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ㅣ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샌드위치 형태의 모습을 띠고 있다.한반도는 또한 이웃 주변국들과 정치,군사적인 관계를 놓고 역사 속에서 침략과 방어의 반복을 거듭해 오면서 국가의 명운이 달라져 왔다.현재 지정학적으로 보면 좌로는 중국 우로는 일본 그리고 위로는 러시아 및 북한이 에워싸고 있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의 존속을 위해 힘의 역학을 내세우면서 팽팽한 긴장감과 유화책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한.중.일 3국은 지정학적 위치와 힘의 역학을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외교노선,국가정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해방후 정치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는 반영구적으로 분단이 되면서 유례없는 사상.이념 논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비극의 시대가 언제 끝날지 예측불허에 놓여 있다.게다가 한.중.일의 과거,현재의 관계가 결코 우호적이고 상생의 관계는 결코 아니었고 아닌 만큼 한국의 존속을 위해 과거 씻을 수 없는 불행한 역사에 대해 사과와 배상 등을 받아내되 이것에 몰입된 듯한 정치.외교노선을 구사해서는 안될 것이다.한국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살기 좋은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떠한 정책노선과 현실적인 방안이 한국 풍토에 좋을 것인가를 더 염두에 두고 사회제도,시스템을 펼쳤으면 한다.
한반도가 해양(일본,필리핀 등)세력과 대륙(중국,러시아,인도 등)과의 교역과 충돌,분쟁과 전쟁은 오래 되었다.이 도서가 말하는 해양 세력과 대륙과의 연계를 놓고 볼 때 대략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유라시아 동부 지역 국가들의 군사,외교 노선을 놓고 보는 것이 (맥락상)부합할 듯 하다.16세기 일본은 무사와 다이묘의 세력이 강했던 시대이면서 오다노부나가 장군이 정권을 휘두르고 있었고 도요토미히데요시는 그 휘하에서 실력을 쌓아 나갔다.그러한 가운데 오다노부나가 장군이 (혼노지에서) 살해되자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을 이루고 조선을 거쳐 명을 정벌하겠다는 '정명가도'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이것이 발단이 되어 터진 것이 임진왜란이다.
당시 명도 일본이 명을 치고자 한다는 음모를 알고 조.명 연합군을 결성하여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을 조.명군이 합세하여 전쟁을 치르지만 장장 7년에 걸친 소모적인 전쟁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임란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임란이 발발하기 전 일본은 포르투갈,스페인 등으로부터 무역과 선교 목적으로 세계에 대한 안목을 넓혀 나간다.크리스트교 선교 목적은 일본에서 큰 소득은 없었지만 전쟁 무기 제조술은 큰 성과를 거두면서 임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육.해.공을 종횡무진했던 것으로 보인다.반면 일본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도쿠가와이에야스가 에도막부 정권을 창출하는데 외부와의 교역,전쟁보다는 내치를 다지는데 주력을 했다.특이한 점은 일본이 서양과 교역을 하고 세계지리에 눈뜨게 되면서 생각한 것은 한반도,동남아시아,중국을 삼키려 했던 것이다.이것은 후일 '대동아공영권'과 일맥상통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은 명.청과의 관계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역사,문화적 우월감을 띠고 자국에게 조공관계를 바랐던 명과 유교 사상 및 관료,붕당 정치의 부패로 피폐해진 조선의 사회상은 명과 청에 이끌려 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그들이 하자고 하는데로 따라 가는 것이 최선이었을지 모른다.명이 멸망하고 누르하치에 의한 후금의 탄생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청은 조선을 종속관계로 삼았다.구한말 청일전쟁 역시 청은 조선 농민군의 봉기를 예단하려 했지만 재조선 영사 및 거류민 보호차원에서 가세한 일본과의 일전에서 패배하고 만다.일본은 청.일 전쟁을 계기로 제국주의 시대르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시대는 20세기 후반으로 가게 되면 중국이 만들어 놓은 해양 방어선인 제1도련(第一島链)과 제2도련(第二島链)이다.제1도련을 통과하여 이미 제2도련까지 진출한 상태이다.결국 제1도련 안에 한반도가 중국의 내해에 포섭되어 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17세기에 이르러 러시아는 캄차카,쿠릴 열도를 개발하게 되고 일본은 아이누족이 살고 있던 북해도,쿠릴 열도,사할린 등의 영토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실지(失地)가 되면서 러.일간의 영토 외교 분쟁은 생각나면 끄집어 내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게다가 일본은 1905년 을미늑약으로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강제 병합시켜 한.일간 외교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다.
대륙과의 관계가 교역과 상생이라는 것보다는 대치,종속,전쟁 등으로 비화하면서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라시아 동쪽 나라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지를 못했다.군사,종교,이념적인 문제가 우선 순위가 되면서 교역과 상생 관계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1500년대 일본 전국시대를 비롯하여 임진왜란,누르하치의 여진 통일,홍타이지의 대청국 건국,정묘.병자호란,청군의 산해관 돌파와 북경 함락까지 연쇄반응은 200여 년 지속되었다.중국의 정성공은 해양 세력으로 뻗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조선 역시 문순득에 의해 당시의 해양 문명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박연,하멜에 의해 해양외사를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은 오오츠크해 영토 전쟁과 청.일 전쟁,사쓰마번에 의해 각각 홋카이도,타이완,오키나와 영토를 차지하게 되면서 제국주의 시대를 거듭해 나간다.1853년 페리 제독과 맺은 일본의 개국은 내향적인 에도막부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메이지 유신 시대,다이쇼,쇼와 시대를 이어 나간다.한편 청말 청의 사회 부패상은 이화단의 사건이 터지지만 서양 세력에 의해 고배를 맛보면서 굴욕(북경 의정서)을 맛보게 된다.한편 조선은 19세기 후반 불.미에 의한 개항 압력이 불발되지만 제국 세력을 증강시키던 일본에게 강제 불평등 개항을 하고,대외 개방에 미처 단단하게 준비를 하지 못한 조선은 우왕좌왕하다 일본에게 먹히고 만다.
한국 입장에서는 유라시아 제국(諸國)과의 관계가 불명예,굴욕,상실의 연속이었지만 냉정하게 살펴 보면 국가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의 국가관,애국정신,사회 구성원 간의 위화감 정도,삶의 질 등에 의해 국가의 존속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국토방위에 얼마나 나설까.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의식은 최고치이기에 강요와 억압에 의한 정치 행사(行使)는 먹히지 않는 세상이다.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임은 부인할 수가 없지만,과거 인국(隣國)과의 껄끄러운 관계 형성을 벗어나 국력과 선린외교를 증강시켜 한반도가 세상을 이끌어 가는 세상이 도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