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으로 볼 때 핼리팩스의 방문은 우울한 한 해를 우울하게 마무리한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 히틀러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들은 점점 부정적인 결과만 낳았다. 그렇지만 평범한 여행자 대다수는 그 수는 조금 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즐거워하며 독일을 돌아다녔다. 많은 여행자들은,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야가 협소하고 순진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생활 철학은 이들을 보낸 여행사의 사업 철학처럼 단순했다. 그것은 늘 사태의 밝은 면만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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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언니인 데보라 미트포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낸시 미트포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볼셰비키와 나치 사이에는 핀 하나 꽂아 넣을 간격이 없다고 늘 말해왔어. 단 나치가 더 잘 조직이 되어 있으므로 더 위험스럽다는 점만 제외하고."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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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태우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사람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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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게 적대적인 사람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믿음"에 매혹되었다. "그것은 힘차고 흥분되고 생생했다. 잘난 체하지를 않았다. 사회적 장벽들을 허물었고 화려한 구경거리와 자극을 제공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새로운 복음이었다. 트위디는 이렇게 썼다. "게다가 경찰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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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을 기한다는 것 또한 하나의 친절이므로, 그는 언제나 정확했다.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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