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여행, 색에 물들다
강미승 지음, 장성철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부터 색연필을 좋아했다. 아니, 색깔을 좋아했다. 현란한 빛깔(原色)보다는 은은함이 느껴지는 파스텔 톤의 색을 좋아한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나만의 색의 리듬으로 정리하기도 했고, 중학교 때 접은 천 마리의 거북이를 긴 원통형의 유리병에 색에 따라 층층이 구별하여 담기도 했다. 언젠가는 책꽂이를 가득 채운 책들을 장르별로 정리할까 제목 순으로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표지의 색상별로 정리한 적도 있다. 색(色)때문에 미술을 좋아했고,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관 나들이를 좋아하고 나아가 사진과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색으로 분류하다. 여행과 색을 함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 두 가지가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어느 책이든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졌다면 읽고 후회한 적은 없다. 여행, 색, 물들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의 풍차 그림에 형광빛 분홍색 굵은 띠가 눈이 부신다. 날짜와 장소를 불문하고 오직 색으로 사진을 분류하여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여느 여행책과 차별화된 이 책이 정말 예쁘고 매력적이다. 

저자와 비슷하게 나도 일반 사람들이 관심있게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사진기에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색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따분할 수도 있는 그것을 잠시나마의 추억으로 간직하고픈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 특별할 것도 없는 파랑 표지판을 찰칵, 누군가 밤새 마시고 모아두었을 투명 초록빛 술병을 찰칵, 진하고 강렬한 색상의 공중전화를 찰칵, 듬직한 주인집 아저씨의 숙소에서 분홍빛 열쇠를 찰칵. 

나도 그랬었다. 저자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여행한 곳은 그리스 한 나라뿐이었다는 것, 나는 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것. 크레타섬 하냐 항구의 쪽빛 바다, 크노소스 궁터의 뙤약볕 아래 상아색 모래, 영화에서나 보았던 높은 천장과 기다란 창문과 커튼이 있는 이라클리온 숙소의 은빛 낡은 열쇠, 달지 않은 초코 우유, 산토리니 음식점 니콜라스의 메뉴가 적힌 흑빛 칠판, 더운 날씨에 목마름을 달래준 빨간 음료, 코린트에서 마신 우유빛 우조와 기본 안주로 나온 노릇노릇 감자칩,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홍빛 수화기가 눈에 띈 공중전화 등. 열거하다보니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리움이 더해진다. 여행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색과 관련하여 찾아보니 내 여행 또한 색으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저자의 책만큼은 아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니 책을 보는 내내 보름간의 그리스 배낭여행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저자의 사진과 나의 여행 사진과 닮은 점이 꽤 많았던 것이다. 델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산토리니 신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랬고.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과 피레우스 항구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보름간 시커멓게 타버린 손등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길에서 만난 귀여운 삼남매를 몰래 촬영하기도 했고, 어두운 밤 주황빛 조명 아래 늦은 식사를 하기도 했다. 결국 내 여행 이야기로 빗나가긴 했지만 내게는 한번뿐이었던 그리스 여행을 <여행, 색에 물들다>로 인해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장의 사진미학 - 진동선의 사진 천천히 읽기
진동선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가장자리를 살짝 그을린 듯한 검은색의 표지가 깔끔하면서 분위기있고 왠지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누가 찍은 사진일까? 한 장의 사진일 뿐인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틀 안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최중원님의 <거울 속의 꽃병>, 밝은 조명을 한 화분의 꽃이 작가에게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여행기를 읽든지 사진이나 그림이 많은 책을 볼 때면 항상 그렇듯이 이 책도 사진부터 죽 훑어 보았다. 작가 미상의 <결혼식>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며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신부님 옆에 계신 분이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진 찍은 연도도 내가 태어난 다음 해여서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책을 들고 엄마에게 보여드리면서 엄마가 아닌지 물었더니 엄마도 남동생도 정말 비슷하다면서 웃는다. 

사진 작품은 하나 같이 멋지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는 조금 어려웠다. 사진에 숨은 이야기나 저자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해주는 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다만 사진 용어나 사진의 역사, 해석학 등 전문적인 내용이 내게 무겁게 느껴졌을 뿐이다.  

사진을 보고, 사진을 읽고, 사진을 느끼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르게 보일지라도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고픈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 사진이다.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사물이나 인물, 풍경을 향해 디지털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본 것이 전부지만 찍는 것과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는 말에 공감한다. 보는 대로 누를 수는 있지만 보이는 것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기는 어렵다. 아빠가 찍어주신 어릴 적 사진들이나 성인이 되어 여행하면서 찍은 풍경 사진들을 보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찍었다기보다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찍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진이라는 영역은 넓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 풀리는 여자 스타일
신영란(신새미) 지음 / 행복한발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사소한 예의가 인생을 잘 풀리게 만든다

어렸을 적에는 내성적이어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고 꾸중을 듣고는 했다. 크면서는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큰 목소리로 변해갔다. 목소리 작다는 말이 나름의 스트레스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는 크게 이야기한다. 큰 목소리에 화난 줄 아신 적도 많다. 말이든 행동이든 습관이다. 습관이지만 고치려고 노력하면 뭐든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 

풀리는 여자 스타일, 제목을 보고 끌리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나 스스로 '잘 풀리지 않아.'라고 생각한 적이 언제였던가. 학교 생활, 연애, 인간 관계, 사회 생활 등의 문제로 벌써 스물 다섯해가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고민, 걱정을 수도 없이 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별 탈 없이 지내온 걸 보면 내 인생이 순탄했다고 해야 하나. 책의 붉은 표지에서 주술적인 느낌이 났다. 읽고 나면 내 인생도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잘 풀리는 인생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좋아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벌써 답을 찾아버렸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던 걸까. 중고등학교 시절 소위 왕따라는 것의 심정을 한두번 느꼈을 때를 제외하고 누구나 나를 좋아해준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들께서도 좋게 봐주셨고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대학 시절에도 선배들에게 이쁨 받았고 후배들도 잘 따랐다. 졸업을 하고 학교에서 만난 인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누구나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들이 오래도록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는 건 쉽지 않다. 무슨 일이든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 관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화술, 인맥, 스타일, 매너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말 한마디도 신경써서 하고, 나 먼저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인간관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책에서도 인맥이나 매너 부분의 이야기가 쉽게 흡수되었다. '직장 여성들에겐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친구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년 넘게 일한 직장에 있는 대부분이 여자라는 점도 있지만 나이가 비슷하거나 10살까지 차이 나는 사람들과도 언니처럼 혹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편하게 느끼는 것 만으로 친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이 맞는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친구가 아닐까. 친구 사이를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한 가지뿐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받고자 하는 것을 먼저 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많이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고운 하늘 빛깔 벽에 걸려 있는 듯한 표지의 액자 속 사진들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라는 부제 또한 구미가 당겼다. 여행과 사진과 그림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영역의 이야기들이 잔뜩 펼쳐질 것 같았다. 우선 책에 담긴 저자의 사진들은 마음에 든다. 여행하면서 찍었을 밤의 경치라든지 해가 지고 사방이 어스름해졌을 무렵의 조용한 골목길, 시선이 일정치 않은 지하철 역 사람들, 기념품 가게 앞에 진열된 액자 속 그림들, 옹기종기 모여 수다떠는 무리들. 조용하면서 분위기 있거나 화려하면서 질서 있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 한 켠이 풍요로워지는 사진들이 있다. 그것이 배경이거나 사람이거나.

하지만 '파리 블루'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 저자를 위해 쓴 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여행이야기가 적은 듯하고, '미술관 스케치'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미술관의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나 피카소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조금 더 실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오래된 줄 노트 느낌이 나는 속지에 쓰여진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엄마에 대한 회상, 연애 이야기 등이 나온다. 어쩌면 이 열두 가지의 blue (대부분이 우울한 내용이었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때문에 저자를 위한 책이라고 느껴졌나보다. 

서울 사람만큼 무뚝뚝하다는 파리 사람들과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하는 연인들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이야기들로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행 관련 책들을 보면 평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곳이라도 책을 덮는 순간 당장 떠나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파리 블루'는 그렇지 않았다. 부제의 '기억'이란 단어에 너무 집중하여 글을 쓴 걸까. 저자의 파리에 대한 기억과 옛 시절의 추억을 잘 버무려서 쓴 책임에는 틀림없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아무래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고 싶다. '파리 블루' 처럼 옛 일에 대한 회상이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릴 적 가족과,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얽히고설킨 '여행이야기'들로 풀어내고 싶다. 여행에 대한 욕구, 희망이라든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서 손미나 작가의 미니홈피를 구경했다. 책에 실린 사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행 사진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곳을 밟아보고 온 그녀가 부러웠다. 삶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그녀가 더욱 빛나 보였다.  

일본, 언젠가 여행해야 할 나라로 정해두었다. 도쿄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그 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인지 일본어를 배우고서 부터 결심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여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도쿄 에세이'라는 말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서점에서 집었던 스페인 여행기는 책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한번 읽어볼 만하겠다 생각했지만 일부러 사서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말이다. 난 이렇게 손미나의 책을 만났고, 그녀의 글을 처음 읽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읽었던 여행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녀는 일정에 쫓기지도 않았고, 여느 가이드북에 나온 이름난 곳들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책에는 사람과 추억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알맹이가 꽉 찬 느낌이다. 정해진 틀에 맞춰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도쿄를 즐기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마음 가는 곳을 향해 열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그녀의 인생관이며 여행관인 이 한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꼼꼼히 계획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행 필수 코스라는 곳들을 돌아보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편히 쉬면서 하는 여행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라주쿠 캣 스트리트에 있는 타코야키 집에도 들르고, 아사쿠사의 리키샤 맨 하치와 일본어로 대화도 해보고, 꽃미남 청년들의 라멘 가게에서 고기 달걀 라멘도 맛보고 싶다.  

그녀의 여행은 만남에서 만남으로 이어진다. 리키샤 맨과 게이샤 소녀, 작은 식당에서 합석한 손님들, 마에다 상 아버지의 100년 넘은 스시집, 하지메 친구의 초대 등 우연찮게 운이 좋았다고 한다.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어서 여행기를 읽는 동안 아니 함께 여행하는 동안 더욱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는 내게 값진 책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