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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라도 

나도 한때는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자식이고자 했네.
그렇게 세상에 도움도 주리라 믿었네. 

평생의 끄트머리에 이른 마지막 바람은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되는 것.
나를 무는 모기며 쇠파리 한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네. 

<녹색평론 106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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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 실리는 시들은 참 정겹다.
청년기엔 무언가를 위해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저 내가 남의 것을 너무 많이 빼앗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만 든다.
이 도시에서 살면서 남에게 '단 하루라도' 누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배병삼 선생 말대로 '나'는 어짜피 남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니, '우리'를 위하는 길, 함께하기의 길에 나도 뭔가 한자락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젊음다운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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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순례자, 톨스토이 - 박경미 中 

P78~79 

그는 자신이 인생의 가장 단순한 문제, 즉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 하는 문제조차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모르는 인간이면서 오로지 많은 돈과 칭찬을 얻고 싶어서 책을 쓰고 신문잡지에 기고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무익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간이라는 자긍심을 갖기 위해 그러한 활동을 정당화 했던 논리가 '진보'에 대한 관념이었다고 한다.(<톨스토이 참회록>,26~29쪽)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다"는 이론이었고, 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보한다"는 논리였다. 

톨스토이의 이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어느 시대에나 개인이 인정할 수 없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시스템'이 개인에게 강요할 때 스스템의 대변자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진보의 논리'다. 역사적으로도 '진보'와 '발전'의 이념은 전쟁을 비롯한 온갖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이 논리에 의하면 만물은 진보하고 나도 진보한다. 그러나 왜 내가 만물과 더불어 진보하는지 사실을 모른다. 회심 이전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생각햇다. 진보는 문화에 의해 이루어지고, 문화의 정도는 책과 신문, 잡지의 보급으로 측정된다. 톨스토이는 책을 쓰고 신문잡지에 집필하는 일로 보스를 받으며 존경도 받는다. 따라서 톨스토이는 유익하고 우량한 인간이다. 사실 톨스토이만이 아니라 그만 못한 대부분의 지식인들도 자기자신에 대해 은연 중에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감추고 남을 가르치려는 욕망을 앞세우는 것은 지식인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습성이고, 그런 속임수를 정당화하는 것이 '진보의 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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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과학에 대한 믿음따위 원래도 별로 없었는데 점점 더 줄어만 간다. 

나 또한 그저 자위에 불과한 얼마나 많은 글들을 토해내고 있는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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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김성동 소설가의 이번호 이야기는 신발입니다. 

신발은 짚신과 감발을 더한 말이라고 합니다. 감발은 오늘날 양말처럼 발에 감던 무명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동학농민군과 빨치산을 무엇보다 괴롭웠던 것도 신발이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손이 얼면 비비거나 겨드랑이 사이에라도 넣을 수 있지만 발이야 말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열심이 몸다지기를 하던 항쟁군이니 하루이틀이면 짚신은 닳아없어지고, 맨살로 차가운 산길을 내달렸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신발 하나를 보급하기 위해 적진을 침투하기도 했고, 빨치산 작가 이동규는 맨발로 산을 헤매다 발이 동상으로 썩어 돌아가시기도 했다니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요.

원래 우리 민족은 가죽신을 신던 민족인데 북쪽 너른 영토를 잃어버리고 반도로 쪼그라 들면서 고만 짐승가죽이 들어오지 않아 짚신만 신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1% 정도의 지배층은 계속 가죽신을 신었겠지요. 잘못은 높은 양반들이 하고 죽어나는 것은 가난한 백성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네요.

양말이며 신발이며 장 한가득 넘쳐나는 요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니 새삼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야기 둘  

시사인 71호에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의 신년강좌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중에서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아 이곳에 옮겨봅니다. 

장일순 선생이 사시는 마을 이웃에 장사하시는 할머니가 한분 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기차를 타고 오시다 고만 원주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신 것이지요. 그 돈이 무척 귀한 것이라 할머니는 장선생님을 붙잡고 울며불며 하소연을 하셨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선생님이 매일 같이 원주역에 출근하시어 앉아있으셨답니다. 이 노인이 일주일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같이 역에 앉아 있으니 주변에서 물어도 오고 연유가 소문이 났답니다. 일주일 되던 날 소매치기가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일부는 소진했고, 나머지는 여기 있습니다. 쓴 돈은 벌어 곧 갚겠습니다' 하더랍니다. 그 돈을 할머니께 전해드렸답니다. 여기서부터가 더 감동적인 부분인데 선생이 다음날 소매치기를 찾아가 "내가 자네 일을 방해했지?" 하며 소주를 사며 달래주셨다고 합니다.  

사람간의 관심과 만남이 살아있는 소도시라 가능했던 일이라고 김종철 선생은 말합니다. 간디의 마을마다 하나의 공화국,  자생적인 협동조합만이 살 길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늘 지역운동에 관심이 있다고  하지만, 장선생님의 일화를 보니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이 얼마나 깊어야 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앞으로 힘겨운 일이 있으면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아직 충분히 내가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라고, 가끔 이 이야기 떠오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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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1-2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

무해한모리군 2009-01-28 09:50   좋아요 0 | URL
종종 놀러오세요 ^^
 

<내맘대로 요약>

1. 녹색혁명형 농업은 먹거리 불안과 저개발국의 기아심화를 가져왔다. 

현대농업의 특성은 생산지와 소비지의 분리에서 찾을 수 있다. 기계농업과 화학농업, 대규모 유통자본의 개입을 통해 자연 순환파괴 및 환경 훼손형 농업으로 변모시켰으며 외부자본에 의존케 함으로서 자기수탈형 농업이 되게 했다. 

2. WTO체제하 시장개방으로 먹거리 안정성은 더욱 불안해 졌다. 

"경제의 영역에서 '자유'라는 것은 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을 일홉게 하기위한 암호에 불과하며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것도 비슷한 신화일 뿐이다. 돈은 자유롭게 세계를 떠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지만, 인간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시브룩)  

우르과이라운드를 진행하면서 온인류의 유산인 유전자원을 종자메이저들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종자메이저들은 각종 유전자조작 종자들을 특별한 검증절차 없이 시장에 쏟아내었으나, WTO는 제대로된 규제 조차 만들지 않았다.

1903년 미국 농무성 등록 상업작물 96%가 멸종되었으며, 배추의 96% 상추 90% 사과 85%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한두종의 젖소가 생산한 우유를 마시고 동일한 닭이 낳은 알을 먹고 있다. 

3. 먹거리 생산에 드는 에너지가 폭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상추를 약 5,000킬로 떨어진 워싱턴에 판매 하는데 사용된 에너지는 제공 에너지의 36배가 운송과정에서 소모된다. 양상추 1파운드 상자는 80칼로리의 열량을 제공하는데, 이를 세척포장수송하는데는 4,600칼로리가 소모된다고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칠레산포도는 서울까지 오는데 1만9천 킬로미터를 날아오고, 미국밀은 2만 킬로 떨어진 곳에서 온다.  

먼 곳에서 오다보니 영양가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화학용품 사용이 필수화된다. 

4.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윤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10년도 1달러짜리 빵을 소비자가 구매할 때 밀농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40센트 였으나, 1997년에는 7센트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5. 지역먹거리 운동이란 무엇인가? 

지역먹거리 운동은 관계의 확대, 거리의 축소, 신뢰의 확산을 목적으로 한다. 얼굴있는 농산물로 농과 식 사이의 물리적, 사회적 거리를 축소하고 관계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이는 자연과 농업의 관계 회복이며, 자본에게 빼앗겼던 농가공의 영역도 농민에게 돌아가게 노력해야 한다.  

생산은 자원을 소비하고, 소비는 생명을 재생산 하는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6. 연합된 생산자들에 의한 통제와 소비자들의 연합을 필요로 한다.

<나의 짧은 생각> 

얼마전에 두아이의 엄마인 생협조합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분과의 대화는 현재의 생협운동이 가진 문제점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생협은 값싼 유기농의 직거래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식'을 담당하는 쪽도 단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와 함께 조합원이고 하나의 축을 이루게 된다. 이 축이 제대로 조직되지 않으면, 생협활동가는 택배사원으로, 농민은 공급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농산물은 공산품이 아니다. 생협의 기반이 탄탄했던 전라도에서 지역 농산물로 학교급식을 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예에서 보여지듯이 예쁘고 잘난 그것도 생산량과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먹으려고 하면 그 재고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생산하는대로 먹어줄 것을 약속하지 않고는 생협의 활동이 될 수 없다. 제철에 나는 것을 작황에 맞춰서 소비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다. 

외국에서 들어온 유기농은 유기농이 아니다. 그 먼곳에서 오느라 얼마나 많은 화학연료를 소비했으며, 먼곳에서 오는데 더 싸려면 대다수가 대량생산 기계농일텐데 또 얼마나 많은 화학연료 소비와 생태계 파괴가 있었겠는가.  

나는 일상에서 내나름 게으른 투쟁을 한다. 뭐 별거 없다. 생협등 농산물 직거래를 이용하고, 모자라는 것은 동네 단골 가게에서 산다. 나는 술을 제외하고는 마트에서 사서 쓰는 것이 거의 없다. 휴지대신 가제 손수건을 사용하고, 면생리대를 쓰고, 개인컵을 가지고 다닌다.  

생협을 이용하면서 감자를 손질하다 날이 가물어서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을 걱정하기도 하고, 쑥이나 냉이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통자본의 손에 벗어난 우리끼리 연대를 하다보면 이 단단해 보이는 체제에도 균혈이 생기리라 생각해본다. 이미 이 석유문명은 벼랑끝에 서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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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1-1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있는 분야라서 잘 읽고 갑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16 08:28   좋아요 0 | URL
그냥 메모인데 와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론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참고자료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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