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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평점 :
바쁜 나날 가운데 모처럼 맞은 느긋한 시간, 읽지도 못하면서 산더미처럼 사놓기만 한 추리소설 가운데 무엇을 고를까. 이런 질문만큼 호사스런 고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스럽건 궁상스럽건 고민은 어디까지나 고민. 하여 나름 진지하게 따져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시간이 아니니 재미는 물론 남는 것도 있어야 하며 책장을 다 덮었을 때 진한 감동과 여운까지 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되는 외국 추리소설은 대부분 그 나라에서 잘 팔리고 평도 좋은 것들이 아닌가. 그러니 어느 것을 골라도 크게 불만족스럽지는 않을 터. 차라리 국적으로 선택할까? 미국, 영국, 일본, 노르웨이...아니면 장르로? 본격, 하드보일드, 스릴러, 첩보... 이쯤되면 더 이상 즐거운 고민이 아니다.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뿐. 이처럼 수없이 쌓인 추리소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나는 결국 마쓰모토 세이초를 잡게 된다. 나른한 휴식시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식히려고 읽는 책이라면 역시 출간 시기상 고전에 해당하는 세이초의 여유롭고 느긋한 작풍이 딱 어울린다. 더구나 세이초의 작품들은 거의 다 재미있고 남는 것도 있으며, 꽤 높은 확률로 진한 감동과 여운까지 제공하니 가장 안전한 선택일 수밖에 없으리라.
<푸른 묘점>은 공히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 할 <점과 선>과 같은 시점인 1958년에 집필한 작품이다. 초기작인 만큼 신선하고 생생한 느낌은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시기에 두 작품을 쓰려다 보니 작품들끼리 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일본의 각 지역을 철도와 트럭 등으로 오가며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을 구사하는 형태가 <점과 선>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1968년작 <D의 복합>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재현되는데, 세이초가 장편만 100편, 단편은 1,000편을 썼다니 이해가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중에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썼던가, 저런 트릭을 썼었나, 본인도 헷갈릴 지경이 아니었을까^^ 큰 챕터 안에 서너 개의 짤막한 챕터들이 속해 있는 구성인데, 소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절묘하게 다음 줄거리를 궁금하게 하는 장면에서 끝나는 걸로 짐작컨대 아마도 토막토막 신문에 연재했던 것 같다.
도입부의 줄거리는 이렇다. 소설 잡지사 신참 편집자인 여주인공이 원고를 펑크내고 가족과 여행지로 떠난 작가를 닦달하기 위해 편집장의 명을 받고 쫓아간다. 그런데 이 여류 작가는 신경질이 대단한 성격이라 편집자가 같은 여관 지붕 아래에 있으면서 원고를 독촉하는 것을 싫어해, 여주인공은 그녀가 머무는 여관의 바로 옆에 위치한 여관에 숙박한다. 재미있는 건 절벽 밑에 자리잡은 두 여관이 지척에 있으면서도 높은 담벼락을 둘러쳐 서로 오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A여관에서 B여관으로 가려면, A여관이 운영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와 B여관이 운영하는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두 여관의 이용객들은 몹시 불편하겠지만, 닳고 닳은 추리소설 독자들이라면 딱 눈치를 채야 한다. 작가가 굳이 이렇게 인공적이고 복잡한 배경이나 장치를 그린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과연 다음 날 절벽에서 추락해 죽은 시체가 한 구 나오는데, 이 양반은 여주인공과도 안면이 있는 추잡한 스캔들 전문 정보꾼이다. 하이에나처럼 썩은 내음을 풍기는 이 추잡한 남자가 여기엔 왜 왔을까,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사건은 자살로 처리된다. 문제는 여주인공이 잡지사로 복귀한 다음부터 점입가경으로 확대되는데, 여류 작가는 곧 자취를 감추고 심지어 그녀의 작품 전체가 표절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제기된 것이다.
탐정 역은 두 명이다. 언급한 여주인공 노리코와 그녀가 은근히 짝사랑하는 편집자 다쓰오. 두 사람은 뭔가 기사거리가 될 만하다는 느낌으로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종국에는 정신적으로 점차 가까워진다. 개인적으로 출판사를 다녀본 적이 있기 때문에 (비록 50년의 시간 차가 있지만) 하는 일이 나와 대개 비슷했던 두 주인공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예전에 작가 분들 만나서 잠깐이면 끝나는 일을 마친 후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기어코 커피숍에 들러 퇴근시간까지 버티다 들어오곤 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야말로 노닥거렸을 뿐이지만 <푸른 묘점>의 두 주인공은 사건에 관한 추리를 펼친다. 남녀 두 편집자들이 농땡이도 치고, 야근도 하며, 출장도 가는 등 현실적인 직장인의 삶을 살면서 짬짬이 사건에 매진하는 모습에 괜스레 부러워졌다. 내가 다녔던 출판사들은 왜 노리코와 같이 취미를 함께 나누며 가까워질 만한 여성 편집자가 없었던 걸까(물론 그녀들의 생각은 정확히 반대이겠지...).
각설하고 <푸른 묘점>은 대단히 재미있다. 솔직히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결말부에서는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인데, 일단 살인이 벌어지는 결정적인 순간 우연의 요소가 지나치고, 또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것도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능력이 그 정도 시시한 잔재주를 못 밝혀낼 정도로 졸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선 평범한 직장인들이 평범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노리코는 사건을 조사하다가 문득 '책에서만 봤던 셜록 홈스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아마도 그 느낌이란 노상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눈까지 덩달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것일 터. 경찰이 아니니 수사권도 없고, 거대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서 그럴싸한 힘도 없는 두 주인공이 오직 끈질긴 노력과 셀 수 없이 세웠다 부수는 가설만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 쾌감이 만만찮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 정도 노력은 우리 같은 갑남을녀도 유사한 일을 맞닥뜨리면 똑같이 따라할 수 있으므로 더욱 몰입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다음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이 책이 로맨스 추리소설로서 일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노리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그녀의 내밀한 속마음을, 짝사랑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교감을 이뤄가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솜씨 좋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했다. 특히 노리코가 홀로 시골로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조사 내용을 보고도 할 겸, 남자에게 안부도 전할 겸 보낸 편지는 행간의 사이사이에 애써 감춰둔 본심이 살그머니 드러나는 듯해 몹시 사랑스럽다. 이렇게 예쁜 편지가 나오는 추리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세이초의 작품을 한 편만 권하라면 단연 <점과 선>을 추천하겠지만, 트릭의 밀도는 좀 떨어져도 깔끔하지 않고 무신경한 남자와 당차면서도 상냥한 여자의 섬세한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푸른 묘점>이 오히려 현 시대에 더 먹히는 작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독서인구의 대다수가 20~30대 여성이라서.
<푸른 묘점>은 주인공들이 작품 내내 여행을 떠나는 '여행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견문이나 감상, 정서 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1958년은 일본이 전쟁의 참상을 떨쳐내고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많이들 여행을 다녔나 보다. 그래서 여행을 테마로 삼은 이 작품도 먹힐 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일본의 버블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80년대에 여행 미스터리가 그렇게 대히트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건 여행 미스터리 역시 세이초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는 것. 과연 일본 추리소설의 진정한 거장답다. 간결하면서도 중후한 필치에 품격 있는 내용, 어른 흉내만 내는 게 아닌 진짜 어른스러운 등장인물 등 세이초의 추리소설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확신한다. <푸른 묘점>의 장점은 7, 단점은 3. 적어도 확실한 재미는 약속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재미있었다면 <D의 복합>도 읽어보시길. 그 작품은 두 '남성' 소설가와 편집자가 여행을 다니면서 사건을 추리한다.
<스포일러 있는 P.S>
어쩌면 <푸른 묘점>은 여성의 허영심이 숨겨진 또 다른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표절과 도작으로 이름을 날린 여류 작가가 자살한 이유도 정체가 폭로되느니 정점에서 죽겠다는 허영심의 발로였다. 또한 범인으로 드러난 여성은 인간쓰레기를 사랑한 본심을 감추기 위해 유서에서도 그런 뉘앙스만 살짝 풍길 뿐, 한사코 오빠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남자를 죽였다고 '우긴다'. 내가 무척 좋아한 노리코의 편지도 사실은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한테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좋은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공들여 이 표현, 저 표현을 여러 번 썼다가 지웠을 게 아닌가. 하드한 책만 보다 보니 내가 너무 비뚤어졌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