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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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눈먼 자들의 시간을 숨차게 따라가는 느낌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데자뷰의 이유를 따져보니, 아, 난 계속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떠올리고 있었다.
깨끗한 방 안에서 전등의 힘을 빌어 책을 읽고 있는 내게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유형지나 눈먼 자들의 도시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 사실이건 가능성이 희박한 상상이건 간에 지금, 베개에 안락하게 몸을 묻고 있는 내게는 똑같이 먼, 아주 먼 이야기일 뿐이니까.
하지만 주제 사라마구와 솔제니친, 이 두 대가의 문장은 녹록치가 않다. 극한의 상황, 삶 이전의 생존을 위한 분투는 마치 내것인냥 생생하게 다가온다. 책을 덮고 난 이 느낌, 이불깃에서 나는 세제의 잔향이 한결 강하고.....더불어 감동스럽기까지 한, 이 느낌이 단순히 펜만을 매개로 전달된 것이라니. 그런 것이라니.
우선은, 치밀한 문장과 함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내달린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한 번 읽고 덮어 둘 책은 아니다. 후일 재독하면서는, 눈먼 자들이 진정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마지막까지 보려고 했던 것은 또 무엇인지를 더듬어 읽어내려야 할 것이다.

눈동자 안쪽이, 어쩐지 아려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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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6-08-3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반부 내내 생각했다. ....왜 시골로 가서 농사짓고 살 생각을 안 하는거야?
책 다 읽고 나니 답이 보인다.
당연하지! 제목이 눈먼 자들의 '도시' 잖아~ ㅡ,,ㅡ;;;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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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가슴에 와 박히는 문장을 하나 만날 때....그만한 기쁨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문장이, 그저 써먹을만 한 겉멋 든 잠언, 그 이상일 때.  
내 머리, 혹은 가슴을 배회하던 모호한 상념....혹은 시간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문장을 찾아냈을 때, 그만한 기쁨이 정말 또 있을까?
그런 이유로 난 전경린을 좋아한다. <나>를, 특히 <나에게 있어 사랑>을 정의하는 많은 부분이 그녀의 문장을 빌어 명명되었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뼈 아프게 사랑을 앓으며 깨달아 가는 것들을, 나는 책장을 넘기는 수고만으로 함께 배웠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유려하고 예민한 문장들을, 사랑했다.

헌데....이 책을 넘기며 문득 깨닫는다.
아름다운 문장을 모두어 놓았다고 아름다운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문장은, 글은 그저 매개일 뿐. 소설을 이루는 것은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사람, 사람들이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나보다. (아니면...아껴둔 문장이 바닥 났던가.)
그래서 사람을 낳고, 그 사람들을 시켜 이야기를 얽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몇 몇 배우를 캐스팅하고 그네들에게 작가의 문장을 그냥 낭독시킨 듯 하다.

"기억나? 로댕의 <입맞춤>이라는 조각작품 말이야. 난 그 작품이 무서워. 그 앞에 서면, 내 삶이 전부 가짜 같아. 허깨비인 듯 열등감에 빠져. 그게 뭘까."
"돌아왔을 때, 처음에 알아봤다. 누가 뭐래도 네 삶을 살 것 같은 힘이 보여."
"욕망이란 이상해요.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순교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이 이야기 속에서는....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는 여동생이 언니에게, 노인성 우울증을 앓는 평범한 어머니가 딸에게,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에게, 저런 식으로들 이야기 한다. 뭔가 서걱대는 이질감.
이야기 속 사람들이 살아있질 않아...! 대부분의 자매는, 모녀는, 연인은 이렇게 정련된 단어로 철학적인 대화를 하진 않아....! 그런 외침이 밀고 올라와 미간이 모아졌다.  그냥, 공허한 말잔치 같아......

삶을 내리 관통하는 명문은, 책을 통틀어 두어 개 정도가 적정량인걸까? 책 어느 페이지에나, 책 속 누구나 다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풋내기 배우처럼 현란한 문장을 줄줄 읊는다면....아니다. 전경린의 언어를 좋아하지만, 이 책은 어쩐지 유리로 만든 밥상...같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먹을 수는 없는. 삶이 아닌 그저 '말'이 담긴.

자신의 진실을 알기란 정말 어려워. 스스로 말이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도 정말 어려운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상처의 이름만 알아도 적대감은 마술처럼 풀려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경린의 말들은 여전히 매혹적으로 빛난다. 사랑과 삶의 공공연한 일상을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그래서 진부하고 느른한 나의 일상마저도 살풋, 빛나는 듯 느끼게 하는....작가의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고로! 섣부른 실망은 없다.^^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은 작품인게지. 이번 상에서는 실컷 눈요기한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번 잔치에서는 정말 배부른 먹거리가 넘쳐나길...한결같은 기대와 사랑으로,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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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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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그런 기사를 읽었다. 문화 예술 전반에서, 더이상 cool한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다시, warm한 것들....열정적인 음악, 신파조로 말초감각을 덥히는 드라마가 '뜨고' 있단다. 최근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나.

게다가, 그 <cool하다>는 것들만큼 유행에 민감한 것도 없다.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하루키나 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 작가들이 <cool한 문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글쎄, 지금도 그들을 cool하다고 볼 수 있을까...그건 잘 모르겠고.
여하간, 구닥다리 감각을 지닌 내게는 에쿠니 가오리도 그 대열의 끝 어딘가에, <cool한 작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 굴러들어온 도쿄 타워는....그래, 서늘하다. 그리고 청량하다. 하지만, 슬프게도....그 냉기를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들어 버렸나보다.

토오루와 코오지, 그리고 시후미와 키미코. 그들 사이의 감정의 흐름을 세련되고 샤프하게 보여주는 에쿠니 가오리의 솜씨는 여전하다. 중간 중간 가슴을 찌릿하게 후비고 드는 문장과 만나는 기쁨도 쏠쏠하고.
하지만, 그 감정의 흐름이라는 것.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여 현실에만 귀속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우울해지고 비관적인 그런 감정의 냉기는....이젠 싫다. 싫다기 보다는, 견뎌지지가 않는다.
뜨끈한 온탕에 들어가서, 혹은 따뜻한 아랫목에 등을 누이며 "어어~ 시원하다~" 내뱉게 되는 것 같은, 그런 warm한 것들이 요즘의 내겐, 더 잘 들어맞는다.
토오루와 코우지 보다는, 키미코에게 자꾸만 감정이 이입되는, 지면에 나타나지 않은 키미코의 속내가 자꾸 들여다보이는 것도 책장을 넘기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었고.

그래서, 대체 어떤 것이 warm인데? 라고 묻는다면, 모른다! 그거야 알 도리가 있나. 아마도 머리보다 가슴이, 가슴보다 눈물이 먼저 읽게 되는 그런 것들이겠지.

아....뜨끈한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동면을 준비하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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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품절


그때 인수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제발 감정이 단선적인 것이기를, 사랑이든 미움이든 한 가지 감정만 느낄 수 있기를.....-56쪽

편안하고, 아득하고, 그리고 하염없었다. -90쪽

인수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시간이 서울과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시간이 휘몰아치는 폭풍이나 격랑 같은 것이라면 지방 소도시의 시간은 미풍처럼 느리고 부드러웠다. 서울에서는 늘 시간에 쫓겨다닌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시간을 데리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친구처럼 곁에 머물며 잠을 깨워주고, 쉬어야 할 때임을 알려주었다. 나무 그림자가 이동하는 광경처럼, 꽃망울이 벙그는 모습처럼 시간의 구체적인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때도 있었다. -132쪽

사랑에는 패자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감정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면 첫번째 사랑은 두번째 사랑에 대한 패배자일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사랑은 영원히 그 첫번째라는 자리를 쟁취할 수 없고, 늘 첫번째 사랑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한 패배자였다. -138쪽

"몸에서 음악 소리가 나고, 소리에서 색깔이 나오고, 그 색에서 다시 향기가 퍼져요. 봐요, 당신 살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인수는 서영의 팔을 들어 코 가까이 대주었다. 특별한 냄새를 맡지는 못했지만, 인수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서영은 그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140쪽

이별이나 단절 같은 것이 눈빛으로, 침묵으로 전달될 때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수는 처음 알았다. 이제 만나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그저 이별의 칼날이 깊숙이 찌른 상처 하나만 잘 다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눈빛으로, 냉담한 무언(無言)으로 통보받는 이별은 한층 복잡했다. 그 속에는 단절의 고통뿐 아니라, 끊임없는 미련, 신호를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 아직도 여지가 남아 있을 듯한 희망....들이 뒤섞여 있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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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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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읽어준다면, 내가 쓴 것은 연애소설이라 믿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 연애다.
연애라는 말, 참 좋다.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매우 촌스럽고 고전적인 맛을 풍기는 3인칭 여인과 사내의 의뭉스런 교감 같은 말이다.
그러나 연애소설만큼 무서운 형식이 없다. 피투성이 된 유년이 성장소설의 담보물이듯, 연애의 학살이 연애소설의 조건이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 된 연애소설을 썼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시, 그렇게만 읽어준다면, 내가 쓴 것은, 내 글을 기다려왔을 것으로 상상된 단 한 명의 독자에게 내가 심혈까지는 기울이지 못했으나 오랜 세월 끈질긴 스토커로서 써 보낸 뒤늦은 연애편지라 믿고 싶다. 소설까지는 못 되어도 편지 정도는 괜찮겠다. 어쨌든 戀愛다. -작가의 말쪽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극진할수록 어머니는 초라해졌다. 극진함은 관계에서의 가난이다. 어머니는 사랑이 관계적이라는 것을 몰랐고 관계란 악마에 속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일평생 불행했고 기우가 많았다. -42쪽

내일이면 마흔, 새로운 나이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종이봉투에 외눈처럼 박힌 쇠단추의 실끈을 천천히 푼다. 늙은 자들도 역시 미숙하다.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무도 세월보다 미리 손쓸 수 없다는 걸 안다.
풀리는 실끈에 쇠단추의 녹이 묻어난다. 이제 내 육체와 정신은, 미세한 주름 하나가 열두 가지도 넘는 의미를 잣던 풍요로운 은유의 세계에서 벗어나, 파안대소와 대성통곡이 구별되지 않는 둔탁한 사물의 세계로 접어들 것이다. 늙은 자는 사물처럼 덜 들키니, 나는 비록 허세일지라도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87~88쪽

믹스 커피를 마시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같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결코 매혹되지 않을 것들에 둘러싸여 살기. 이제 그만, 다 고아 먹은 사골 같은, 여생이라 불리는 가볍고 다공한 삶을 살기. 이게 요즘 그녀가 거짓되이 추구하는 삶이었다. 꿈꾸는 데에 진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135쪽

아버지는 파헤쳐 팔려나간 은행나무 자리를 왜 그리 보나. 그녀는 생각했다. 없음이 외려 과녁이 된다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빈자리도 그리 보나.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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