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연재 재개를...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다음 편이 끝이다ㅠ.ㅠ
Queen - 퀸
선정작 - <그리스 관 미스터리> by 엘러리 퀸
최종 후보작 - <열흘간의 불가사의> by 엘러리 퀸
'퀸'이라고 해서 여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비록 사촌형제(남자) 두 명의 합작 필명이지만 엘러리 퀸이 추리소설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여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특히 퍼즐풀이 본격 추리소설에서 40편이 넘는 왕성한 활동을 보였는데, 희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만 세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흔히 퀸과 함께 퍼즐 미스터리 3대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동시대의 라이벌 중 존 딕슨 카가 주로 밀실의 기발함을 내세우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의외의 범인과 수준 높은 트릭이 돋보인다면 엘러리 퀸에게도 필살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논리'로써, 사건에 휘말린 탐정이 그간 수집한 단서를 토대로 무수한 용의자들을 논리적으로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마침내 단 하나의 진범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그려낸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어느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손님과 함께 있다가 그에게 살해당한 남자가 있다고 하자. 화장실에 가보니 변기 뚜껑이 올려져 있다. 보통 남자가 소변을 볼 때 변기 뚜껑을 올리니 용의자 중 여자는 전부 제외. 방 안의 텔레비전이나 오디오의 볼륨이 피해자가 평소 듣던 것보다 훨씬 큰 걸로 짐작컨대 범인은 청력이 시원찮거나 노인일 확률이 높다. 이로써 귀가 멀쩡하고 젊은 남자는 전부 제외. 이런 식으로 용의자의 갯수를 줄여 나가다 마침내 범인만 남기는 것인데, 이게 논리학에서 말하는 '소거법'이다. 나야 아주 시시하고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작가와 동명의 탐정 엘러리 퀸은 이 논리와 소거법의 명수이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한 사건들도 척척 잘도 해결한다. 작가 엘러리 퀸 형제는 본격 추리소설 전성기였던 1930년대에 선배 추리작가인 반 다인의 대성공에 자극받아 <로마 모자의 비밀>로 데뷔했고, 작품 제목에 전부 나라 이름을 넣은 '국명 시리즈'와 <X의 비극>, <Y의 비극> 등 'XYZ'로 이어지는 '비극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중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사고, 좋아하는 작품이 <그리스 관 미스터리>이다. 논리에 살고 논리에 죽는 엘러리 퀸 스타일의 정점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한편 최종 후보작인 <열흘간의 불가사의>도 그 못지않은 작품인데, 이 소설은 30년대식 과장된 명탐정 캐릭터였던 엘러리 퀸을 전후인 1950년대의 무겁고 사색적인 분위기에 맞춰 진지하게 변모시킨 '라이츠빌 시리즈'에 속한다. 입만 열면 지식 자랑에 평범한 경찰들을 빈정대던 천재형의 엘러리 퀸이 부쩍 진지해진 모습으로 변신해 근친상간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인간적인 비극 앞에 침몰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흥미롭게도 집필에 거의 20년의 간극이 있는 <그리스 관 미스터리>와 <열흘간의 불가사의>의 플롯에는 강력한 유사점이 있는데, 이는 읽어보면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Reverse - 도서(倒敍)
선정작 - <제1의 대죄> by 로렌스 샌더스
최종 후보작 - <후루하타 닌자부로> by 미타니 고키
추리소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라면 도서 추리소설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터이다. 도서라는 말은 '도치서술'의 줄임말이니 도서 추리소설은 일반적인 추리소설, 즉 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뒤에 범인을 잡는 구조를 뒤집는(reverse) 형태의 추리소설을 뜻한다. 한마디로 책 도입부부터 범인임이 분명한 인물이 떡하니 등장해 범행을 벌이는 장면이 상세히 나오는 것이다. 천재적인 범인이 공들여 짠 살인계획이 처음부터 제시되고, 그보다 더 천재적인 탐정이 그 음모를 하나하나 분쇄해 나간다. 마치 공정한 규칙 아래 한 수, 한 수 체스를 두는 듯한 두 천재 간의 짜릿한 이 두뇌대결이 도서 추리소설의 진정한 흥미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도서 추리소설을 쓴 사람은 과학자 탐정 손다이크 박사로 유명한 오스틴 프리먼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1900년대초 불세출의 셜록 홈스로 촉발된 추리소설의 1차 중흥기 때 이 신선한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탐정이 온갖 고생 끝에 범인 잡는 걸 보는 낙으로 읽는 게 추리소설일진대 처음부터 범인의 정체가 나온다고? 얼핏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도서 추리소설을 프리먼은 왜 시도했을까. 아마도 당시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다시피 한 홈스의 아류작들에 자기까지 하나 더 추가하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픈 작가의식의 발로였으리라. 아무튼 프리먼 이후 도서 추리소설은 퍼즐파의 주류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간간히 좋은 작품들이 나와 흔히 3대 도서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살의>, <백모 살인사건>, <크로이든발 12시 30분> 같은 작품들이 유명하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도 그렇고, 역시 추리소설은 결말에 의외의 범인에게 뒤통수를 맞는 맛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적인 인기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에, 그것도 쓰는 것마다 베스트셀러라서 별명도 '미스터 베스트셀러'였던 로렌스 샌더스가 왜 하필 <제1의 대죄>에서 이미 주류에서 밀려난 지 오래인 도서 추리소설을 들고 나왔을까. 게다가 막상 작품을 읽어보면 구시대 도서 추리소설의 핵심이었던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범인은 오히려 범죄지능이 떨어지는 편에 가깝고. 샌더스가 걸작 중의 걸작인 <제1의 대죄>에서 범인을 첫머리에 등장시킨 이유는 좀 극단적이긴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범인이 연쇄살인에 빠지는 심리를 시작부터 냉철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였다. 즉, <제1의 대죄>가 도서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유는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어 분투하는 에드워드 델러니 지서장만큼이나 살인범이 아무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구체적인 심리를 보여주는 데 있어 이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샌더스의 의도는 멋지게 맞아떨어져 <제1의 대죄>는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인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탄생을 예고했으며, 범죄심리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 등을 고발하는 심리 스릴러로로써, 또한 엄청나게 정교한 경찰 수사물로도 1급인 완벽한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위에서 도서 추리소설의 대중적인 인기가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썼는데 한 가지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형사 콜롬보> 드라마가 바로 대표적인 도서 추리물이 아닌가. 다만 <형사 콜롬보>가 너무 오래되어 보기 싫다는 사람을 위해 일본판 콜롬보인 <후루하타 닌자부로>를 추천한다. 메이저리거 이치로, 아카시야 산마, 스맙, 야마구치 토모코 등 일본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해 범인 역할을 맡아 보는 맛이 쏠쏠할 것이다.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왜 도서 추리물의 규칙을 차용했을까. <제1의 대죄> 같은 거창한 목적성보다는 기왕에 슈퍼스타들이 출연하는데 중간부터 나오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범인으로 등장해 충격을 주면서 오래오래 나오는 게 시청률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지.
Spy - 스파이
선정작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by 존 르 카레
최종 후보작 - <디미트리오스의 관> by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이 인기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해서가 아닐까 싶다. 왜 누군가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겉으로는 귀를 막으면서도 속으로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지 않나. 이것은 어쩌면 옆집 사는 누군가, 혹은 추리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팍팍 죽어 나가지만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나만큼은 안전하다고 느끼며 일종의 비열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때문이리라. 꼭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한 추리소설은 대개 독자들의 공포심을 잘 이끌어내는 게 많은 것 같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추리소설 중에 공포스럽지 않은 게 없다. 유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버림받은 애인이 버린 애인을 죽이고...뭐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게 무서운 일인 건 당연하겠지만, 예를 든 것처럼 예전 추리소설에서의 범죄는 확실히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게 많았다. 가족, 친구, 친척, 그것도 아니면 한동네 이웃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추리소설 역시 당당한 문학으로써 명실공히 시대를 반영한다.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 안에서의 좁은 인간관계가 전부였던 과거와는 달리 양차대전 이후 세계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확대되었고, 당연히 공포의 대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 고작(?) 한두 사람 죽이는 범죄자와 달리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죽는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스파이야말로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겐 호환, 마마보다 공포스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파이소설은 바로 이런 시류에서 출발했다. 양차대전을 전후해 수많은 인기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설 주인공 중 하나도 포함되어 있다. 숫자 세 개로 표기하는 유명인사 말이다. 냉전시대가 저문 요즘은 스파이소설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진 느낌이지만, 2016년 현재 여든다섯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파이소설의 거장이 한 분 계시니 그 이름도 찬란한 존 르 카레이다. 실제 영국정보부 소속이었던 그는 이번에 소개할 스파이 추리소설의 역대 최고 걸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저자로서 이 작품으로 영국과 미국의 양대 추리소설상을 석권했으며 평생공로상 격인 그랜드마스터도 아울러 받았다. 사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지난 50년 동안 나온 추리소설 중 최고로까지 평가받고 있는데 나 또한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서독과 동독을 가른 냉전시대의 상징 베를린장벽이 건재했던 1963년을 배경으로 영국과 독일 첩보부의 숨막히는 암투가 실감나게 그려지며, 강철 기계 같은 국가 조직의 냉정한 논리에 희롱당하는 장기말 신세의 첩보원이 결국 가닿을 수밖에 없는 허망한 최후가 절로 비애감을 불러일으킨다. 추리소설적인 절묘한 플롯과 놀라운 반전, 첩보 세계의 리얼리티, 휴머니즘과 연민, 애절한 사랑 등 훌륭한 문학이 담고 있어야 할 모든 것이 들어 있다...한편 스파이 추리소설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가가 아닌 문인들도 많이 손을 댔다. 적국을 속이기 위해 늘 정체를 숨기고 거짓말을 일삼는 스파이들이 크게 보면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팔리기도 잘 팔리고, 잘만 하면 문학적 야심을 실현시킬 수도 있는 장르에 솜씨 좋은 문학가들이 뛰어들지 않는 게 이상하렷다. 우리가 익히 아는 조셉 콘라드, 서머싯 몸, 그레이엄 그린 등의 이른바 문호들이 스파이소설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미트리오스의 관>을 쓴 에릭 앰블러 역시 비슷한 동기로 스파이소설에 천착한 작가로 당시 유행했던 스파이소설의 외피를 쓴 모험물과 달리 <어느 스파이의 묘비명>, <디미트리오스의 관> 같은 그의 작품들은 스파이 세계의 비정함, 스파이들의 고뇌와 비애 등 문학적인 여운이 훨씬 짙다. 그중 단지 호기심 하나로 국제적인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의 기묘한 삶을 재구성하는 평범한 작가가 엄청난 위기를 겪는다는 <디미트리오스의 관>은 언급한 문학성뿐 아니라 줄거리도 흥미로우니 일독의 가치가 크다.
Train - 열차
선정작 - <점과 선> by 마쓰모토 세이초
최종 후보작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by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인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을 꼽으라면 다양한 답이 나올 테지만 열차와 철도도 누군가는 꼭 지적할 것이다. 열차의 발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으니 노동시장과 산업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긴 셈이다. 전쟁을 할 때도 예전처럼 말을 타고 세월아, 네월아 쳐들어 가는 게 아니라 열차를 타고 수만 명의 병력이 단숨에 적진을 향해 들이칠 수 있게 되었으니 전쟁사에서도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심지어 우주선으로 달나라까지 가는 오늘날에도 그 잘난 우주선을 운반할 다른 방법이 없어 철도 크기에 맞춰 제작한다고 하니 가히 열차만큼 현대 사회를 일궈낸 게 또 있을까 싶다. 새로운 문명이기가 출현하면 즉시 이걸로 트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만 고민하는 추리소설가들이 열차를 놓칠 리 만무하다. 당연히 비교적 이른 추리소설의 여명기부터 열차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이다. 그는 대표작 <통>과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등을 통해 열차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전매특허로 내세웠다. 열차와 다른 열차의 환승시간이나 열차가 쉬는 잠시의 빈틈 등을 교묘히 이용해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열차 트릭은 실제로 열차가 운영되는 방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감이 넘쳤으며, 작중에 제시되는 온갖 열차시간표를 일일이 대조해가며 추리하는 식이라 꼼꼼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향의 추리소설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만 크로프츠는 무려 1879년 태생, <통> 역시 1920년작으로 요즘 보면 어쩔 수 없이 읽기 버겁다. 그런 이유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을 추천한다. 물론 <점과 선>도 1957년 작품이라 다소 낡은 감은 있지만 철도부터 비행기, 여객선 등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거의 완성된 시대라서 요즘 읽어도 거의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 최남단의 규슈에서 발견된 두 남녀의 시체, 하지만 용의자는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열차로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는 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철벽의 알리바이가 무너지는 짜릿함을 결코 놓치지 마시라.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태평양전쟁 전 대인기를 끌었던 에도가와 란포풍의 괴기, 엽기 추리소설에서 탈피해 당대의 일본 사회를 반영하는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추리소설을 주창했으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퀸, 카, 크리스티의 3대 작가처럼 일본 추리소설가 중에서도 세 명을 꼽으라면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그리고 세이초를 들 수 있겠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계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자면 셋 중 세이초를 가장 높이 치는데, 원래 순문예를 지향한 덕분에 작품의 문학성이 높아 추리소설을 어른들의 엔터테인먼트로 격상시킨 공로가 크며, 1,000여 편에 달하는 저작으로 추리소설의 상업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킨 점에서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대로를 거의 혼자 닦았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계 마지막 천황이다...열차의 발명으로 달라진 또 하나의 풍경은 낯선 사람과의 빈번한 대면일 터. 열차 이전 시대에는 한동네 사람 말고 전혀 낯선 사람을 볼 기회가 극히 적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열차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열차 옆자리나 앞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열차를 타지만 역에서 내리면 다시는 안 볼 이방인들. 누구도 의미를 두지 않을 이 찰나의 만남에서 교환살인의 씨앗이 싹튼다면? 열차에서 우연히 알게 된 두 사람이 상대방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을 각자 제거해준다. 친구도 뭣도 아닌 단 한 번의 만남이니 경찰도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탄생한 심리 서스펜스이다.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쥐락펴락 하는 데는 따라올 자 없는 대가인 하이스미스의 날카로운 필치에 절로 손에 땀이 쥐어지는 탁월한 작품.
Underdog - 약자
선정작 - <죽음의 전주곡> by 나이오 마시
최종 후보작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by 패트릭 퀜틴
조금 불평을 하기 위해 일부러 '언더독' 항목을 만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 등과 함께 영국 추리소설 4대 여왕으로 꼽히는 나이오 마시가 왜 약자냐고? 한국 추리소설 시장에서는 당연히 약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30편이 넘는 마시의 작품 중 국내에 출간된 게 <죽음의 전주곡> 딱 하나이다. 크리스티와 더불어 콜린즈 출판사의 간판으로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거의 매년 추리소설을 냈던 스타 추리소설가의 출간작이 단 한 권이라니 참으로 비극이다. 이것도 그나마 다행인 게 크리스티도 즐겨 읽는다고 고백했던 마저리 앨링엄은 국내 출간작이 전무하다. 크리스티와 비슷하게 정통적인 후던잇 미스터리를 발전시킨 두 작가가 한국에서 이리 홀대받는 까닭은 무엇일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긴 딕슨 카나 로스 맥도널드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별로 출간되지 않는 작가가 어디 한둘이겠냐만 크리스티가 인기 있는 나라에서 그녀와 유사한 마시와 앨링엄이 전혀 나오지 않는 건 도통 설명이 되지 않아 몇 마디 불평을 남겨보았다. 뉴질랜드에 살았던 나이오 마시의 <죽음의 전주곡>은 크리스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영국 시골 미스터리로 미스 마플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크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엘러리 퀸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두 남자의 합작(웹&휠러)으로 비슷한 퍼즐 미스터리를 냈던 패트릭 퀜틴 역시 국내 추리소설계의 홀대라면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다. 퀜틴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처럼 <배우를 위한 퍼즐>, <친구를 위한 퍼즐>, <바보를 위한 퍼즐> 등 제목에 항상 '퍼즐'이 들어가는 시리즈도 썼으며 출간작도 40편이 넘는다. 흔히 본격 추리소설하면 영국만 떠올리고 미국 본격파하면 퀸이나 반 다인 등만 소소하게 맞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패트릭 퀜틴 또한 당당히 미국 본격파를 대표하는 작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또 하나의 불평을 하자면 지금 소개하는 퀜틴을 비롯해 크레이그 라이스, 렉스 스타우트, 샬롯 암스트롱 등 미국 본격파 작가들의 출간도 너무 적은 것 같다. 물론 요즘 시대에 황금기(1930~40년) 작가들을 소개해봐야 얼마나 팔릴까도 싶지만 추리소설 애호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울 따름이다. <두 아내를 가진 남자>는 퀜틴의 후기작으로 전처와 현재 아내 사이에서 방황하던 남편이 몇 번의 사소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불륜과 치정 등 멜로드라마 같은 전개와 공감 가는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다 마지막에 의외의 범인과 진상이 밝혀지는데, 전혀 본격 추리소설 같지 않게 펼쳐지던 이야기가 결국 본격으로 멋지게 끝나는 걸 보고 퀜틴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대표작들도 좀 만나볼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