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 인간이 만든 자연 - 한중일 전통가옥문화 삼국지
김경은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중.일 가옥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두 다리 쭉 뻗고 푹 잘 수 있는 거주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의 기본은 해결된 셈이 아닐까 한다.개인의 경제적 수준에 맞춰 집의 구조,크기도 제각각이겠지만 현대 한국사회의 가옥구조는 대부분 공동주택의 형식을 띤 구조가 대부분이다.이름하여 빌라,아파트가 대부분이고 단독주택은 서열상 밀리고 있다.한국의 전통 가옥은 기와집 형태의 한옥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한정된 지역,공간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이는 일제강점기,해방 직후 미 군정 치하를 거치면서 한옥은 보존대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말았다.
좋은 터에 멋진 집을 짓고 온가족이 한지붕 아래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던 시절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일까.비록 누추하고 옹색했던 시절이 엊그제와 같은데 이미 긴 세월에 묻혀 잊혀 가고 있다.유교문화를 중시했던 조선시대는 가부장 제도,조상숭배 의식,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봉건사회였다.농경문화가 발달했던 사회이다 보니 가옥은 대부분 초가의 형태가 주가 되고 담은 돌로 쌓은 석담이 대부분이었다.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하여 가옥의 구조를 배산임수(背山臨水)에 중점을 두었다.집터를 잡고 집짓기가 시작되면 구들장부터 기둥,대들보 작업을 거치는데 나무와 흙이 주재료였다.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대대로 문화유전을 전수했던 것이다.지붕의 재료만 다를 뿐 기와집도 그러한 원칙을 고수하면서 집짓기를 이어 나갔던 것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한 한.중.일 3국의 '의식주문화'를 섭렵해 보는 멋진 문화강의를 접하게 되었다.김경은 저자는 3국의 가옥형태의 기준은 18세기 중엽의 수도를 기준으로 삼았다.의식주 문화는 해당 국가의 세계관,역사,국민성,사회변화 등이 함축되고 이는 한 나라의 정체성(Identity)을 보여주기에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준다.한.중.일 3국 모두가 농경문화권에 속하면서도 가옥 구조는 3인3색일 정도로 이질적인 요소가 강하다.그것은 각 나라가 오랜 세월 겪으면서 체득한 지혜가 문화 속에 자리매김되면서 면면이 이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어 한국의 가옥은 풍수지리사상이 절대적일 정도로 배산임수의 형태를 선호했고,중국은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을 선호하고 있다.나아가 일본은 남쪽에서 북상하는 잦은 태풍을 피하기 위해 북향집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대륙기질이 강한 중국,반도기질이 강한 한국 그리고 섬나라 근성(시마곤조)이 강한 일본의 가옥구조는 당연 기후와 풍토,외세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중국은 빈번한 외침과 재해가 폐쇄적인 가옥구조인 사합원(四合院)을 두고 있다.사합원은 다세대가 한곳에 머물게 된다.혼인을 해도 분가하지 않고 사합원의 규모를 늘려 가면서 집단가족제도를 취하고 있다.사합원은 쯔진청과 베이징으로 확대된다.마치 가옥의 구조가 바둑판과 같이 정방형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적장자 원칙에 의해 둘째부터는 분가하게 된다.가옥의 구조는 안채,사랑채를 두고 있으며 좀 지체가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중문도 두고 있다.남존여비사상이 강했던 조선에서 본부인이 기거하는 안채를 가옥의 중심으로 두었던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인다.일본 가옥은 나가야와 마치야가 산업화 과정에서 정착했다.쇼군,사무라이,영주 등이 살았던 마치야 그리고 일반 서민들,즉 노동자들은 나가야라는 가옥에서 군집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나무와 돌,기와,짚으로 엮은 한옥은 앞과 뒤가 트인 형태로 중국과 일본과 같은 인위적인 정원은 없는 대신 산과 근접한 뒤뜰에 야생화를 심어 자연과 가까이하려고 했다.취사와 난방은 땔감을 위주로 구들장으로 들어가는 열기(대류,전도,복사)가 돌을 달구면서 추운 겨울을 나게 되었던 것이다.한국 가옥은 구들장과 마루가 있는데 마루에서 담넘어 자연을 관조하면서 시를 읊조리는 시인묵객을 연상케 한다.그리 높지 않은 돌담은 탁 트인 자연을 응시하면서 이웃과의 소통을 이어나갔던 것이다.이에 반해 중국은 잦은 외침과 재해로 외부에 대한 경계의식 및 불신이 강했던 만큼 철옹성과 같이 높게 올린 담장을 짓다보니 내부의 모습은 전혀 알 수가 없는 폐쇄적인 가옥구조인 것이다.다만 중국은 전통적으로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공동체가 발달하게 되고,세계 속에 산재되어 있는 결집력 강한 화상(華商)을 연상케 한다.일본은 마치야(町屋),나가야(長屋) 그리고 잇코다테(一戶建て:단독주택)의 형태가 있다.그런데 일본의 가옥은 집안에서 어떻게 얼마만큼의 공(功) 내지 역할을 했는가에 따라 가옥배치와 구성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특이한 점은 일본 가옥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벼농사,불교.유교,한자와 같은 공통점이 있는 한.중.일 가옥구조는 유사하다기보다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그것은 각 나라의 정체성,기후와 풍토,대외관계를 통해 축적된 문화적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하나 더 난방구조를 살펴 보면 한국은 얼었던 몸이 녹을 정도의 구들장 문화가 발달하고,중국은 기후대가 다양해서 일률적이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난방구조가 없다.북방(동북3성)에는 한국의 구들장과 비슷한 화덕이 있다.1990년대 중국 산동지역 중국인 집에 초대받아 갔던 적이 있는데 추위를 나기 위해서 라디에이터,난로와 같은 난방장치가 있을 뿐이었다.일본의 난방장치는 이로리와 고따츠가 있다.방바닥 또는 마룻바닥을 네모나게 파서 땔감을 가운데에 넣어 실내를 따뜻하게 만들었다.첨언하면 구들장이 난방장치로 합리적,효율적이어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한국의 온돌문화를 모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동북아 국가인 한.중.일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다르다.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풍습은 거의 비슷하지만 한국만큼 조상의 명복을 빌고 후손들의 건강과 재복을 바라는 것은 세계 제일일 것이다.이것은 묘자리 명당문화와 사후 순환논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의식주 문화를 이해하게 되면 그 나라의 문화의 유전자를 거의 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이것은 단시간에 축적되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오랜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퇴적되고 마모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진화되어 온 결과물이다.역사,문화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던 한.중.일 3국의 터와 집의 의미를 찾아 가면서 주거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가족제도,난방장치,좌식과 입식문화,목욕,화장실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황인종이라는 비슷한 얼굴형태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한.중.일 3국이 좀 더 문화를 기본으로 정치,경제,외교적이니 면에서 가까워지기를 바란다.그 옛날 수로를 따라 철로를 따라 자유롭고 평화롭게 선린외교를 펼치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김정은 저자는 3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돋구기 위해 다양하게 관련 글을 인용해서인지 내용이 매우 알차고 탄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