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세우기 - 숭례문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
최종덕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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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옥과 문화에 대한 기억과 단상

 

 유년시절 초가지붕을 매년 한 번씩 얹는 모습과 기와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일꾼이었던 할아버지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찾아 오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탈곡한 볏짚을 용도에 맞게 손질하고 (새끼 꼬듯)꼬아서 헌지붕을 말끔히 털어내고 그 위에 새짚으로 지붕을 엮으셨다.어렸던 나는 어른들이 지시하는 것만 지붕 아래에서 심부름을 하는 정도였는데,용마루를 얹을 무렵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이좋게 양쪽에서 볏짚을 정돈하는 모습을 보았다.새 볏짚으로 지붕이 엮어지면 맨마지막엔 처마끝의 삐죽나온 볏짚을 머리 손질하듯 다듬으셨다.그중에 인상적인 것은 헌볏짚을 드러내면 그속에서 굼뱅이들이 갈 곳을 잃고 땅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뒤로 몇 발자국을 물러섰는지 모를 정도로 오금이 저렸던 기억도 새롭다.기와집은 초가집을 헐어 내면서 터를 잡으면서 기초작업과 기둥세우기,상량식,기와 올리기 등의 절차가 진행되었는데,고교시절이고 수험기간이라 상량식만 얼핏 보았던 기억이 난다.초가집은 기와집을 짓는 것보다는 짓는 과정이 단순하게 보이지만 볏짚을 따로 구입하지 않고 집에서 농사지은 볏짚을 이용하니 자급자족을 할 수가 있어 좋았고,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척척 맞는 손발이 리듬감을 타면서 반나절도 되지 않아 깨끗하고 말끔한 초가가 탄생되었던 것이다.일 중간 중간 어머니는 샛거리(간식)를 준비를 하셨는데 고구마,김치,막걸리가 전부인 조촐한 파티와 같았다.소박한 시골 생활을 상징하는 단표누항(簞瓢陋巷)의 정감어린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어 자식을 양육하는 입장에 있어도 눈을 감으면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정겨운 시골마을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데 대부분 초가 일색인 동네에 몇 가구는 때깔나는 기와집이 아직도 뇌리에는 선연하게 남아 있다.잘 사는 부잣집에만 기와집이 있었던 까닭에 어린마음에 기와집에 대한 동경심은 오래도록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또한 사월 초파일에는 으례 불공(佛供)을 드리러 절을 찾곤 하는데 그 일은 할머니께서 맡으셨다.할머니를 따라 비포장 길을 시오리길을 걷고 또 걸어 깊은 산중의 절에 도착하면 딸랑딸랑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風磬)소리,깊은 맛이 융숭한 목탁소리와 정중하고 경외스럽기까지 한 불자들의 백팔번뇌의 모습 그리고 사찰 마당을 휘감은 색색의 연등이 즐비하게 드리워져 있어 마음은 한양없이 기쁘기만 하다.돌계단을 올라 추녀 밑에 찬란하게 그려진 단청 문양은 신비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당시에는 불공을 드리러 갈 때 돈보다는 쌀로 시주를 하고 예불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고교시절까지는 지방에서 살았기에 옛한양의 관문격인 남대문 즉 숭례문은 사회과부도에서나 잠깐 눈을 마주쳤을 뿐 특별한 존재로는 인식을 못했다.그것도 한국 보물 제1호이면서 한국문화의 자존격인데 '소가 닭보듯' 했던 게 불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지난 MB정부 탄생 직전 즉 2008년 2월 10일 화마에 휩싸이면서 우리 곁을 사라져가 버린 숭례문(崇禮門)은 만 5년 여에 걸쳐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화마에 휩싸이고 방화범이 밝혀지면서 온국민은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잃은 듯 크나큰 슬픔과 비애로 가득찼었다.숭례문이 불에 휩싸이던 모습을 TV에서 보던 나 역시 문화재가 허술한 관리로 인해 불타는 모습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다행히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국민들은 좋은 뜻과 마음으로 합심,협력했던 과거가 있었던 만큼 뜻있는 분들의 성금과 (자발적으로)소나무와 같은 재료 기부자가 나왔던 것이다.숭례문이 지붕까지 소실되면서 판액(현판)이 소방관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었다.

 

 

       숭례문의 소실되기 전의 시대사 및 복구된 현재의 숭례문 모습

 

 

 숭례문의 소실과 복구 건립과정 뒷이야기

 

 이성계에 의해 건립된 숭례문은 한양 도서의 관문격으로 수차례 전란의 화를 당하고,복구하고,수리하면서 근 600여 년을 잘 버텨왔지만 사회에 불만이 가득했던 노인의 어리석은 행위에 의해 이제 숭례문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숭례문 복구원칙'에 의해 숭례문은 기초부터 지붕까지 각분야의 장인들의 노고와 공사 감독,감리 등을 거쳐 2013년 5월 준공에 이르렀던 것이다.숭례문복구단장으로 근무하면서 숭례문 복구 현장기록을 자료와 삽화,증언과 탐방 등을 정밀하게 기록하고 있는 최종덕저자는 숭례문이 준공되면서 복구단장에서 해임되고 현재는 문화재정책국장을 맡고 있는 분이다.저자는 숭례문복구단장으로서 공사현장을 살피고 기와도공 등을 만나기도 하고 숭례문 복구 과정상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 기자들에게 해명을 하기도 하는 등 숨가쁜 시간과 나날을 객관적으로 잘 해명해 주고 있다.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문화재든 건조물이든 늘 '사후약방문'격이라는 것이다.부실공사,관리미흡 등으로 사고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공사관계자,관계 공무원들은 책임 떠넘기기 일쑤이고 몸을 사리는 경향이 너무 짙다.나아가 국가지도자격에 있는 분들의 문화재 관리.보호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다는 것이다.숭례문 관리단쳬를 놓고 갑론을박이 무성했다.해당 관리단체인 중구청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숭례문 관리에서 손을 떼고 결국 문화재청이 복구의 주체가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장에 의해 발효된 숭례문 복구 기본원칙은 거의 옛모습을 되살리고 전통재료를 사용하자는 것이 대부분이다.숭례문의 성문을 화재 전 모습대로 복구하고,기존부재는 최대한 재상용하고,고증과 발굴을거치고,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하여 전통기법과 도구 등을 사용하자는 취지이고 원칙이다.하지만 막상 전통기법을 살리려다보니 조선시대 숭례문을 건조할 당시의 자료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공법(工法) 역시 재래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소나무는 운반하면 되지만 육축에 쓰이는 돌부터 전통재료,전통연장,전통기법을 백퍼센트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또한 고급 일꾼인 장인 및 일반 일꾼들의 품삯은 <문화재수리 표준품셈>에 의해 정해졌다.기존부재는 광화문 복구시 사용하고 남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었고,전통철문제작과 전통기와 등은 기업 및 은행,관계대학의 협찬을 통해 이루어졌다.숭례문은 한양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었기에 숭례문의 기초,뼈대,몸체에 이르기까재 재료와 기법,연장 등에 대한 용어도 생경한 것들이 많았지만 이번 기회에 전통문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인식하며 우리의 것을 아끼려는 주체적인 시민의식을 갖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숭례문 복구가 끝나고 '잘 했다,못했다' 등의 잡음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최선의 재료와 기법을 살려 숭례문을 복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된 관리와 보호로 국가의 문화재가 수난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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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세우기 - 숭례문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
최종덕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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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의해 지어진 숭례문은 임란을 비켜 가면서 그 위용을 잘 지켰습니다.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숭례문의 양쪽 성벽이 무너지고,2008년 2월 방화에 의해 소실되어 2013년 4월 재단장을 하게 되었습니다.숭례문의 위상과 역사적 가치,풍수사상 등을 재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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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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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근래 모출판사 국사 교과서 편찬을 놓고 '역사 왜곡이다'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결국 교과서를 편찬한 출판사는 신빙성 없는 자료와 부적절한 친일표현 등에 의해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구한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 교과서가 누구를 위하여 쓰여졌는지는 불문가지이다.당대 통치권자가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역사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학습의 장이 될 것이고 올바른 정체성(어느 쪽에도 기울이지 않은)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가장 바탕이 되는 역사 교과서 만들기는 엄격하게 자료와 고증의 반복,연구진,학자들의 의견교환과 세심한 교정이 이루어진 연후에 일선 학교에 배포되어야 마땅하다.그렇지 않아도 역사 인식이 결여된 현일본 정부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방문과 독도의 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와중에 친일사관에 가까운 일부 교과서 표기는 한참 잘못되어도 잘못 되었고 이는 망령이 되살아 나는 아찔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역사 학습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올바르게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청소년들의 정신적인 자부심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향후에는 절대 한국인에 의해 이러한 역사 교과서 오류가 점철되지 않기를 바란다.정치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정치계는 이념과 사상이 바뀌지 않는 수구.보수세력이 강하게 천착되어 있는데,돈과 권력 위에 정신마저 지배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아찔하기도 하다.옳고 그른 것을 제대로 짚어 주면서 자라나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역사의 흐름,맥락을 통해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며,일반인의 관점에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길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특히 중.고교시절 배웠던 국사시간은 연대기 위주,왕조의 행적,사건의 나열 등의 학습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학창시절의 역사학습만으로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라고 자문하면 그저 단군부터 유신정권에 이르는 천편일률적이고 당시 왕조,정부의 좋은 점만 부각했을 뿐 음지에서 잘못된 것을 뿌리뽑으려 항거하고 싸웠던 의혈남아들의 생생한 얘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요즘 다양한 도서를 읽고 있는데 부족한 분야를 꼽으라면 역사학습의 결여이다.한국사,동.서양사의 객관적인 학습부터 미시적으로 국가별,인류에 커다란 교훈을 안겨 주는 인물들의 일대기 등에 관심을 갖고 음미하고 통찰해 보려는 것이 나의 역사에 대한 학습각오이고 자세이다.

 

 다행히 EBS에서 역사e 채널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의 비화,사연을 풍성하게 들려 주고 있는 역사e 시리즈는 읽고 또 읽어도 흥미와 학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자부심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지난 역사가 정권을 쥔 자들에 의해 백성 및 국민을 지배하고 통치해 왔겠지만 소리 없는 절규와 아우성은 역사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야 들을 수가 있는 법인데 역사e는 그러한 갈증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이야기의 주요 소재도 쉽고 친근하기만 하다.세상에 버릴 사람,아무도 없다,사라진 것들,되살리다,시대의 맥박 살아 있다 로 대별하고 있다.

 

 이 글이 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로서 야사에 묻힐 뻔한 사연들이 많다.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사연의 전말을 세세하고도 친절하게 전해 주고 있으며,생경한 부분은 '그러한 일,그러한 직업,그러한 사람도 있었구나'라고 스스로 감탄과 교훈을 자아내곤 했다.책장사를 전문으로 하던 책쾌,무명시인의 멋진 시,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공부벌레,구한말 외국 여의사의 당나귀 타고 출근하기,봉보부인의 파격적인 대우,스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활빈당과 같은 홍길동의 후예들,장애인들을 정상인과 같이 대했던 인본에 입각하여 누구나 자립을 해야 한다던 사회상 등을 신선한 감각으로 엿볼 수가 있었다.

 

 서유구가 지은 조선 최고의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113권 52책,250만여 자),귀신을 쫓는 영물의 대명사 삽살개,암행어사로 변장한 임금의 사연,고구려의 혼례풍습(남자는 돼지고기와 술만 여자 집으로 보냄),소금의 역사와 역할,일제강점기 총독과 2차 세계대전을 총괄지휘한 장본인의 말년과 사후,전범재판에서 조선은 없었다가 2부를 장식하고 있다.3부에서는 비격진천뢰라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비빌병기의 위용,원한,패륜,복수로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명탐정들의 활약,정약용이 유배시 써 내려간 182책 503권 완성(2012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헤르만 헤세,루소,드뷔시과 함께),독립운동가 김홍락의 후손인 김용환의 파락호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변신,이어령 비어령식의 죄목을 붙혀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6264명의 무명초들의 가련한 삶의 사연,이봉창열사의 투폭과 함께 뒤를 이은 열사들의 고귀하고 영웅적인 독립운동의 정신,일제강점기 성행했던 전통 서당교육의 실상 등이 실려져 있다.

 

 수많은 외침을 당해 왔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국가의 독립과 자존은 결코 통치권자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고 이름 없는 민초들의 주권과 의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정권과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만 감싸고 당파와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된 잘못된 위정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꿈과 희망은 말할 것도 없고 단결과 단합도 안될 것이다.국가라는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난국과 위기를 헤쳐 나가려는 상생 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이 이 도서를 읽으면서 느낀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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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 당신이 알아야 할 시리즈
서경덕.한국사 분야별 전문가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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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집안에는 족보가 있다면 한 국가에는 제대로 된 역사가 있어야 한다.가정에서 자신의 본관 및 가계도,혈통을 알아야 비로소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을 수가 있다.나아가 국가의 지난 과거를 제대로 알고 파악해야 현재 및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예측하고 분석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국가가 사회의 가장 큰 단위로서 모든 영역에 걸쳐 불연속성과 변수가 많기에 사회의 흐름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이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커다란 줄기로 놓고 보자면 국가라는 단위가 지난 과거의 오류의 점철에서 벗어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국가의 주체인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하기에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고 정체성을 청소년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수능 필수과목에서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역사 과목이 선택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수험생들의 막중한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서울대만 국사과목이 필수로 지정되어 수능에서 서울대 입학생들은 한국사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영어 사대주의에 물든 국가의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한국사를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으로 지정해 놓았는지 이해가 도저히 안간다.국가의 뿌리를 모르는 사람이 글로벌 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을 수가 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2013년 6월 교과부에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제발 조령모개식의 교육정책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작금 한반도를 둘러싼 이웃 나라들(중국,일본 등)의 역사왜곡이 심하고 지난 역사의 잘못을 쿨하게 사과하지 않는 오만한 작태를 아직도 자행하고 있는 점에서 심히 유감스럽기만 하다.일본은 심심하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중국은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으로 취급하면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완료한 상태이다.객관적인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독도,고구려,발해는 분명 한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여 자신들의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마당에 한국의 정치가 및 외교관,역사학자,연구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복록을 받으면서 한국 고유의 영토에 대해 중국과 일본에 대해 어떠한 대처와 접촉을 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역사 이래 수많은 외침을 받아 왔다.근.현대사를 놓고 보면 무능한 왕조와 기회주의적인 신권들이 들고 나서면서 국권은 외세에 넘어 가면서 주인이 주인행색을 못하고 이방인의 침탈 앞에 간난신고의 속수무책을 당해야만 했다.제2차 세계대전이 무르익을 무렵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 등지로 뻗어가면서 한국의 젊은 청년 및 처녀들을 그들의 총알받이 내지 성적 노리개로 인간이하의 취급을 일삼았다.그리고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고 미.일 안보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바탕으로 군사도발은 행사하지 않겠다,부득이한 경우에는 자위대로 자국 및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방어하는 자위대 정도만 유지하겠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에 대한 처형 등도 끝난 줄 알았는데 현재 일본 정부가 하는 작태를 보고 있으면 언제 또 다시 군사발동을 할지 알 수가 없다.아베신조는 얼마 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중국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아베신조는 어떠한 생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는지는 불문가지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외세 앞에 '눈뜬 봉사'였다고 자탄한다.주인이면서 주인다운 행세를 못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영국,프랑스 등지로 약탈,침탈,수탈해 간 문화재는 얼마나 되는가.이렇게 강제적으로 빼앗긴 문화재를 해당국가의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어 반드시 되찾아 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빼앗긴 문화재를 놓고 프랑스 등은 후안무치하게도 속지주의(귀화주의) 원칙을 적용하면서 빼앗아 간 문화재를 주지 않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안타깝기만 한데 영구 반환이 아닌 그래도 시간을 두고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과 담대함을 갖고 빼앗긴 문화재를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더욱이 일부 문화재는 영구 반환이 아닌 몇 년간 빌려주는 식으로 반환이 되었다니 '자다 봉창 뚫는 소리'가 아닐 수가 없다.

 

 그외 일제강점기 국가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멸사봉공했던 독립운동가,독립운동 역사,한글,한식,아리랑 등의 문제도 청소년을 비롯하여 한국인이라면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국가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그 후손들은 보수,수구세력에 의해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은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국가의 리더자가 누구이고 정치를 하는 이들이 소속과 당파를 떠나 잘못된 역사는 바르게 세우고 말살되고 잊혀진 명예는 회복시켜 주어야 하고 그 후손들은 당연 그에 합당한 처우를 받아야만 한다.이 글에는 10가지 꼭 알아야 할 한국사가 일목요연하게 삽화와 함께 잘 나타나 있다.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교수의 한국사 알리기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젝트이고 자랑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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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걷기
이상국 지음 / 산수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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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도서를 작고하신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던 얘기를 시대적 상황과 그 분들이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읽어 갔다.지금의 길은 시골 구석구석까지도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흙내음을 맡을 수 있는 길의 공간이 많지를 않다.골짜기로 들어가야 어릴적 밟고 지나가던 길의 모습이 남아 있을 뿐이다.포장되지 않은 길,오랫만에 듣는 예스럽고 그립고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적 배경이다.

 

 내가 들은 예스러운 길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들려 주시던 시집올 때의 길은 평지가 아닌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개길이었다고 한다.아직 철도 들지 않았을 열네 살,열다섯 살 소녀티가 물씬 풍기던 시절 시집으로 가기 위해 오르고 넘던 고개길에는 낭군님과 오래도록 함께 해로한다는 즐거움과 기대보다는 고된 시집살이로 점철되어 있었다.특히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일제강점기와 맞물리고 증조할아버지께서 허랑방탕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고된 삶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가야만 했다.젊은 시절 양식을 구하기 위해 땔감을 리어카에 싣고 할아버지는 끌고 할머니는 밀면서 도회지까지 걷고 걸었던 것이다.이십리(8키로) 길을 새벽이슬을 맞으며 시장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해가 중천에 달리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굴과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땔감을 팔아 보리쌀과 쌀을 팔아 다시 집으로 돌아 오셨다고 한다.당시 작은아버지께서는 국민학생이었는데 아침밥을 굶고 책보를 허리에 차고 학교를 다녀 오는데 실과 같은 가늘고 긴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그리도 짠하다고 생전 심심하면 내게 들려 주셨다.

 

 사람이 걷지 않는 곳은 풀밭이었을 것이다.무슨 목적이었든 뭇사람들이 가고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풀들이 소금에 절인 배추와 같이 풀이 죽으면서 풀밭은 맨들맨들 길로 변했을 것이다.평지이든 비탈길이든 언덕이든 고갯길이든 길은 사람들의 두 발로 인해 생겨 났을 것이다.사람이 다니는 길이기에 길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이렇게 길에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곳이다.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는 못 올 곳이기도 하는 곳이 길이다.길 속에는 다양한 의미와 에피소드가 다겨져 있는데 이 글에는 조선시대의 지식인과 선녀와 악녀,조선인이 고려의 개경을 걷기,고려 콤플렉스 탈출 등이 시대와 인물,심리묘사 등으로 잘 엮어져 있다.

 

 주로 조선시대의 예화들이 예스러우면서도 해학적으로 다가온다.과거를 보러 평지와 고개길을 걷고 또 걷던 예비생원들과 벼슬에 올라 임지로 가는 갈,금의환양하는 길,천 리 먼 길로 유배를 떠나는 일,사랑을 받고 사랑에 굶주린 여인들의 농밀하지만 종말은 비극으로 끝난 여인들의 처절하기만 한 이야기,그리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세워지고 다시 고려의 개경을 찾아 가는 이야기,송도삼절이라 일컫는 황진희,서경덕,박연폭포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고 있다.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해석을 읽다 보니 시대가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 막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남녀간의 연애와 사랑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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