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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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생명은 색깔인디 호박의 연두색이 월매나 이뻐. 그 이쁜 색을 살리지는 못허고 뭔 생각으로다 허연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씌워, 씌우길. 눈 뒀다 워디다 써. 꽃기생 속적삼이 두껍던가, 얇던가? 입이 있으면 말혀봐."
"얄따랗던데요."
"이, 맞어. 호박전은 꽃기생 속점삼이라고 알면 돼. 밀가루가 스친 듯 만 듯, 호박에 속살이 환히 비치는 옷을 입혀야 되야...."-15쪽

"...남자는 늙어도 애 같단 말이 있제. 왜 그런 중 아는가?"
"글쎄요."
"부엌일을 안 해봐서 그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는 여자들, 부엌일을 모리는 여자들이 암만 나이를 먹어도 철 안 드는 것과 같은 이치제."
"에이, 아무려면요."
"부엌에서 한 삼십 년만 늙어봐라. 그까짓 것이사 절로 알기 되지."-24쪽

사랑은 말이다. 가루비누랑 똑같은 기다. 거품만 요란했지 오래 쓰도 못 허고, 생각 없이 그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마 살 속의 기름기만 쪽 빼묵고 도망가는 것도 글코, 그 물이 담긴 대야를 홱 비아뿌만 뽀그르르 몇 방울의 거품이 올라오다가 금세 꺼져뿌는 기 똑 닮았다.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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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1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박전은 꽃기생 속적삼.. 이 책 재미있겠어요^^

진/우맘 2006-09-1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미있어요! ^^
 
Siesta - ParkHeeJung Illustrations
박희정 지음 / 시공사 / 2001년 8월
품절


만세, 드디어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알 수 없었던 시에스타를 재구매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더욱 감동. ㅠㅠ 박희정은, 시간을 초월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어쩌면, 십 년 전 일러스트를 다시 봐도 여전히 세련되고 아름다운지....!!!
★☆사진을 클릭하시면 큼직하니 구경하실 수 있어요^^☆★

자, 본격적 감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명료한 크기 비교. ㅎㅎ
교과서보다, A4사이즈보다 더 큰 판형이다. 이 크기에, 하드커버에, 올컬러인데....대체 어떻게 18,000원이란 가격에(그것도 알라딘 가격은 15,000원대다!) 판매되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
곁에서 구경하던 동료도 "이거 얼마~~~게?" 했더니, "음...대충 4~5만원?" 한다. 푸하하하!!!!!

플라스틱 케이스를 살금살금 벗겨내고...본격적인 감상.....^0^

본격적인 감상...에 앞서 표지부터 다시 보자!

박희정다운 신비스러운 분위기.^^

일러스트 컷의 출처를 알 수 있는 목록도 있다.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한참 찾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특한 서비스.^^

날개님이 미리미리 페이퍼에서 구경을 시켜주셨으니, 좀 다른 컨셉의 그림을 구경시켜드립지요....는 건 핑계고, ㅋㅋ 사실은 딱, 요런 오만방자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림이 내 스타일이닷!!!!!

이 소녀와 눈을 맞추고 있으면.....그대로 시에스타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얘는 또 어떻고......박희정의 일러스트에는 물, 물고기의 이미지가 많다. 아마도 그 물들은 저 도도하고도 슬픈 눈 속에서 흘러넘친 눈물들이 아닐런지....

지요.....지요.....내 사랑 지요.....ㅠㅠ

ㅋㅋ '야오이 만화' 열풍의 세대인 후배가 그러는데, 그 시절 이 일러스트때문에 비명 내지른 처자가 한둘이 아니란다. 그래...지금 봐도 새삼 "꺄악~~~~"이 절로 차오른다.....^0^;;;

요즘 웹 상에 므훗~이라는 표현이 보이더구만....사전적 의미는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상 지금 이 일러스트를 보는 내 기분이 므훗~아닐까? ^0^

흠...희정님을 너무 퇴폐모드로 몰아간 것 같군.^^;; I can't stop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맑은 일러스트도 종종 있는데.

마지막의 view to art work란 페이지도 반갑다. 작가가 어떤 도구를 써서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보여주는 컷들...

이런 일러스트를 표현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박희정님 화실에 무급 막내로라도 들어가고 싶건만.....(뭐, 말이 그렇단 얘기. 누가 받아준다나...ㅠㅠ)
여하간, 근사한 일러스트집 Siesta,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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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na 2006-10-2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있는데. 고1때 샀던가..중3때 샀던가. 암튼 처음 나왔을때 샀던걸로 기억해요. 그때 권신아님의 인디고 와 함께 엄청난 싼 가격에 구매를 했다죠. 이 분 그림 따라 그릴려다가 느낌이 너무 안나서 ㅜ_ㅜ; 가끔씩 색 입힐때 참고를 한다죠.
정말 멋집니다~

진/우맘 2006-10-3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그림 관련한 직업(혹은 취미) 가지셨나봐요? 멋져요, 멋져요! ^^

비로그인 2006-12-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교과서 전문 서점 가면 저런 교과서 500원쯤 되는데.제가 음악책을 잃어버려서 사달라고 했는데 짠순이 울 엄마,먼 데 가서 싸게 사오셨죠.결국 교통비가 더 많이 들었지만.엄마보다 더한 외동딸 짠순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못 쓰게 합니다.하하하.내 친구들 중엔 이런 애들 없는데.
 
더러운 책상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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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을 돌아보면, 그것은 항상 내 것 같질 않다.
기억의 불확실성이라는 희부연 난막에 둘러 싸인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나'가 아닌 약간의 이질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헤세의 말마따나 인간은 모두 알을, 그 속의 난막을 찢고, 껍데기인 알을 깨고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별반 큰 변화 없는 단조로운 성장이 아닌, 부화나 변태에 버금가는 고통의 시간이 사람마다 자라온 과거 어느 곳엔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그래서 항상 유년은, 차라리 햇빛 쨍한 날 언뜻 겪는 데자뷰보다도 낯설고 희부옇다.

여기, 한 작가가 있다.
그의 성장통은 조금 유별났던 듯, 쉰 일곱의 화자는 열 여섯에서 스무 살 사이, 과거의 자신을 '그'라고 자아와 분리시켜 칭한다. 그저 희부연 정도가 아니라..... 아니, 시간의 켜나 기억의 불확실성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어린 '그'는 죽고, 지금의 자신은 또 다른 비겁한 껍데기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작가란 온 힘을 다 해 짜낸 한 작품이면 족하다고 믿는 어린 '그'가, 삼십 년이나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비척거리는 자신을 보면 경멸할 것이라며 괴로워 한다. 
하지만 왜....?
독자가 넘어다 보는 어린 '그'는 사실 그렇게 절절히 사랑할만큼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다.  탄생의 순간부터 생의 독기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그', 항상 자살, 혹은 타살의 충동에 시달리는 '그', 창녀와 어머니 사이에 확실한 금을 긋지 못하는 '그'는 그저 태생이 심약하고 비관적인 소년이다. 헌데 그런 '그'를 단순한 실패자로 규정짓지 않고, 살을 에이는 듯 절절한 감상을 전해주는 존재로 승화시키는 힘은, 어찌 보면 화자인 작가....작가의 '그'에 대한 사랑....직설화법으로 풀어내자면, 유년에 대한 자기애이다.

초반에는 몰입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화자와 주인공의 관계가 혼란스러웠고, 즉물...선험...언필칭....등의 자주 쓰이지 않는 한자어에 야지랑스럽다, 얄망궂다 같은 낯선 우리말까지 더해져 발목을 붙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 일곱의 그에게 다가서고, 철인동 창녀촌의 육자배기 가락이 얽혀들기 시작하자 책장 넘기는 데 탄력이 붙더라. 아무리 낯설어도, 일정 시간 이상 보대끼다 보면 정 들고 익숙해지기 마련인지.... 이제,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단순히 좋았다 혹은 싫었다는 평은 불가하다. 하지만, 읽게되어 참 다행스럽다는 은근한 뿌듯함은 남는다.

쉰 몇 살 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신산하고 아픈 기억이지만, 옛 기억을 버무리면 삼키기 힘든 '그'의 거친 속내도 꿀꺽, 수월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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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책상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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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보다 사십여 년이나 더 늦게 오고 있는 열일곱의 그보다 그 점에 있어선 더 나을 것이 없다. 사랑이란 목숨의 부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깊어서 사랑에의 그리움은 때때로 우주보다 절망적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떤 소리로 오는지 알고 있다.
치익 탁.
치익 탁, 치익 탁의 연속성이다.
치익...에서, 세상의 모든 참나리꽃이 일제히 죽음 같은 개화를 위해 제 어두운 음부를 잔뜩 오므리는 걸 나는 본다. 탁...하면, 그들은 서슴없이 제 죽음을 열고서 붉고 노란 색등으로 피어날 것이다.

(치익 탁,은 열일곱 화자가 사창가에 누워 있는 동안 그에게 다가오던 창녀의 슬리퍼 끄는 소리...)-127쪽

책은..... 위험한 거야.
뿔테안경은 쓸쓸하게 웃는다.
무엇이 왜 위험한지 뿔테안경은 말하지 않고, 그도 묻지 않는다. 뿔테안경이 말하는 위험이란 전체가 정해준바, 삶의 일반적인 실패를 뜻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위험은 살아 있다는 목숨의 위험함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165쪽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겄네

육백 치기 화투판을 잠시 미뤄두고 배달돼온 자장면을 왁자지껄, 육자배기 어우러지듯 이리찧고 저리 까불면서 먹고 있다가, 참나리 누나의 반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가 낭송해 보인 시가 바로, M이 좋아하는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 배운 바 없고 익힌 바 참나리꽃이 되어 발랑 까뒤집혀 피는 것이 전부인 어리고 늙은 창녀들이, 시를 어찌 알고 시적 비애를 또 어찌 공감할까 했는데, 시의 반도 읽기 전에 열여섯 나이 어린 창녀9의 볼에 눈물이 주르르륵, 그리고 이내 뚝, 뚝, 뚝 검은 자장면 면발 위에 떨어지고 만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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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비상구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그의 책은 참 쉽다.
단순히 사용되는 어휘가 그렇다거나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실험시간, 물옥잠을 반으로 갈라 물감이 스미는 모습을 관찰해 본 기억이 있는가?
그의 글은 꼭 그렇게 적당한 속도로 몸 구석구석을 향해 퍼진다. 메마른 곳을 적신다.
충분히 몸과 마음이 습윤해지고 나면, 종종 눈물이 넘쳐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독자는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몸을 내맡기면 그 뿐.....그래서 그의 책은 쉽다.

일곱 개의 이야기가 어느 하나 모나거나 두드러지지 않고 알맞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약속'과 '석양으로 가는 길'은 성장소설에 대한 그의 탁월한 감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4teen과 만났을 때의 감동 어린 기쁨이 설핏,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는 이 분야, 성장 소설에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고 다진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의 가족 붕괴 - 비단 그것이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터 -를 모티브로 한 푸른 비상구, 천국의 벨, 하트 스톤 등은 뿌듯한 해피엔딩으로 가는 터닝포인트에 있어 약간의 억지 요소...신파적인 감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사람이 소중하다. 성장과 생이 소중하다. 가족이 소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사이 느끼는 감정 모두가 소중하다. 이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문학성이나, 겉멋이나, 권위 같은 것....차별화 되기 위한 그 어떤 작위적인 요소도 서슴없이 버릴 수 있다.
그런 속삭임이 읽는 내내 들려온다. 이시다 이라와는 전혀 무관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상관없다. 환청이어도 착각이어도 좋을정도로, 그것은 충분히 따뜻한 위로다.

글마다 책마다 특이한 소재, 확연한 개성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요즈음....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메세지, 언뜻 보면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진부하지 않게, 세련되게 포장해 내고 있는 이시다 이라. 그렇게 편안한 그의 글이 도리어 이 작가를 두 배, 세 배 더 특별하게 한다.

난 이 작가가 점점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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