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이 될 해람(본명 근표)의 이야기다.
아빠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녀석은 어린 나이에 비하여 자기관리가 철저한 아이다. 해람이의 책상머리에는 자기가 스스로 작성해서 붙여놓은 시간계획표가 있다. 대부분이 방학이 되면 추억의 둥근 시간표를 세분화하여 작성하는 데 비해 이 녀석은 평상시에도 계획표 대로 실천을 한다. 요즘은 방학중의 계획표가 예쁘게 만들어져 붙여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생활한다.
이 녀석의 기상시간은 매일 7시 10분이다. 아직은 어린나이라서 스스로 일어나진 못하는 관계로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옆지기에게 기상시간을 알려주고 깨워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는다. 혹시라도 아내가 깜빡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깨우면 신경질을 내곤 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아무리 재미있는 TV프로가 있다 하더라도 공부할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자기의 방으로 사라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기 때문에 옆에서 바라보는 아빠로서도 이 녀석이 무서울 정도다. 승부욕도 대단하다.
지난학기의 성적이 전과목에서 4개만을 틀렸으며,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4개미만으로 틀린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우리에게 자랑까지 했는 데, 성적표가 나왔을 때 확인을 하니 3개만을 틀린 친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반에서 1등을 빼앗기게 되었고, 집에는 거짓을 한 꼴이 되다보니 집에 오자마자 자기방에서 많이 울었고, 아내가 물어보니 위와 같은 내용이더란다.
해람이가 튼튼영어라든지 학습지를 신청해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다니는 학원이 피아노이다.
가끔 자기도 다른 아이들처럼 수학학원 등을 보내달라고 때를 쓰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지금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에 학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이 녀석은 그 날 수학시험을 보았는 데 1~2개를 틀렸기 때문에 학원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이 녀석의 욕심을 알만하지 않을까?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작년 가을부터 학원원장으로부터 피아노전공에 대하여 면담을 해보자는 요청이 오곤 했지만 옆지기가 거절했는 데, 급기야 지난 주 원장이 직접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다.
원장의 말을 빌면 보통아이들의 경우 1시간 정도 피아노를 치라고 하면 억지로 치긴한단다. 그런데 해람이는 보통아이들과는 달리 몰입을 해서 너무 진지하게 치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단다. 그래서 몇번을 시간 제한을 하지 않고 관찰을 해 보았더니 3시간을 넘겨 치는 일이 많더란다. 이렇다보니 학원의 피아노 선생님들에게 해람이의 재능을 관찰하게 했고, 자체 회의까지 거쳐 가능성 여부를 검토한 결과 긍정적인 확신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해람이에게 피아노를 체계적으로 가르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우리에게 재능을 키워보고 싶다는 건의를 하게 되었단다.
나는 항상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지원하자는 생각이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옆지기는 나와의 상의보다 해람이에게 피아노를 할 경우 어렵고 힘든 점, 다른 공부와의 문제점 등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며, 단순히 취미정도로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포기하도록 유도를 했었고, 해람이는 끝까지 전공하고 싶다는 의견을 꺽지 않더란다.
엊그제 아내와의 상의를 거쳐 해람이의 피아노 전공을 전격 결정하게 되었고, 급기야 오늘 원장과의 추가적인 면담을 통해 피아노전공에 따른 여러가지 일에 대하여 상담을 하고 왔다는 전화가 왔다. 원장은 해람이가 명석하다는 점, 어린나이에 비해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보통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학습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점 때문에 전공을 권유하게 된 것이고,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는 얘기란다.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면, 우선 금전적인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 지금보다 무대에 올리는 일이 늘어난다는 점, 일주일에 한번씩은 원장에게 특별지도를 받아야 하고, 매일 피아노 치는 시간이 1~2시간 정도 늘어남으로 인해 다른 공부에 약간은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이다.
추가적인 금전적인 부담이야 내가 해결하면 되는 것이라서 문제될 것은 없지만 대부분이 해람이가 극복해야 할 점들이기에 그동안 전공결정을 망설였던 것이다.
문제점이 있는 데도 성공여부를 떠나 전공을 결정하게 된 것은 해람이를 믿기 때문이다.
특히 승부욕이 강하고 자기관리가 가능한 아이라서 본인이 극복해야 할 점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결정하게 되었다.
해람이가 지금처럼만 한다면 하루 추가적인 1~2시간과 일주일 1회공부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예쁜 딸, 해람이 홧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