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독일기 : 잠명편 -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마라
이지누 지음 / 호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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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선인들의 글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글을 접하더라도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면 헛된 일이 되고 만다. 글을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해석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이번에 관독일기를 읽으면서 그 분들의 글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번역한 글과 한문을 연결시켜 보아도 한문의 음조차 읽기 어려운 데 사상가들이 전하고자 하는 속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관독일기'에는 장유, 신흠, 김집, 이규보, 안정복, 조익, 이식, 윤휴, 허균 등 당대의 사상가이자 선비들이 마음을 씻고(洗心結) 수양에 정진하거나 바른 마음을 견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문장들이다. 어느 문장하나라도 마음에 닿지 않는 것이 없다. 한문의 음조차 떼기도 어려운 데 그분들이 전하고자 했던 마음의 수양에 관한 글을 속 시원히 풀어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아는 한학은 깊은 학문이며, 그런 글을 읽고 쓰는 분들은 엄청난 학식과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을 종종 느낀다. 짧은 글귀에 온갖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독일기를 통해 선인들의 글을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관독일기는 그야말로 알라디너들이 올리는 리뷰와 같다 할 것이다. 선인들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글쓴이의 마음과 연결시켜 놓았다. 특히 이번의 관독일기는 글쓴이가 선인들의 글중 잠명(箴銘)을 골라 읽은 것에 대한 일기이다. 잠과 명에는 마음을 곧추세우고자 하는 당대 사상가들의 철학이 묻어 있다.

'잠箴'은 바늘, 곧, 침鍼에서 가져온 말이다. 침이란 병든 곳을 치유하거나 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인 만큼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을 '잠'이라고 했다. 또 '명'이란 자신의 곁에 두고 있는 물건들을 면밀히 살펴 그 이름과 용처를 정확히 이해한 뒤에 그 기물에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을 말한다.

맑고 투명하고자 했던 성품에 대한 글, 반듯한 행동을 통해 선비의 곧은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품위있고 가볍지 않으려는 의지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오늘날과 시대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분들이 전하는 글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려 정갈하고 흐트러짐 없이 살고자 했던 선인들의 마음만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시대가 달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마음가짐이며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음인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옥편을 찾아 가면서라도 한자의 음을 익히고 해석된 글을 연결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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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2-1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관독일기 보셨군요~ 좋지요.^^
올초에 서재 이미지로 이 책을 두달이나 걸었었는데...

전호인 2009-12-21 10:31   좋아요 0 | URL
네에~~!ㅋㅋ
선인들의 글을 읽을 때면 늘 맑아지는 몸과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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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期一會(일기일회) "
표제의 글은 법정스님의 친필이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을 뜻하는 말이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평생에 단 한번의 만남이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한번뿐인 인연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이의 마음속 영적스승인 법정스님이 그의 법문을 모아만든 최초의 법문집이다. 그 분의 글을 마주하면 복잡한 마음이 정화되고 흐렸던 영혼이 맑아짐을 느낀다. 또한 실천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이들에게 삶의 방식을 제시해준다.

법정스님의 화두는 늘 삶을 이야기한다. 왜 살아가야 하는 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진리가 그분의 글에 있다. 오늘날 복잡한 세계속에 어지럽게 묻혀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산속에서 느끼는 맑은 공기와 정갈한 물이 되어 준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맑은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이기에 그 실천하는 정신이 너무 존경스럽기도 하다. 스님으로서 수도정진하는 것을 삶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분이 이글을 보신다면 스님을 빛나게 한다는 표현이 탐탁치 않다고 꾸지람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 마음인 것을 어쩌겠는가.

삶이 무엇인가 의문을 갖을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현재 주어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머리아프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단순한 진리를 안내하여 깨닫게 하는 그분 특유의 마음이 녹아 있다.

영혼을 정화시켜주시는 스님의 말한마디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에 삶이 고단하거나 복잡할 때 혜안이 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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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1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인님 요즘 참 뜸하십니다. 바쁜 일 있으신가요? 알라딘에 애정이 식으셨나요? ㅎㅎ
무소유 참 뜻깊게 읽었는데 같은 맥락일듯 합니다. 채우지 않는 것, 산속에서 느끼는 맑은 공기...생각만으로도 행복해 집니다.

전호인 2009-12-02 18:02   좋아요 0 | URL
애정은 늘 뜨겁답니다.
다만, 댓글달아주기를 거의 못하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뭐 정기적(?)으로 리뷰는 꾸준히 올리고는 있습니다.
이분의 글은 늘 맑은 영혼으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
미모로운 세실님!
쌩유^*^

순오기 2009-12-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축하해요~ 충분한 우수리뷰에요.
제가 바로가기로 설정해놨어요.^^

전호인 2009-12-21 10:37   좋아요 0 | URL
네네~~!
너무 고맙습니다. 헤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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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그리움의 고통을 넘어 전 생애가 되어 버린 나흘간의 사랑"  

젊은 날의 꿈을 가슴속에 묻어 둔 채 평범하게 살아가던 프란체스카에게 찾아온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작가 킨케이드.
잃어버린 열정과 다시 춤출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 주는 그들의 짧고도 강렬한 사랑이야기이다.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사랑!
애절하고 눈물나게 슬픈 사랑!
그리고
두사람의 진솔하고 절제된 사랑.!
영원히 간직한 애틋한 이룰 수 없는 사랑!
서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야 다시 만날 수 있는 혼같은 사랑!

프란체스카가 유서로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에 그들의 진솔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녹아있다.  
이 소설 또한 이 편지를 기초로 쓰여지게 된 것이다. 

1995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 보낸 것이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꼭 감상하고 싶은 데 볼 수 있는 방법을 아무리 찾아도 해답이 없다.

이 영화 볼 수 있는 방법 알고 계신 분은 알려주세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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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과 마이클에게

지금은 몸이 아주 좋지만, 이제 내 일을 정리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너희가 알아야 할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거란다.

금고를 뒤져서 1965년 소인이 찍힌 나에게 온 커다란 마닐라 봉투를 발견한 후 너희가 이 편지를 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부엌의 낡은 식탁에 앉아서 이 편지를 읽도록 해라. 너희는 내가 왜 그런 요청을 하는지 곧 이해하게 될 게다.

이 편지를 내 자식들에게 쓰는 것이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니고 죽기에는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 여기 있단다.그리고 너희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 알려면 모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알려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단다. 마음을단단히 먹어라 

벌써 알았겠지만 그의 이름은 로버트 킨게이드였단다.중간 이름자의 이니셜은"L"이었는 데. 어떤 이름의약자였는 지는 나도 몰랐지. 그는 사진작가였고, 1965년 지붕있는 다리를 찍으러 여기 왔단다.

그 사진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났을 때, 이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했는 지 기억해 봐라. 또 내가 그 시기부터 그 잡지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도 아마 생각 날 거다. 이제 너희도 알았겠지. 내가 갑자기 그 잡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를. 그런데 시더 다리 사진을 찍을 때는 나도 그와 함께 있었단다.

이해해 주렴. 난 너희들의 아버지 또한 사랑했다는 것을. 열광적인 그런 사랑은 비록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도 그걸 알았고, 지금도 그걸 알고 있단다. 그이는 내개 잘해 주었고, 내게는 보석 같은 너희를 주었지. 그 점을 잊지 말아라. 

하지만 로버트 킨케이드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어. 내가 평생토록 보지도, 듣지도, 어디서 읽어 보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이었지. 너희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무엇보다도 너희는 내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가 진화의 막다른 가지에 다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면 너희도 그의 주위를 맴돌 수 밖에 없었을 게야. 어쩌면 내 노트들과 잡기 스크랩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들로는 충분하지 않을 게다.

어떤 면에서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점이야. 나는 늘 그를 유성 꼬리 위헤 탄 표범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지. 그는 그런 식으로 움직였고, 그의 몸은 꼭 그랬단다. 그는 따스하고 친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애매하지만 비극적인 분위기가 풍겼지. 그는 컴퓨터와 로봇이 판을 치는 조직화된 세상에서 스스로 낙오되고 있다고 느꼈단다. 그는 자신을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지막 카우보이 가운데 하나로 보았고 자신을 구식이라고 생각했지.

그라 차를 세우고 로즈먼 다리까지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나는 그를 처음 보았지. 아버지와 너희 둘은 일리노이 주 박람회에 갔을 때였어. 내 말을 믿어 주렴. 모험심이 발동해서 그를 쫓아다닌 것은 결코 아니었어. 하지만 그를 본 지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난 그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지. 내가 나중에 그를 원하게 된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러니 제발 그를 시골 여자들을 희롱하고 돌아다니는 카사노바쯤으로는 생각하지 말렴.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단다. 사실 그는 약간 수줍어했어.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 사람 탓이 아니야. 나에게도 절반은 책임이 있어. 사실은 내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도 몰라. 그의 팔찌에 달린 쪽지는 우리가 처음 만나 다음 날 아침 그가 볼 수 있도록 내가 로즈먼 다리에 붙여놓은 것이란다. 그가 찍은 내 사진을 제외하며 그 쪽지야말로 내가 살아 있는 인물이라는 유일한 증거물이었어. 그 사람은 내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로 그렇게도 오랜 세월 동안 쪽지를 간직해 왔단다.

자식들이란 부모를 섹스와는 관계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간 너희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를 바라며, 너희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집의 낡은 부엌에서 로버트와 나는 몇시간을 함께 보냈지. 우린 이야기하고 촛불을 켜고 춤을 추었어. 그래 우린 거기서 사랑을 나누었고, 침실에서, 초원의 잔디 위에서도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곳에서도 사랑을 나우었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강인한, 탁월한 사랑의 행위였어. 며칠간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되었지. 그에 대해 생각하면 "강인하다"란 말을 언제나 떠올리게 되지. 적어도 우리가 만났을 당시에는 그랬어.

그의 강렬함은 화살 같았지 그가 내게 사랑을 해줄 때면 나는 그냥 무기력해졌지. 나약해진 건 아니었어.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 그냥, 글쎄, 그의 강렬한 감정과 육체적인 힘에 압도되었다고 할까. 내가 그 말을 그에게 속삭였던디 그는 무심코 이렇게 말하더구나. "나는 고속도로고, 유랑자고, 바다로 가는 돛단배요"라고.

나는 나중에 사전을 찾아봤지. '유랑자(peregrine)'란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처음 생각하는 것은 매지. 하지만 그단어에는 다른 뜻이 있고,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하나는 '외국인, 외래인'리라는 뜻이고 '방랑하거나 떠돌아다니거나 헤매다니는'이란 뜻도 있지. 어원은 라틴어 'peregrinus'인데 그것은 이방인을 뜻한단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지닌 사람이었어. 이방인, 더 일반적인 의미로는 외래인, 방랑자, 그리고이제 생각해 보면 매와 같은 사람이기도 했지.

얘들아, 내가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렴. 나는 다만 언젠가 너희들도 내가 경험한 것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란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구나. 이렇게 문명화된 세상에서 로버트 킨케이드가 지녔던 것 같은 특별한 힘에 사로잡힐 여자가 어디 있겠니.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 그러니까 마이클, 너는 안되겠다. 캐롤린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람 한 명뿐이지 더는 없다는 나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아 안됐구나.

너희 아버지와 너희 둘이 아니었다면 나는 곧장 어디든 그와 함께 떠났을 게야. 그는 내게 가자고 부탁했지. 거의 간청하다시피 했단다. 하지만 나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고 그는 너무나 민감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스타일이어서 그 후로는 우리 생활에 끼어들 수가 없었지.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나흘동안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나는 한 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단다. 그가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을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느낄수 있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 

하지만 구런 것이 너희 둘이나 너희 아버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무엇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단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자신할 수 가 없어.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단다. 

난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너희에게도 정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정직하자고 몇번이나 다짐해 보아도 이것만은 진실일 것 같아. 우리 둘이 함께지은 '사랑의 집'에 대해 로버트가 나보다 저 잘 이해했다는 것. 나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점차 그 상징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단다. 그가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가자고 청했을 때 내가 그 점을 이해했다면 아마 나는 그와 함께 떠났을 게야. 

로버트는 이 세상이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되어서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지.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너무 이성적이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곤 한단다. 

너희로서는 장례절차에 대한 내 요구가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믿는다.어쩌면 머리가 맑지 않은 노인네의 요구라고 생각했을 지도 몰라. 1982년 시애틀의 변호사가 보낸 편지와 내공책을 읽을면 내가 그런 요구를 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게다.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 

리처드는 그가 다다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 때로는 그가, 화장대에 숨겨 놓은 마닐라 봉투를 몰래 본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어. 그이가 죽기 직전, 내가 디모인의 병원의 침상 곁에 앉아 있을 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어. "프란체스카, 당신에게는 당신 만의 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미안하오, 당신에게 꿈을 심어 주지 못해서." 우리가 함께 살았던 생애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지. 

너희에게 죄책감이나 연민이나 그런 것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 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란다. 다만 너희가 알기를 바랄 뿐이야. 내가 로버투 킨케이드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를. 그가 그랬듯이, 나는 그 사랑의 감정을 오랜 세월 동안 날이면 날마다 지니고 살았단다. 

두번 다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우린 두사람이 뭉칠 수 있는 최대한의 강도록 굳게 맺어져 있었지. 이런 걸 충분히 표현할 만한 말을 찾을 수가 없구나. 우리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고 우리 두 사람에 의해 제3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그이가 말했을 때가 최고 절정이었지. 우리 둘 다, 그 제3의 존재에서 떨어져 존재한 적은 없어. 하지만 우리가 만든 하나의 존재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지. 

캐롤린, 전에 내 옷장에 있는 밝은 핑크색 원피스를 놓고 우리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니? 너는 그것을 입어 보고 싶어했지. 내가 그걸 입은 걸 본 기억이 없다면서. 그러니까 네게 맞기만 한다면 넘겨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어. 그 원피스는 그 시절에 대한 나만의 작고 바보스런 추억이었어. 그래서 다시는 입지 않았고, 네가 입어 보는 것도 거절했지. 

1965년 로버트가 떠난 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의 가족사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며칠 안되는 시간 동안 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다 알았지. 그는 외아들이었고, 양친이 다 죽었고, 오하이오의 어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 

그가 대학에 다녔는 지, 고등학교에 다녔는지도 확실히 모르지만 그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이고 거의 신비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 아, 그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 사진 작가로 참가했지. 남태평양에서, 해군으로. 

그는 한 번 결혼하고 이혼했는데, 나와 만나기 오래 전이었지. 아이는 없었어. 그의 아내는 음악가였는 데, 포크싱어라던가. 그가 촬영 여행때문에 오래 집을 비우는 것이 결혼 생활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더구나. 그는 파경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지. 

내가 아는 바로는 로버트에게 다른 가족은 없었어. 너희에게 부탁한다. 그를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자고. 처음에는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가족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이 있었지. 하지만 로버트는 혼자였단다.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 

나는존슨 가족 안에 이 모든 것이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구나. 리처드에 대한 기억과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너희판단에 맡기긴 하겠지만.  

어찌됐든,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와 내가 함께 나눈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야. 오랜 세월에 걸쳐 그를 절실하게 사랑했지만, 내 쪽에서 그에게 연락하려고 애썼던 것은 딱 한 차례뿐이었어.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어. 시도는 실패했고,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걱정스러웠어. 그런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연락하려고 애쓰지 않았지. 현실과 마주할 수가 없더구나. 그러니 1982년, 변화사의 편지와 소포가 왔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이젠 너희도 상상할 수 있겠지. 

말했듯이, 너희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한 일도 사랑해야 하는 거야. 

로버트 킨케이드는 대부분의, 아니 모든 여자가 경험하지 못할 방식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어. 여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는 멋지고 따스한 사람이었고, 분명히 너희의 존경과 사랑을 맏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다. 너희가 그에게 존경과 사랑을 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는 나를 통해, 그 사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너희에게 잘해 주었으니까. 

잘 지내거라, 내 아이들아.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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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3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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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용기있는 대통령, 권력을 국민에게 나누어 준 대통령,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소탈한 한 시민으로 살고 싶은 대통령을 잃었다.

그분이 우리에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다. 

자기 삶을 떠나서 자기의 직분이었던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중 자기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의 잘못된 것을 버리라고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고 기회주의만 판을 치는 오늘의 정치판을 보내라면 그분의 진정성에 다시한번 숙연해 짐을 느낀다.

평범한 국민이었던 노무현, 변호사로서 약한자와 정의에 편에서 일했던 노무현, 국회의원으로서 노동현장의 애환을 함께 어루만져 주었던 노무현 그리고 막혔던 속이 뻥 뚫어지는 듯한 시원함을 선사해 주었던 5공 청문회장에서의 노무현, 지역주의의 타파를 위해 스스로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국회의원과 부산시장 후보시절의 노무현, 김영삼대통령으로 인해 정치권의 도덕과 정체성이 상실되고 기회주의가 팽배했던 정치인들에게 정의와 정치철학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줌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해주었던 노무현,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그의 국정운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참여정부시절의 노무현 그후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사람사는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던 노무현. 이 책을 통해 여러명의 노무현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땅에 없다. 그의 정신만이 남아있을뿐이다.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어 안타깝지만 미약하나마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음이 다행이다. 좀 더 우리 곁에 남아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 나라는 그가 시민으로 살고 싶었던 작은 소망마저도 빼앗아 버렸다.

늘 정의와 함께 했던 그였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분은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역사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고 하고 싶다.
그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귀라서 발췌해 보았다.

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

"큰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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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1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흔적 남겨요~ 이책은 꼭 사서 봐야겠네요.
요즘 읽고 있는 책, 교수대 위의 까치~~ ^^
관독일기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읽었고요.

전호인 2009-11-18 10:27   좋아요 0 | URL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대 위의 까치 읽고 계시군요, 저는 바라만 보고 있답니다.ㅋㅋ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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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은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본문중에서-

법정스님의 글은 부담을 주지 않아 좋다. 마음의 부담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깨끗함을 가져다주는 매력이 있다. 이 책 또한 마음을 맑아지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극단적인 단절, 죽음에 이르러 삶을 정리하거나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뒤돌아서 생각하기 보다는 찰나의 순간을 그 순간순간에 마음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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