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그랬어. 말은 축적된다고."

 - 인터넷에 올린 말은 그게 얼마나 사소한 한마디든 간에. 올리는 순간 그 사람의 내부에도 남아.

 -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가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비탄의 문 2 147쪽>


 "쿠마 사람들만이 아니야. 도쓰카 사건의 피해자, 고미야 사에코 씨의 유족들 마음에 맺힌 응어리도 풀리지 않겠지. 그 사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모두 마찬가지야."

그 사실이 갑자기 고타로의 내면에서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남들 모르게 사적인 제재로 죄를 처단하면 그렇게 돼."

<비탄의 문 2 285쪽>


내 등뒤에도 내가 내뱉은 말들이 쌓여 만든 날카로운 쇠붙이 모양의 괴물이 붙어있을까?

말로 먹고사는 작가의 글이니 맞겠지.

때로 두려워 쓸 수 없는 글이 많이 있지만, 그 두려움을 알기전에 뱉어 놓은 것들은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고, 인간은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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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하나하나는 모래알처럼 작아. 이 사회는 무수히 많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사막이야. 사막은 모래 한 알 한 알을 일일이 배려해주지 않고, 애당초 배려를 요구할 수 도 없어." 


그렇지만, 하고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같은 모래알끼리는 서로 챙겨줄 수 있겠지. 난 그러고 싶어. 사라진 사람들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 - 비탄의 문 1권 177쪽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이야기를 좋아한다. 배고프고, 무법천지인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힘을 모으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좋다. 비탄의 문은 기괴한 이야기다. 사람의 염원을 모으는 다른 세상의 존재가 나오고, 연쇄살인마도 등장한다. 다른 한편엔 이웃의 사정을 살펴주려는 다정한 마음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인간의 집념도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다정한 시선을 가진 작가다.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끈적이는 감정은 나에게도 들러붙는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온라인 세상의, 말이라는 창은 참으로 치명적이다. 우리는 자주 '말'이  행동을 부르는 것을 목도한다. 책에 나오는대로 '연쇄살인마'를 규정하고 묘사함으로서, 악의를 그렇게 풀려는 인간들이 늘어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적복수가 금지된 이유는 저간의 모든 사정을 당사자가 전부 헤아리기 어려울 뿐더러, 그 사적복수을 행하는 순간 그는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고타로는 이형의 존재에 휘말려 한 존재를 소멸시키는데 동조한다.


이해안갈 이야기들이 잔뜩 써져있지만 재미는 있다. 이형의 존재의 힘을 빌려 연쇄살인법을 잡고자 하는 고타로는 이 모든 악의를 본 끝에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다음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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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의 최고 관심작일 안무가 마를레느 몬테이루 프레이타스의 바쿠스-제거의 전주곡 공연을 봤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벌써 공연자들이 관객석에서 어수선하게 악기를 불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미 공연은 시작됐다. 본격적 첫무대는 깐 엉덩이에 마이크를 댄체 열정적으로 노래하며 시작한다. 바쿠스 신전의 사제들은 하얗게 차려입은체 덜거덕 거리고, 외설적이고 저질스런 난장이 벌어진다. 무대가 점점 고조되니, 얌전하게 줄맞춰 앉은 내꼴이 우스워 낄낄거렸다.  


춤공연에선 드물게 2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열정적 공연은 조명, 영상, 온갖 장르의 음악, 꺽기 털기(이 무용가는 2리터 물병을 머리에 두고 열정적으로 털기를 할 수 있다) 판토마임이 마구 뒤엉켜있다. 


상스럽고 유쾌했다. 내가 본 두번째 그녀의 작품인데 아마 또 내한한다면 보고 싶다. 굉장한 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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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re 2018-11-17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켓 사놓고 못봤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8-11-19 12:25   좋아요 0 | URL
좋았어요. 가능하면 가보려는 행사중에 하나인데 저도 뭐니까 고민되긴했어요 ㅋㅋㅋㅋㅋ

2018-11-30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았다.

무용가는 팝핀현준을 연상시키는 야광조끼를 입고 아코디언 연주자는 육중한 악기를 들고 현란하다 못해 혼미한 조명아래 선다.

빛, 소음, 인간의 속삭임, 으르렁 거림 온갖 소리들이 갖가지 템포로 들려온다. 연주자는 악기를 두드리고 으르렁거리고 발을 구르고 그 무거운 악기를 몸에 일부처럼 다룬다. 무용가는 아주 빠른 템포에 느리게 느리게 흐느적거린며 극은 시작된다. 문득 대학시절 나이트에서 탈춤추던 선배들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괴짜들이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서로에게 몸의 일부를 댄체 10분가량 이어진 춤이다. 아, 내가 연주자라면 나의 소리에 저렇게 기가 막히게 움직이는 몸을 보는게 경이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가 끝나고 긴 박수가 이어지고, 노신사분들께서 '이야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난해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렸다. 그래도 생경한 음악에 절묘하게 맞춰 추던 몸짓이 오래 기억이 난다. 저사람은 자동차 경적에 맞춰서도 춤출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십여년전에 몸이 많이 불편하신 노무용가가 추던 살풀이가 떠올랐다. 이야 어떻게 어깨까지도 팔이 안올라는데 저렇게 박을 절묘하게 즈려밟아 출까 놀라웠다. 인간의 몸이 놀랍고, 잘춘다는게 무언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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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0-1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다녀오셨어요? SID 다른 공연도 봐야하는데 !!! 탈춤느낌인가요?^^

무해한모리군 2018-10-15 14:47   좋아요 0 | URL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았고, 굳이 하나 꼽자면 불후의명곡에 나왔던 팝핀현준이 떠올랐습니다 ㅋㅋㅋㅋㅋ
 

서문을 읽고 심장이 쿵하는 글을 오랜만에 만난다. 모든 리뷰를 그의 책에서 빼와 인용하고픈 욕구를 누르며, 이 책의 리뷰도 가능한 문장을 조각내 옮기지 않을 참이다. 한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무너지는 글을 쓰고싶었다는 저자의 뜻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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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 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낌의 공동체>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넘어왔다. 같은 화가의 다른 그림을 표지로 얹었는데, 그때는 그림 속의 배를 어떤 당신과 함께 타고 있었다고 여겼으나 지금은 내가 이르지 못할 슬픔을 가졌을 당신의 뒷모습을 그림 밖에 서서 바라본다.

서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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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8-09-23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이 왜 싫었는지 까먹었으니 이 책 사봐야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8-09-27 15:11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좋았어요. 몰락의 에티카를 처음 읽었을때 내용을 떠나서 글을 쓰는 방식이랄까 이런게 감탄스러웠어요.. 저는 평론 이런걸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참 신선하더라구요. 분명하고 깔끔한 글이라 건조할거 같은데 그 사람의 정서가 느껴져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