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씨들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누가 그들에게 젊은 육신의 옷을 입혀줄 수 있단 말인가.
- [젊은 그들] 전문-80쪽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욱푹,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모두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린다지,
- [불귀 2] 중에서-86쪽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
용서해라, 蓮.
- [목련에게] 전문-131쪽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투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2009년 1월 20일 신경민 앵커 클로징 멘트-164쪽
설사 유신 시절에 한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해도 그 부국강병의 이면에서 억울한 죽음의 피비린내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우리는 조국을 향해 침을 뱉어야 한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하는 발언들까지 껴안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시험하지 마라. 문제는 좌편향이냐 우편향이냐가 아니라 상식이냐 몰상식이냐다.-240쪽
그가 "삶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21쪽)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선(先)해석의 커튼"(127쪽)을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때 이말은 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밀란쿤데라의 [커튼]-314쪽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315쪽
사랑이 시작된 이유와 사랑이 끝난 이유가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수함에 매혹되었는데 이제는 그 순수함이 지긋지긋해서 떠나고 싶어진다.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 동안 뽐므는 시종일관 뽐므였을 뿐이데 그녀는 선택되었고 또 버려졌다. 그러나 에므리를 비난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또 당혹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존재, 만남, 소통, 파국 드으이 단어가 어지럽게 떠올라 뒤엉키다가 이윽고 자포자기의 슬픔으로 가라앉는다. 작가 자신이 '68세대'인 까닭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는 남녀의 사랑에서 계급적, 문화적 차이가 갖는 의미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있다.
- 레이스 뜨는 여자-317쪽
술 깨고 싶지 않은 것이고 계속 아프고 싶은 것이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극복과 위로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들과의 애틋한 거리다. 서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빤하고 애뜻한 수작이다.-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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