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온 택배
히이라기 사나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이라기 사나카, 김지연 역, [천국에서 온 택배], 모모, 2024.

Hiiragi Sanaka, [TENGOKUKARA NO TAKUHAIBIN], 2022.

소재의 다양성, 기발한 전개, 가벼운 내용으로 일본의 힐링 소설을 좋아한다. 어느 순간 감동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미스터리의 긴장감도 매 순간일 수 없기에 편견을 두지 않고 읽는다. 히이라기 사나카의 소설 [천국에서 온 택배]는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고인이 보낸 택배라는 소재로 받는 사람과 독자에게 전하는 행복 메시지이다. 과거의 앙금을 떨쳐내고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는 4개의 단편 모음이다.

우리들의 작은 집

오셀로의 여왕

밤 10시의 숨바꼭질

마지막 과외 활동

에필로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해마다 생일 선물을 보내 달라는 엄마, 연을 끊은 딸에게 귀금속을 유품으로 남기려는 어머니... 사연은 각양각색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천국택배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마지막 택배를 보낸다. 여기에는 무한한 사랑이 있고, 아직 풀지 못한 오해가 있다. 천국택배의 나나호시는 의뢰인이 생전에 지정한 사람에게 유품을 배달한다.

자신이 이 집에 혼자 남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좋네요. 친구들끼리 살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

"말해 뭐 해. 나이가 들면 알 거야.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그때까지 살아왔던 시간보다 예순이 돼서 친구들과 이 집에서 살았던 10년이 훨씬 행복했어. 살면서 제일 즐거운 시기였지. 언제가 청춘이냐고 묻는다면, 난 육십 대라고 대답할 거야."(p.30)

아라가키 유코는 쓰레기 더미에서 산다. 주위에서 저주받은 집, 불길한 집, 마귀할멈으로 불리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같이 살던 덴코와 가나는 일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셋은 노년에 이르러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우리들의 작은 집'이라고 이름 짓고, 정원을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유코 혼자 남아 쓸쓸히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천국택배는 그녀에게 두 친구가 남긴 카세트와 녹음된 테이프를 배달한다.

나쁜 손녀라는 자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야에가 자기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 이 집이 마음에 안 들면, 한번 해봐.

할 거야. 절대 포기 안 해.(p.83)

스미이 후미카는 시골에서 산다. 맛있는 음식,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곳이지만, 도시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번 해봐"라는 할머니 야에의 목소리...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이 아니라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며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고향에서 취직하고, 같은 지역의 사람과 결혼해 본가 근처에서 사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폐쇄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할머니가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생각, 후미카는 어떻게든 대학은 도쿄에서 다니기로 결심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천국택배는 그녀에게 휴대용 게임기를 배달한다.

그날 밤 숨바꼭질에서 진 내 잘못이다. 바로 옆을 살펴보지 않았던 내가 나빴다.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p.129)

도모야마 유와 미키다 마호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둘은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았는데, 유가 술래를 할 때는 숨은 마호를 절대로 찾지 못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도 둘의 숨바꼭질 놀이는 계속되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좋아했지만, 전하지 못한 마음... 뒤늦게 마호를 찾았을 때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사십 대가 되었고, 유는 매일 저녁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고 늦게 돌아간다. 천국택배는 그에게 마호가 남긴 편지를 배달한다.

스무 살이 되면 서로 축하하면서 다 같이 제방에 모여 야외 수업을 하자던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너희끼리 한번 모였으면 좋겠다.(p.177)

고등학교 때 과학부를 지도했던 사나다 미쓰히코 선생님의 편지가 천국택배를 통해서 전해진다. 사고뭉치, 천덕꾸러기, 형편없는 얘들이 모여 대충 활동했던 과학부 동아리... 부장이었던 오사베는 설탕 1kg을, 말이 많은 구로세는 어린이용 비닐 풀장을, 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받는 이케다는 대형 연을, 폭력 사건에 휘말렸던 후쿠이에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야구를 하다가 그만둔 와카마쓰는 장갑을 준비해서 3월 20일 모교 근처의 제방에서 모임을 가지라는 내용이다. 이상한 준비물, 선생님이 남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

고인이 남긴 유품을 택배로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제일 먼저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가 그립고, 애증의 관계였던 할머니가 그립고,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이성이 그립고, 그냥 그 시절이 그립다. 생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를 위로하고, 듣지 못했던 대답을 들려주는데... 천국택배를 받는 주인공은 전부 누군가가 나를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케쓰, 김은모 역, [이상한 그림], 북다, 2023.

Uketsu, [HENNA E], 2022.

울 아랫집에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 두 명이 산다. 이상한 집인 게 매일 밤 11시에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오는데, 현관문을 건물이 떠나갈 정도로 큰 얘가 쾅! 곧이어 작은 얘가 쾅! 닫고 들어간다. 그리고 새벽 1시까지 고성으로 떠든다. 고양이를 키우는데, 발정인지 온종일 괴성을 내고... 앞집에서 뭐라고 하겠지? 아래 아랫집에서 뭐라고 하겠지? 하다가 (그전에 서너 번 마주쳤을 때 문을 좀 살살 닫으라고, 조용히 좀 하라고 좋게 얘기했다) 지난 주말에, 밤 12시 30분에 찾아가서, 우리 라인이 다 들리게끔 큰 소리로 항의했다. 엄마라는 여자는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것도, 그때가 밤 12시가 지난 것도 모르고 있다. 꼭 이렇게 지랄을 해야 말귀를 알아듣는 것인지? 아무튼, 2년 만에 토요일과 일요일 밤을 고요하게 보냈다. 월요일 아침에 이웃집 여사님이 웃으며 엄지 척을 해주신다. 가슴이 뿌듯했다!

바람 속에 서 있는 여자 그림

집을 뒤덮은 안개 그림

미술 교사의 마지막 그림

문조를 보호하는 나무 그림

"저는 A코의 정신분석에 '그림 테스트'라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림 테스트란 대상자가 그린 그림으로 심리를 파악하는 분석 기법이에요.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림에는 그걸 그린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법이죠. 특히 인간, 나무, 집을 그린 그림에 그러한 경향이 현저해요. 여러분, 이 그림을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어요?"(p.7)

우케쓰의 소설 [이상한 집](리드비, 2022.)에 이어서 읽은 소설 [이상한 그림]이다. 이상한 집과 이상한 그림을 소재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이지만, 실제로는 '이상한 가족'에 관해서이다. 가족 관계에서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것인지 네 개의 사건을 다루는데, 결국 네 개의 그림은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상한 집]은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평면도를 가지고 추리했다면, [이상한 그림]은 어딘가 괴리감이 있는 그림을 가지고 추리한다. 문학적이라기보다 오락적인 성향이 강한데, 그럼에도 작가의 창의력과 논리적인 사고는 여느 문학에 뒤지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2012.11.28.

오늘부로 블로그를 그만두겠습니다.

그 그림 세 장의 비밀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대체 어떠한 고통을 짊어지고 있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나로서는 가늠도 안 됩니다.

당신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 렌(p.20)

나나시노 렌은 인터넷 블로그에 일기를 쓴다. 일상의 소재는 아내 유키의 임신으로 출산과 육아를 준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유키는 임신 중에 몇 개의 그림을 그렸는데... 산타 같은 귀여운 아기, 아기가 자란 것을 상상한 미래 예상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여자, 어른이 된 남자, 기도하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런데 출산하는 중에 아기는 간신히 구했지만, 산모는 사망한다. 유키는 자기의 죽음을 예상했던 것일까? 그녀의 그림은 일종의 다잉 메시지는 아닐까? 렌은 그림의 비밀을 알게 된다.

제일 위층의 한가운데 집을 회색 크레파스로 떡칠해놓았다. 거기는 나오미와 유타가 사는 집이다.(p.84)

곤노 유타는 3년 전에 아버지가 죽고, 엄마와 둘이서 산다. 어린이집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맨션에서 사는 집을 회색으로 진하게 칠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집에서 사라진다. 아이가 그린 엉뚱한 그림, 자기가 사는 집을 회색으로 칠하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이것은 실종하고 연관이 있을까? 엄마는 애타게 유타를 찾는다.

집 근처 산에 올라 거기서 보이는 절경을 그림에 담는다. 그것이 미우라에게는 최고의 사치였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우라 앞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모조리 부정하는 듯한 절망적인 경치였다.

미우라는 호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p.145-146)

고등학교 교사인 미우라 요시하루는 산에서 캠핑을 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된다. 현장에는 영수증의 뒷면에 그린 그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열성적인 교사였지만, 주위의 평가는 냉담하다. 주요 용의자는 미술부 3학년 가메이도, 미대 시절부터 친구인 도요카와, 그리고 육아문제로 다툼이 잣았던 아내이다. 경찰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데,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 긴박한 순간에 그린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범인은 왜 현장에 그림을 남겨두었을까?

몇 년 후, 드디어 나오미도 임신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야 할지 고민됐다. 제일 큰 걱정은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죽은 후에도 늘 나오미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거울을 보면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난 엄마를 닮았어. 아이를 낳으면 그 여자와 똑같아지지 않을까. 애정이라고는 일절 없이, 아이한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까.'(p.260)

나오미의 인생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어머니의 학대, 애정 없는 양육은 결국 비극을 불러온다. 아동지원시설에서 상처를 보듬으며 6년을 보내고, 간호학교에 들어가서 조산사가 된다. 미술을 전공한 남자와 결혼해서 임신을 하지만, 어머니의 망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보이고, 그 여자처럼 애정 없는 육아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오미는 다른 육아를 결심하는데, 그만큼 아이를 향한 집착이 커진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위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자기를 위한 범행을 저지른다.

그림을 소재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 이야미스, 가족에 관한 메시지... 진실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과정이 매우 특이해서 재미있다. 그림을 보면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 들고, 여전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잘 기억해야 쉽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케쓰, 김은모 역, [이상한 집], 리드비, 2022.

Uketsu, [HEN NA IE], 2021.

2021 일본 호러 미스터리 1위

일본 미스터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다 하다 이제는 주택의 평면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소재의 다양성과 이야기의 확장성에 찬사를 보낸다. 우케쓰의 소설 [이상한 집]은 '부동산 미스터리', '이상한 시리즈'이다. 저자는 호러 오컬트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라고 하는데, 어느 집의 평면도에 숨겨진 위화감을 찾아내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뒤섞여서 이상한 집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네. 도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공간은 본래 필요 없는 벽 두 개로 이루어져 있어요.

주방에 접한 벽 두 개. 이게 없으면 '수수께끼의 공간'은 생기지 않고, 주방도 넓어지죠. 주방 공간을 좁히면서까지 여기다 굳이 벽을 만들었으니, 이 공간이 필요했다는 뜻이에요.(p.17)

오컬트 관련 글을 쓰는 필자에게 이상한 집에 관한 문의가 들어온다. 도쿄에 있는 2층 단독주택인데, 1층 주방과 거실 사이에 수수께끼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벽장이나 찬장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벽으로 막혀 있다. 2층 구조도 특이한데, 중앙에 있는 아이 방은 창문이 없고 이중문을 사용한다. 의도적으로 아이를 은폐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필자는 대형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구리하라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1층과 2층 평면도를 포개어 봤는데...... 1층에 있는 공간이 아이 방과 욕실 모서리에 딱 겹치더라고요. 마치 두 방 사이에 걸린 다리처럼.

...

어쩌면 1층에 있는 이 공간은 통로 아닐까요?(p.29-31)

평면도를 보면, 부모가 아이를 감금하고 한눈에 감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1층과 2층의 평면도를 겹쳐놓았을 때 1층의 수수께끼 공간은 2층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아이 방과 욕실에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혹시 아이 방에서 복도를 거치지 않고 욕실로 갈 수 있는 비밀통로는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는 어떤 목적으로 이것을 사용했을까? 살인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온갖 가설이 펼쳐진다.

아이는 비밀 구멍을 통해 이 공간으로 내려와 숨을 죽인 채 숨어 있다. 손님이 씻으러 온다. 기회를 노려 탈의실을 지나 욕실에 침입해, 목욕 중인 손님을 살해한다.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아이 방에서 욕실로 이어지는 경로가 있다는 점에서 도쿄의 집과 동일하다. 어디까지나 구리하라 씨의 가설이 옳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지만......(p.63)

도쿄의 집 근처 잡목림에서 왼손 없는 토막 시신이 발견된다. 그리고 사이타마현에서 남편이 그 집 사람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3년 전에 있었던 또 다른 왼손이 없는 살인사건... 제보자가 가지고 온 주택의 평면도를 보니 창문이 없는 아이 방, 전용 화장실, 욕실로 이어지는 경로가 똑같다. 두 집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할아버지의 집은 한가운데로 복도가 길게 있는 좌우 대칭의 집이었다.

여기에는 총 3개의 집이 나오는데, 각각의 평면도를 펼쳐놓고 이렇게 저렇게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필자는 탐사 취재 형식으로 집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건축설계사인 구리하라는 정보를 분석해서... 이상한 집의 의문을 하나씩 풀어간다. 평면도의 해석은 매우 논리적이고 기발하지만, 삼사 대를 잇는 가계의 저주는 아주 복잡하다. 왼손 공양이라는 숨은 내막을 조금 단순하게 하면 어땠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마무라 쇼고, 이규원 역, [새왕의 방패], 북스피어, 2024.

Imamura Shogo, [SAIOU NO TATE], 2021.

제166회 나오키상

올해 읽는 책 중에서 제일이라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책으로 골라서 읽어도 이 책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이니... 이마무라 쇼고의 소설 [새왕의 방패]는 16세기 일본의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최고의 방패와 최강의 창이 격돌하는 역사소설이다.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축성 장인을 새왕(塞王)이라고 하고, 어떤 방어도 깨뜨리는 철포 장인을 포선(砲仙)이라고 한다. 오미국은 열도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를 둘러싸고 있다. 농지가 부족해서, 농부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기능집단을 형성했는데... 석축으로 성벽을 쌓는 아노슈가 있고, 대장간에서 총포를 생산하는 구니모토슈가 있고, 전쟁에서 첩보와 공작을 하는 시노비 고카슈가 있다.

"바위의 무엇을 보았니? 색? 모양? 눈이니?"

"눈?"

"무늬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엇을 보고 그리 생각했지?"

"모르겠어...... 그냥, 보고 있으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p.29)

지리적으로 천혜의 요새인 이치조다니 성은 아사쿠라 가의 지배를 받는다. 함락된 적이 없고, 오랜 평화는 마음을 느슨하게 했을까?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은 오다 군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진다. 살육을 피해서 달아나던 어린 교스케는 가족을 잃고, 도비타 겐사이라는 방패(축성) 장인의 도움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교스케는 바위와 돌들의 목소리를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세상이 평온해도 성은 필요합니다. 난세의 전투용 성이 아니라 성주의 위세를 뽐내는 성이 되겠지만."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곽의 근본인 석벽의 미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정연함이 아니라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함이야말로 석벽의 미 아닌가.(p.43-44)

23년이 지나고, 오미국의 석공 마을에서 교스케는 겐사이의 양자가 되어 아노슈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성장한다. 남다른 재능과 열정으로 일을 배우고, 뛰어난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자 세상은 평온해진다. 그토록 바라던 평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전란이 있어야 호황인 장인들은 모순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축성도 방어의 효용보다는 다이묘의 위세를 뽐내는 용도로 화려하게 바뀐다. 하지만 교스케는 어린 시절에 낙성으로 가족을 잃은 기억 때문에 성은 견고함이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성, 대군이 몰려와도 물리칠 수 있는 성을 쌓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노슈의 규율은 알고 있겠지."

"의뢰가 들어오면 그게 누구든 성을 쌓는다. 악인이라고 해도......"(p.101)

'가카리'는 총동원으로 전쟁의 목전에서 성을 쌓거나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투 중에도 공사를 계속해야 하고, 희생자가 나오기도 한다. 아노슈의 규율은 누가 의뢰를 하든지 성을 쌓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노슈가 특정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교스케는 과거에 한 번 부모의 원수인 오다 군의 성벽 수리를 거부한 적이 있다. 겐사이는 이것을 분노했고,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교스케는 함락되지 않는 성을 짓는다면 전쟁은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같은 지역, 같은 시기에 태어난 두 천재. 한 명은 철벽같은 성벽을 쌓는다고 해서 '새왕'이란 이름으로 존경을 받고 또 한 명은 새로운 철포를 끊임없이 제작해서 '포선'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 빛과 어둠, 안과 밖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전쟁이 빈발하던 기간에 일했다. 두 사람이 만든 창과 방패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겨루어 왔다.

한쪽은 어떤 성이라도 깨뜨리는 최고의 창, 한쪽은 어떤 공격도 물리치는 최강의 방패. 모순이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p.180)

교스케는 오쓰 성의 수리를 맡는다. 성주는 교고쿠 다카쓰구로 유력한 혈통의 가문이지만,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여곡절 끝에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발탁되어 반딧불이 다이묘라는 별명을 얻는다. 평화가 만들어낸 성의 약점은 구조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스케는 성벽의 해자를 정비하고 물을 끌어들인다.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난세가 닥쳐와도 가족과 가신과 영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아노슈의 기술을 돋보이게 한다.

"최후의 전쟁......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평화의 질이 달라질 게야."

만약 창이 이긴다면, 병력이 적어도 양질의 무기만 얻으면 천하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방패가 이긴다면 가령 병사를 모아봤자 성 하나 함락시키기도 힘들다고 포기하는 자도 나올 것이다. 평화로 연결되는 최후의 전쟁, 즉 이번 전쟁은 평화의 형태를 결정짓게 될 거라고 겐사이는 말했다.(p.331)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등장한다. 무단파와 문치파, 동군과 서군으로 분열되어 또다시 전쟁의 공포가 몰려온다. 후시미 성이 함락되고, 오쓰 성이 위기에 처한다. 교스케는 가카리를 발령하고, 오쓰 성의 방어에 총력을 기울인다. 3천의 병력으로 수성하는 반딧불이 다이묘와 4만의 병력으로 공성하는 서국무쌍의 대결, 새왕의 성벽은 포선의 철포를 막아선다.

일진일퇴의 접전, 백중세의 전장은 군사뿐만 아니라 장인의 피와 땀과 눈물의 헌신을 잘 드러낸다.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서 축성 장인과 철포 장인의 활약을 역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견고한 성을 쌓겠다는 집념, 석축에 관한 상세한 묘사, 기발한 대결까지... 역사소설의 교과서로 여길 만큼 짜임새가 좋고, 이야기는 흥미롭다. 오쓰 성의 역사는 바뀌지 않아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데, 이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고 에도막부의 시대가 펼쳐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오리하라 이치, 민경욱 역, [그랜드맨션], 비채, 2014.

Orihara Ichi, [GRAND MANSION], 2013.

서술트릭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정신을 초집중해서 읽었을 텐데...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그랜드맨션]은, 이름은 그랜드이지만 전혀 그랜드하지 않은 오래된 공동주택에서 일어나는 사건 모음이다. 7개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맨션에 거주하는 이웃이다. 층간 소음, 스토킹, 고령사회, 밀실 사건, 전화사기, 기묘한 인생 그리고 치매와 건망증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서 수수께끼 풀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선을 놓치지 않고 읽어야 더 재미있다.

소리의 정체

304호 여자

선의의 제삼자

시간의 구멍

그리운 목소리

마음의 여로

리셋

101호에는 예순 전후의 관리인이, 102호에는 스킨헤드를 한 근육질의 남자가 산다.

공사현장, 위층의 소음, 아래층의 흉포한 남자. 그는 삼중으로 공격을 당해 분노만이 몸 안에 가득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분노가 폭발할 때가 찾아왔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분노의 예리한 날은 필연적으로 돌파하기 쉬운 곳을 향하기 마련이다.(p.40)

202호에 사는 사와무라 히데아키는 직장을 잃고 아내와 이혼했다. 그랜드맨션 동쪽에는 10층으로 2관이 건립될 예정이라서 일조권 문제와 공사 소음으로 신경이 예민하다. 그러던 중에 새로 이사 온 윗집 302호 아이들의 층간 소음으로 분노가 폭발한다. 그런데 거칠게 항의한 후에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든다.

마쓰시마 유카는 아침부터 밤까지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없이 끊는 전화는 반드시 밤 여덟 시가 넘어야 걸려왔다. 그녀가 집에 들어온 후다. 전에 전화를 걸어온 여자는 "마쓰시마 유카 씨입니까?"라고 분명히 그녀를 아는 것처럼 얘기했다. "누구세요?"라고 묻자마자 상대는 전화를 끊었다.(p.82)

303호에 사는 마쓰시마 유카는 새로 건축하는 2관의 모델하우스에서 근무한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는데, 그다음부터 누군가에게 감시 당하는 느낌과 매일 저녁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직장 상사를 의심하기도 하고, 입주를 알아보러 왔던 손님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으로 이상한 문자가 전달된다.

"즉신성불이란 말이다. 살아 있는 채 부처님이 된다는 말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살아 있는 채 부처님이?"(p.105)

306호에는 구보타 아야카와 엄마 치에와 할머니 미요가 함께 산다. 아야카는 결혼을 앞두고 이상한 편지를 받는데, 약혼자의 바람이 의심되는 사진이 들어 있다. 206호에 사는 다카다 에이지는 은퇴 후 지역 민생위원으로 활동하는데, 그는 남모르게 아야카를 짝사랑하고 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자네와는 조금 운명적인 만남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명적이요?"

"응, 운명적. 내 약혼자 이름도 도미오였어. '시간의 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면 오십 년을 거슬러 젊어져 자네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p.180)

203호에 사는 새누마 도미오는 책을 좋아해서 현관부터 책 더미가 쌓여 있다. 책을 더 사고 싶지만, 돈이 부족해서 임대료를 밀린 상태이다. 그는 우연히 옆집 노인의 "장롱예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지진이 일어나서 벽의 균열로 옆집과 통로가 생기고, 곤궁한 남자는 돈이 남아도는 노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계획한다. 204호에 사는 사쿠타 요시코는 고령의 노인으로 "내가 죽으면 옆집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라는 메모를 금고 속에 넣어 둔다.

"봐, 그래선 안 된다니까. 돈이 있다고 주변에 얘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고. 입이 재앙의 불씨야."

쓰카모토 하루는 입에 검지를 대고 상대를 나무랐다.(p.206)

105호에 사는 다카 이네코는 딸을 가장한 전화 사기로 오백만 엔을 잃었다고 301호에 사는 쓰카모토 하루에게 하소연한다. 106호에 사는 시오자키 도시오는 옛 연인을 가장한 상대에게 이백만 엔을 빼앗긴다. 연금 노인을 대상으로 전화를 걸어서 "나야 나"로 시작하는 속임수에 모두 속은 것이다. 104호에 사는 오카야스 료타에게도 할머니로 가장한 전화가 걸려 온다.

오카야스 료타의 씩씩한 목소리에 도메코의 가슴이 저렸다. 이것이 사랑일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한다. 몸은 늙어도.(p.263)

103호에 사는 무토 도메코는 문밖 복도에서 수상한 남자를 때려서 기절 시킨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반사적으로 행동한 정당방위라고 하고, 쓰러진 남자를 병원으로 옮긴다. 그녀는 현관에서 <엄마 찾아 삼만 리>라고 적힌 일기장을 발견하는데, 가정폭력을 피해서 도망 나온 소녀가 엄마를 찾아가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남자는 딸과 아내를 찾아서 그랜드맨션에 온 것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똑같은 말을 해요. 정말 큰일이라고요. 할머니, 일기 쓰세요?"

"응, 쓰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다가 이네코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일기 쓰기가 일과였는데 요즘은 쓴 기억이 없다.

"그러면 지금 당장 돌아가 할머니 일기를 보세요. 그곳에 할머니가 알고 싶어 하는 대답이 쓰여 있을 거예요. 그리고 손바닥을 펴보세요."(p.312)

105호에 사는 다카 이네코는 자고 일어나 보니 창밖의 맨션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까지 분명히 있었던 10층짜리 건물이 사라진 것을 이웃에게 이야기하지만, 전부 코웃음을 친다. 민생위원인 다카다 에이지는 그녀가 심각한 건망증을 앓고 있음을 알려준다. 매일 똑같은 말로 시작하는 하루, 반복적인 소동, 저녁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기억은 리셋된다.

서술트릭의 이면에는 일본의 노인문제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은행이 아닌 장롱에 돈을 보관하는 것,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큰 소리로 얘기하다 보니 개인정보가 새나간다는 것, 보이스피싱과 각종 사기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 육체의 쇠약과 함께 정신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서 치매와 건망증으로 고생한다는 것, 고독사로 외롭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한다. 노인 네트워크와 민생위원의 방문으로 어느 정도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노인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도 남의 일이 아닌 문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