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수잔 발라동의 그림을 구글링 하였다.

위에 그림은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이고

이건 자화상이다. 

이건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해의 자화상


그 시절에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모델 댄서 여러 잡일을 전전한 끝에 화가가된 그녀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무수한 연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살던 사람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속 그녀는 그저 관능적이라 화가의 욕망의 표현으로만 보이지만,

아마 현실의 그녀는 자화상처럼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으리라.

조금 우스웠다. 모델로서 그려진 그녀와 자신이 그린 그녀 사이의 차이가.

남자들이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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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09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모델을 하던 시기가 달른것도 한 이유겠지만 화가의 입장에선 그림의 판매도 생각해야되니 모델을 아름답게 그린것이 아닌가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18-11-19 12:24   좋아요 0 | URL
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자기 표현을 하려는 것이니까 당연한거 같아요.
 

배우 이민기가 아저씨나 본부장 역할을 하니, 아 세월이 이만큼 흘렀나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뭐랄까 내 맘속에 정말 소년같고, 청춘같은 배우인데. (옛날에 군대다녀와도 소년으로 있어달라고 알라딘에 쓴 적도 있다)


청춘하니까 생각나는데 최근에 버닝을 봤다. 우울할 때 즐겨보는 영화중에 <완득이>랑 돌아가신 김주혁 배우의 <홍반장>이 있다. 작은 마을에 다정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워낙 좋아한다. 히어로물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전혀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다. 심지어 감독의 전작인 시가 더 좋았다. 그래도 영화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는 인상깊었다. 그 또래 배우중에서 유아인 만큼 가난한 역할을 많이 해본 배우가 있을까 싶게 참 찢어지게 가난한 역할을 많이도 했다. 그중 종수가 가장 유아인이란 배우에 가서 붙은 느낌이 든다. 완득이와 밀회의 선재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고 있다. 계층의 사다리를 맹렬히 욕하거나, 미친듯이 기어오르려는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킥복싱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사랑에 빠지는 그 순수와 반짝임이 아름답다. 버닝에서의 종수는 문창과를 나와서 글을 쓰고, 택배배달을 한다. 시종일관 그는 무표정하고 건조하며 텅비어 보인다. 저런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을까? 쓰고는 있을까? 빛이 들지 않은 여자의 방에 짧은 순간 드는 흐린 빛, 그 빛마저 허구로 느껴져 서글퍼지는 영화였다. 누구에게나 꿈에 반짝이던 청춘 한줌 쯤은 있어도 될텐데 스물에 중년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세상인가. 


백리시를 읽고 있다. 스물초중반에 행복한 개인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성공한 여성이니, 페미니즘이니 뭐가 중요한가,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그런데 살다보니 나의 비폭력에 더욱더 잔인해지는 무리와(나는 간디가 아니라 참을 수가 없다. 애당초 간디가 옳은지도 모르겠지만) 목을 졸라오는 가족주의와 등튀에 꽂히는 칼날같은 비판들이, 내 행복과 이 사회 정치 구조라는 것이 너무나 붙어있어 문득문득 놀랍다. 나는 매사 너무나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을 설명하는게 너무 귀찮고 어렵다. 두껍고 매우 작은 글자로 되어있지만 어렵지는 않다. 언제나 내게 수수께끼인 애초 가진 적도 없는데 경상도에 뭔가를 뺏어갔다고 생각하는 경상도 친지들과, 미친듯이 꼴페미라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자들의 '이유'를 알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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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7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9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적어도 당신은 그게 무엇에 쓸모가 있는 거냐고 묻지 않는군요. 나를 화나게 하는 질문이거든요. 

 우리는 무엇이든 쓸모가 있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그런데 <쓸모가 있다>는 동사는 <뭔가의 노예가 된다>는 어원을 갖고 있죠. 그리고 자유의 개념을 구현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예요. (중략) 인간에게 새들의 무사태평을 제안했거든요. 그 무사태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예요. 왜냐하면 사실 새들의 자유는 전혀 무사태평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새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자유로워질 수 있긴 한데, 그것이 무척 어렵고 불안을 야기한다는 사실이예요. 새들을 보면 늘 주변을 살피죠. 공연히 그러는 게 아니예요. 자유란 원래 불안한 거예요. 우리와는 반대로 새들은 그 불안을 받아들여요.]

(중략)

 [내 얘기에 관심없죠?]

 [아뇨, 아주 교훈적이네요.]

 <교훈적>. 그는 그 말을 참아 내기가 힘들었다. <교훈적>, 그 말은 마치 욕설처럼 들렸다.


- 151~153쪽


다른 교훈

자연이 한 대상에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새기고 

예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색조로 칠한다 해도,

하나의 가슴을 민감하게 만드는 데는

그 어떤 자연의 선물들도 사랑이 발견하게 하는

단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매력보다 못하노니.


- 역자의 <고수머리 리케> 번역에서 224쪽


 아주 오랜만에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었다. 신입사원들에게 강의할 때 즐겨 그녀의 소설속 한장면을 인용하곤 한다. 의욕에 차 회사에 입사한 주인공이, 온갖 단순업무에 시달리며 밤새 장부를 맞추고 맞추다 정신을 놓고 아침에 나채로 서류더미에서 발견되는 장면이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바, 우리가 모두 알다싶이 그 회사를 때려치운 끝에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에 따르면 왕따의 피해자가 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표현이 적은 친구들이란다. (원래 성격이 아니라 왕따의 결과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여하튼 이 소설의 여주인공, 우리나라였으면 천사처럼 예쁜데 말한마디 않는 그녀의 고등학교 생활은 대재앙이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미묘한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몹시 못생겼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남자주인공은 어떤가? 새만 쳐다보는 초천재가 남자동년배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그의 진중한 태도가 먹혔는지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있다는 설정은 다소 의아하다. 


여하간 그가 어떤 사람이건 사랑은 서로에게서 미친듯이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일찍히 김춘수님이 말씀하셨지 않는가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된다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신작을 읽고 아 내가 왜 이 작가의 책을 그만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난 소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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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이 그랬어. 말은 축적된다고."

 - 인터넷에 올린 말은 그게 얼마나 사소한 한마디든 간에. 올리는 순간 그 사람의 내부에도 남아.

 -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가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비탄의 문 2 147쪽>


 "쿠마 사람들만이 아니야. 도쓰카 사건의 피해자, 고미야 사에코 씨의 유족들 마음에 맺힌 응어리도 풀리지 않겠지. 그 사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모두 마찬가지야."

그 사실이 갑자기 고타로의 내면에서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남들 모르게 사적인 제재로 죄를 처단하면 그렇게 돼."

<비탄의 문 2 285쪽>


내 등뒤에도 내가 내뱉은 말들이 쌓여 만든 날카로운 쇠붙이 모양의 괴물이 붙어있을까?

말로 먹고사는 작가의 글이니 맞겠지.

때로 두려워 쓸 수 없는 글이 많이 있지만, 그 두려움을 알기전에 뱉어 놓은 것들은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고, 인간은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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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하나하나는 모래알처럼 작아. 이 사회는 무수히 많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사막이야. 사막은 모래 한 알 한 알을 일일이 배려해주지 않고, 애당초 배려를 요구할 수 도 없어." 


그렇지만, 하고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같은 모래알끼리는 서로 챙겨줄 수 있겠지. 난 그러고 싶어. 사라진 사람들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 - 비탄의 문 1권 177쪽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이야기를 좋아한다. 배고프고, 무법천지인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힘을 모으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좋다. 비탄의 문은 기괴한 이야기다. 사람의 염원을 모으는 다른 세상의 존재가 나오고, 연쇄살인마도 등장한다. 다른 한편엔 이웃의 사정을 살펴주려는 다정한 마음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인간의 집념도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다정한 시선을 가진 작가다.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끈적이는 감정은 나에게도 들러붙는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온라인 세상의, 말이라는 창은 참으로 치명적이다. 우리는 자주 '말'이  행동을 부르는 것을 목도한다. 책에 나오는대로 '연쇄살인마'를 규정하고 묘사함으로서, 악의를 그렇게 풀려는 인간들이 늘어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적복수가 금지된 이유는 저간의 모든 사정을 당사자가 전부 헤아리기 어려울 뿐더러, 그 사적복수을 행하는 순간 그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고타로는 이형의 존재에 휘말려 한 존재를 소멸시키는데 동조한다.


이해안갈 이야기들이 잔뜩 써져있지만 재미는 있다. 이형의 존재의 힘을 빌려 연쇄살인법을 잡고자 하는 고타로는 이 모든 악의를 본 끝에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다음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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