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ji 2004-05-22
깊은 밤 딸아이를 재우기 위해 그녀는 자리를 비웠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낯선 방에 앉아 있다. 이 정신에 여기까지 찾아들어올 수 있었다니, 낯선 키보드와 낯선 화상도의 모니터 앞에 나는 너무 멀쩡하게 앉아 있구나. 오즈마, 여행을 떠나는구나. 날씨가 좋아서 당신이 담긴 사진은 그 날씨만큼이나 화사하고 곱게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 선약 때문에 당신과 만나지 못해서 미안함. 그 선약 때문에 나는 맥주를 마셨고, 그녀의 딸아이가 잠을 못이루고 깨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녀의 집에 와 있다. 술이 더 취했거나, 덜 취했으면 그러지 못했겠지. 아니다, 아이를 둔 엄마는 나는 이길 수가 없다. 아니 이겨서는 안되겠지.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나는 무척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안 자고 보채는, 울음 소리 울창한 그녀의 딸아이에게 미안할 뿐. 밤이 깊구나. 여름은 더디 오고, 내 마음은 멍 자국 고스란히 이렇게 식어간다.
잘 다녀와라.
덧붙일 말 :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남길 수 있는 공간은 서버 점검 시간이라 먹통이구나. 여기에 남긴다. 술기운이려니, 혹은 밤이 깊어서 그랬다고, 혹은 아이의 큰 울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렇노라고, 이해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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