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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마쓰이에 마사시, 권영주 역,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비채, 2018.
Matsuie Masashi, [YUUGANANOKA DOUKA WAKARANI], 2014.
2016년에 읽은 책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 2016.)를 말한다. 건축 설계를 소재로 하는데,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매년 여름이면 초록이 우거진 여름별장으로 옮겨가 두 달을 지낸다. 시대의 유행을 따르거나 건축가의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주변 환경하고 어울리면서 용도에 적합한 설계를 원칙으로 한다.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 경합에 참여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건축가의 열정과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한 설계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덕분에 요미우리문학상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책을 좋아하는 몇몇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소설하고 다르게 어떤 악인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우 건전하다. 다툼이나 대립 없는 전개는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는 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이러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아함에 관하여... 특히, 중년의 우아함이란 무엇인가? 안정적인 돈벌이로 물질의 자유로움... 교외에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는데 무슨 문제가 없는... 우리는 너나없이 내일의 우아함을 위해 오늘의 젊음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은 어떤 우아함을 추구하고 있을까? 이 책은 우아함에 관한 책이다...
이혼을 했다.(p.7)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잔디밭이 환하게 펼쳐진 공원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이 좋겠다.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헤어진 아내가 들으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며 당장 얼굴을 찡그릴 듯한 계획이다.(p.13)
40대 후반의 오카다 다다시는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해야 한다.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이며 그러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내와 이혼했다. 고연봉의 전문 분석가는 가정에서의 삶을 피곤하게 했나 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것은 그의 잘못이다. 다행히(?)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고... 그는 살던 아파트를 넘겨주고, 공원 근처의 오래된 집을 찾아 수리해서 사용하기를 원한다. 마치 중년의 우아함을 즐기려는 듯이...
"낡았죠. 쇼와 33년(1958)에 지었다니까 오십 년 더 됐습니다. 이층 목조 주택이고요. 이노카시라 공원에 면했답니다."(p.15)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로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났다.(p.63)
글 곳곳에서 오래된 집에 관한 서술을 한다. 서정적이면서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건축 설계를 내용으로 하는 전작의 분위기도 떠오르고...), 아내와 살던 집을 나와서야 비로소 안식처를 얻은 기분이다. 집을 수리하고 가구를 배치하는 과정은 마치 우아함의 결정체인 것처럼 세밀하다. 세를 준 집 주인의 배려와 늙은 길고양이, 낡은 집을 수리하며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 겨울에는 벽난로를 사용할 계획이다.
"오카다는 아직 사십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아들이 있었지? 지금 몇 살이지?"
"스물두 살입니다."
"벌써 성인이군. 부양 의무도 좀 있으면 끝이야. 부모님은 어떠시지?"
"칠십대 후반인데 뭐, 정정하시죠."
"하여간 부러울 따름이군.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p.77)
"오래된 걸 이것저것 손보는 게 즐겁거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원도 업자를 부르면 되살아나고, 다다미도 이불도 손질하면 새것이 되고, 장지도 덧문도 마찬가지야. 부엌 공사도 그랬어. 어둡지, 간장 냄새 나지, 전체적으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물론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싹 고쳤더니 몰라보게 좋아졌어. 수명이 다해가던 게 되살아나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쁜 거야."(p.85)
다른 이들이 원하는 우아함이란? 자유로움인가 보다. 직장 상사는 이혼하고 혼자 살며 부양의 의무가 없는 것에서 우아함을 말한다. 하지만 오카다는 오래된 것을 손보며 수명이 다해 가는 것을 되살리는 것에서 우아함을 찾는다. 그런데 퇴근해서 장을 보고, 음식을 요리하고, 라디오로 뉴스와 일기예보를 들으며 목욕하고, 12시면 잠자리에 드는 일상은 심심하다. 우아함의 이면에는 남이 모르는 쓰라림이 있다.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난다. 우아함이란 빈틈없는 생활이다. 그는 우아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질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연애에 푹 빠져 있을 수 있는 건 처음 석 달, 길어봤자 반년이잖아? 그 뒤로는 점점 냉정해져서 거기서부턴 서로가 상대방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야."(p.216)
죽을 때는 어차피 혼자라도,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가나의 아버지를 보고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p.234-235)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이전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서정적인 묘사와 특유의 잔잔함으로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오십 년이 더 된 고택에서 우아함을 말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아함을 다루고 있어서... 인생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빈틈없는 생활로 심심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것을 적당히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천박하지는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