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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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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미야베 미야키라는 일본의 여성 작가의 작품인 <눈의 아이>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결과, 그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었다. <눈의 아이>는 최근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으로 간만에 나온 현대물이라고 한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빨간 장화와 빨간 타탄체크 머플러, 그리고 대지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밭은 아주 선명한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200쪽이 살짝 넘는 분량의 이 책은 총 다섯가지의 단편이 담겨 있다. 제목과 표지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눈의 아이>, 그리고 <장난감>, <지요코>, <돌베개>, <성흔>이 나머지 이야기들이다.

 

  우선적으로 나를 맞이해준 것은 바로 <눈의 아이>, 책 표지의 느낌을 참고 삼아 읽어내려간 이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하고 만나기로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건조한 여자 주인공의 말투와 함께, 의문의 죽음을 당한 친구에 대한 회상이 절묘하게 겹쳐지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일단 반전이 있기는 했다. 비록 그 반전이 영화 식스센스 이후 최고로 흔한 반전이 되어버린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 내린 배경과 함께, 빨간 파카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빨간 고무 장화를 신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자 아이의 시신이 그려진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두번째 이야기인 <장난감>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사건의 발단은 상가 근처에 퍼진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의 가운데에는 그녀의 작은 할아버지가 있다. 비록 한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남보다도 못한 할아버지이긴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사건의 제3자도 아니고, 주요인물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서 객관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주관적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는, 점점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 어린 아이가 너무 일찍 겪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차갑고, 잔인하다.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찾아 볼 수 있는 소재를 어린아이의 솔직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이야기의 비극성은 한껏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현대 사회의 비정함과 냉정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지요코>, 인형탈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시험삼아 꾀죄죄하고 허름한 인형탈을 머리에 쓰게 되고, 그 인형탈이 보통 인형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인형탈을 통해 그녀는 놀랍게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가득한 동화같은 세상을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에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었다. <지요코>는 이 책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몇일 전에 길거리에서 인형탈을 쓰고 홍보를 하는 사람들을 봤었는데, 보자마자 딱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말이다. 처음에 이 이야기의 제목을 보고 솔직히 공포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요코. 뭔가 귀신 이름으로 딱이지 않나? 사다코나 하나코 같은 이름의 귀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인 토끼 인형의 이름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어렸을 때 너무 좋아해서 이름까지 붙여준 토끼 인형 말이다. 

 

  네번째 이야기 <돌베게>는 동네에서 벌어진 여학생 살인 사건을 두고, 한 아버지와 딸이 그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 속의 돌베게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금품을 갈취하던 한 부부의 파국은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아주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에 비해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의 진행은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사실 처음의 부녀가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조금 더 눈여겨 봤던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버지가 바로 그 부분인데, 그는 비록 딸과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세대 차이라는 벽에 부딪쳐 딸과 공감도 형성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사달라는 딸의 부탁도 거절하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이지만, 속으로는 딸은 무척이나 생각하고, 위해준다. 정의감에 불타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침착하면서도 관심 없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딸의 부탁을 마지못해 승낙하고, 딸의 사건 조사에 결국 일조해 그 사건에 대해 딸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딸의 글 솜씨에 뿌듯해하기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지막에 딸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모습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참 의미가 남다른 만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이야기인 <성흔>은 처음에는 가장 흥미진진했던 내용이었다. 조사사무소에 방문한 반백머리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기 전부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말한 아들이 겪었던 과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의 아들은 14살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애인도 역시 죽였다. 바로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14살의 소년이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했던 과거의 상처는 시간지 조금씩 지나면서 겨우 아문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방향이 약간 달라지는데, 나는 너무나 급격한 이러한 변화에 솔직히 정신을 못차렸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검은 메시아아 검은 어린양>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시작으로 메시아나 예언자 따위의 단어가 사이비 종교와 같은 양상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철퇴의 유다니 유다스 마카베우스니 하는 결말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남았던 기대를 싹 다 걷어가 버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러한 부정적인 결말이라니.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가 따로 나눠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아예 나눠져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묘하게 합쳐 놓으니 그야말로 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총 다섯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단편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성흔>을 제외하면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가 개인적인 시각을 덧붙여 보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완결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내용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충분히 진실성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볍고 흔한 소재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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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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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사실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이 내게 온 이상 그의 저서보다도 더 유명한 이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가장 권위 있는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책의 표지에 적힌 작가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내 인생에 등장한 이 뛰어난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책을 몇장 넘기지 않아서 나는 조금씩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일기의 형식을 통해 그가 제시한 인물인 시모네 시모니니가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투로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그 방식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인물과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불쾌한 인물이다. 유대인, 예수회, 프리메이슨, 심지어 여자까지. 물론 그가 예외적으로 증오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다섯가지 감각,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이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이 불쾌한 인물에게 예외적인 특권을 부여한 것은 바로 미각이었다. 그렇다면 왜 움베르토 에코는 미각을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의 중심에 서있는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시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봐야 보자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곁이 아닌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모네 시모니니는 그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조금씩 프리메이슨이나 유대인 등에 관한 여러가지 편견들이 그의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 잡게 된다. 간사한 공증인 레바우덴고 사무실에서 문서 위조 기술을 배우고, 가리발디 장군의 진영에 첩자로 들어가고, 파리로 망명해 나폴레옹 3세의 독재정치에 맞서던 모리스 졸리를 감시하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알퐁스 투스넬을 만나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만나고,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시모네 시모니니를 점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아무렇지 않게 모함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사람을 살해하는 혐오스러운 인물로 완성시켰다. 마치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다란 눈덩이가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충격적 위조와 날조가 지상 최대의 음모의 뼈대를 구성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음모론이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이러한 그의 삶 전반에 녹아있는 위조와 날조를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한 음모를 탄생시킨다. 바로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근거 자료로 활용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 그것이다. 시모네 시모니니가 대학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뒤마의 소설 '조세프 발사모'에 나오는 천동산 회의 장면을 유대인 랍비들의 프라하 묘지 회의 장면으로 바꾸고, 외젠 쉬의 '민중의 신비'에 나오는 예수회 신부의 글을 랍비의 연설로 변형시켜 유대인들이 세계 지배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음모을 퍼트린 것이다. 솔직히 시메노 시모니니가 바꾼 부분들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음모로 재생산되고, 그 음모가 곧 증오 그 자체로 변하고, 그 증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확대된다.

 

  시모네 시모니니가 유럽의 역사 한복판에서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틀어 도달한 이 파국은 사실 현대와 비교해보자면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현대에도 무수한 소문들이 또 다른 음모론들을 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얼마든지 새로운 파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 자체까지는 변하지 않는가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과 귀를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확실히 보이고, 확실히 들릴 경우에 말이다. 그럴 듯하면 그럴 듯할수록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데, 사실 그 그럴듯한 것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 셈이다. 현재 시중에 출판된 무수히 많은 소설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신들은 분명히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처럼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작가가 허구가 아닌 실제 이야기로 말만 바꾸면 충분히 그것이 사실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려낸 이 시모네 시모니니가 19세기 유럽을 넘나들며 이탈리아 통일정잰,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드레퓌스 사건, 1871년 파리코뮌 등 각종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방대한 범위를 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 눈에 익은 것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작가가 그려낸 시모네 시모니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실존 인물이라고 하니 더욱 이 소설을 더욱 설득력 있고,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이 또한 거짓이다. 마치 시모네 시모니니가 여러 역사적인 문헌들을 교묘하게 뜯어고쳤듯이 말이다.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과 허구의 중간에서 기묘하게 장난을 쳤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만이 아실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움베르토 에코가 시모네 시모니니가 유일하게 증오하지 않는 것이 맛있는 음식인지, 왜 그 다섯가지 감각 중에서 미각인지, 곰곰이 생각해본 결론은 이렇다.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이라는 감각들은 피상적이라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 눈에 보이는 물체, 코로 맡아지는 냄새,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 반대로 미각은 본질적이다. 유일하게 미각은 직접 혀로 맛을 보고 삼킨다. 어쩌면 가장 사실만을 담겨서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느껴질 수 있게 해주는 감각인 것이다. 그래서 시모네 시모니니는 자신이 증오했던 그 모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맡아지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왜곡할 수 있던 모든 것을 증오했던 것이다. 자신조차도 자신이 만든 그 음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제외한 모든 것은 증오한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날조와 위조 속에서 살아왔던 시모네 시모니니가 이 소설 속에서 자신 삶을 일기에 솔직하게 담아내다니. 이것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왜 나는 그가 이번에는 날조도 위조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는걸까? 역시 이것 또한 결국 음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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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의 4월 주목 신간 소설 추천 페이퍼

 

  4월, 이제 진짜로 봄이 다가왔다. 정말 꽃구경 가기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길에는 이제 연분홍색의 벗꽃과 샛노란 개나리들이 쉽게 눈에 띈다. 여기에 싱그럽게 돋아난 새싹들의 푸릇함이 더해져 사람들의 마음을 덩달아 기분좋게 만든다. 이렇게 봄의 경치를 구경하기도 바쁜데 책이 눈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물론 자연의 역동적임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겠지만,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로 그에 걸맞은 생동적임을 보여줘야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는 독자에게 생동적임을 선사할 수 있는 책들로 구성해봤다. 아래 소설 속에서 특히 침대, 선셋 파크, 구원은 각각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이 각자에게 닥친 갈등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성장만큼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것은 없다. 단순히 육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성장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도 담겨져 있다. 비록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독자들에게 내적으로 큰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침대 |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 | 민음사 | Bed

 

  한 남자의 평범하지 않은 성장 과정을 그린 소설 <침대>는 총 7,484일 동안 침에 누워 있던 뚱뚱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상실, 가족과 삶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맬컴. 어른이 되는 것이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평범해지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 다음 날 침대로 올라가 20년 동안 내려오지 않는다.

  화려한 색의 줄무늬 파자마가 담긴 책의 표지가 참 인상적이다. 미리보기를 통해 책의 첫 장을 가볍게 읽어본 결과 그 독특한 시각으로 쓰여진 묘사 방식이 참 흥미로웠다. 또한 개성적인 인물을 등장시킴과 동시에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면서 과연 어떻게 가족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담아낼 지 기대가 된다.

선셋 파크 | 폴 오스터 | 연린책들 | Sunset Park

 

  스물여덟 살 청년 마일스 헬러는 의붓형의 죽음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갈 곳 없는 그를 받아 준 곳은 바로 선셋 파크였다. 주인공 마일스와 마찬가지로 선셋 파크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모여있다. 이제 이들은 선셋 파크에서 함께 살며 각자의 방식으로 출구를 찾으려 노력한다.

  상실로 인해 좌절하고, 고통을 받았던 인물들이 선셋 파크에 모여들면서 과연 각자의 삶에 어떤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고,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소설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선셋 파크>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삶을 기반한 작품으로 선셋 파크라는 중간 지대를 설정해 경제적 이유든 정신적 이유든 멈춰져버린 현재에서 과거를 다시 돌아봄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게 된다.

구원 | 자크 스트라우스 | 민음사 | The Dubious Salvation Of Jack V.

 

  2012년 아프리카 지역 영연방 문학작품 중 가장 뛰어난 데뷔작으로 평가받으며 커먼웰스 상을 수상한 작품. 인종 격리 정책 등의 옛 질서와 새로운 질서가 교차하던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으로, 열한 살 백인 소년인 잭 필제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세상을 점차 알아 가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네덜란드계 후손인 아프리카너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난꾸러기 소년 잭 필제. 언제나 잭을 지지해 주는 흑인 가정부 수지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수지의 친아들 퍼시가 함께 살게 되면서 잭의 마음에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나 수영장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퍼시에게 들키면서 불안감까지 더해진다. 결국 잭은 퍼시에게 작은 복수를 감행하기로 하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주말 | 베른하르트 슐링크 | 시공사 | Das Wochenende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1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 <주말>은 작가가 판사직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던 2008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젊은 시절 급진적 혁명을 함께한 친구들이 20년 만에 모여 주말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법대 교수이자 판사였던 작가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법학자로서의 엄격함과 냉정함 대신,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노작가로서의 관용과 이해를 보여주며 세상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젊은 시절 함께 혁명을 꿈꾸던 친구들은 이제 사업가, 변호사, 저널리스트, 교사, 사제 등이 되어 각자의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20년만에 다시 만난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별장을 찾아왔지만 어쩐지 이 자리가 편치 않다. 친구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이들 간의 날 선 대화가 오가는 사이 서로의 속마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배신당한 유언들 | 밀란 쿤데라 | 민음사 | Les testaments trahis 

 

  오늘날 우리들의 자의와 몰이해에 의해 변형되고 뒤틀리는, 즉 '배신당한 유언들'을 통해 만나 보는 예술 작품의 세계, 그리고 쿤데라의 아주 특별한 사유. 쿤데라는 <배신당한 유언들>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여길 수 없을 때, 그의 현존은 바로 '내가 잘 알고 충실하게 지킬 그의 의사를 통해서', 즉 그의 '유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최고의 작가 밀란 쿤데라. 그의 대표작은 단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과 다르게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그의 문학적 깊이는 독자들을 충분히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배신당한 유언들>은 제목 그대로 작가, 작곡가, 음악가, 번역가, 지휘자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녹아든 유언들이 담겨있다고 한다. 과연 밀란 쿤데라가 이러한 유언들을 어떤 방식으로 좇았고,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의도 끝에 진정 배신당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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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의 3월 주목 신간 소설 추천 페이퍼

 

  3월이 되니까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예전보다 햇살도 더욱 따사롭고, 공기는 더욱 포근해진 것 같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봄기운이 짙어지면, 마음은 더욱 느슨해진다. 그렇다. 이 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춘곤증에 취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 사실 이럴 때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월달을 맞이하여 내가 추천하는 책들은 오히려 춘곤증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번 페이퍼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들로만 뽑아서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중해 한가운데에서 마요르까 섬으로 향하는 과정이 광대하게 펼쳐지는 밀수꾼들의 이야기, 한 소년이 황량한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 우주개척 시대 속에서 새로운 외계생명체와의 조우를 통해 '억만장자의 꿈이냐, 원주민의 삶이냐'에 대한 갈등을 담은 이야기,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은 피자배달부,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미션에 관한 이야기,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가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 각각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고, 너무 개성이 다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춘곤증을 이겨낼 수 있는 활력소를 얻었으면 한다.

 

 

밀수꾼들 | 발따사르 뽀르셀 | 책으로보는세상 | Los argonautas

 

  발따사르 뽀르셀이 쓴 최초의 본격 모험소설로 평가받는 <밀수꾼들>은 지중해에 관한 발따사르 뽀르셀의 소설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 무리의 밀수꾼 사내들이 ‘보따폭’ 호에 밀수품을 가득 싣고 에스파냐와 아프리카가 맞닿아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출발해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는 섬 마요르까를 향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이 담긴 이 소설은 그 속에는 지중해적인 특성과 특수한 상황에 처한 지중해 인간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현란하게 드러나 있다고 한다. 

  망망대해의 매혹적인 외로움, 선원들의 발가벗은 선상 생활, 온갖 위험 앞에 노출된 선원들의 불안과 본능적인 방어 심리, 회상을 통해 드러나는 선원들의 다양하고 독특한 과거의 삶, 지중해 고유의 풍광과 문화, 지중해의 삶, 생생한 삶이 담긴 '바다 이야기'이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 | 미카엘 엥스트룀 | 낭기열라 | Isdraken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려는 소년의 힘든 여정! 험한 현실에 처한 소년이 지옥을 지나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슬프고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작가는 간결한 문체로 소년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빠는 알코올중독자인 소년 미크. 사회복지국에서는 이를 알고 미크의 아빠를 치료 센터에 보내고 미크는 임시로 고모 집에 보낸다. 머나먼 북쪽, 춥고 외진 시골에 있는 고모집에 가게 된 미크는 그곳에서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경험하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복지국은 관계 법령에 따라 미크를 위탁 가정에 보내버리고 그곳에서 미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 | 존 스칼지 | 폴라북스 | Fuzzy Nation

 

  우주개척 시대, 대기업이 행성의 자연자원을 탐욕스럽게 채집하여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명체가 멸종되는 일이 생기자 개척행성의 자연자원과 생명체를 보호하는 법이 발족되었다. 자라투스트라 기업이 독점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자라23 행성에서 계약직 측량업자로 일하는 잭 할로웨이는 실수로 절벽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계약을 파기당할 처지가 되지만, 무너진 절벽에서 태양석을 발견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어느 날, 잭 할로웨이가 사는 집에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두 발로 걷는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고, 잭과 친해진다. 그러나 전 여자친구이자 외계생물학자인 이자벨이, 이들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잭은 큰 갈등에 빠진다. '사람'이 사는 행성에서는 기업이 개발 및 채굴을 할 수 없으므로 모든 인력이 철수해야 한다. 억만장자의 꿈이냐, 원주민의 삶이냐. 자라23 행성을 둘러싸고 첨예한 공방전이 시작된다.

1조 달러 | 안드레아스 에쉬바흐 | 페이퍼하우스 | Eine Billion Dollar

 

  <제로배럴>의 작가 안드레아스 에쉬바흐의 장편소설. 이탈리아계 미국인 청년 존 살바토레 폰타넬리는 내일의 희망이 없는 가난한 피자 배달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월세를 내지 못해 허덕이고 그나마 푼돈을 벌 수 있었던 피자 가게에서도 구박만 받다가 해고되어 좌절감에 빠진 바로 그 날 이탈리아에서 온 네 명의 변호사들이 그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 초대한다.
  최고급 양복을 빼 입은 이 신사들은 살아갈 의욕조차 상실한 피자 배달부 청년에게 먼 옛날의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 온 거액의 '재산'이 상속되었다고 알려준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먼 옛날의 조상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라는 위대한 소명(mission)을 맡겼다고 하는데…

포르투나 | 마이클 에니스 | 북폴리오 | The Malice Of Fortune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시대. 많은 이들이 르네상스에 특히 매료되는 이유 중 하나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두 거물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가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한다면?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는 상상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이 질문을 한 편의 소설로 풀어냈다. 
  1502년 이탈리아. 토막 살해된 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주머니에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살해당한 아들이 생전에 지니던 부적이 들어 있다. 교황은 아들의 연인이었던 고급 매춘부 다미아타를 잡아들여, 그녀의 아들을 볼모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쫓게 한다.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비밀에 쌓인 인물로 그리고 매혹적인 여성 다미아타가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로 등장하여 극의 긴장을 높인다. 탄탄한 역사적 고증과 숨 막히게 펼쳐지는 긴박한 사건 전개로 평단과 독자로부터 수준 높은 역사스릴러라는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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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읽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사실 책 제목부터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기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밝고 환한 느낌이다. 기적은 불행이나 슬픔을 불러들이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희망과 가깝다고 할 것이다. 아기자기한 책 표지에 나미야 잡화점은 그야말로 동화같은 분위기가 물씬 감돈다. 별이 떠 있는 깊은 밤에 우뚝 서있는 나노미야 잡화점, 하지만 표지가 전부는 아니다. 그 속에는 세 명의 도둑들이 있고, 편지가 있으며, 우유상자, 그리고 희망, 꿈, 미래, 빛이 있다.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미야 잡화점을 우연하게 찾아온 세 사람, 아쓰야, 고헤이, 쇼타는 도둑질을 하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적당한 폐가에 몸을 숨기기로 한다. 그들이 생각한 그 폐가가 바로 나미야 잡화점이다. 그렇다. 이 세 도둑들에게 나미야 잡화점은 그저 은신처이자, 폐가였던 것이다. 허름하고, 먼지 냄새가 풍기고, 먼지가 뿌옆게 쌓인, 가게 이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주 오래된 집. 그런데 그 오랜된 집에 편지가 도착한다. 그것도 아주 새 봉투인 편지였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달 토끼다. 세 사람은 이 기묘한 편지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편지를 뜯어 읽어 보기로 한다. 고민이 들어있는 편지에 순간적으로 이 세 사람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서랍에서 발견한 주간지에서 드디어 이 고민 편지가 왜 이 곳으로 도착했는지 알게된다.

 

  주간지에는 고민을 상담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에서는 혼자서는 해결 못할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서 밤중에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에 넣으면 그다음 날에는 가게 주인이 집 뒤편의 우유상자에 답장을 넣어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때부터 세 사람은 어떻게해야할지 고민에 빠진다. 이 고민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해줘야 하나? 꽤나 놀랍게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범죄를 저지른 그들은 결국 달 토끼에게 답장을 보내준다. 그리고 주간지에 적힌대로 답장을 가게 뒤편의 우유상자에 넣어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도망자 신세였던 그들이 혹여나 지문이 편지에 묻었을까봐 확인하려는 사이에 우유상자에 있던 편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나미야 잡화점에 또 다른 편지가 도착한다. 바로 달 토끼의 답장이었다.

 

  이렇게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기묘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세 친구들은 꽤나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도둑질을 하고 잡화점에 몰래 숨어들어온 주제에 나미야 잡화점으로 찾아온 편지들에 서툴지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장을 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 세 도둑들은 또 다른 사실을 알게된다. 이 편지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에는 과거의 서로 다른 다섯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편지가 교차하면서 옴니버스식으로 꾸며진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세 도둑들이 있다. 이 세 도둑들이 나미야 잡화점에 찾아온 각각의 편지들에 답장을 해주는 과정 속에서 유쾌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세 도둑들의 그간 행실이 문제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낸 각각의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숙하고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조언에 감사하다고, 큰 힘이 됐다는 답장에, 세 도둑들 또한 조금씩 변화한다. 선심이나 쓰듯이 툭 던진 짧은 편지 하나가 한 사람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그 희망의 울림에 세 도둑들도 조금씩 변화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순환되면서 이 책속의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세 도둑들의 편지는 더 많은 기적을 불러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둑들에게 온 나미야 유지의 답장은 아직도 갈 곳을 정해놓지 못하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났던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GOD의 촛불 하나, 이 노래에는 아래와 같은 가사가 있다. 아마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는 메시지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 GOD의 촛불하나 동영상을 첨부하고 싶지만, 알라딘 서재에서 유튜브 소스 코드가 안먹히는 관계로 링크로 대신하도록 하겠다. 오래된 노래지만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 http://www.youtube.com/watch?v=w_MgskeG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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