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자서전을 씁시다 - 글쓰기로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는 법
안정효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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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작가님 책은 『멋진 신세계』번역만 읽어 봤을 뿐이었다. 아,  『안정효의 오역 사전』을 구입한 적이 있다. 사전을 엮으셨다니 놀라워서 읽어보려 했지만 사전은 예상외로(?) 재미가 없었고 중고 서점에 되팔았다. 어쨌든 책날개와 인터넷 서점 리뷰에서 그분의 명성을 익히 읽었다. '영원한 현역'이라 불리시는, 영문이든 한글이든 글쓰기라면 이미 대가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라고. 2006년 창작 지침서 『글쓰기 만보』를 내셨고,  올해 두 번째 글쓰기 책인 『자서전을 씁시다』가 나왔다. 

 

"바쁘게 살아가느라고 전혀 의식조차 못 하는 사이에 자기 인생에서 알맹이가 사라졌음을 느닷없이 깨닫고 고민하는 시기에 사람들은 실종된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어 한다. (...) 그런 순간에 도박이나 불륜이나 답답한 관광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보람을 가져다주는 안식처가 글쓰기, 특히 자신에 관한 글쓰기다. (p.12)"

 

자서전을 쓰고 싶어 저자를 찾아왔던 약사 동창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앞 백여 페이지는 평범한 당신이라도 '자서전을 쓰면 좋다!'는 권유와 설득이 이어진다. 거의 '뽐뿌질' 수준이라 역시 필력이 대단하시다고 느꼈다.

 

다음은 글감 모으기와 글쓰기의 실제 스킬,  다양한 예시 작품이다. 특별하지 않은 글감이라도 남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섬세한 여러 가지 기교를 소개하고, 책은 물론 여러 영화를 예로 든다. 많은 책을 읽어낼 여건이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다. 그래도 이왕 참고하려면 대가의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 (파스테르나크가 쓴 싯구를 인용하는 건 독자를 좌절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소설과 영화 해석을 읽는 재미는 덤.

 

뒷부분엔 줄거리에 의미를 얻는 기법을 공부한다. 갖가지 사건이 내 인생에 갖는 의미는? '기승전결을 갖추며 줄거리에 공감과 감동의 뒷맛을 담는 기술(p.218)'은 어떻게 얻는가? 관찰하고 꿰뚫어보려면 여행. 산책. 사색. 휴식이 필요하다. 퇴고법을 배우고 앞서 다룬 내용을 복습한다.

 

글쓰기 강좌 22강을 묶은 느낌, 시간을 들여 곱씹을 내용이 많은, 자서전 혹은 소설 집필 시 펼쳐놓고 내내 참고할 책이다. 일부 내용만 남긴다.

 

#무엇을쓸까  #글감모으기

 

* 자료를 같은 내용끼리 모아두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라. 자료 가공과 이합집산을 두려워하지 말라. 많은 자료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려면 나만의 자료 포도송이 관리법이 필요하다.

 

* 글에 자료를 중복 사용하는 황당한 잘못을 하지 않으려면 더욱 주의.

 

* 작중 인물을 변신시켜 극적인 줄거리를 만들자. 자서전은 독사진이 아니라 단체 사진이다. "주변 인물을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의미를 부여해라. 내가 주도해 온 사건과 상황의 나열로만 엮겠다 고집하지 않고 집단적인 자서전을 써서 영광을 여럿이서 기꺼이 나눌 여유를 보일 때 나 자신을 벗어나 주변 사람들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그러면 할 이야기가 그만큼 많아져서 글쓰기 또한 다채롭고 수월해진다. (p.95)"

 

* 구체적인 경험을 써라. "낡은 골판지 상자에 다민 헌 구두 한 켤레"처럼 낯익은 표현, 하찮은 물건에 얽힌 개인적인 일화, 감각적으로 익숙한 일상 체험의 소품과 상황은 듣는 즉시 가시적인 연상(visualization)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개념으로만 간접적으로 파악했던 다른 정보를 압도한다. 구체성의 극적인 효과 덕택이다. (p.148)"

 

 

#어떻게쓸까 #구성하기

 

* 이산의 서술법을 사용하라. 순서를 뒤집거나 육하원칙을 탈피할 용기를 갖추자. 일대기식으로 쓰기보다는 이야기를 토막 내고, 과감히 취사선택하고, 상념을 곁들이자.  " ... 글쓰기에서는 똑같은 정보와 똑같은 단어들일지언정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1-8-1이나 전결기승 구조로 배열 순서만 바꾸더라도 다양한 극적인 효과를 마련하기가 어렵지 않다. (p.139)"

 

* 단순한 연대기 형식보다는 주제나 인물 위주로 엮는 요령도 필요하다. 1에서 9까지를 순서대로 쓰는 것 말고, <67, 12345, 89>의 구성이나 <234, 19, 5678> 도 괜찮다.

 

* 기승전결을 다 쓸 시간이 없다면? 저자는 독일의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구스타프 프라이타크의 '포물선'을 소개한다. 프라이타크는 희곡을 구성하는 5단 피라미드 양식을 만들었다. 제시-상승-절정-하강 흐름 -대단원 이다. 서양 소설 작법에서는 우리나라 기승전결과 비슷한 '프라이타크 곡선'을 고전적인 지침으로 삼았다. "기교와 문장을 연마하기 어렵다면 표준에 따르는 것도 방법이다. (p.191)"

 

* 여행기 스타일로 전개하는 방법도 있다. 살아온 운명이나 인생과 타협하고 화해하는 귀소 유형의 줄거리, 길을 가는 줄거리 등  여행의 형식을 빌려 방랑 스타일로 써도 좋다. 여행은 왕복이나 편도 모두 가능.

 

* 바보들의 배 스타일도 있다. 서양 회화와 문학 중에는 '바보들의 배'라는 장치를 사용한 작품이 많다.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배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짓을 벌이는 인간 군상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자서전 집필을 공부하기 위해 스승으로 삼을 작가로 저자는 윌리엄 샤로안을 소개했다. 샤로얀은 '제한된 공간에 다양한 인물을 모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인간 희극』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같은 얼개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p.184) 주인공들이 여기저기 저리 떠돌아다니며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 주는 거다. 자서전도 비슷한 스타일로 써 볼 수 있다.

 

* 모은 글감에 깃발을 달아 줘야 작품으로 발전한다. 첫머리를 시작하는 '열어 주기' 깃발은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간결한 한두 가지 단면이면 된다. 평범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시작하면 무난하다. 도입부를 심각하게 준비할 필요 없다. 초벌 원고는 밑그림일 뿐이니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가다 보면 사건의 경중이 가려진다. 일단 깃발을 꽂고, 여기가 아니라면 뽑아서 다시 꽂으면 된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예고편 노릇을 하는 열어 주기와 오랜 여운을 남겨야 하는 끝내기(p.207)" 가 중요하다.

 

#줄거리 에 #의미부여하기 #퇴고하기

 

*  "자서전은 아름다운 추억들과 한 많은 기억들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마음의 회고전이다. (p.225)" 회고전 개최는 쉽지 않다. 준비가 필요하다.

 

 

* 글은 산행과 같아서 양적인 균형이 중요하다. "상승 구조가 계단처럼 지속적을 올라가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서 징검다리 쉼터를 제공하는 구조적인 방편을 수사법에서는 절정 꺾기(anticlimax)라고 한다. (p.233)" "징검다리 분산 배치는 규모가 큰 글쓰기에서 흔히 무거운 머리의 쏠림과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는 편리한 기능을 맡는다. (p.235)"

 

*"감정의 과잉 발산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비웃음이나 역겨움을 사기가 십상이다. 초벌 원고를 만들 때의 흥분 상태를 무자비하게 견제하는 냉정함을 갖추고 우리는 퇴고에 임해야 한다. (p.268)"

 

* "... '있다'와 '것'과 '수'처럼 흔한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불성실함은 글쓰기에서 가장 먼저 털어 버려야 할 심각한 악습이다. (p.263)" 적당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으면 반의어를 생각하자. "... 소설이나 비소설을 불문하고 서술문에서는 부사나 형용사보다 보통 명사와 동사가 많아야 탄력이 붙는다. 대화체가 거의 없는 산문이나 수필, 심지어는 명상록에서조차 기회가 보이는 대목마다 직접 화법을 동원하면 기나긴 무료함이 순간적이나마 잠깐 사라진다. (p.365)"

 

 

"거의 모든 글쓰기는 느리고 꾸준한 작업의 연속이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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