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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아는 게 더 재밌어졌대요, 규진이는
아이 질문엔 질문으로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요. 슬럼프 땐 서점에 함께 갔지요. 그리고 엄마 아빠와는 친구처럼 지내며 대화의 끈을 이었죠.

사진 촬영을 위해 책 두 권쯤 들고 나오란 말에 중1 아이는 '공업수학'과 '일반 물리학'을 챙겨왔다. '공업수학'엔 제법 손때가 묻어 있다. 잠시 책 보는 듯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사진 기자의 요청에 아이는 '공업수학' 중간 부분을 폈다.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느려졌다. 장난기 있던 표정도 점차 사라졌다.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툭 건드린 뒤에야 아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는 서울 양천구 신서중 1학년인 오규진(13)군. 그는 한국과학영재고의 2007학년도 신입생 중 한 명이다. 144명 중 중1은 그를 포함해 네 명뿐이다. 그는 수학 성적 최우수 학생으로 뽑혔다.

오군은 소감을 묻자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군의 어머니 임영재(40)씨에게서 오군이 어떻게 공부했고, 옆에서 어떻게 도왔는지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임씨의 말.

◆ 블록 조립을 즐겼다=규진이는 3, 4세 때 한글을 스스로 깨쳤다.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1번부터 99번까지 돌리다가 숫자는 물론 덧셈.뺄셈 개념도 깨쳤다. 구구단도 원리를 얘기해줬더니 바로 빈 종이에 9단까지 적더라. 블록 조립을 즐겼는데 제 나이 것보다 어려운 것도 척척 만들어냈다. A4용지로 가족 신문이나 이야기 등으로 책 만들기도 즐겼다.

당시 규진이는 조기 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유치원 다니기 전에 소근육 운동 기관에 1년 다닌 정도다. 유치원은 인성 교육 위주였다. 그 무렵부터 또래에 비해 똑똑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친척도 '영재성이 있으니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 여섯 살 때 영재 판정을 받다=민간 영재교육기관에 갔더니 영재란 판정이 나왔다. 일곱 살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 기관에서 수학.과학.인문사회.사고력 교육을 받았다. 거기에 다녔던 아이들과 별도 기관에서 철학도 배웠다. 생각이 깊어지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엔 사고력 수학으로 유명한 학원으로 옮겼다. 사실 좋다는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아이가 적응하느라 불안정해질 수 있고 (학원에서도)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엄마와 아빠의 역할 분담=우린 규진이와 친구처럼 지낸다. 규진이가 나를 '엄'이라고 하면 난 '오'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아빠는 지적인 부분을 채워줬다. 백과사전을 찾아서라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바로 답을 주는 건 아니었다. "총알의 속도는 어떻게 구해"라고 하면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했다. (규진이도 "아버지는 궁금한 것을 많이 가르쳐 주셨고, 어머니는 제 마음의 지주가 돼 주셨다"고 말했다.)

사실 사교육 시장(논리)에 갇히기 쉽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이 편에서 제어해 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가 지치지 않도록. 그래서 남들보다 적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두 개 정도 더 줄였어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더 여유있게 책을 볼 시간을 갖도록….

◆ 슬럼프를 느낄 때 서점에 갔다=규진이에게 전집을 사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손을 잘 대지도 않더라. 아이가 선택할 수 있을 나이가 된 뒤론 직접 고르게 했다. "산책 갈래"하며 집앞 서점을 가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대형서점에서 책을 왕창 사올 때도 있다. 아이가 슬럼프인 듯하면 "서점에 갈까"라고 하곤 했다.

우리는 규진이의 생각을 존중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영재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한 이후 규진이의 생각이 바뀐 적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가장 행복해할 일을 선택한다면 우린 그걸로 족하다.

◆ 자극이 있어야 한다=규진이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서울교대 영재센터를 다녔다. 올해 연세대 영재교육원 수학 과정에 다니고 있다. 격주에 한 번 꼴이다. 천재라면 흔히 하나를 듣고 백을 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하나를 던져주고 끌어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규진이는 흥미위주로 수학책을 골랐다. 그러다 대학 교수에게서 정수론 등 원론적 수학 개념을 배운 뒤엔 두꺼운 대학 수학, 과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엄마 임영재씨가 중1 아들 규진이를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시킨 뒤 소회

■ “규진이가 질문하면 오히려 질문으로 답했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 “어렸을 때 인성 위주로 교육했다. 7세 때야 영재란 판정을 받았다. 그때도 교육학을 전공한 친척이 영재성이 있는 듯하다고 해 알았다.”

■ “지금도 산책하러 가자면서 함께 서점에 간다. 규진이가 책을 고른다.”

■ “규진이가 대학수학 등 두꺼운 책을 붙잡기 시작한 건 한 교수님으로부터 정수론을 배운 뒤였다. 영재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 백을 안다고 한다. 그래도 제대로 하나를 던져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재 판정 이후에 꾸준하게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가 힘들어하는 듯 보이면 공부량을 줄였다. 남들 절반만 한다고 했는데도 그랬다. 돌이켜 생각하면 여유있게 책을 볼 시간을 더 줬어야 했던 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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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6-09-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두 퍼가요님

전호인 2006-09-0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 아유 욕심쟁이! ㅋㅋㅋ
 

아홉살 때 미국 내 최연소 대학생이 된 오빠에 이어 동생도 열 살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한국계 천재 남매가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일본계 아버지 야노 가쓰라와 한국인 어머니 진경혜씨 사이에 태어난 쇼 야노(15)군과 사유리 야노(10)양.

쇼군은 어머니 진씨가 쓴 책 '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키웠다'(중앙M&B 발간)가 2001년 국내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관심을 모았던 천재


동생도 오빠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녔다. 사유리양은 9월 초 시카고에 있는 트루먼대학에 입학한다. 영작문과 미분 기하학 등의 강좌를 수강할 예정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사유리양은 최근 오빠처럼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 트루먼대에서 교양과정을 공부한 뒤 의대에 진학한다는 계획이다.
 이 천재소녀를 잡기 위해 시카고대에서는 학장이 직접 나섰고 오빠가 졸업한 로욜라대에서도 유치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사유리 양은 "훌륭한 심장외과 전문의가 돼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규 학교라고는 다섯살 때 1년밖에 다니지 않은 그는 오빠처럼 홈 스쿨 전문학교에서 제시하는 학사 과정에 따라 집에서 공부했다.  68학점을 이수하고 졸업시험을 통과해 이번에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오빠는 '리틀 아인슈타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최근 연구 성과를 속속 내놓고 있다. 시카고 의대 박사과정 3년차인 쇼군은 새로운 단백물질을 발견해 지난해 특허도 신청했다. 그가 발견한 물질은 내성을 없앨 수 있어 항생제에 쓰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쇼군은 최근 또 다른 새 단백물질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시카고대가 운영 중인 메디컬 사이언티스트 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 과정을 마치면 신경학을 전공해 연구와 환자 치료를 병행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쇼군의 지능지수(IQ)는 일반적인 테스트로 측정이 불가능해 200 넘어 어딘가의 수준일 것으로만 추정된다. 그는 아홉 살에 입학한 시카고의 로욜라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2003년 열두 살에 시카고대 의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세 살 때 쇼팽의 왈츠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고, 네 살 때 작곡을 시작했으며 여덟 살 때 미국 수능시험 격인 SAT에서 1600점 만점에 1500점을 받았다.

어머니 진씨는 자녀교육 비결에 대해 "두 아이 모두 네 살 때 천재성이 발견돼 영재 교육을 시작했다"며 "특별한 비결은 없고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식지 않도록 자유롭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줬다"고 했다.

그녀는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의 사회성이 뛰어나고 정서가 안정되어 있으며 남에게 감사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을 때가 '천재'라는 평가를 받을 때보다 더 기쁘다"고 덧붙였다. 천재로서 보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진씨는 '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의 속편 격인 두 번째 책 발간을 앞두고 있다. 11월쯤 발매될 이 책에는 천재 남매를 뒷바라지한 진씨 부부의 노력과 어려움 등이 자세히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진씨는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 오하이오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며 전업주부로 자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시카고지사=박춘호 기자


&&&&&&&&&&&&&&&&&& 진혜경씨의 자녀교육 5원칙 &&&&&&&&&&&&&&&

1.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2. 지금 하는 일을 즐겁고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 수시로 자녀와 친구처럼 상담한다.

4. 긍정적 사고방식을 심어준다.

5. 재능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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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맘, 또또맘 2006-09-0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남매 파이팅!! 남매를 천재로 키워낸 엄마의 역활이 컸겠네요...

hnine 2006-09-0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이 두 남매의 엄마, 진 경혜씨가 쓴 책을 읽고 정말 대단한 엄마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두번째 책이 곧 나온다니 기다려지네요.

해리포터7 2006-09-0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본받아야 할점이 정말 많아요..저 퍼갈께요..

2006-09-0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6-09-0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맘님,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는 가장 크고 넓은 존재일 겁니다. 엄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컨트롤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들의 인성이 형성되어 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항상 위대한 어머니가 있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것이 단지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여.

hnine님, 저는 읽어보질 못했습니다. 오늘아침 신문을 읽다가 발견을 했고, 아마 제 기억으로는 KBS스페셜에선가 "쇼 야노"의 천재성 그리고 가정교육에 대한 것이 방영된 것을 기억합니다. 울 아내는 관련책을 읽었다는 데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봐얄 것 같습니다.

해리포터님, 잘하고 계신 것 같은데여 뭘. 하기야 이런 것은 보면 볼 수록 새롭고 또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네 많이 퍼가세여 그리고 동네방네 알릴 만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ㅎㅎㅎ

귓속말님, 다른 것도 다 중요하지만 특히 "지금 하는 일을 즐겁고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 가장 공감이 가고, 저희 집에서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대목이랍니다.

비자림 2006-09-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쇼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랬었는지...
천재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저 어머니가 정말 대단한 보였어요.
가끔 자극받아야 해요. 나처럼 타성에 젖기 쉬운 엄마는...

근데요, 전호인님, 제 페이퍼 두 번 퍼 오셨네용? 이 글 쓰다 보니 밑에 보이네용^^
9월인데 아직 여름을 타시나? =3=3=3

전호인 2006-09-0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천재이져, 아마 엄마도 천재일 것 같아여.
그러게 말입니다. 분명히 읽고 좋겠다 싶어 퍼왔다라고 생각했었는 데 없는 것 같아서 다시 들어가서 퍼왔지 뭐에여 건망증이 나타나나........흐음 서글퍼지네 갑자기!

비자림 2006-09-0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깟일로 서글퍼지면 어떻게 해욧?
전호인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어디서 많이 들어 본 노래?)
우리 모두 건망증 조금씩 있걸랑요~~~~~~~~~~~~~

전호인 2006-09-0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고럼고럼! ㅎㅎㅎ
 

제가 좋아하는 팝페라가수 임형주군의 성장기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머니투데이에 난 기사를 카피해서 올립니다.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은 분명 부모의 몫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꿈은 아이가 스스로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어렵게 꾸게된 꿈을 부모의 관점에서 헛된 꿈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그들이 가진 꿈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머니투데이 송복규기자]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여섯 살 되던 1992년. 어머니 김민호씨는 세계지도가 그려진 벽지를 어렵게 구해 형주 방 한쪽 벽면을 도배한다.

그리고 세계지도로 가득 메워진 벽 앞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다정히 대화를 나눈다. "
형주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세월이 흘러 여섯 살 꼬마 아이는 스무 살 청년이 됐다. 그는 십여년 전 자신이 말한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돼 있다.

"엄마는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음악가의 꿈을 꿀 수있도록 불을 붙여준 사람도, 도전하는 의지를 북돋워 준 사람도 바로 엄마였어요."

팝페라 테너 임형주(20)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두 어머니의 사랑과 노력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한계를 느낄 때마다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엄마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

평범한 스무 살 청년으로 안주했을지 모를 임형주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낸 어머니 김민호(48)씨를 만났다. '특별한 교육법'이 없다며 손사래부터 치는 그녀를 졸라 20년간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을 들어봤다.

◇자녀는 로봇이 아니다
="형주는 2.4㎏ 칠삭둥이로 태어났어요. 폐가 덜 자라 갓 태어나서 제대로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했죠."
 김씨는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다 석달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또 올렸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눴던 대화도 다시 시작했다. 알아듣든 말든 말을 걸고 또 걸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도 많이 들려줬다. 기도 덕분인지, 대화와 음악 덕분인지 칠삭둥이 임형주는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줬다.

지금도 여성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임형주는 어릴때부터 여성스러운 면모가 많았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한 자리에 서너시간씩 앉아 있었고 장난감 총이나 자동차보다는 바비인형을 더 좋아했다. 한글을 떼면서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를 끼고 살았다.

"아들이 아니라 딸을 키운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걱정도 됐어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성향이 다른 형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고난 감성을 더 키워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임형주를 위해 아파트 베란다에 채소밭을 만들어 직접 가꾸게 했고 틈이 날 때마다 산으로 들로 여행을 다녔다. 수학이나 영어 과외공부 대신 음악회와 전시회를 챙겼다.

스케치북을 사러 가서 겉 표지를 놓고 고민하는 임형주에게 몇 권이 됐든 사고 싶다는 만큼 사줬다. 몇 백원짜리 스케치북 때문에 아이에게 한계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안 돼", "그렇게 하면 못 써" 등 감성을 닫고, 한계를 느끼게하는 표현은 가급적 자제했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키웠다.

임형주가 처음 노래를 하겠다고 했을 때 김씨는 깜짝 놀랐다. 그리기와 글짓기를 워낙 잘 해 화가나 작가의 길을 가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 노래를 하게 될 줄을 몰랐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노래를 하겠다며 예원학교 원서를 들고 왔더라구요. 레슨도 한번 안받았는데 입학할 수 있을까 사실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아이 뜻을 꺾고 싶지 않아 도전해보라고 했습니다."

임형주는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모이는 특수목적 학교인 예원학교에 입학했다. 김씨는 "노래 연습해라", "공부해라" 등 잔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임형주는 수석으로 졸업했다. 관심이 없는 수학, 과학 등 과목은 낙제를 면하는 정도였지만 음악 과목에선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냉정한 보살핌'으로 독립심 키웠다
=김씨는 어린 임형주의 의견을 존중하는 대신독립심을 강조했다. 네 뜻대로 하되 그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형주는 9살때 6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처음엔 둘이서 갈수 있다더니 공항에 도착하자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자신이 한 번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고 비행기에 태웠습니다."
 한 달간의 호주여행에서 자신감을 얻은 임형주는 이후 세계 곳곳을 혼자 누비고 다녔다. 방학이 다가오면 스스로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여행 일정을 짤 정도였다.

음악 콩쿠르하면 멋진 턱시도, 드레스를 차려 입은 참가자와 꽃다발을 든 가족들이그려지기 마련이다. 임형주는 학창시절 내내 무수히 많은 경연대회에 참가해 상을 휩쓸었지만 김씨는 그 자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무슨 무슨 콩쿠르다, 경연대회다 호들갑스럽게 찾아다며 부담주고 싶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뽐내는 자리가 따로 있나요. 어떤 자리에서든 자신의 감정을 실어서최선을 다해 노래하면 되는거죠."

임형주는 중학교 졸업 즈음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에 가겠다고 결정했다. 이메일과 우편 등을 통해 입학원서부터 시험일정, 비행기표까지 스스로 준비했다. 물론 시험도 혼자 보러 갔다.

줄리아드 예비학교 입학 후 하숙집도 임형주가 직접 구했다. 김씨가 임형주의 미국집을 찾은 것은 예비학교 입학 후 2년이 지나서다.

"하숙집이 반 지하인데 감옥처럼 어둡더라구요. 손바닥 만한 창문으로 빛이 새 들어오는데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습니다. 악보고 옷이고 곰팡이가 안 난 곳이 없더라구요."

김씨는 생활비를 넉넉히 보낸다고 보냈는데 임형주가 그 돈을 아껴둔 것이다. 혼자떨어져 지내는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무조건 돈을 모았뒀다고.

현재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임형주는 음반 작업도 알아서 한다. 선곡부터프로듀서, 자켓 디자인까지 음반 제작 전 과정을 스스로 챙긴다. 각 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공연도 철저히 본인의 의사대로 진행한다.

◇인생의 최고 덕목은 '겸손과 나눔
'=아들의 의견을 100% 수용해 준 김씨가 임형주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겸손과 나눔이다. 그래서인지 임형주는 어디서든 예의바르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요리와 쇼핑을 좋아해 어머니가 장에 갈 때면 옷을 먼저 차려입고 나선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아주머니 팬들을 만나면 한 명, 한 명에게 악수하며 공들여 인사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체되도 그들의 넋두리를 모두 들어준다.

외국에서 공부하다 방학 때 한국에 돌아오면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를 일부러 찾아가인사한다. 함께 다니는 경호원들과도 식사를 따로하는 법이 없다. 자장면이든, 돈까스든 같은 메뉴를 자청한다.

임형주는 중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상금을 타면 그 금액이 많든, 적든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내놨다. 작년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도 맡았다. 여러 단체에서 요청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하다 정말 홍보대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시작한 일이다. 최근엔 폭우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을 위해 자선 공연을 펼쳤고 바자회에도 참여해 직접 물건도 팔았다.

앞으로 음악전문 잡지를 창간하고 공연 전용 극장을 세워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싶다는 꿈 많은 스무 살 임형주. 그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어머니가 있기에 오늘도 그의 꿈은 현실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1986년 서울 태생으로 예원학교와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산펠리체 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스타덤에 올랐고 남성 성악가로는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2003년 출시한 데뷔 앨범 '샐리가든'을 비롯해 '실버 레인' '미스티 문' '더 로터스' 등 내놓는 음반마다 대박을 터뜨려 2003년 이후 3년 연속 클래식부문 음반판매 1위에 올랐다. 중성적인 외모와 목소리,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 변주가 매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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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책 2006-08-1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형주,,,여성스럽다고 느끼긴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랬군요...울아들도 8개월 반만에 태어난지라 남 얘기 같지가 않아요. 폐 걱정 했거든요. 그래도 성악을 하는 임형주라니....스케치북 이야기는 저랑 완전 반대에요. 너무 풍족하면 안된다는게 제 주장이거든요...그런데 저렇게 한계가 되기도 하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해요^^

하늘바람 2006-08-1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아주 대단하네요 9살때 동생을 데리고 호주 여행이라 오 얼마나 걱정되었을까요

마노아 2006-08-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어머니세요. 팔삭둥이로 태어난 저는 여전히 폐가 안 좋고 노래도 못하는데..ㅡ.ㅡ;;;;

똘이맘, 또또맘 2006-08-1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훌륭한 어머니...그 어머니의 그 아들답게 임형주씨도 본받을 만한 가치관을 가진 젊은이군요. 음반을 사서 들은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까지 드네용

아영엄마 2006-08-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9살에 동생을 데리고 외국여행을 했다는 것에 놀랍니다. 음... 저는 몇 백원때문에 자주 아이들에게 한계를 주는 부모인데... 쩝~

비자림 2006-08-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현실 속의 나는 "안돼"라는 말을 자꾸 하는 것 같아요.
반성하며 퍼 가옵나이당

전호인 2006-08-1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책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못하는 부분만 지적한다고 합니다. 잘하는 부분을 끄집어내서 칭찬한다면 우리들의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늘바람님,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항상 그들보다 훌륭하신 어머님이 계시더군여. 부모님의 역할은 이렇게 중요한 가 봅니다. 정말 대단하죠, 9살에 호주여행을 보낼 수 있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 까여?

마노아님, 어이구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분이 아니신가여? 어떻게 태어난 것 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님은 열심히 사시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또또맘님, 한결같이 저의 서재를 빛내주시는 님! 임형주군의 노래를 듣노라면 입안에 저절로 꿀이 생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어찌나 감미로운 천상의 소리를 가지고 있는 지 너무 좋아하게 되더라구여. 허걱~! 그렇다고, 호모는 아니랍니다. ㅎㅎ

야영엄마님, ㅎㅎㅎ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을 까 합니다. 당장의 아쉬움으로 인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요 뭐, 9살에 보낸다는 것이 보통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대단합니다.

비자림님, 님만이 반성해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반성하게 되는 글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무릎꿇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예에~~ 뭐라고라 반성문 까정 쓰라고라, 아이고 고마 쬐끔만 봐주이소 다신 안그럴께라!!!!! ㅎㅎㅎㅎ

해리포터7 2006-08-1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모님의 교육관이 인상깊네요.. 그래서 임형주의 목소리가 그렇게 청아하게 들렸을까요? 정말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라는 느낌을 받은적은 임형주노래를 들었을때가 처음이에요!저도 저나름대로의 주관으로 아이를 키우기에 매진해야겠어요..하지만 안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정말 본받을 만합니다^^감사히 퍼갈께요!

씩씩하니 2006-08-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말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아이한테 가장 많이 하는 소리 중에 하나가 '안돼'인거 같은 생각이...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사람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도 바로 엄마인 내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지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잖아요.,.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함께 나눠야한다고 강요하기 보다는 우선 제 역할에 충실해야겠어요..
흠....늘 좋은 정보,,,,감사해요~~

전호인 2006-08-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잘하고 계시쟎습니까 누구보다도.... 아하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라는 님의 표현에 공감합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을까 대단하십니다. 정말 천상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저두 이 친구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안돼"라고 하기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씩씩하니님, 정말 누구못쟎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계시는 분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뭐 아내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있지만.....저두 간혹 아이들의 일에 초를 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많이 자유롭게 하는 것 같은 데도 막상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듯 하니까여. 우리모두 반성합시다. 무릎도 꿇어야 하나. 에고~!

2006-08-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6-08-1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임형주씨 몇번 보고 음악만 몇 번 들어봤는데, 이런 사람이었군요. 신기하네요. 저도 애 낳고 싶어요 ㅎㅎ :)

전호인 2006-08-14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님, 초지일관! 초심으로 돌아가면 될 듯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고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나다 보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또한 그런 것이 아닐 까 합니다.

기인님, 반갑습니다. 저의 서재에 처음와 주시는 분인 것 같군여. 다른 님들의 서재에서는 간혹 뵌 기억들도 있구. ㅎㅎㅎ 남자분이시져.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역할(?)을 해얄 것 같은 이 기분! 어떻게 해야 님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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