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류는 같은 얘기를 해도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그들 소설 속의 주제는 같은데 반해 말하는 방식은 전혀 틀리다. 류는 과격하고 자극적이고 너무나 퇴폐적이다. 반면 하루키는 부드럽고 세심하고 따뜻하다. 그 둘을 공통적으로 묶어 주는 끈이 있다면 그것은 현대 사회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상실감이 아닐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류는 직접 화법보다 간접화법의 빈번한 사용으로 주인공의 소외감이나 고독감을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성과를 거뒀다. 전반부의 섹스와 혼음 묘사는 너무도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다. 후반부의 주인공의 환각 생태에서 릴리와의 대화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각에 빠지게끔 만든다. 그 부분 읽을 때 얼마나 머리 속이 어지럽고 몽롱하던지! 그리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등장 인물들의 내면이나 심리 묘사를 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죽음과도 같은 행위를 하는 모습을 작가는 그저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묵묵하게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게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한 것 같다. 작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인위적으로 그들에게 불행을 만들어 주지 않아도 그들은 점점 더 깊은 끝으로 달려 가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도 그들의 비참한 끝을 초조하게 불안한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면 묘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그래,하드보일드!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들은 자유롭다. 원래 자포자기는 자유로운 것이다. 포기한 삶엔 죽음의 공포나 두려움 불안 따위가 없다. 산다는 것에 내정된 본질적인 공포나 초조감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저 죽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최대한 그 순간순간을 순수하게 즐기면서 ,이기적이지만 비참하지 않고 편안한 죽음이 오길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가장 순수하게 삶을 살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그들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데있다. 그들을 위한 끝이 저기 바로 앞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