻혀 있는 의사의 유골 수습이 되는지 아님 현재 매장지 근처가 아파트 건축공사로 인해 정지작업을 하므로 수습조차 어렵게 되는건지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착잡한 심정이 든다.

 안의사는 1879년 황해주 해주에서 태어나시고 근처 청계동에서 성장하며 19세에 천주교에 입교.영세를 받고 신부와 함께 여러 지방을 순회전도하기도 한다.물론 부친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했던 거 같다.그 당시 서학이라는 사상에 일찍 트였던 거 같다.또한 일본의 식민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을사늑약에 의해 국권이 상실되던 해에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상해등지를 다니면서 세계 각국에 망국의 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또한 구국영재에도 큰 관심을 갖고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힘을 쏟는다.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 되던 1907년 군대가 해산되는 소식을 접하고 독립의 단초를 더욱 단단히 하며 만주,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길에 오른다.또한 대한제국의 원흉,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해 우국지사들과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모의하던 중 그때의 비분강개를 ’장부가’로 대신하며 지사 우덕순은 보구가(報仇歌)를 지어 서로의 뜻을 노래로 화답한다.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마침내 하얼빈역에 당도해 그토록 대한독립의 의지를 누런 얼굴,백발이 휘날리는 이토히로부미를 향해 절륜의 사격 솜씨로 절명케 하여 세계를  진동케하는 독립의지를 부각시키며 ’대한 만세’를 삼창한다.정말 당당하고 의기충천한 부르짖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는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화할때까지 일본인 검사들의 교활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대쪽같이 자신의 의지를 꿋꿋히 밝히며 오로지 세계평화,동양의 평화를 위해 차가운 감옥 안에서도 자신의 뜻이 담긴 서예와 ’동양 평화론’의 집필 완성을 위해 공소도 포기하고 매진하지만 사기(死期)에 맞추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흰 무명 저고리와 검정 무명 바지를 입고 안의사는 담담한 심정으로 2분정도 묵도를 한다음 담담한 심정으로 대한독립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쓸쓸히 묻히게 된다.특히 이 도서안에는 안의사의 성장하던 청계동,천주교 신부,우국 지사들과 함께 하던 모습,하얼삔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격하던 장면,공판받던 법정의 모습등이 흑백 사진으로 실려 있어 당시를 생각하며 읽는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존재였다.또한 안의사의 독립운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친인척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후손들이 어렵게 살아간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알게 되었을때 국가 차원에서도 안의사의 후손들에게 보훈의 뜻을 기려서라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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