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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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지? 코로나19로 갇혀 지냈던 3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으니. 제목에서부터 팬데믹 상황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그 한 문장이 자꾸 시선을 빼앗았다. 그래서 펼쳐보게 된 책이다. 내용은 담담하다. 동요할 만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작은 군상群像을 이루고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마음속 깊이 코로나19에 대해 재난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은 것 같다. 영화에서처럼 급박한 상황이 없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일상이 파괴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재난으로 닥친 사람들도 있다. 죽음과 맞닥뜨렸던 사람들도 있고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분명 재난상황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습게도 코로나19의 증세가 딱 저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에 빠지는 전염병이라니! 이 시끄러운 세상속에서 조용히 잠을 자게 하는 전염병이 돈다는 걸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다. 어쩌면 그래서 소심한 사람들만 병에 안걸렸을 것이다. 속된 말로 나대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까봐 조심했던 사람들만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설정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소제목으로 각 장을 나눠놓았다. 그 제목들조차 소심함 그 자체다. 세상이 멸망한 것도 아닌데 일단 세상이 멸망했는데...로 시작한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편의점에 가고, 마트에 가고, 주요소엘 가고, 카페에 가고, 병원에 가고, 호텔에 가고, 소풍을 가고.... 모든 행동이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물며 생일파티도 한다. 그 와중에 우리도 할 건 다 했다. 단지 소설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만 다를 뿐이다. 그들이 "우리 이래도 되는 겁니까?" 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왜 안된다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는 건데?" 가 아니었을까 싶다. 팬데믹 상황에 처했을 때 어쩌면 우리도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느끼지는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말과 행동이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귀엽기도 하고 순박淳樸하다. 각각의 인물 묘사가 재미있다. 그 와중에 소심한 성격의 한 여성이 성격을 바꾸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그 책이 시키는대로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리더가 되고 싶은 그 여성의 마음에 공감하는 독자가 꽤 많을 것 같다. 오죽하면 이름을 최강자로 바꿨을까? 어쩌면 그래서 자기계발서가 끝도 없이 발간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해피 엔딩을 바라다니, 라는 마지막 장에서 모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에서 보면 해피 엔딩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며 끝난다는 그 대사를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희망은 그런 것인가 보다. 소극장에서 한 편의 연극을 보고 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김이환이란 작가의 책을 보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이 꽤나 많다. 떠도는 말로 많이 들었던 '이불 밖은 위험해' 가 그가 쓴 작품의 제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상 이력도 많이 보인다. 그의 작품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2009년 장편소설 『절망의 구』로 멀티문학상을, 2011년 『너의 변신』으로 젊은작가상 우수상을, 2017년 『초인은 지금』으로 SF어워드 장편소설 우수상을 수상했다. 『너의 변신』은 9개 언어로 번역되어 프랑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등에서 출간되었다. 『절망의 구』는 영국에서 번역 및 출간될 예정이며 일본에서 만화로 각색되어 출간되었고, 국내에서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개발 중이다. 소설집 『이불 밖은 위험해』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연작소설집 『행운을 빕니다』와 장편소설 『절망의 구』, 『초인은 지금』, 『엉망진창 우주선을 타고』 등을 펴냈다. 『기기인 도로』,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등의 SF 앤솔러지와 많은 수의 청소년 단편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 anthology 한마디로 '선집(選集)'이다. 서적이라면 편집자가 잡지나 책 등 발표되었던 명작ㆍ걸작 등을 모아 다시 수록한 작품집이다. 음반이라면 그 동안 발표되었던 곡 중에서 좋은 것들만 다시 모아 실은 음반으로 꼭 한 사람의 작품만 모아 놓은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작품을 모은 것도 앤솔로지에 해당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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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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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종교의 역사다. 빨간 십자가를 앞세우며 달려가던 성전 기사단으로 시작을 하더니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검은 십자가단이 등장했고, 마침내는 프리메이슨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의아했다. 꿀벌이란 말 한마디로 너무 쉽게 내용을 짐작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끝까지 꿀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간간히 들려주던 지구온난화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심 기대를 했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는 따끔한 충고를.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유명인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가 버린 듯 하다. 2편을 읽으면서 오버랩 되어지던 기시감은 오래 전에 읽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와 오래 전에 보았던 <토탈 리콜>이라는 영화였다. 몰입도가 끝내줬던 책에 비해 영화는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았었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로 세상이 망한다는 말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고 한다면 꿀벌이 사라진 세상의 암울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이 소설은 그 암울한 세상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희망은 그저 가정에 불과해 보인다. 마치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소설의 구조속에서 한줄기 희망이라고 말한다면 파리 기후 변화 회의에서 중국 대표가 했다는 말이다. 진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

자국의 생산 시설을 풀가동하느냐 마느냐는 각국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에 관련된 것이죠. 남의 나라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은 저성장 정책이 불러올 파장부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입니다. 공장 가동을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한다고 해서 우리는 국민들을 실업자로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수시로 파업이나 일으키는 게을러빠진 유럽 노동자 수백만 명의 생산 활동을 줄이는 게, 당신들 나라에서 일상생활에 쓰이는 모든 물건들을 생산해 주는 의욕에 찬 10억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적게 시키는 것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환경 오염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당신들 꼴이 참 가관이라고 여겨집니다. 환경 오염이 싫으면 소비를 멈추면 될 거 아닙니까? (-249쪽) 인정하기 싫겠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소비를 멈출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미래는 어둡다. 자본주의를 앞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昨今의 현실을 보더라도 친환경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전체 식물의 80퍼센트가 꿀벌이 있어야 번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종교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가를 이미 배웠다. 종교가 무의미해진 세상을 살면서 또다시 종교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허구의 세상은 허황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근간에 읽었던 작가의 책 <문명>은 참 흥미로웠다. 몰입감도 좋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종교의 역사를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책을 덮으며 문득 어느 소설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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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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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원했던 선행 최면을 통해 암울한 미래를 보게 된 르네는 자신이 직접 그 미래를 보고 싶었다. 르네가 보았던 30년 뒤의 미래는 지구 온난화가 극심해져 기온은 43도가 넘었고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곳곳에서 폭동이 벌어진다. 인간들은 식량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까지 동원해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다. 바로 3차대전이다. 미래의 르네는 르네에게 3차대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에 쓰여 있다고 알려 준다. 그 예언서를 찾아 르네는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자신을 찾아가는데 놀랍게도 그 전생은 무려 1천 년 전의 십자군 기사였다. 인류를 구할 방법이 적혀있다는 고대의 예언서 <꿀벌의 예언>은 과연 존재할까? 그 책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르네와 알랙상드르 일행은 무엇을 찾아내게 될까? 선행 최면이니 퇴행 최면이니 하는 말들이 껄끄럽긴 하다. 시작부터 난관.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가 꽃식물이네. 그리고 이 꽃식물의 80퍼센트가량의 수분을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이야. 그동안 꿀벌은 서서히 사라지는데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던 거야. 인간이 직접 손으로 하거나 로봇을 이용한 수분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 조그만 원인 하나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어. 그런 상태에서 기온까지 상승하니 곡물 생산은 더 줄어들었고. 지표면의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물 부족이 심화되다 보니 관개수에 드는 비용이 너무 커져 농민들은 이용을 할 수가 없었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메뚜기 떼가 창궐해 농사를 망쳐 버렸어. 식량은 부족한데 인구가 많아지면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건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이지.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들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됐네.(-69쪽)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지구온난화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짐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이 책에 시선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인 면, 환경적인 면,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바라보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견해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박학다식한 작가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견해를 어찌 피력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첫 작품 <개미>에 매료되어 몇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사실 작가의 책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은 사람이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중세 시대의 성전 기사단은 후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템플기사단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왜 시작점이 중세였을까? 그래서 새삼스럽게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찾아보게 되었다. 법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즘을 공부했다는 말보다는 작가의 글쓰는 성향에 대한 말이 시선을 빼앗는다. 대체로 모험을 중심으로 하며 공상과학이나 짧은 철학을 혼합하여 글을 쓴다는데 대부분의 소설에서 같은 구조의 형식을 사용했다는 말이 보여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읽은 1권의 여운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미이라>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어디선가 본 기시감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는 말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인 <개미>를 집필하는데 12년이 걸렸다는 말에 놀랐다. 또한 작가는 티베트와 이집트의 죽음에 관한 경전들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책속에서 므네모스라는 말로 각각의 장에 대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말의 뜻이 잊혀진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는 말도 보인다. 이 책에서도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가 서로 얽히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만의 혜안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fantasy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인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발걸음이 조금 버겁기는 했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와 <투명인간>을 쓴 허버트 조지 웰스를 본받아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는 작가. 그는 18세에 개미를 소재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대단한 열정을 지닌 작가다. 이제 서막이 열렸으니 2편에서 마주칠 진실은 무엇일까? 기대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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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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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인물, 유비. 후흑厚黑이 천하를 통치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후흑이란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이 시꺼멓다는 뜻이다. 후흑학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천하의 영웅호걸이란 후흑에 뛰어난 자들이라고 후흑학에서 정의를 내렸다는데 조조는 心黑의 고수요, 유비는 面黑의 고수로 보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나관중이 지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은 청나라때 모종강이 다시 엮은 것이라 한다. 나관중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전후 맥락이 이해되는 범위에서 내용을 전개한 반면 모종강은 촉한 정통론에 입각하여 재편집하면서 조조를 악인으로, 관우와 제갈량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저자의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지식인들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까닭이다. 잘못된 아홉이 사실이라고 떠들면 진정한 하나는 묻혀버리는 대중 심리의 활용, 그리고 이를 통한 정치적 역사적 공고화. 이는 비단 문학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는 이 부분에서 최고이자 최선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117쪽) <삼국지연의>로 인해 발생한 오해와 억지가 마치 진실처럼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는 걸 보면 중국인들에게 삼국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관우는 무공이 뛰어난만큼 자만심도 높았다 한다. 자만심이 충만한 자는 질투와 시기심도 그에 못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훌륭한 인물로, 재물신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것은 그의 고향 산서가 소금생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소금은 옛날부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가가 관리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어지니 정부와 상인들은 서로 결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산서 출신인 관우를 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운 것이다. 게다가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관중도 동향 출신이었다. 현관을 죽이고 강호를 떠돌았다는 이야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왠지 껄끄럽다. 이제야 중국인들이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중국의 역대 왕들도 忠義를 지켰다는 관우를 내세워 신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기에 딱 좋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천성적 기질이 개인일 경우에는 공자의 편이지만 집단일 경우에는 순자의 편을 든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시선을 끌었다. 찾아보니 순자의 정치사상이 강력한 유가사상의 완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한다.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하고 성악설을 주장했던 순자. 통치이념으로써의 유가사상이라는 말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소설이되, 소설 이상의 의미를 담은 『삼국지연의』를 길 위에서 만나다!"

"중국의 삼국지 현장에 대한 관심과 여행에 집중하다!"

삼국지 기행을 읽기 전 자꾸 시선이 가던 책의 소개글이다. 귀기울여 듣던 저자의 삼국지 해설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현장을 통해 해설하는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七實三虛는 커녕 三實七虛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의 현장 곳곳에서 역사서와 비교하며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으며 그 모든 사실이 이채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삼국지 현장에 대한 관심과 여행에 집중하다,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아울러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니 저자의 발걸음에 桑田碧海나 隔世之感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시대의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면서 느꼈을 저자의 감동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을 고맙게 여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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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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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화관에서 홍콩 영화나 대만 영화가 많이 상영되었다. 그 배우들이 광고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때의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부류의 영화였지만 오빠를 따라 읽었던 <영웅문>과 <삼국지>로 인해 영화의 재미를 알게 되었었다. 그 때는 故고우영의 만화도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호지나 초한지도 그의 만화를 통해 읽게 되었던 책 중의 하나다.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이 책은 답사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의미한다. 연의는 1800여 년을 이어오며 많은 부분이 역사적 상황과 다르게 각색되었다. 이를 일러 七實三虛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三實七虛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민중에게 사랑받고 국가적으로 장려한 까닭은 무엇인가.(-19쪽)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생각해 봤을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명확한 이분법적 세계관, 즉 '선과 악'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 그러나 소설책이되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삼국지>라 한다. 이야기는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시작된다. 정권은 부패했고 백성이 감당해야 할 조세는 너무 많았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농민들. 폭정에 시달리던 민심은 폭발했고 그것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었다. 주력군이 1년만에 괴멸하였음에도 흩어진 잔당들이 1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의 원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농민들을 도적으로 몰아 토벌하고자 내달렸던 자들이 바로 삼국지의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조조가 그랬고, 유비가 그랬고, 손견이 그랬다. 백성을 위하고 세상을 편하게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은 정권 유지를 위한 말에 불과할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고 싶어진다.

중국어 중에 '인민'이라는 말이 있다. '인'은 성 안의 사람을 말함이고, '민'은 성 밖의 사람을 말한다. 성 안과 성 밖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랐다. 관우가 살았던 곳도 성 밖이었다. 백성들을 학대하던 현관을 죽이고 도망자가 된 아들에게 걸림돌이 될까봐 그의 부모는 우물에 투신했다. 그렇게 몇 년을 강호를 떠돌았다. 중국에서 관우는 신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삼국지 최고의 주인공은 역시 관우일까? 중국 전역에 퍼져 있다는 사당 '관제묘'는 우리나라에도 많았다. 서울풍물시장 입구의 동묘가 바로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忠義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새삼스럽게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관우의 얼굴빛을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은 색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별하는 관습때문이었다. 붉은 색으로 충성스런 인품을 표현했던 까닭이다. 그와는 반대로 조조의 얼굴빛이 흰색인 것은 사악함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다분히 소설적인 묘사다. 유비, 관우, 장비 세사람이 도원결의를 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단지 소설적인 표현일 뿐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장면에 열광하는 걸 보면 알 수 없는 기운이라도 있는 것일까? 황권이 미약해지고 외척과 환관이 득세를 했다. 조정은 문란해지고 그 틈을 파고 들어 자신의 입지를 굳힌 인물이 동탁과 원소였다.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갈라놓았던 초선이라는 여인이 허구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유비도, 조조도 공부를 싫어했다는 말에 실소했다.

『삼국지』에 가미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살피고 정사(正史)와 연의를 비교해 실어 독자들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책 소개글에서)

이 책에서는 '촉한정통'이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사실 유비보다 훨씬 뛰어난 지략과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조조는 냉철한 현실주의였다. 그럼에도 악인으로 평가를 낮췄던 것은 중국인의 내면에 '촉한정통'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 의리와 명분을 중시했던 '성리학'이었다. 그 성리학의 중심점에 유비가 있었던 것이다. 명분을 중시했던 '성리학'이 우리의 조선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말 할 필요가 없다. 제갈량은 출사 이후 적벽대전까지 줄곧 철수와 후퇴만을 반복했다는 것을, 그 어떤 전투에서도 이긴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제갈량의 이미지는 소설가 나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였을 뿐이었다는 말에 왠지 모를 허탈감이 인다. 기행에서 만나는 유적들은 역사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그리고 허구적인 것들로 나뉜다. 이를 잘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게다가 복원되어진 유적마져도 옛 풍취를 느낄 수 없다면 그 답사길의 여운은 고스란히 기행자의 몫이 된다. 관광이 돈과 직결되는 세상으로 변하면서 유물과 유적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옷을 입기도 한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풀어 오른 풍선과 같은 스토리텔링은 가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니 찾아가는 이의 '앎'이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도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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