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술을 끊었다.먹으면 아주아주 많이 먹으려는 안좋은 습관이 있어서 이참에 딱 끊어야 할 듯해서 딱 끊으려고 노력중이다.. 근데 교육감 선거 결과를 보고나니 오늘은 한잔 생각이 간절해 진다..
닉데이비스가 쓴 위기의 학교라는 책을 몇달전쯤 읽었다. 지금 사교육부담에 가계가 무너지는 우리교육이 처한 난장판에 비하면 영국의 학교는 상당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학교가 처한 위기의 상황은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당선된 공서울교육감님께서 공략으로 제시하신 것과 거의 흡사한 고교선택제, 사립학교 확대, 고교경쟁제를 실시한 몇년 후 영국의 공교육이 어떻게 무너져 가고, 그 속의 아이들은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가에 대해 생생히 알려주고 있다.
중산층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로 부자동네 공립학교로 보내고, 그곳에 갈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열악한 시설의 공립학교에 남겨진다. 그렇게 한해한해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및 부자동네의 학교 간의 격차는 심해져만간다. 부자학교는 학생이 몰리고 학생이 많으니 나라의 지원도 더 가게되고, 부모들이 부자니 기부금도 많고, 부모들이 학업에 관심이 많으니 그중에 우수한 아이도 자연 많기 마련이고, 이 우수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자극해 전반적인 학력수준도 높아져 점점더 좋은 학교가 되어간다. 가난한 학교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고 말이다.
5년전인가 대학 신입생들 가정환경 조사를 했더니 서울대 신입생들의 부모님 소득수준이 가장 높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평한 교육의 기회는 이름뿐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과고외고에 가기위해 초등학교때부터 학원을 이리저리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된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학교라는 테두리 속에서 만나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고 더불어 살아가는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친구를 밟고 일등하려고만 커온 아이들이 자라서 관리자가 되면 어찌 가난한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되겠으며, 서민을 이해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점점 우리의 미래가 두려워만진다. 시를 짓고, 자연과 사람을 사람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이제 학교를 보내지 않는 방법 밖에 없는건 아닌지.. 거하게 취하고 싶은 날 되는데로 이런저런 말을 주절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