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빠! 우리 보고 싶죠? 아빠에게 사진 많이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게으름뱅이 엄마가 맨날 만화책만 보고, 도통 사진도 안 찍어줘요. 흥!
자, 우선 얼굴이라도 한 번 보세요. 기차에서 찍은 사진이예요. 엄마를 마구마구 괴롭히다가 잠깐 쉬는 중이랍니다. 누나, 머리 흩어지고 볼 빨간거 보세요. 헤헤. 그런데 사실은 제가 더 심했어요. 여수 오는 여섯 시간동안 잠은 커녕, 좌석에 10분도 안 앉아있었거든요. 나중엔, 차장 아저씨가, 저같은 애는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구요. 오랜만의 기차여행인데,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이건, 누나가 외할아버지랑 함께 만든 '토끼 핫케익'이예요. 누나는 토끼가 당근을 먹는 모습이라고 설명하지만, 내가 볼 때는 빵칼을 보고 무서워하는 토끼 같은걸요? 곰 핫케익도 있었는데, 사진 찍기도 전에 누나가 조각조각 잘라버렸거든요. ^^;
여수는 따뜻해서 참 좋아요. 낮에는 해도 잘 들고, 보일러를 안 돌려도 홑내복에 땀이 푹 젖도록 따뜻해요. 덕분에 좋아하는 물장난 실컷하고 나와서 옷 안 입겠다고 도망다녀도, 엄마는 별로 걱정을 안 해요.
참, 감기도 이젠 다 나았어요. 콧물도 뚝 그치구요, 그래서 요즘은 밤에 잠도 잘 와요.
그런데 오늘, 무지무지 화나는 일이 있었어요! 외할아버지 퇴임 기념으로 친구분이 점심을 사 주셨거든요? 유명한 '광양 불고기'래요. 되게 부드러운 소고기 살을 얇게 저며서, 달콤하고 참기름 냄새나는 양념으로 살짝 버무린 다음 숯불 석쇠에 구워먹는 거라고 했어요. 입에서 살살 녹으니까 연우도 많이 먹어라~ 그래서 아침도 굶고 기다렸는데, 광양 가는 차 안에서 깜박 잠들어 버렸지 뭐예요.
그런데, 의리 없이!!! 날 안 깨우고 엄마만 맛있게 먹었어요! 눈 뜨고 보니까 후식까지 먹고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맛없는 마카레나 껌만 네 개나 먹으면서 돌아왔어요.
아빠, 다음주에 우리 데리러 내려오면 엄마 혼내줘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