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컨스피러시 옥성호의 빅퀘스천
옥성호 지음 / 파람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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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빅퀘스천? 이 책이 시리즈라 한다. 종교서일까? 하지만 책의 제목이 단순히 종교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컨스피러시conspiracy... 음모, 모의. 유다 음모론? 예수를 배반했다는 그 유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유다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의 12제자중 한사람으로 은화 30닙을 받고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팔았다는 그 이름. 최후의 만찬에도 나오는 사람. 예수가 직접 그를 지목하여 네가 날 배신할거라고 말했다는 사람. 그리하여 예수에게 다가가 입을 맞춤으로써 병사들에게 예수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는 사람. 그 유다에 대한 이야기를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써있는 것을 예로 들어가며 유다가 왜 악마로 혹은 사탄으로 혹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는가에 대해 일갈하고 있다. 마가가 그린 유다가 오리무중이라면, 마태가 그린 유다는 돈벌레다. 그리고 누가는 반쯤 희생된 인물로 그렸다. 요한은 결코 유다를 희생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예수의 신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라는 인물 자체를 삭제하지 않는 한, 희생자가 되는 유다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유다는 요한에 의해서 완저한 흐생자가 되었다. 그는 기독교의 희생자가 되었다. 중세의 암흑기에나 가능했을 비논리적인 악인 유다가 지금도 통한다는 건 비극이다.(-272쪽) 유다는 예수가 손수 뽑은 12 사도 중 한 사람이다. 예수를 배반하고 나중에는 그것을 후회하여 돈을 돌려준 후 자살을 했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일종의 학문 탐구처럼 성경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완독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성경을 제대로 완독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런! 저자 옥성호는 크리스찬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20대 후반쯤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 자체를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교회에 다니며 겉으로는 기독교인 행세를 했단다. 그랬다면 저자 옥성호는 착실하게 성경공부를 했을 것이고 그 성경에 의문점을 찍기 전까지는 독실한 신자였을 것이다. 옥성호의 빅퀘스천이라는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딱딱한 형식의 껍질 속에 불안한 속살을 감춘 갑각류 크리스천>, <기독교와 유대교, 왜곡의 역사를 다룬 신의 변명>, <부활, 역사인가 믿음인가>... 제목부터 벌써 흥미롭다. 그의 첫번째 책 <갑각류 크리스천>에서는 한국 기독교 전반에 깔려 있는 부조리한 문제점을 파헤치며 세상과 멀어지는 기독교가 아니라 세상을 품는 진정한 기독교로 거듭하는 길을 모색하며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위선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는 소개글이 보인다. 그리고 묻는다.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는 종교와 종교인에게. 당신은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가? 두번째 책 <신의 변명>에서는 성경의 문헌비평적 방식을 통해 어떻게 신약과 기독교 교리가 성립되었는지를 밝혀가며 메시아 예수가 신이 되는 과정을 파헤쳤다고 한다. 유대교의 진경인 히브리 성경이 왜곡되고 편집되는 과정... 이쯤에서 상당히 전율이 일었다.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한국 기독교에도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고? 말도 안되는 억측이지만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게 가능한가? 어째서 기독교인들은 그런 말들에 대해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이 늘 궁금했었는데 과연 저자는 그 '부활'이라는 예민한 이념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댔다. 기독교는 역사일까? 그렇다면 너무나도 삐뚤어진 고약한 역사임에 분명하다. 기독교는 신화일까? 지금까지 읽어봤던 신화중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신화는 단언컨대 없었다. 신화를 표절한 근본없는 떠돌이 이야기쯤으로 보인다면 억지일까?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일까? 참종교에 대한 물음이 커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물음표가 아닌가 싶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벌을 받는 형벌 도구의 하나였다. 과연 예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의 다른 작품을 보러 도서관에 가야겠다. /아이비생각

인류 역사에 발생한 가장 큰 비극이 뭘까? 예수를 역사로 만든 복음서의 등장이다. 더 큰 비극은 그 복음서를 정경으로 숭상하는 기독교 종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의 정신을 질식했다는 사실이다. 신화에 머물러야 할 예수 이야기가 역사 속에 자리 잡자, 정작 보존해야 할 인류의 역사와 전통은 이교와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사라졌다. 신화에 머물러야 할 예수 이야기가 역사 속에 자리 잡자, 이성은 마비되고 진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한 인간 사냥이 역사를 피로 물들였다. 유대민족을 향한 증오와 복수야말로 마비된 이성과 권력 집착이라는 기독교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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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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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에는 역시 추리소설이다.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까지 몰입도가 좋은 책을 만났다는 게 기분 좋았다. 추리소설의 별미는 책을 읽으며 함께 생각한다는 거다. 그런데 예상외의 결말에 살짝 당황했다. 생각했던 기존의 틀을 벗어난 이야기의 구조가 이채로웠다. 아주 단순한 그림, 그리고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흥미로운 뒷맛을 남긴다. 이 작품을 쓴 작가는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전작으로 <이상한 집>이 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일본 문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고 한다. 어렵지 않게 술술 넘어가는 문체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일단 재미있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네 편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서로 하나가 되어 기가 막힌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되면 그의 전작 <이상한 집>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림을 꿰어 맞추는 장면들이 하나의 영상처럼 표현되어져 있어 어쩌면 더 몰입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는 책의 소개글에 어느정도 공감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태어날 아기를 만날 수 있는 날까지 기대감을 안고 블로그를 시작한다는 남자.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이를 낳다가 아내는 죽고 아이는 살았다. 이야기는 남자가 블로그에 아내가 그려준 그림을 올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아직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의 미래를 그렸다는 아내의 말이 이야기의 열쇠쯤일까? 아내가 죽고 몇 년이 흘러 남자는 아내가 남긴 그림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블로그는 여기서 중단된다. 용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블로그에 올라온 그림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은 우연히 블로그를 발견하게 된 대학생 오컬트 동아리 회원이다. 그림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정말 섬뜩하다. 추리소설의 또다른 맛은 반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하나의 반전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호러물일까? 미스터리일까? 모든 이야기는 심리전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다툴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속고 속이거나 혹은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을 발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독자와의 심리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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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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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지? 코로나19로 갇혀 지냈던 3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으니. 제목에서부터 팬데믹 상황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는 그 한 문장이 자꾸 시선을 빼앗았다. 그래서 펼쳐보게 된 책이다. 내용은 담담하다. 동요할 만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작은 군상群像을 이루고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마음속 깊이 코로나19에 대해 재난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은 것 같다. 영화에서처럼 급박한 상황이 없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일상이 파괴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재난으로 닥친 사람들도 있다. 죽음과 맞닥뜨렸던 사람들도 있고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분명 재난상황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습게도 코로나19의 증세가 딱 저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에 빠지는 전염병이라니! 이 시끄러운 세상속에서 조용히 잠을 자게 하는 전염병이 돈다는 걸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다. 어쩌면 그래서 소심한 사람들만 병에 안걸렸을 것이다. 속된 말로 나대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까봐 조심했던 사람들만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설정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소제목으로 각 장을 나눠놓았다. 그 제목들조차 소심함 그 자체다. 세상이 멸망한 것도 아닌데 일단 세상이 멸망했는데...로 시작한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편의점에 가고, 마트에 가고, 주요소엘 가고, 카페에 가고, 병원에 가고, 호텔에 가고, 소풍을 가고.... 모든 행동이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물며 생일파티도 한다. 그 와중에 우리도 할 건 다 했다. 단지 소설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만 다를 뿐이다. 그들이 "우리 이래도 되는 겁니까?" 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왜 안된다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는 건데?" 가 아니었을까 싶다. 팬데믹 상황에 처했을 때 어쩌면 우리도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느끼지는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말과 행동이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귀엽기도 하고 순박淳樸하다. 각각의 인물 묘사가 재미있다. 그 와중에 소심한 성격의 한 여성이 성격을 바꾸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그 책이 시키는대로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리더가 되고 싶은 그 여성의 마음에 공감하는 독자가 꽤 많을 것 같다. 오죽하면 이름을 최강자로 바꿨을까? 어쩌면 그래서 자기계발서가 끝도 없이 발간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이 멸망했는데 해피 엔딩을 바라다니, 라는 마지막 장에서 모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에서 보면 해피 엔딩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며 끝난다는 그 대사를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희망은 그런 것인가 보다. 소극장에서 한 편의 연극을 보고 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김이환이란 작가의 책을 보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이 꽤나 많다. 떠도는 말로 많이 들었던 '이불 밖은 위험해' 가 그가 쓴 작품의 제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상 이력도 많이 보인다. 그의 작품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2009년 장편소설 『절망의 구』로 멀티문학상을, 2011년 『너의 변신』으로 젊은작가상 우수상을, 2017년 『초인은 지금』으로 SF어워드 장편소설 우수상을 수상했다. 『너의 변신』은 9개 언어로 번역되어 프랑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등에서 출간되었다. 『절망의 구』는 영국에서 번역 및 출간될 예정이며 일본에서 만화로 각색되어 출간되었고, 국내에서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개발 중이다. 소설집 『이불 밖은 위험해』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연작소설집 『행운을 빕니다』와 장편소설 『절망의 구』, 『초인은 지금』, 『엉망진창 우주선을 타고』 등을 펴냈다. 『기기인 도로』,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등의 SF 앤솔러지와 많은 수의 청소년 단편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 anthology 한마디로 '선집(選集)'이다. 서적이라면 편집자가 잡지나 책 등 발표되었던 명작ㆍ걸작 등을 모아 다시 수록한 작품집이다. 음반이라면 그 동안 발표되었던 곡 중에서 좋은 것들만 다시 모아 실은 음반으로 꼭 한 사람의 작품만 모아 놓은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작품을 모은 것도 앤솔로지에 해당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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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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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종교의 역사다. 빨간 십자가를 앞세우며 달려가던 성전 기사단으로 시작을 하더니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검은 십자가단이 등장했고, 마침내는 프리메이슨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의아했다. 꿀벌이란 말 한마디로 너무 쉽게 내용을 짐작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끝까지 꿀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간간히 들려주던 지구온난화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심 기대를 했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는 따끔한 충고를.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유명인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가 버린 듯 하다. 2편을 읽으면서 오버랩 되어지던 기시감은 오래 전에 읽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와 오래 전에 보았던 <토탈 리콜>이라는 영화였다. 몰입도가 끝내줬던 책에 비해 영화는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았었다.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로 세상이 망한다는 말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고 한다면 꿀벌이 사라진 세상의 암울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이 소설은 그 암울한 세상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희망은 그저 가정에 불과해 보인다. 마치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소설의 구조속에서 한줄기 희망이라고 말한다면 파리 기후 변화 회의에서 중국 대표가 했다는 말이다. 진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

자국의 생산 시설을 풀가동하느냐 마느냐는 각국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에 관련된 것이죠. 남의 나라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은 저성장 정책이 불러올 파장부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입니다. 공장 가동을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한다고 해서 우리는 국민들을 실업자로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수시로 파업이나 일으키는 게을러빠진 유럽 노동자 수백만 명의 생산 활동을 줄이는 게, 당신들 나라에서 일상생활에 쓰이는 모든 물건들을 생산해 주는 의욕에 찬 10억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적게 시키는 것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환경 오염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당신들 꼴이 참 가관이라고 여겨집니다. 환경 오염이 싫으면 소비를 멈추면 될 거 아닙니까? (-249쪽) 인정하기 싫겠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소비를 멈출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미래는 어둡다. 자본주의를 앞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昨今의 현실을 보더라도 친환경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전체 식물의 80퍼센트가 꿀벌이 있어야 번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꿀벌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종교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가를 이미 배웠다. 종교가 무의미해진 세상을 살면서 또다시 종교의 역사를 그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허구의 세상은 허황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근간에 읽었던 작가의 책 <문명>은 참 흥미로웠다. 몰입감도 좋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종교의 역사를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책을 덮으며 문득 어느 소설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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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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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원했던 선행 최면을 통해 암울한 미래를 보게 된 르네는 자신이 직접 그 미래를 보고 싶었다. 르네가 보았던 30년 뒤의 미래는 지구 온난화가 극심해져 기온은 43도가 넘었고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곳곳에서 폭동이 벌어진다. 인간들은 식량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까지 동원해 세계 대전을 벌이고 있다. 바로 3차대전이다. 미래의 르네는 르네에게 3차대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에 쓰여 있다고 알려 준다. 그 예언서를 찾아 르네는 퇴행 최면으로 전생의 자신을 찾아가는데 놀랍게도 그 전생은 무려 1천 년 전의 십자군 기사였다. 인류를 구할 방법이 적혀있다는 고대의 예언서 <꿀벌의 예언>은 과연 존재할까? 그 책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르네와 알랙상드르 일행은 무엇을 찾아내게 될까? 선행 최면이니 퇴행 최면이니 하는 말들이 껄끄럽긴 하다. 시작부터 난관.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가 꽃식물이네. 그리고 이 꽃식물의 80퍼센트가량의 수분을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이야. 그동안 꿀벌은 서서히 사라지는데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던 거야. 인간이 직접 손으로 하거나 로봇을 이용한 수분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 조그만 원인 하나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어. 그런 상태에서 기온까지 상승하니 곡물 생산은 더 줄어들었고. 지표면의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물 부족이 심화되다 보니 관개수에 드는 비용이 너무 커져 농민들은 이용을 할 수가 없었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메뚜기 떼가 창궐해 농사를 망쳐 버렸어. 식량은 부족한데 인구가 많아지면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건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이지.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들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됐네.(-69쪽)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지구온난화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짐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이 책에 시선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인 면, 환경적인 면,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바라보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견해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박학다식한 작가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견해를 어찌 피력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첫 작품 <개미>에 매료되어 몇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사실 작가의 책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은 사람이 이 책을 이해하기에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중세 시대의 성전 기사단은 후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템플기사단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왜 시작점이 중세였을까? 그래서 새삼스럽게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찾아보게 되었다. 법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즘을 공부했다는 말보다는 작가의 글쓰는 성향에 대한 말이 시선을 빼앗는다. 대체로 모험을 중심으로 하며 공상과학이나 짧은 철학을 혼합하여 글을 쓴다는데 대부분의 소설에서 같은 구조의 형식을 사용했다는 말이 보여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읽은 1권의 여운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미이라>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어디선가 본 기시감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의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는 말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인 <개미>를 집필하는데 12년이 걸렸다는 말에 놀랐다. 또한 작가는 티베트와 이집트의 죽음에 관한 경전들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책속에서 므네모스라는 말로 각각의 장에 대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말의 뜻이 잊혀진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는 말도 보인다. 이 책에서도 역사적인 사실과 허구가 서로 얽히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만의 혜안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fantasy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인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발걸음이 조금 버겁기는 했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와 <투명인간>을 쓴 허버트 조지 웰스를 본받아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는 작가. 그는 18세에 개미를 소재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대단한 열정을 지닌 작가다. 이제 서막이 열렸으니 2편에서 마주칠 진실은 무엇일까? 기대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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