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지우.송호창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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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넛지(Nudge)」의 공저자인 하버드대 선스타인 교수의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를 읽었다. 「넛지」와 겹치는 내용이 많고, 「넛지」처럼 다소 지루한 전개가 독해의 맛을 반감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제목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다. 굳이 구매하고 싶지 않다면, 서론과 결론만 읽어도 좋다. 다음은 결론의 일부이다. 




“동조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반사회적이며 심지어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면에서는 이는 사실이다. 종종 동조는 사회의 연대를 강화시키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연대를 위태롭게 하거나 어느 정도 집단의 평화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적어도 한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동조와 이견의 역할을 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많은 경우,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설령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의익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이 생각났다.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데이비드 허친스 「레밍 딜레마」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 최근 다시 이 책을 읽었는데 10년 전에 읽고 서평까지 썼다는 걸 몰랐다ㅠ.ㅠ


나랑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은 불편하다. 그래서 나랑 같은 사람과 이야기한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 왜냐면 서로 위안, 위로, 공감이 될 수는 있어도 자극, 교환, 발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론 공멸한다. 마치 획일적으로 재배, 사육되는 농축수산물이 질병에 취약하듯...

 

<밑줄>

21세기 초반 많은 미국 회사들이 부정부패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엔론사의 파산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월드컴, 아델피, 타이코와 같은 회사들 역시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기업의 실패를 가까이서 관찰해 온 많은 사람들은 그 실패에 대한 처방으로, 기업 조직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기보다는 진지한 토론을 장려하고 회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위 간부들에게 거리낌 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집단을 기업 내에 두라고 충고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의 중역들이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때, 직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용히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이득을 보는 주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증거자료들은 이견 제시를 하나의 의무로 간주하고 어떤 주제라도 토론할 수 있는상당히 논쟁적인 이사회를 가진 기업이 실적이 좋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건강한 기업 이사회라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가진 획일적 견해에 대한 도전을 장려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구와 동료들의 화를 돋우거나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으려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효율성을 해치고, 자신의 평판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한다.

 

독재 국가는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한다. 미국을 포함한 자유로운 사회에서조차 이견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충성심이 없거나 심지어는 사회의 적으로 묘사된다. 자유로운 국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허용하지만 사회적 압력은 동조를 요구하고 때때로 이런 압력은 매우 강력하다.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희생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견해를 제공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처신한다. 사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지극히 낙관적이다. 안데르센의 이야기에서는 어린아이가 외친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실제 세계에는, 광범위하게 퍼진 기만은 그렇게 쉽게 물리칠 수 없다. 사실에 관한 잘못된 판단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가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의, 억압, 집단 폭력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거의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194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교육위원회는 공립사립학교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제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맹세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고 맹세를 하지 않는 한 재입학을 불허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얼마 안 돼 대법원의 심판을 받았다. 연방대법원은 특정 신념을 말 또는 행동으로 고백하도록 시민에게 강제할 수 없다며 이 조처가 연방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다수는 동조를 낳고, 소수는 혁신을 낳는다. 이 점에서 한 사람의 이견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사회적 영향이 개인의 행동과 신념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실수와 병리 현상을 막을 수 있는 핵심적인 보호 수단이다.

 

집단토론의 결과는 토론에 앞서 각 구성원들이 가진 견해의 평균보다 더 극단적인 견해를 취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집단 편향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집단토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집단편향성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집단 구성원들을 그들이 찬성하지 않는 논점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이 아닌 법에 의한 통치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법의 지배의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모호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통치는 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법을 운용하는 제도들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으며, 법은 이들의 해석에 의존한다. 모두 같은 법복을 입고 있지만, 누가, 어느 정당이 임명한 대법관인가에 따라 판결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다.

 

조직이나 국가는 이견을 환영하고 개방성을 응원할 때 가장 번영할 확률이 높다. 잘 기능하는 사회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폭넓고 다양한 관점들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선진 사회의 구성원들은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폐쇄적인 집단 혹은 같은 의견만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집단 내에 머무르지 않는다.

 

헌법에 규정된 많은 권리 및 제도는 동조, 쏠림 현상, 그리고 집단 편향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의 위험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 가장 간단한 예는 표현의 자유로, 표현의 자유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쏠림 현상이나 정당화되지 않은 극단주의를 견제한다.

 

동조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반사회적이며 심지어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종종 동조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연대를 위태롭게 하거나 어느 정도 집단의 평화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적어도 한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동조와 이견의 역할을 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많은 경우,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설령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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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 생존율 95퍼센트 기적의 암 극복 체험기
나카야마 다케시 지음, 김진경 옮김 / 열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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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암의 앎'을 위해 이런저런 글을 읽고 있습니다.

암(癌)은 물건(品)을 산(山)처럼 쌓아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병(病)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일으킨 병이란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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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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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순전 고의로 하는 줄 착각하지만, 실수 또는 무의식 중에 생기는 자기정당화로 인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달리 이야기 하는 것은 그 중 한 사람이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나 다들 자기 시각과 처지에 맞게 사건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선악을 동기로 나누자면, 고의로 한 거짓말보다는 무의식에 의해 생기는 거짓말이 덜 나쁘다. 그러나 결과로 나누자면, 그 위험도에서 후자가 더 나쁘다. 자기도 속는 거짓말이니 남들인들 못 속이겠는가. 더구나 잘못을 모르고 반복적으로 더 심하게 거짓말을 할테니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생기겠는가.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자기정당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정당화가 항상 나쁜 건만은 아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데, 그 먼지 때문에 지나치게 괴로워한다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지 정도는 적절하게 눈감을 수 있는 자기정당화는 필수적이다. 물론 털어서 나는 먼지인지 안 털어도 풀풀 풍기는 먼지인지는 구분해야 하지만.


<참고서적 : 엘리엇 애런슨 공저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자기위주 왜곡이 작용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잊거나 왜곡하고, 그 결과 차츰 자신의 거짓말을 믿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알면서도 점차 자신만의 허물이 아니었다고 생각

자기정당화에도 유익한 점과 해로운 점이 있다. 그 자체로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기정당화가 있기에 발 뻗고 편히 잘 수가 있다. 만약 자기정당화가 없다면 심한 번민에 시달릴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고 지나온 길을 후회하느라고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결정의 결과를 두고 괴로워할 것이다.

복제에 관한 데이터를 조작했음을 시인한 한국의 과학자 황우석은 과학계의 랜디 커닝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바 우리도 자신의 역사를 쓸 때 정복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신이 한 것, 혹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좋게 평가되고 생각되게 가공하는 것이다. 잘못이 있었다면 그 과오를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고 기억하게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죄 없는 구경꾼 역할을 했을 뿐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두 사람이 전혀 다른 기억을 이야기할 때, 관찰자들은 대개 그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듣는 사람들을 속이거나 교묘히 조종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윤색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거의 항상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도, 의도적으로 속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자기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바 우리도 자신의 역사를 쓸 때 정복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신이 한 것, 혹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좋게 평가되고 생각되게 가공하는 것이다. 잘못이 있었다면 그 과오를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고 기억하게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죄 없는 구경꾼 역할을 했을 뿐이다.

대학생활 1년 만에 우울증가 폭식증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요법을 받기 시작한 홀리 라모나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심리사는 그녀에게 흔한 장애는 대개 아동기에 성학대를 겪은 증상이라고 말했지만, 홀리는 그런 일은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심리사의 다그침 때문에, 그리고 다음에는 아미탈(Amytal, 최면제)을 처방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홀리는 5세에서 16세 사이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복적으로 강간당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는 개하고도 섹스를 하게 했다고 했다. 격분한 홀리의 아버지는 두 치료자를 모두 부정 치료 혐의로 고소했다. ‘어린 시절 딸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잘못된 기억을 심어주고 강화했다’는 이유였다. 배심원은 그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의 결백을 인정하고 심리사와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재판으로 부조화에 빠진 홀리는 해소책으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평결을 받아들여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비난으로 분열된 가족을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평결을 정의의 왜곡으로 규정하고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다는 확신을 더욱 강화하여 다시 기억 회복 요법에 매진하는 것이다. 홀리라모나는 평결을 단호히 거부했음은 물론 심리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자신의 결정을 더욱 분명히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녀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어린 시절의 성학대를 당한 기억을 되살리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범죄에 대해 처음 들을 때 많은 수사관들은 일반인들과 똑같이 반응한다. 사건 발생 과정을 충동적으로 판단한 후 결론에 증거를 짜 맞추며, 결론에 배치되는 증거나 의미를 무시하는 것이다.

심문자는 처음부터 편향되어 있다. 인터뷰가 한 사람으로부터 전반적인 정보를 얻도록 설계된 대화라고 한다면 심문은 피의자에게 유죄를 인정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심문자들은 파의자의 부정은 무시하고, ‘거짓말 하지 마라. 우리는 당신이 범인인 것을 알고 있다.’라는 식의 태도록 취하도록 교육받는다.

지금까지 번복하는데 성공한 유죄 판결 중 경찰이 진범을 찾으려 노력한 예는 단 1건도 없다. 경찰과 검찰들은 사건의 기록을 꼭꼭 덮어버릴 뿐이다. 마치 자신이 저지를 과오에 대한 말없는 비난을 망각하려는 듯이.

경찰관은 어떤 피의자가 범인이라고 판단하고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검사는 모든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한 사건을, 특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충동적으로 기소하고는 나중에 믿었던 증거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기소를 취하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한 사건이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사법 관리들은 피고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어떠한 후속 증거도 거부할 동기를 갖는다.

영국의 신경학자들은 ‘받은 만큼 되갚기(tit-for-tat)’ 실험을 하면서 피험자들에게 두사람씩 짝을 짓게 했다. 각각의 쌍에서 한 사람에게 기계장치로 검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한 후 방금 자신이 느낀 것과 똑같은 압력을 상대의 손가락에 가하라고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동일한 힘을 가할 수 없었다. 자신이 받은 만큼의 압력을 가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상당히 더 큰 압력을 가했다. 양쪽 모두 당한 만큼 되갚는 것이라고 행동을 정당화한다.

가해자만 사과하고 속죄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사과와 속죄는 정직하게, 또는 피해자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해자만 놓아주고 용서하려 한다면, 가해자는 변화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을지 모르고, 따라서 계속 못되고 냉담하게 행동할지 모른다. 갈등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은 양쪽 모두 자신의 자기정당화를 떨쳐버리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에 합의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기정당화를 계속하며 피라미드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한사코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 이라크 침략은 잘못이 아니며, 미국이 이기고 있으며, 미국은 조급히 굴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민투표로 간주한 2006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 양원에서 패배했다. 국민들은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조지 부시도 이라크에서의 행동 방침을 바꾸겠지. 마침내 체면을 세울 방도가 생기지 않았는가. 이라크 연구단이나 장군들의 권유, 나아가 국민의 뜻을 따랐다고 말하고 이라크에서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자기정당화의 심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부시가 정반대로 행동하리라고 예측했다. 자신이 일으킨 재앙에 대한 “해결책”으로 똑같은 행동을 더욱 강화하는 길을 택하리라. 피라미드에 더욱더 멀리 미끄러져 내리며 갈수록 더 깊이 자기기만의 함정에 빠져들 테니 여러 대안이 보이지 않으리라. 조지부시가 국민에게 연설을 했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사용한 몇 가지 전술상의 과오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한 최초의 결정은 대테러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신념만은 굳건히 고수했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한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가? 더 많은 병력과 더 많은 돈이었다. 그에게는, 다른 어떤 방법도 고려할 가치가 없었다.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음을 자인하는 꼴이 될 텐데 왜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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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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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그러나 시위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좋지 않다. 

그 까닭은 권력과 언론 탓이지만 

늘 그 탓만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위 방법 

다양한 시위 문화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ㅋㅋ

참고로 이 책 마지막에 저자 연보가 있다.

이걸 읽어보면 저자가 어릴 때부터 사고뭉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 반성해보자.

나는 일탈한 적이 있었는지.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선택하라고 준 파란약과 빨간약 가운데 나는 무슨 약만 먹고 살았는지

<밑줄 쫙>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 -> 세상이 나아진다 -> 떡고물을 얻어먹는다는 건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은 말이지. 이렇게 하면 우수한 노예가 될 뿐이야. 거짓부렁! 뻥이야! 그만두는 게 좋다고.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나중에는 새 발의 피 같은 돈 부스러기나 얻어 쓸 수 있을 뿐이라니까. 그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은 한다 -> 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 몸부림친다 ->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는 생각을 해봐.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아냐? 이거야 말로 얼마나 인간답고 즐거우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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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 0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나 2010-04-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민, 승민이 너구나. 오랜만이다. 메일주소로 메일 보냈는데 답변이 없네.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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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책만 읽는다고 해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을 뿐더러 읽은 책조차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차라리 책을 안 읽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러나 죽는 날까지 밥만 먹는다고 해도 모든 밥을 다 먹을 수 없고 먹은 밥조차 모두 똥으로 나왔다고 해서 차라리 밥을 안 먹는 것이 밥을 먹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은 책읽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책읽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읽으라고 충고하는 책이다.

시간을 내서 읽을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만큼은 돈 주고 사 놓을 만하다.

<밑줄>

학교에서 우리의 학생들은 책을 읽는 법, 즉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배우지만 묘하게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의사를 표명하는 법은 그들의 학습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어떤 책에 대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가정이 한 번도 의문시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은 어떤 시험에서 알지못하는 어떤 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하기 위한 어떤 방도도 찾아낼 수 없을 때 혼란에 빠진다고 해서 어찌 놀랄 수 있겠는가?

그런 혼란은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교육이 충분히 수행하지 못해 책을 꾸며낼권리가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텍스트에 대한 존중과 수정 불가능의 금기에 마비당하는데다 텍스트를 암송하거나 그것이 담고 있는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속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내적 일탈 능력을 상실하고 상상력이 유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을 스스로 금해버린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통찰력 있게 말할 줄 안다는 것은 책들의 세계를 훨씬 웃도는 가치가 있다. 많은 작가들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교양 전체는 담론과 그 대상 간의 연관을 끊고 자기 얘기를 하는 능력을 보이는 이들에게 열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본질적인 것, 즉 창조의 세계를 그들에게 열어주는 것이다. 학생에게 창작력, 다시 말해 자기 창작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교육의 피교육자들이 작품들에 대해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 그들 자신이 작가나 예술가가 되도록 도와주는 방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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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식 2010-04-14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갑습니다. 책을 찾다가 이름을 보고 반가와서 찾아왔습니다.
이런데서도 만나게 되는군요.

신나 2010-04-1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안녕하세요. 여기서도 뵙게 되니 묘한 인연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