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 조선인 가미카제에서 김형욱 실종 사건까지, 기록과 증언으로 읽는 대한민국사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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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부(恥部)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이것은 주체가 누가 되었든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것이 상정(常情)이리라.역사 문제도 동일선상에서 보면 될 것이다.지난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후세에게 가르쳐 주려면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의 뜻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그런데 구한말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역사 학습은 식민사관 및 군부 정권에 의해 묻히고 잊혀진 과거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이 그대로 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는 꼴이 되어 버렸다.불행중 다행으로 1990년대 이후 일제 식민사관의 베일이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을 달리는 시점에서도 제대로 된 한국 현대사는 레일에서 탈선한 기차와 같이 전복되어 있는 꼴이다.모든 일에는 객관성과 다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근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이 통합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객관성과 사실성에 어긋난 왜곡과 미화가 주입된 우려가 매우 크기에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현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두 눈 부릎뜨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해방 이후 군부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일들이 많다.국가의 치부,정권의 불명예라는 이유 등으로 정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여 묻히고 잊혀진 역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해방 이후에는 한반도가 분단되고 이념 갈등이 심화되면서 역사 학습은 단연 반공 일변도로 채색되었다고 본다.군부 정권은 이것을 분단과 이념 문제를 십분 활용하면서 정권 창출의 변명의 도구로 활용했던 셈이다.이승만 정권부터 군부 정권에 이르는 동안 한국 현대사는 변명,미화,왜곡,축소로 일관했다.이렇게 숨기고 잊혀질 뻔한 역사가 사실과 증언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어 (뒤늦은 감은 있지만) 만시지탄이 아닐 수가 없다.물론 누군가는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역사적 사실을 함구로 일관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 도서는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 연재물을 편집한 것으로 역사적,정치적으로 큰 사건을 다루고 있다.미제 사건이 대부분으로 관련 자료는 망실됐고,증언자는 고인이 되었거나 함구(緘口)하고 있다.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화를 입기 쉬운 사안인지라 잠자코 있는 것으로 보인다.일제 강점기,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 속에 과연 어떠한 일들이 미제(未濟)로 남아 있을까.

 

 정운현 저자는 19가지의 사안 다루고 있는데,이미 알고 있었던 사안도 있고 대충 아는 정도에 머무는 사안도 있었다.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끔찍하고 생경한 사안도 있었다.독재자에 정실인사를 일삼으며 민생 문제를 외면하는 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려던 김시현,'결사(決死)'를 전제로 비행기와 어뢰에 몸을 던진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의 진상,광화문과 남대문을 살린 일본인 민예학자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형(유일한)은 독립운동가이고 동생(유일한)은 친일 행적의 흔적이 농후한 사람이다.3.1절의 명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문제(혁명?),빨갱이라는 용어 사용이 1948년 5.10총선거를 앞두고 인신공격의 방편으로 '모리배','빨갱이' 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1956년 1월 서울시를 이승만의 호를 따서 우남(雩南)시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나아가 이순신 장군 동상의 문제점 지적,유관순 열사 '여섯 토막 훼손설'을 둘러싼 진실게임,친일파 1호는 김인승(병자수호조약 당시의 인물)이다.특히 일본인 가미가제 특공대를 둘러싸고 마쓰이 오장의 죽음을 미화하고 조선 청년들도 그와 같이 일왕을 위해 장렬히 전사하라고 서정주 시인은 권했다.

 

 후반부도 흥미를 돋구는 역사가 많다.독립문 현판 글씨의 주인은 이완용 VS 김가진으로 나뉘고 있다.독립운동가 김구의 신산한 삶의 이력,서울 남산 소나무 속의 조선신궁(神宮)과 일본 천황을 향해 참배하는 가녀린 여학생들의 모습,동족상잔의 비극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막으려 애썼던 여운형은 진정으로 통일조국을 꿈꾼 인물이다.일제 강점기 송진 채취로 훼손된 해인사 산림 잔혹사,박정희의 '사회노동당'창당 특종 보도에 관련한 의혹,광복군 연락 및 지원업무 실무자로 광복군의 숨은 은인인 중국인 왕계현에 대한 이야기,재미 한국인 2세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 영운 김영옥의 휴머니즘,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에 포함되었다.끝으로 박정희 오른팔이었던 김형욱의 실종 사건에 대한 전말을 그리고 있다.김형욱 실종 사건의 키(Key)를 쥐고 있는 배후인물은 생전 내내 함구로 일관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국 역사에 있어 여러가지 이유로 베일에 가려져만 있었던 비화(秘話)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다행스럽다.비록 많지 않은 비화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잘못된 사관과 정권 유지를 위해 마땅히 알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할 문제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발굴되고 밝혀지기를 기대한다.사회 구성원의 올바른 정체성과 국가관,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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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6-0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네요. 좋은 책 소개감사합니다
^^

우보 2016-06-08 18:02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저도 이 도서를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일화들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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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司法府,Judiciary)는 삼권 분립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적용하는 헌법 기관이다. -네이버 지식 인용

 

 지난 정권에서 불어 닥친 한국 사회의 화두는 상식과 정의였다.법률로 정해진 사회 제도와 시스템은 있으나마나한 몰상식과 부정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였다.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에 의한 해석과 심판을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해야 할 사법부의 위신도 국민들에겐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다.일종의 '무전유죄,유전무죄'의 판결 관행이 지속되었다.죄를 지어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겐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법의 판결을 받곤 한다.게다가 정권에 있다 떠밀린 사람의 경우에도 '미운 털이 박힌 격'이 되어 신체적,물질적 손해,손상을 입곤 한다.철저한 수사,증거.사실에 입각한 수사보다는 정권의 입모양에 따라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사법부는 삼권 분립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정권의 하수인 격이 아닌 극히 중용과 독립을 생명으로 삼아야 마땅하다.죄를 지은 자에겐 당연히 법률에 의한 해석과 판결권을 갖은 법관의 냉철한 판단력에 의한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그런데 한국 현대사에 있어 아니 현재의 사법부의 모습까지도 일반인들이 사법부에 대한 이미지는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왜냐하면 법 위의 상위 기관이 늘 존재하고 있는데,그것은 당대 정권의 수장이 직.간접적으로 사법권마저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이념적,사상적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하여 정보기관을 활용하여 사법의 권위를 무색케 하고 정권의 시녀(侍女)화 했다고 본다.그래서 향후 사법부(司法府)의 위상은 독립적이고 중용의 차원에서 사법부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홍구 저자가 쓴 한국 현대사의 사법 부분은 말그대로 '회한과 오욕'이었는지 모른다.1945년부터 1997년까지의 사법 부분의 기록을 토대로 엮은 글로 대부분 당대 정권을 유지.수호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 안기부 -> 국정원 등에 의해 사법권이 심대하게 손상되고 말았다.사법부의 법관 가운데엔 대쪽 같은 분들도 존재하지만 정권의 눈에는 거추장스러운 미운 털로 보여 스스로 법복을 벗는다든지 종용에 의한 면직처분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법률과 법원이 제대로 작동해야 고통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법 피해자들이 줄어들 것이고,이념과 사상의 희생양이 된 분에겐 재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이 글은 2009년 5월 19일부터 2010년 6월 18일까지 『한겨레』에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사법부는 대부분 정권과 권력의 희생양이었다.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사법부를 시녀로 삼기 위해 남북 분단의 대치적 상황,이념과 사상의 잣대를 교묘하게 악용했던 것이다.중정과 안기부가 주동이 되어 사법권을 조종하고 깊숙이 개입한 한국 현대사 사법부는 법 위의 정권의 비위(脾胃)를 맞추어 나가야 했다.물론 이 글이 1997년까지의 사법 부분의 기록물이지만 그 이후의 사법 부분이 과연 얼마나 쇄신과 변화를 거듭해 왔을까.내 감각으로는 반신반의다.아직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꼴을 보면서 사법부의 권위,독립성이 갖춰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법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강자와 약자 모두 법 앞에 평등한 법인데 실제 법의 심판 내용의 면면을 보면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당대 정권을 중심으로 중정과 안기부가 주동 세력이 되어 사법권의 존재,위상을 뒤흔든 사법 파동을 한 두 가지가 아니다.당대 정권의 사상과 이념의 코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권력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물론 억울하게 사법의 피해를 본 당사자 및 후손들은 당사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신청하여 무죄를 선고 받는 케이스가 있다.대표적인 것이 인혁당 사건(2007년),오송회(五松會) 사건(2008년),아람회 사건(2009년),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2009년),김근태 고문 사건(2014년) 등이 있다.유죄판결을 끌어 내기 위해 중정.안기부는 사법부에 은밀한 공작과 회유를 얼마나 많이 자행했는지 (간접적이지만) 뼈 아픈 상처,고통이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다.특히 유신과 5공 시절 사상과 이념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주화 세력,시국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화해와 용서,명예회복을 진정으로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정권 유지 차원 및 사회 안정망의 훼손,한.일 과거사 문제,신형 안보문제 등이다.광우병 촛불 시위,용산참사,세월호 침몰 사건,메르스 파동,국회법 파동,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노동개악(改惡),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개성공단 폐쇄,사드(Thaad)배치,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Filibuster 議事妨害) 등 민주주의의 후퇴가 거듭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는 많은 문제를 지닌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형국이다.사법부의 법관은 편협되고 주관적인 견해를 고집하여 국리민복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권 유지를 위해 없는 죄도 만들어 냈던 수치스러운 한국 현대사의 사법부는 중정 - 안기부 등의 정보 기관에 의해 유죄판결을 언도해야 했다.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그런데 세상의 이치란 사필귀정이다.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1987년 6월 정치 민주화가 표면적으로 성취되었다.정말 민주주의다운 민주국가를 열망하고 기대했지만,실제 한국 사회의 정치 상황은 늘 정권 유지를 위해 존속하고 있는 것 같다.이와는 관계없이 사법부는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사법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그러한 원칙을 어기면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듯 하다.사법부의 요체인 검찰개혁이 시급한 부분이다.또한 사법부에 대한 외부 기관(국정원 등)의 개입과 압력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진전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마참히 짓밟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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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인문학 -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
정혜경 지음 / 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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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매일 먹는 한그릇의 밥 속에는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쌀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인의 생래적 DNA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쌀은 1만 5000년 전의 볍씨가 충북 소로리에 발견되었을 만큼 내리 밥을 사랑하고 먹어온 우리 민족이다.쌀은 영양과 칼로리도 밀에 견주하여 손색이 없다.게다가 발효 식품인 간장,된장,김치까지 만들어 낸 민족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쌀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희망,한(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런데 근래엔 세계자유무역(FTA)에 의해 외국산 쌀이 무분별하게 수입되면서 한국 풍토에서 재배되는 쌀은 예전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한 쌀로 지은 밥은 과연 어떠한 대상이고 한국인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기회이리라.

 

 쌀은 두 가지의 관점으로 분류된다.하나는 경제.자원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문화적인 접근으로 한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다.경제.자원적인 측면은 일제강점기와 같이 착취적인 식민주의적 경향 및 쌀 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른 쌀의 주식(主食)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경향과 맞물려 식단의 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져 가고 있다.우유와 빵,샌드위치 등 서구식 먹거리가 한국인의 식탁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번 도서가 전하려는 취지는 '인문학적 시각의 밥'에 대한 얘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내고 있다.특히 쌀은 한국인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무형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일종의 쌀은 한국인의 정령 이상은 아닐까.

 

 모유가 첫 번째 음식이었다면 그 다음은 쌀로 지은 밥을 입에 대었을 것이다.이가 자라나지 않은 아이에겐 미음을 만들어 먹였고,좀 더 성장하게 되면 다양한 밥을 먹으며 생활문화를 체득해 갈 것이다.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쌀로 지은 밥 또는 쌀과 함께 보리,조,수수,콩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쌀로 지은  밥(이하 밥)은 한국인에게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운명의 만남일 것이다.쌀은 인도 아삼지방과 중국 윈난 지역은 쌀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한반도에서 가까운 중국에서 도래해 온 것은 아닐까 한다.밥에 얽힌 얘기는 몇 날 며칠은 얘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특별한 밥은 살아 있을 때든 죽어서든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도서는 총 5부로 구성되었다.쌀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 보는 역사 속의 밥과 쌀 이야기,밥의 문화사를 연대기별로 살핀 이야기,밥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쌀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강상의 효능이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조리법을 순차적으로 수록했다.

 

 한국인에게 밥은 역사,문화,정서,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선사시대,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 밥이 한국인에게 안겨 준 의미와 가치를 비롯하여 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서적,문화사적 의미 등을 흥미진진하게 엿볼 수가 있었다.또한 쌀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이번 기회에 불식시킬 수가 있었다.나아가 궁극적으로 쌀로 만든 밥이 한국인의 성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어떠한 사례들이 있었는지 제대로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쌀로 지은 밥은 개인이 다반사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커다란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제천의식,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쌀은 꼭 등장한다.시대적으로는 쌀밥은 귀족의 몫이고 모래 섞인 밥은 평민의 몫이었던 고려 시대,농민이 농사지은 쌀은 양반만이 먹었다는 조선시대,그리고 개항 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쌀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며,해방 이후에는 춘궁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릿고개'가 만연했다.그래서 한국인은 밥의 힘으로 산다는 '밥심'이라는 말이 힘을 얻어 갔다.누가 뭐라고 하든 밥 만큼은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야 수저를 내려놓았던 모양이다.요즘 이렇게 먹는다면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또한 시대별로 쌀에 얽힌 사정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현대 문학가들의 작품 속에도 밥에 관한 얘기들이 등장한다.대표적인 것이 최명희 작가의 『혼불』,박경리 작가의 『토지』,홍명희 작가의 『임꺽정』,박완서 작가의 『미망』이다.근래 허영만 화백이 쓴 <식객>은 각 지방의 주요 음식을 소개하고 있어 음식과 식재료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넓게 보면 한국인의 의식구조 및 우리 전통문화를 인식하는 단초가 된다.그런데 쌀을 중심으로 한 밥 이야기가 한국인의 정서를 크게 대변하고 있지만,해방 이후 부족한 쌀을 대체 작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 가운데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분식(紛食)이 새치기를 한 셈이다.

 

 밥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별밥,보리밥,부빔밥,잡곡밥,제밥,중등밥,송이밥,팟밥,조밥,콩밥,감자밥,굴밥,별밥,약밥,골동밥,연어밥,무밥 등이 있다.나아가 북한의 요리책에 소개된 밥들은 다음과 같이 흰쌀밥,오곡밥,기장찰밥,밀밥,풋당콩밥,강냉이밥,섞음밥,밤밥,남새밥,두릅나물밥,도라지밥,홀잎밥 등이 있다.쌀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밥을 요리했던 주부들의 솜씨,지혜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밥과 관련한 속담도 놓칠 수가 없는 대목이다.'제 밥그릇은 제가 지고 다닌다','제 밥 먹고 컸는데 남의 말 들을 리가 없다','제 밥 먹고 상전 빨래한다','제 밥 먹은 개가 발꿈치 문다','제 집 찬밥이 남의 집 더운밥보다 낫다' 등이 있다.짧지만 강렬한 의미를 내포한 말들이다.

 

 쌀은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좋다.칼슘과 철,인,칼륨,나트륨,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고,발암물질이나 비타민B1 등과 같은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279

 

 태어나 미음으로 시작하고 망자의 입에 쌀을 물리는 등 한국인에게 쌀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동반자이다.밥,국,김치 등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한국인의 대표적 음식으로,한국인의 역사,문화,정서와 함께해 온 산물이고 운명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씻은 쌀을 물에 몇 시간 불려 돌솥에 앉혀 익힌 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입맛을 한층 돋구워준다.잘 익힌 밥과 국,김치,나물,생선 등과 함께 인체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간다.쌀과 밥,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해서인지 나는 밥알 만큼은 한 톨도 버리지 않을 정도로 밥그릇을 싹싹 비워낸다.불과 삼십 여 년 전 아버지,할아버지께서 모를 심고 물을 대고 농약을 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벼를 수확하던 시절은 잊혀지지 않는 내 마음의 추억이고 선물이다.근간 시간을 내어 오곡밥을 맛있게 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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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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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 대통령 박정희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른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민족사의 진운(進運)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기 위한 중대한 결심"을 담았다는 이 선언을 통해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 현행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p29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출신으로 5.16 군사 혁명에 의해 대통령에 오르고 장장 18년 간을 독재정치를 원없이 펼치려다 부하의 손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인물이다.그가 대한민국을 통치하던 시절의 치적은 명과 암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그를 기리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 개발에 주력하면서 대한민국의 산업화,도시화를 이끈 장본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민주화,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과 유린을 일삼았던 인물로 각인된다.경제 개발에 따라 삶이 풍요로워진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수용 가능하지만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자행된 민주인사 및 노동계 등의 인물들에 대한 무차별 인권 유린 사태는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1972년 10월 17일에 시작된 유신(維新)은 1979년 10월 26일에 이르러 종식(終熄) 되었던 것이다.유신헌법이 발표되던 무렵 한반도 내외부 정세는 과연 비상조치가 불가피하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일대 유신적 개혁'이 필요했던 것일까.그런데 박정희가 5.16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때부터 유신적 개혁이 발효되던 시점까지의 정치 행위는 과연 민주주의를 착실하게 이행했던 것일까.반란,개헌,친위 쿠데타 등으로 볼 때 박정희의 정치적 행로는 종신집권을 위한 혼자만의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그의 수족이었던 중정부장의 손에 의해 불여귀가 되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 정치 권력은 부자 간에도 나누지 않는다고 했듯,남이야 오죽 하겠는가.

 

 나는 유신시대를 거치긴 했어도 현실 정치의 속성을 깨닫기 전이어서 실상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국민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고교시절이 막 들어서는 순간까지가 유신의 시대였다.1971년 대통령 선거,1972년 7.4 공동성명,새마을 운동,통일.유신벼,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1975년 4월 30일 베트남 멸망,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등이 기억에 남는다.1975년까지는 라디오 및 도덕 교과서를 통해 유신의 표피를 알게 되었고,그 이후는 라디오 및 TV를 통해 알게 되었다.주로 반공교육,새마을 운동 등이 주가 되었고,민주화 및 인권문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관심의 대상이 공부 잘해서 좋은 성적,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최고의 이상으로 여겼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다만 관공서,학교 교무실 등에 걸린 박정희 초상화는 매우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이어 그의 말과 지시는 모두가 따르고 이행해야 하는 줄로 알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한홍구 저자의 글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숨은 한국 현대사의 면면을 적확하고 상세하게 들려 주고 신뢰가 간다.특히 유신 정권하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과오 등에 대해 강연과 대담 등을 시청하면서 '나는 과연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자문자답하곤 한다.그러면서 유신 시대 벌어졌던 각종 인권 유린 사태(김대중 납치 사건,인혁당 사건,장준하 의문사 등)를 간접 체험하면서 저절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정치 권력이란 '권불십년'이라고 했는데,박정희는 살아있는 한 영구집권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그에겐 정치 후계자도 없었다.자연사하기 전까지 그는 살아있는 절대권력의 소유자로 남으려 했다.누군가 그의 정책,정권에 대해 가타부타 간언도 할 수 없는 독재자의 전형이었다.특히 김대중 납치 사건의 전말과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8인의 기구한 운명 등을 접하면서 정치 권력의 잔인함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사실 유신 시대 독재,정권 유지라는 명목으로 당하고 희생되었던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정치계,언론계,노동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유신의 칼에 의해 고초와 희생을 당해야만 했다.

 

 박정희는 유신 개혁의 모델을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찾고 있다.《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박정희는 "명치(메이지)유신이란 혁명과정을 겪고 난 지 10년 내외에는,일약 극동의 강국으로 등장하지 않았던가.실로 아시아의 경이요,기적이 아닐 수 없다"며 "금후 우리의 혁명 수행에 많은 참고가 될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본인은 이 방면에 앞으로도 관심을 계속하여 나갈 것이다"라고 천명했다.결국 메이지유신은 한국이 계속 따라가야 할 모델로 여겼던 것이다.박정희가 메이지유신의 지사(志士)로 여겼던 인물 가운데는 신화화된 인물도 있지만,정한론(征韓論)을 펼친 인물도 있다.(사이고 다카모리,이토 히로부미,이노우에 가오루,야마가타 아리토모 등)헌법 위에 군림했던 유신의 심장 박정희는 3권을 장악함은 물론 국회의원 1/3 임명하고 전국구의원 제도는 없애 버리기도 했다.

 

 1972년 10월 박정희의 헌정유린 친위 쿠데타 이후 잠잠하던 학생운동은 김대중 납치 사건을 거치면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학생운동은 10.26 박정희 암살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데 구속,무기정학,자퇴를 당하고 자유언론수호선언을 했던 언론사 기자들은 경영진들에 의해 쫓겨 났다.유신체제는 한국 사회 깊숙이 파고 들었다.가요계,노동계 특히 YH사건은 부마 항쟁,박정희의 암살로 이어졌다.유신시대의 '용사참사'격인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 보여 주었던 강제철거의 잔혹함은 국가의 폭력이 아닐 수가 없다.또한 유신악법으로 불리는 '군사기밀보호법'은 군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기밀 범부에 묶어 놓았는데,죄를 범한 자는 형의 1/2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언론의 입을 틀어막았다.당연 군대 내에서의 군인들의 사망자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것이다.세계가 주목하고 경악했던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8인은 사형 선고와 함께 익일 연쇄살인 되고 말았다.민주주의를 표방하던 나라에서 전례 없는 사법 유린사태가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박정희가 종신 집권을 눈앞에 두고 부하의 손에 의해 암살되어 어언 36년이 흘렀다.일제강점기와 맞먹는 세월이다.그런데 한국 사회의 정치 민주화의 체감 온도는 영하권이다.근자 '테러 방지법'을 국회의장이 단독상정하여 야당에선 이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테러 방지법이란 과연 무엇인가? 국민과 국가의 인적.물적 안전을 위해 보호를 받기 위한 법적 장치로 이해한다.다만 테러 방지법 내용 속에는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기에 소수당인 야당측에선 필사적으로 필리버스터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박근혜 정권이 채 2년도 남지 않은 시기에 '테러 방지법'을 내세워 정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의 사생활(국가정보원)을 깊숙이 캐내려고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과연 현 정권은 국민들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마저 원천 봉쇄하려는 것은 아닌지.박정희 시절 헌법 위에 군림했던 유신 악법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다.유신시절의 전철(前轍)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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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kim999 2016-02-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의 55백만 인구와, 현재의 국민소득기준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무역규모를 고려하시고, 이러한 대한민국 국민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박대통령 사망이후 36년이 지난 지금에도 80% 이상의 지지를 보내고 있는 사실을 존중하신다면, 두가지 가설 또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네요. (1). 대한민국의 국민 80% 이상이 지난 36년의 세월동안 계속해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있을, 집단적인 어리석음에 빠져있을 가능성, 그러나 그런 집단적 어리석음가운데서도 현재의 세계속 한국을 만들었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 (2) 균형감을 상실하거나 또는 고의로 방기하고, 한가지 부정적인 면만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는, 최소한 80%의 압도적 다수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일 가능성. 지난 25년간 수많은 나라를 출장하면서 알게된 사실하나는, 한국과 같은 수준의 자유와, 경제, 자연을 가진 나라는 10여개국 수준의 매우 희소한 경우란 사실. 이러한 세계적 경험과 각성 없이, 일부 부정적인 면에 매몰되어 보이는 듯한 오해를 일으키는 그런 논조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논조의 주장자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네요. 자연계에 완벽한 존재는 없고, 자연계는 기하급수적인 형태로 진화한다는 사실과 그 진화는 다만 순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한가지 계기 또는 임계점을 토해서 자연계의 모든 유기체는 폭발적인 진화를 하지만, 곧 내재된 모순등의 이유로 순환적인 후퇴와 조정이 있지만, 대세로서의 기하급수적 폭발적 진화는 멈추지 않는 다는 면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면은 유기체에 가까운 속성을 지닌, 인간사회 또는 한 국가, 한 사회, 한 민족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보다 큰 의미, 보다 큰 포용, 보다 큰 미래에 대한 지식인다운 지적 (비록 개인적으로 소수적인 입장에서 고통이 있을 지라도...)을 하여 주시는 것이, 진정 이 나라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과거의 모순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것은 진실이고, 동시에 전체가 아닌 부분의 잘못만 지적하여 전체적인 더 큰 가치를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게 아닌가 싶습니다.

hanskim999 2016-02-2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평등의 문제를 포함한 수많은 많은 문제들은 현재 우리의 아픈면인것은 모두가 인정한다고 봅니다. 다수의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아닌것은 이런 면에서 시사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진보적인 견해와 인생을 용기있게 살아오신 분들이, 지식인들이, 다수의 견해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또는 최소한 전략적 관점에서 활용이라도 하는 관점을 가져보면서, 다수의 관점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는 논조가 있다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대한 위험부담은 항상 있겠습니다... 다양한 위험부담이요..

우보 2016-02-28 11:01   좋아요 0 | URL
hanskim999님,댓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eBook] 역사 e 4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4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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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e 시리즈'는 참신하기 그지없다.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한국 역사의 뒤안길,위정자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민초들의 삶의 무늬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점이 특색이 아닐까.게다가 학창 시절 접했던 역사 교과서라는 것이 역사의 승자라고 할 만한 위정자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역사의 진실은 은폐되고 만다.그래서 일반인들이 자국의 역사에 대한 진실은 늘 '수박 겉핥기 식'이다.참된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그것을 발판으로 또는 거울 삼아 미래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이번 역사e에서 들려 주는 얘기는 사안이 크든 작든 알아야 할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기나긴 세월 타임캡슐 속에 파묻혀 있었던 역사의 기록들이 세상의 광명을 받고 다시 태어난 거나 다름없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역사는 수많은 민초들의 간난신고에서 비롯된다.권력을 쥐고 있었던 왕조,관료 등 지배계층은 자신들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고,피지배계층이었던 천인들은 위정자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처절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앞서 얘기했듯 역사e가 가슴에 와닿으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점은 뭐니 뭐니해도 낯설지만 보석과 같은 역사의 편린들이다.이러한 편린들을 엮어 현재와 다가올 시대를 준비하고 맞이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역사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근자 역사 국정 교과서 움직임으로 뒤숭숭한데,이것은 현 주류 이데올로기를 쥐고 있는 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잘못 만들어진 역사 교과서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의식과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획일적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국정 교과서 안에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잔뜩 집어 넣겠다는 발상이 아니고서야 뭐겠는가.

 

 <역사채널ⓔ>는 직접 시청한 적은 없다.도서에 소개하고 있듯 '5분 분량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방대한 내용보다는 핵심적인 장면을 싣고 부족하다싶은 내용은 관련 주제에 보충하고 설명하면서 알차게 내용을 엮었다고 한다.2008년 불탄 국보 제1호 숭례문의 유래,일제강점기 무렵 러시아 땅으로 넘어간 녹둔도,강제징용 한국인의 아픔을 보여주는 하시마 섬의 비극과 대조적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양반들의 특권 의식을 현대 사회의 '갑질 문화'와 연관지어 비판하고 있다.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경복궁 역사에 비유하고 있고,청계천 준설과 청백리 제도,조선 사회의 깨어 있는 의식과 역동성의 상징 만인소,태극기의 발굴,이역 몽고에서 인술을 편 독립지사 이태준,어린이에게 미래를 찾은 방정환 등이 주요 사실(史實)로 나타나 있다.그외 조보,지방지도,태교신기,승정원일기 등에 대한 설명을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다.선조들이 남긴 우수한 기록문화의 산실이 아닐 수가 없다.

 

 잊혀지다(忘),지키다(守),기록하다(記)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대별되는 이번 역사e 4는 짧지만 임팩트한 내용들이 참으로 많다.1992년 8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이 '가짜 총통'으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부터 베이징조약(1860년)에 의해 녹둔도(鹿屯島)가 연해주 땅과 연륙되어 가 버리고 말았다.녹둔도는 현재는 러시아 땅이지만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영토로써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구한말 위정자들의 무사안일이 자초한 결과치이다.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하시마 섬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는 약 800여 명이지만 누락되고 은폐된 사망자까지 고려하면 희생자는 크게 상회할 것이다.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역사적 과오,치부를 은폐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했다.강한 국력과 막강한 외교채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일본 정부는 조선인 징용고 관련 사망자들의 유해봉환 및 피해보상은 외면하고 있다.파렴치한 족속이 아니고서야.

 

 그외 눈에 띄는 대목들이 참 많았다.삼국시대 초기에 들여온 감귤은 나라에 진상하는 귤의 수량을 늘리기 위해 감귤나무 수량의 증가를 비롯하여 감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하게 실었다.특별 과거시험에서 단 한 명에게만 관직이 주어지고 참여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주며 귀한 과일의 진상을 축하했다.그러나 감귤 진상 제도가 해가 갈수록 횡포해지면서 감귤 농사꾼들은 나무 심기를 꺼리고 심지어 뽑아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여러 상황을 예상하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특징인 판소리,판소리,춤,재담을 바탕으로 '판줄'의 원형을 복원한 인간문화재 김대균,관직과 토지를 독점한 양반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면서 천민들을 억압과 수탈을 일삼았다.조선 최고의 법궁인 경복궁을 통해 조선 역사의 빛과 그늘을 살필 수가 있었다.1995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선총독부는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난 경복궁 복원사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만들고 파괴되고 재건되고 홀대받았던 경복궁은 뒤늦게나마 복원 중에 있어 다행이다.본래의 기능과 모습은 어렵겠지만 조선의 국체를 다시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법궁이 경복궁이 아니던가.

 

 이 도서에 소개된 내용을 모두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다만 수미일관 느끼는 점은 역사교양서로써 잘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게다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해당 이야기와 관련한 도서를 소개하고 있어 역사학자,연구자,역사 애호가에겐 둘도 없는 참고서가 되어 줄 것이다.또한 『승정원 일기』는 아직도 번역 중에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인력과 예산 부족에 있다고 한다.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완역(完譯)까지는 약 50여 년이 소요될 예상이라고 하니 내 생전에는 승정원 일기 완역 소식은 들을 수가 없을 것 같다.조선 시대의 비화를 주로 다룬 역사e는 과거 역사의 정체성과 인과관계를 가늠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조상들의 숨결이 고이 흰보자기에 간직되어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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