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1 - 개정판 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1
박철 지음 / 진명출판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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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한 달 째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극 추천하는 스페인 초보 자습서다. 
 

가장 큰 장점은 각 장의 구성이 매우 탁월하다는 점.
본문과 본문 해석, 단어 설명, 기본 문법 설명, 필수 회화와 응용편, 그리고 간단한 연습문제까지.... 사전 없이 처음 스페인어를 배우는 초보자가 재밌고 쉽게 차근차근 접근할 수 있다. 내용도 너무 많지 않고, 또 너무 적지 않아 진도도 잘 나가 배움에 즐거움이 있다.

 

스페인어를 배우는 목적에 따라 교재 선택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학원 다니지 않고 혼자서 기초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다른 교재보다는 주저없이 이 책의 2권을 주문할 생각이다. 그런다음 중급 교재나 목적에 맞는 응용 교재로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별매 오디오 테이프와 강의테이프가 모두 품절이라는 점.
회화가 목적인 학습자에게 발음이나 억양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다른 오디오 자료를 활용하여 함께 배우기를 권장한다.


참고로 나는 Michel Thomas라는 언어학자의 오디오북을 병행해서 배운다.
이는 교재없이 그저 듣고 따라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출퇴근 시간에 활용하기에 좋다. 아무 기초 없이도 초보가 정확한 발음과 억양, 엑센트, 필수 회화를 배우기에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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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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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살인적인 부정의로 물들어 있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본문 23쪽, 2007년 장 지글러,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답게 탁상공론이 아니라
이론과 경험, 현실과 이상을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본문은 기아의 실태와 원인에 대해 아들과 차근차근 대화를 주고 받는 식이고, 에필로그와 후기에서 저자는 그 배후와 해결방안에 대해 '담판'짓고 있다. 우석훈 교수의 해제와 주경복 교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의'가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지글러의 글이 어려워서 해제나 참조글이 붙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
분량도 많지 않아 반나절에서 한나절이면 읽을 수 있다. 

  

전 세계 기아의 실태는 어떠한가?

 

'오늘날 세계 인구의 두 배도 먹고 살릴 수 있는 지구의 식량 공급력'(본문 37쪽)에도 불구하고


  • 2000년 기준 8억 5000만 명 이상이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 열살 미만의 아이가 7초마다 1명씩 기아로 목숨을 읽으며,
  • 6분에 1명씩 비타민 A 부족 혹은 썩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시력을 잃고 있다.
  • 5200만 명이 경제적, 사회적 저개발(영양, 음료, 치료 등의 부족)로 직접적인 죽음을 맞음
  • 국가보다 부자인 개인들
  •  
  •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 구호조직의 모순과 딜레마
  •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도시 빈민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 무관심과
  • 기아를 테러나 독재, 이윤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부패한 위정자들과 국제재벌기업들

 

 

기아의 원인은 무엇인가? 


  • 전쟁과 테러
  • 정권의 부패와 사회적 무질서
  • 사막화와 가뭄 등으로 인한 경지 부족이나 흉년
  • 산림파괴, 온난화, 각종 자연재해와 같은 환경 재앙
  •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 정치 사회적 무관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악화시키고 사회 부정의와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 금융과두지배그 잘난 신자유주의

 

 

비인도적인 범죄(기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가?

 

1)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우선적인 과제는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FAO는 당면한 긴급구호를 위해 비상식량을 비축하고 있다. 이 식량을 배급하고 관리하는 것은 WFP 담당이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도움을 줄 나라의 사회구조가 어떤지 거의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도움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부실하고 부패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부당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함과 수백 년간에 걸친 약탈에 방치해두게 되는 것이다. 원조식량뿐만 아니라 국제단체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개발지원금도 마찬가지다.(본문 164쪽)

 

즉, 탁상공론 집어치우고 현실을 감안, 실수혜자에게 직접 혜택이 가도록

구호단체의 구조와 구호방법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

 

 


2)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혁명적인 행동은 인도적인 구호를 뛰어넘는다. 모든 혁명의 목표는 희생자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로, 역사의식을 가진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본문 165쪽)

 


  • 정경유착과 부패 척결(부패척결만으로 부가 합리적으로 재분배되는 사례는 매우 많다)
  • 사회적 구조개혁 및 복지정책 강화
  • 합리적인 토지 재분배(거의 '노예제도'에 기반한 대농장/대지주 단일경작은 없어져야)
  • 외국에 대한 경제/식량 의존도 개선
  • 국제적 차원의 개혁 지원(역사적으로 볼 때 제 3세계 국가의 개혁과 혁명은 선진국 다국적기업의 이윤에 반하기 마련이고, 자본은 이러한 개혁을 늘 훼방하고 전복해왔다)

 


3) 인프라 정비


제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중략) 아프리카 남쪽에는 엄청난 땅들이 놀고 있다. 그 땅들은 투자가 없이는 경작되지 못할 것이다. FAO의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정상적으로 경작되는 땅은 7억 헥타르 정도인데, 작은 투자로도 경작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나무를 베거나 보호 구역에 손대지 않아도 말이다.

 

이 모든 조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본문 167~168쪽)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4)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5) 협의 등을 거쳐 제 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6)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한다.

 

7)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개개인의 관심과 세계적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희망과 낙관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인 것이다.(본문 170쪽)

 

 

 

때문에 우리는 나 한 사람이 당장 기아를 멈출 수도 없고, 사회구조를 개혁할 수도 없고, 시카고 곡물거래소 문을 닫게 할 수도 없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아니, 좌절해서는 안된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실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것이 여론이 되고, 위정자들에게 압력을 행할 것이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우리의 바람이 구체적인 정책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나는 실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지행합일을 하거나 구호단체나 자선단체에 기부, 자원봉사도 할 수 있다. 그러한 '풀뿌리' 개혁이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킨다.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순간은 많지만, 그래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은 이미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노예제의 폐지나 식민지 국가의 독립(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이나 노동법의 탄생이나 복지 제도의 성장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고는 할 없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싸울 때에만 이룰 수 있었고, 또 완성할 수 있는 목표들이다.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고 했던 아도르노(독일 철학자)의 말마따나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행복의 영토는 없다. 우리는 인류의 6분의 1을 파멸로 몰아 넣는 세계 질서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본문 171쪽)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정의와 인류애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기아와 신자유주의는 반드시 극복 가능하다.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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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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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서적들은 그렇다. (적어도 내가 읽은 네 가지의 책은) 친근하게 말을 걸듯 농을 섞어 풀어나가는 가벼운 문체와 '그래도 나 미학 전문가 맞아요'라고 의식하듯 내 뱉는 전문 용어들. 잊을만하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진보적 철학 담론들.  

그의 글은 지나치게 심각하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아서 좋다. 진지하게 성찰하고, 화끈하게 성토하고, 신랄하게 까발리되, 결코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그의 태도. 나는 그것을 닮고 싶다. 

 
상상의 혁명은 논리적, 추론적, 선형적 사유를 배제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을 전제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뿐이다. 그것은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이 아니다.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행하는 즐거운 반역이다. 

 
본문 362페이지
 

 

이 책은 그러한 상상의 혁명으로 가득차다. 물론 책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진부하고 오래된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오래된 상상을 통해서 무한한 미래를 상상해본다. 음... 정말 골때리는 군. 

 
미래의 생산력은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여 기술로 실현하는 이른바 '기술적 상상력'에서 나올 것이다. 기술은 배울 수 있으나 상상력은 배울 수 없는 것. 배울 수 없는 것은 다만 되찾을 수 있을 뿐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이 천진함으로 돌아가라. 본문 373페이지 

 
작은 것에 감동하고 놀라고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 확실히 지금은 많이 무뎌지고, 약아지고, 냉소적이 되었다.  

예술이든, 인생이든... 더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까... 라는 비관적인 냉소주의.
그것은 사실 내 창의력과 상상력에 대한 의심이 아닌가.

 
그래, 나의 상상력을 한 번 믿어보며... 어디 한 번 신나게 놀아보자.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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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광대다 - 얼음 같은 세상, 마음을 녹이는 현장예술가 최병수
박기범 외 지음, 노순택 외 사진 / 현실문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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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현장을 돌아 다니며 작업한 것들을 작품집으로 만들자는 주의 분들의 권유를 핑계 삼아 현장미술 이십 년을  정리해볼 겸 해서 작품집을 세사에 내놓게 되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작품집이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보는, 그러면서 우리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고민하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제대로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아주 작은 길잡이라도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본문 17쪽, '책을 펴내며' 중에서  

 


그의 말대로 지난 20년의 현장미술을 정리한 작품집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http://blog.naver.com/jinirock78/50780312)를 읽고 그의 생과 호라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그리고 중간 중간 책에 삽입된 그의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인터넷에서 작품 검색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주문했었다. 외국에 사는 관계로 지난 여름에야 책을 손에 넣었고, 지금에야 읽고 말았지만. 

이 작품집은 작품만 나열한 게 아니라, 그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사건을 함께 풀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따 온 신문 기사와 여러 사람이 '증언'하는 최병수의 삶과 작품들.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에서 발췌 인용한 문구들이 작품의 의미를 증폭하고 있다.  

사실 최병수의 작품은 작품만으로 그 작품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작품은 '맥락' 안에서 소통되어야 하는 '현장미술'이자, '미술운동'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따위의 배부른 소리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애초에 '해석'될 필요가 없다. 그의 작품을 통해 '현실'을 읽고 해석해야지, '현실'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게 아니다. 최병수 작품의 메시지는 언제나 쉽고 명료하다. 오히려 어렵고 복잡한 것은 그가 싸우는,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이다. 

작품집은 시간의 역순(?)으로 구성되었다. 최병수의 가장 최근 활동과 작품인 '얼음팽귄조각'에서 시작해 80년대 '걸개 그림'으로 회기한다. 자신이 태어난 강가로 힘차게 역류하여 생을 마감하는 '연어(최병수의 작품 주제이기도 한)'처럼 '환경 현장 미술가'라는 현재 타이틀에서 공권력에 의해 목수가 얼렁뚱땅 '화가'가 되는 사건까지 최병수의 작품과 삶이 역동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래서 이미 '다 아는' 이야기와 작품을 보는 나도 재밌게 흥미롭게 빠져들 수가 있었고,  최병수를 처음 만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최병수란 현장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앞서 인용한 최병수의 바람처럼 '함께 사는 세상을 고민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집이다. 

 

"나의 작품이 그저 전시장에만 내걸렸다면,

내 작업이 작업실에서만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그건 죽어 있는 것을 그린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 달려가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 현장에서 내 작품이 생명을 얻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림으로 민중과 만나고 소통한다.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학생, 자본의 불합리와 싸우는 노동자,

농토를 빼앗기고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농민과 어민,

나는 나의 그림을 그들과 함께 나눈다.

그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내가 가진 작은 재주로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따뜻한 희망 세상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미술 활동을 하고 있다."

 

본문 11쪽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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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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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스기하라 군은 책의 포문을 열면서 말한다. 이 책은 자신의 연애를 다룬 것이며 무슨무슨 '주의'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음... 이 책은 분명 연애 소설이 맞다.

단지 연애의 대상이 같은 또래의 소녀만은 아니었던 것.
그 때문에 스기하라 군의 연애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난 소설의 힘을 믿지 않았다. 소설은 그저 재미있기만 할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책을 펼치고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정일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소리였다.

"그런 인간이 늘어나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거야." 

 
- 본문 85페이지


 

나는 소설의 힘을 믿는다. 재미없는 소설들도 많지만, 어떤 소설은 한 인생을, 한 세상을 바꿀만큼 힘이 있다. 분명하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이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 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아버지가 내 등뒤에 있는 유리창 쪽을 보면서 말했기 때문에 유리창에 참고서가 붙어 있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참고서는 붙어 있지 않았다. 깊은 밤의 어둠이 들러붙어 있을 뿐이었다. 
 

-본문 108 페이지


 

이 구절처럼 이 소설은 골 때린다. 겨우 초등학교만 나오고도 독학으로 마르크스와 니체를 읽고 이해한 아버지. 사춘기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끝내 '빌어먹을 영감탱이'로 치부해버린다. 링에서 한 번도 쓰러진 적 없는 전직 권투선수 아버지. 그 불패의 사나이는 언젠가 자신의 손에 의해 무릎끓고 말리라 각오하면서. 물론 25전 1패로 아들의 불패 신화를 깨뜨린 것은 아버지였고, 무릎 끓은 것은 아들이었다.

 
아버지에게 도전 해 그렇게 작살나게 얻어 맞은 날. 그 날은 공권력에 의해 아버지의 사업체 중 하나를 빼앗긴 날이기도 하다. 또, 북에 있는 삼촌이 돌아가신 날이기도 했다. 북에 있는 동생의 불행에 죄의식을 느끼며 18년간 끊은 술을 다시 드신 아버지. 차라리 아버지의 피를 볼 망정 그의 눈물은 결코 볼 수 없었던 아들. 그래서 그 들은 눈물을 보지 않으려 피를 튀기며 싸웠다.

 
또한 그 날은 소소한 다툼으로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오신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의 빗자루 몽둥이로 한 참을 더 맞아야 했다. 감히 아버지에게 손을 대다니. 아버지는 말한다. " 이게 바로 사랑의 힘이야" 

스기하라 군의 연애 소설은 이렇게 골 때린다. 

"상관없어. 너희들이 나를 재일이라고 부르든 말든,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불러. 너희들, 내가 무섭지? 어떻게든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지? 하지만 나는 인정 못해. 나는 말이지. '사자'하고 비슷해. 사자는 자기를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너희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 사자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흥에 겨워서 이름을 불러가며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봐. 너희들의 경동맥에 달겨들어 콱 깨물어 죽일 테니까. 알아, 너희들이 우리를 재일이라고 부르는 한, 언제든 물려죽어야 하는 쪽이라구. 분하지 않냐구.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 이 나라에 그런 게 없으면, 너희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 나라를 떠날 것이고.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너희들은 국가니 토지니 직함이니 인습이니 전통이니 문화니, 그런것들에 평생을 얽매여 살다가 죽는 거야. 제길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구. 분하지? 안 분해? 빌어먹을,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지. 빌어먹을..."

 

본문 261 페이지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눈물까지 날라 그러네.

빌어먹을!


내게 의미있는 독서였다.
접해보지 못했고, 별 관심도 없었던 재일동포 사회.
거기에 낙인된 '주홍글씨'를 처음으로 선명히 보았고,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팠다.

형식면에서 더 의미있는 만남이었다.

때론 신랄하고 냉소적이며, 암울하고 분통터지는 이야기들.


그런대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웃고 있었다.

세상에... 자신에게 도전한 학생을 '너를 유명하게 해주마'라는 말과 함께 재떨이로 쓰러뜨리는 스기하라 군. 어찌 박수를 치지 않겠는가. 경찰서에 끌려간 아들을 죽일 듯 패서 '빨간 줄'을 면하게 해 줬으니 고마워하라며 씨익 웃는 아버지 앞에서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을 더욱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 한 것이 '유머감각'이라는 것. 유머감각은 여유있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 여유는 나르시즘을 벗어난 건전한 자기애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는 빛나는 유머감각의 초절정에 있었다.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 준 고마운 글이다.

 

 

2006년 9월, 서울역에서 구포역가는 무궁화호 1호실 9번 좌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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