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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명적이다 - 경계를 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들의 예술
제미란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5월
내게 어른이 된다는 건 여성으로서의 나의 사회적 위치의 자각과 말도 안되는 상황에 매일처럼 부닺치는 것이었다.
김원숙이 그린 <균형잡기>를 보면서 이 잘나게만 보이는 여자의 결혼도 초고난도 공중 곡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하기보다는 오래참고 찬란하지만 고통투성이인 삶을 '그리기'로 견디면서(24쪽) 20년을 버텼던 그녀는 그렇지만 새로운 선택을 했다.
과감히 뛰어내려 그녀을 가두던 유교적 윤리를 벗고, 자유를 향해 사랑을 향해 관능을 향해 몸을 던진다.
이 작가 김은주도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인간이 건강하게 꿈꾸며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도 좁은 틀이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37쪽)
그녀의 거대한 작품속의 인체들은 구겨져 있다. 이 사회의 정형에 맞춰서 살점이 떨어져나가게 사회의 틀 속에 구겨져 들어가야 하는 고통을 그녀의 그림에서 즉시한다.
나는 가끔 화가난다. 왜 주변 여성들과 얘기하다보면 우리는 이렇게 쉽게 상처받고 많이 아픈지 속이 상한다.
김주연의 작품은 우리는 이렇게 많이 상처받지만 그 과정에서 또 각기 다르게 성장하고 성숙한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더 많이 상처받기에 타인에 상처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주어졌는지 모른다.
그녀의 소금산에 발을 붙이고 힘겹지만 내 안에도 이겨낼 힘이 있다는 걸 새삼 돌아본다.
류준화 작가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야 도달할 수 있는 여성들의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몸이 희생되더라도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새로운 삶과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말하고 싶었단다.(76쪽)
그렇다 몸을 던지거나 내 살과 피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날개다. 이 내가 갖힌 틀을 벗어날 길은 그곳 밖에 없단다.
이 사람 박미화는 작품속의 희생제의의 이유가 억울함이란다. 첫날밤,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두 알아버린 작가는 터져 나오는 속울음을 삼켰다고 한다. 아버지와는 결코 닮지 않은 사람을 찾아 선택했지만 자신의 삶 역시 여자의 삶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희생 제물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스스로를 애도하고 희생자의 피해의식을 승화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91쪽)
유미옥 작가는 자폐아인 둘째아이를 키우고 있다한다. 시뻘건 불길 속에 알을 지키고 있는 새, 그녀에게 장애아를 키우기에 세상은 불구덩이 였던 것이다.
때로 정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얼마없음을 느낀다. 고통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시에 나를 덮치고, 그저 내 마음 하나만 내가 어찌할 수 있을 뿐이다.
아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줄에서 풀려났을까?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그 댓가로 무엇을 내어놓았을까? 인어공주의 목소리처럼.
그녀는 헛된 희망과 집착을 내려놓아 얻을 수 있었나보다.
이 곱고 아름다운 핑크색 의자는 왜 뿔이 생겼을까? 나이 마흔에 꿈을 접고 아이 뒷바라지 하던 중산층의 삶 어디에 갑자기 생겨난 우울과 불안으로 그녀는 아팠단다. 그리고 그 광기를 그림으로 가라앉혔단다.
나르시즘과 허위로 아무리 똘똘 뭉쳐봐도 외롭고 또 누군가를 열망하게 마련이다. 평화롭게 보이는 저 여성도 나처럼 여자로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고 화가 나 있을까?
한애규 작가의 그녀들처럼 슬프지만 우리를 둘러싼 시련에 맞서면서 더 깊어지고 강인해질 것이다. 나를 상자에 가둔다면, 상자째 솟구쳐버리겠다는 의지로!
삶의 고난의 순간들을 생경하고 따듯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오늘보다 내일 더 깊어지는 삶이 되기를, 매 순간 더 예민하게 느끼되 따스히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오늘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