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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ㅣ 미래그림책 30
피터 스피어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이 제우스를 믿기에 그리스 신화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듯, 이제 성경도 일종의 교양이자 문화적인 코드가 되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내 아이들도 자라면서 어떤 경로로든 알게 되겠지.
그런데 이 책을 펴 보고는 너무도 기뻤다. 내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노아의 이야기가, 이토록 열린 상상의 세계, 유머러스한 세계라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그림책을 잘 선별하는 칼데콧 상 수상작이다. 하지만 그것이 1978년의 일이니, 거의 내 나이에 육박하는 오래된 그림책이다. 하지만 그림 어디에서도 고루한 흔적은 없다. 역시, 근사한 책, 멋진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모양이다.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지는 대목에서의 그 든든하고 웅장한 풍채와 각종 동물들이 모여 생활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같은 이의 펜끝에서 그려졌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방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주욱 늘어선 양식들, 각종 동물의 승선, 방주 속에서의 나날까지, 성경 이야기가 흔히 가질 수 있는 논리의 결여가 이 그림책 속엔 없다. 그렇다고 '이러저러 했을거야.' 하는 고루한 설명이 아닌, 보면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논리. <노아의 방주>의 가장 큰 강점이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다양하게 화면이 분할되어 있고, 각각의 화면 속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숨어있다. 글은 없다. 아차, 아직 말 안 했던가?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서너 살 어린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넓은 층의 독자를 다양하게 매료시킬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다.
다섯 살 딸아이와는 아는 동물 찾기, 왜 아주머니가 통 위에 올라 서 있는지(쥐가 무서워서다.^^) 등의 단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좀 더 많은 아이들과는 성경 속의 내용과 책을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기준으로 한 쌍만을 고를 수 있었을까? 하는 사고력을 요하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함께 사는 시부모님은 민간 신앙이라고 해야 하나...특정한 종교가 없으시다. 그렇기에 그림이 아름답다고 회자되는 <세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도, 세상이 만들어 진 이야기를 기독교적인 사고로 풀어내는 그림책이라 집에 들고가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같은 맥락임에도 <노아의 방주>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림으로 구성되어 내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진지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 내는 힘, 유머와 생기가 배어 있는 책이어서가 아닐까?
성경이야기라서, 재미없을까봐 머뭇거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가 무척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새록새록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함께 자랄만한 그림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