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과학으로 읽는 지구 설명서
김추령 지음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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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는 진부한 소재이다. 심각한 문제로 늘 화제가 되지만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먼 미래의 일에 불과하다는 안일함으로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재이다. 그런데 그 진부한 소재를 참신하게 느껴지게 하는 저자의 글힘이 대단하다.

 

예를 들어, 뉴올리언스 홍수 때 할머니를 잃은 소녀의 이야기나 중국 황사에 자식을 잃은 부모 이야기는 지구온난화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걸 절감하게 해 준다.

 

한번 손에 잡으면 하루이틀만에 다 읽게 되는 재미있는 과학책이다. 100년만의 가뭄이라는 요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할 때 가장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을 가장 먼저 만들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쯤 죽을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월, 화, 수, 목, 금요일에 뭔가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의 마지막 날까지 다른 생명들과 조화롭게 살 의무가 있습니다" - 200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인간은 핵분열을 밝혀낼 만큼 똑똑하다. 또 핵분열을 실제로 일으킬 만큼 멍청하다" - 어느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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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9
염상섭 지음, 김경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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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이 1920년대에 쓴 중편소설이다. 3.1만세 전에 시대상을 그린 작품인데, 원래 이름은 묘지였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 이인화는 처자식을 조선에 두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술집 여자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조선으로 돌아가 아내의 임종을 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 속에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나약한 시대인식을 엿볼 수 있다.

 

내지(일본)의 각 회사에서 연락해 가지고 요보(조선인을 비하하는 말)들을 붙들어 오는 것인데.... 즉 조선 쿨리(중국, 인도인 노예) 말씀요. 농촌 노동자를 빼내 오는 것이죠 (중략) 요보들은 말을 잘 듣고 쿨리만은 못해도 힘드는 일을 잘 하는데다가 삯전이 헐하니까 안성마춤이지...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야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주는 데야 제아무런 놈이기로 아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조선노동자를 꾀여 일본 공장이나 광산에 팔아먹는 일본상인의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인공 이인화는 마땅한 저항도 치열한 시대인식도 없다.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 다. (생략) 칠 년이나 가까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 경찰관 이외에는 나에게 그다지 민족관념을 굳게 의식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래 정치 문제에 흥미가 없는 나는 그런 문제로 머리를 썩여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도 가할 만큼 정신이 마비되었었다. (생략) 조선사람이란 무엇에 써먹을 인종인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한잔, 낮에도 한잔, 저녁에도 한잔, 있는 놈은 있어 한잔, 없는 놈은 없어 한잔이다. 그들이 이렇게 악착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노력이요, 그리 하자면 술잔밖에 다른 방도와 수단이 없다. 그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무덤으로 끌려간다고나 할까? 그러나 공동묘지로는 끌려가지 않겠다고 요새는 발버둥질을 치는 모양이다. 하여간 지금의 조선사람들에게서 술잔을 뺏는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에게 자살의 길을 교사하는 것일 것이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이것만이 그들의 인생관인지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에 부유한 일본 유학생인 이인화는 그저 조선인이란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은 사람에 불과하다. 조강지처의 죽음 앞에 큰집 형님이란 사람은 이인화에게 내년 봄에는 재혼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고, 이인화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조강지처 조국의 죽음은 오히려 그들의 바람이었다. 

 

이인화는 한 소설가의 필명이기도 하다. 친일파 박정희를 미화해서 논란이 된 작가인데 그가 왜 이인화를 필명으로 사용했는가를 알고 싶다면 만세전을 읽어 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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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왜 학교를 그만뒀냐고 물으시면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다들 고민하시고 있는 부분일 텐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사기를 좀 안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랑 다투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런 상황들이 아이들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랑 다툰 그분들이 제 학교 적 은사시거든요. 제 성정이 여려서 그런 날에는 잠이 잘 안 와요. ”

 

- 이계삼, <오늘의 교육> 20123~4월호

 

한권의 책 속에 있는 수천개(또는 수만개)의 문장 가운데 기억 속에 남는 건, 모르고 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해 주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과 같아 반가운 또는 위로가 되는 경우다.  이번 호 이계삼 샘의 문장은 후자에 속했다.

 

나도 솔직히 현 입시강점 시대에 교사나 사기꾼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사기꾼으로 살고 있느냐? 사기꾼이 덜 되려고 관리자랑 열심히 다투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분들이 은사님은 아니시기 때문이다. 처음 교직 진출했을 때 하마터면 천주교계 학교에 채용될 뻔했었다.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자인데 만약 그 학교에 채용되었다면 교장수녀님과 어찌 감히 다툴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은사님은 아닐지라도 동료교사들과 다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최근에도 어쩔 수 없이 동료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분들이 내 욕을 하는 것을 전해 듣고 화가 나기보다는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관리자의 큰 폭력에 순종하는 것 역시 폭력이 아니겠는가? 내 성정은 이계삼 샘보다 조금 덜 여려서 다행히 당일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은 괜찮아진다. , 성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워낙 건망증이 심해서 그럴 수도 있다. 타고난 기억상실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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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과학 -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
이윤석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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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않는 과학책이란 부제에 충실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있는 추천사 한 대목을 읽고 웃으면서 독서를 마쳤다. “그 누구보다 웃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친구, 그래서 살이 빠진 사람.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서 그를 살찌우게 하소서

 

남을 웃기는 개그맨으로서 웃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태도가 좋은 책을 만들어 낸 듯 싶다. 다만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증명해 낼 순 없었지만 과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고 자기의 현장 경험을 예로 들어 정리해낸 점이 탁월했다.

 

나도 평소 웃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같은 미소라도 선악과 미추가 느껴지는 까닭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문제를 풀었다. 좋은, 아름다운 미소는 부드러운 치아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송곳니가 드러나면 미소로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좋은 미소, 아름다운 미소를 위해 송곳니를 갈아 주는 성형술이 곧 판을 칠 것이다. ㅋㅋ

 

<인상 깊은 구절>

 

진지하고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아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남자들을 볼 수 있다. 여성들은 타고난 외모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성형, 마사지, 피부 관리, , 머리 모양, 화장술 등에 의존한다. 그러나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손쉬우며 경제적인 방법은 웃는 것이다. 좀 더 섹시하고 지적이고 잘생겨 보이고 싶은 (여성의 경우 예뻐 보이고 싶은) 사람은 일단 한번 웃어 보자.”

 

인류의 조상은 위험에 대한 경고와 안전에 대한 안도로 웃음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거짓 위험과 잘 짜인 안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웃음을 창조해 낸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복을 만들며 산다. 유머와 코미디는 웃음을 통해 느끼는 본능적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이다. 코미디언들은 웃음 유발 장치요, 방송국은 웃음 공장이다. 비유적으로도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처럼 유전자의 명령에 복종만 하기를 거부한 최초의 동물이다. 우리는 자연계를 배반한 위대한 혁명가이다.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물질을 뛰어넘은 경이로운 존재이다. 물질이지만 물질을 인식하는 위대한 철학자이다. 진화된 웃음을 물려받았지만 이제는 그 웃음을 창조하는 위대한 코미디언이다. 생존과 번식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추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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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동노 외 옮김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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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쪽이 넘는 분량도 부담스럽고 4만원이 넘는 값도 부담스럽지만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의무감으로 읽으라는 건 아니다. 은근히 웃긴 표현들이 많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인 브루스커밍스이다. 미국사람이지만 조국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양심적인 학자이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남한 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다만 일제강점기나 박정희독재정권기에 대해서도 일면 좋은 점도 있었다고 판단한 점은 의아했다. 그렇게 판단한 주된 근거는 한국인인 그의 아내의 논문이었는데, 그 아내분의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관료이자 재계 회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된다.

 

<인상적인 구절>

 

한국의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인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동아시아 나라를 분단했어야 한다면 그것은 (침략자인 독일처럼) 일본이었다. 그 대신 한국과 중국과 베트남이 모두 2차대전의 여파로 분단되었다.

 

서북청년단은 가장 악랄한 정치조직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은 그것을 극우 정치요인들을 지지하는 테러리스트단체라고 발표했다. 초기에는 그 회원들이 모두 소련과 한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실제적 혹은 가상적 불만을 품고 북한에서 도망온 사람들이었다” (생략) 제주도민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서북청년단의 준동이었다. 1947년 말에 미국 방첩대는 이 단체에게 그들이 제주도에서 자행하는 광범위한 테러행위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휘 아래 바로 이 청년들이 경찰과 경비대에 합류하여 제주도 유격대 진압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생략) 한국 서북부 출신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한 청년단체가 들어온 뒤 () 주민들과 본토 출신 주민들 사이의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생략) 서북청년단은 경찰 이상으로 경찰력을 행사했으며 그들의 잔인한 행동은 주민들의 심한 분노를 초래했다고 알려졌다.

 

625일 당일이나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이 한국인들이 한국 땅을 침략한문제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인정된 나라간의 국경을 침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전의 투쟁이 시작된 지점도 아니었다. 이데올로기적인 폭발성으로 충만한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하는 질문은 분명 잘못된 질문이다. 그것은 내전에 관한 질문이 아니며, 단지 동족상잔의 투쟁으로 직접 고통을 당한 세대들의 애간장을 쥐어짤 뿐이다. 미국인들은 남부가 썸터 요새(Fort Sumter)에서 먼저 발포했다는 사실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지만 노예제도와 남부의 연방 탈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아무도 누가 베트남 전쟁을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남북의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이 마침내 그랬듯이 내전은 혼자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지혜를 깨닫고 화해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하는 데 1세기 가량이 걸렸다. 그러므로 50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의 화해가 여전히 미결정 상태인 것은 놀라울 것이 없다.

 

이승만은 이병철한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과 같은 이전의 일본기업들을 두드러지게 유리한 구매가격으로 내어주었다. (생략) 삼성의 창립자인 이병철은 항상 자신을 일본신사로 여겼고 일본여성과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했다. 삼성(‘별 셋’)은 미쯔비시의 다이어몬드 셋을 응용한 것인데, 미쯔비시 역시 메르세데스의 로고를 본 뜬 것일 공산이 크다. 수많은 재벌 총수들과는 달리 이병철은 식민지시대에 첫출발을 했다. 지주가문 출신인 그는 1930년대 마산에서 정미소로 시작하였고 그후 대구에서 쌀로 빚은 술을 수출했다. 그의 사업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팽창하였는데, 그때 그는 자기 공장 부지내의 막사같은 건물에 사는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켰다. 항상 노조에 적대적이었던 이병철은 종종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삼성에 노조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승만 정권 동안 특매가로 일본인 공장들을 전략적으로 사들인 데 힘입어 가장 중요한 경공업회사가 되었다. 이 무렵 이병철은 한국 최고의 갑부였다. 그러나 중공업 추진정책 동안 삼성은 컴퓨터, 가정용 전자, 조선을 포함한 다른 많은 분야로 다각화하였다. 1994년 삼성은 정부로부터 거제도의 새 공장에서 자동차 제작을 시작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는데, 거제도는 우연찮게도 김영삼 대통령의 출생지였다. 1994<포천>지의 500대 기업 목록에서 삼성은 14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221위를 차지했다.

이를테면 일본의 한 은행이 12인치 흑백 텔레비전을 만드는 자금으로 당신에게 시세보다 낮은 금리로 1천만 달러를 빌려 주도록 내가 주선하고 은행에 대여금 상황을 보장한다. 나는우리의 자유무역지대의 한 부지를 당신에게 떼어주고, 당신 공장까지 이르는 도로를 건설해주고, 우대금리로 에너지와 전기를 공급하고, 당신이 건물을 짓도록 미국의 잉여 시멘트를 챙겨준다. 나는 시장과 기술과 유통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외국회사를 찾아서, 당신의 텔레비전을 미국의 어느 곳에서나 심지어 식료품가게에서도 팔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노동력을 정해진 가격(역시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을 보장하고 노동조합을 불법화하고 노동현장에서 위험스런 결사체들이 출현할 때에는 언제나 군대를 보내준다. 나는 당신이 몇 개의 기업과 경쟁해야 할지를 결정하며, 당신의 연간 생산목표액을 정해주고 (초과달성 시에 보너스를 주겠다는 약속과 아울러), 당신들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확실히 배려한다. (당신이 내 처남이다 뭐다 하는 사실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런 체계가 1960년대에는 간혈적으로 운용되었다면 1970년대에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운용되어 한국형 모델의 정수가 되었다.

 

14~16살의 어린 소녀들이 마루바닥에 꿇어앉아서 오전 8시에서 밤11시까지 하루 평균 15시간을 일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은 한 달에 이틀, 쳇째 셋째 일요일에만 쉴 수 있었다. 할 일이 많을 때는 철야작업까지 해야만 했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각성제를 먹어야만 했다. 1970년 이런 가혹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월 1,500원에서 3,000원 사이였다. 이들의 하루 임금은 다방에서의 커피 한 잔 값에 해당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북한 경제는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외부의 관찰자들에 의하면, 북한의 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십년 동안 연평균 25%로 성장했고, 1965~1978년 사이에는 약 14%의 성장을 이루었다. (생략) 한국 전쟁 이후 20년 동안 북한의 경제성장은 남한의 성장을 훨씬 능가했고, 남한이 도대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미국 관리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었다. (생략) 북한의 일인당 국민총생산량이 최소한 1983년까지는 (남한고) 비슷하게 유지 (생략)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로 인해 북한은 주 시장을 상실하였고 1990년대 초반 몇 년 동안 국민총생산량이 감소하게 되었다

 

왜 최고수준의 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그렇게 많은가? 꼭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 오래된 나라에서의 교육은 여러 세대를 걸쳐 최고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향후 전체 가족의 물질적인 복지를 위해서 필수적이었고, 대학에 갈 여력이 없거나 입학시험에 떨어진 이들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를 냉엄하게 가르쳐왔다. 초등학교 교복을 걸친 채 무거운 짐에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수많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는데, 그 수는 모두 약 7천 명에 달했고 주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향상시키고 유용한 지식을 얻을 것으로 확신하여 이 이민을 촉진시켰던 것과 마친가지로 농장주들은 백인들이 도저히 사탕수수농장 일을 할 수 없었기때문에 한국인들을 환영했던 것이다. 호러스 앨랜은 하와이 지사인 쌘포드 돌에게 한국인들은 인내심 있고, 근면하며, 오랜 복종의 습관으로 인해 다루기 쉬운 유순한 인종이라는 점에서 중국인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대단한 가족애와 교육의 미덕에 대한 놀라운 믿음을 지닌, 기백이 넘치고 근면한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도자로부터 좀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고,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해왔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인들을 모르는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여태껏 받아온 대접보다는 더 낳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생략) 이제 내란에 의해 완성된자유를 지닌, 통일되고 당당하고 근대적인 한국을 상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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