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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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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에 보탬이라도 될까하여 숲에서 가져온 돌이 있었다. 신비한 색깔을 가진 돌이었다. 소년에게는 그저 단순한 돌이었지만 그것은 알이었다. 집으로 가져온 뒤 알이 부화되어 그 안에서 새끼용이 한마리 태어났다. 그 용과 소년은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용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순탄하기만 했던 소년의 생활은 모험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진정한 드래곤 라이더가 되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용과 드래곤 라이더의 감정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색다른 설정으로 다가왔던 <에라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알고보니 그 영화 역시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였다고 했다. 영화 <에라곤>에서의 드래곤 라이더처럼 이 책속의  용에게 선택되어지는 비행사의 모습이 비슷하다.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관계 역시 함께 감정을 나누는 그런 사이이다. 이야기는 잔잔하다. 이렇다하게 긴장감을 주는 대목도 없고, 깜짝 놀라게 해 줄만한 스릴도 없고, 와~ 멋지네! 하고 감탄할만한 환타지한 면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용과 비행사의 끈끈한 우정(?)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것 같다. 서로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가꾸어가는 일상을 그려내고 있음이다.

중국의 황제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에게 선물로 주었던 용의 알. 그 용의 알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띠고 있는 듯 보여진다. 오로지 왕가에서만 키워질 수 있는 그야말로 왕족 용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니 그 용이 가지고 있는 능력 또한 특별하다. 다른 용처럼 불을 내뿜지는 못하지만 신비한 진동과 고함소리로써 적을 제압할 줄 아는 힘을 가진 용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궁금한 것들도 많아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애를 쓰는, 고상하게 음악을 즐길 줄도 알며 외국어 실력도 탁월하고 대인관계 역시 무리없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자기것으로 만드는 능력 또한 대단하다. 생긴 모양새는 서양용을 닮은 반면에 중국 출신이라든가 성격을 보면 다분히 동양적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의인화시킨 용의 모습에서 또다른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네 인간들이 꿈꾸어오는 것들을 그 용에게 심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하지만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장벽앞에서 무너져버리고 만다.

"당신은 빅토리아투스와 그 승무원들의 목숨이 다른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한테는 그들 목숨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당신 목숨이 훨씬 중요해. 그러니까 앞으로도 당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다른 이들을 구하진 않을 거야. 그런 요청이라면 따를 수 없어. 그게 의무라고 해도 난 신경 안 써. 나한테는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이 중요하니까"
"나 때문에 네가 불행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보다도 더욱 농밀하게 그려져 있는 내용속에서 나는 우리가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情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상대방을 향해, 그리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그런 마음들이 이 책속의 주인공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던 까닭이다. 로렌스와 그랜비를 통해 보여주었던 아랫사람과 윗사람의 대립을 풀어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로렌스의 곁에 있는 것이 용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가까운 친구와 함께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친구 하나 있다면 무엇이 부러울까? 마음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그만큼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일게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의 유럽이다.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던 공군 부대와 그 공군 부대의 주요 구성원인 각종 용들, 다양한 성격을 지닌 비행사들을 등장시키고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트라팔가르 전투를 재해석하여 공군들이 펼치는 공중전과 실제 해전을 결합시켰다. 실제로 트라팔가르 해전은 1805년 10월 21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스페인 남서쪽 끝의 트라팔가르에서 격파한 해전이다. 테메레르는 이 트라팔가를 전투를 측면 지원하고, 이후 도버 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역사속 인물들인 넬슨 제독, 나폴레옹, 빌뇌브 제독 등이 이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도 볼 만하다. 해전과 공중전의 각종 전략전술이 등장한다는 점도 이 소설의 재밋거리다.... <표지의 책 설명글에서>
테메레르는 로렌스가 몇 년 전에 보았던 영국 해군의 드래드노트형 군함 이름이었다. 그 군함 역시 이 작은 새끼 용처럼 움직임이 매끄럽고 우아했다... 로렌스가 테메레르에게 이름을 지어주던 장면을 읽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책 설명글에서 말해주었던 것처럼 이 책속에는 공군과 해군의 전쟁장면이 많이 묘사되어져 있다. 실제적인 이름도 거론되어져 있다. 역사적인 배경을 미리 알고 읽었더라면 단순히 소설로만 읽혀지기보다는 좀 더 많은 감명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비생각

덧붙임-
트라팔가르 해전 :  1805년 10월 21일 넬슨의 영국함대가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에스파냐 남서쪽 끝의 트라팔가르에서 격파한 해전.
나폴레옹은 1805년 여름, 영국 본토 상륙군 15만을 집결시키는 한편 해군에게 영국함대를 견제하라고 명하였으나 시일에 맞추지 못하여 8월 15일 넬슨의 함대가 영국해협에 집결하였다. 나폴레옹은 체념하고 상륙군을 동쪽으로 옮기게 하고 에스파냐의 카디스에 있던 빌뇌브 제독의 연합함대를 이탈리아로 움직이려고 하였다. 카디스 남방 트라팔가르곶의 앞바다에서 연합함대 33척은 넬슨의 함대 27척의 습격을 받아, 침몰 5척, 포획당한 함선 17척, 전사자 8,000명이라는 참패를 당하였다. 영국측의 전사자는 넬슨 이하 1,663명이었다. 나폴레옹의 울름, 아우스테를리츠의 승리는 그 전야였으나 영국의 제해권은 이때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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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표윤명 지음 / 북웨이브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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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화소설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도대체 신화소설이 뭐야? 했었다. 솔직히 역사소설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신화소설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약간의 호기심도 있었고 일단은 내가 엄청 좋아하는 신화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는 말에 무조건적으로 달려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아니 어쩌면 읽는 내내 뭔지 모를 어색함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었기에 있을 수 있었던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 역시 신화속의 이야기지만 신들의 이야기이기 보다는 인간세계의 싸움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과는 느낌이 달랐다. 씨줄 날줄이 자연스럽게 엉켜들어 하나의 완성품이 나오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맛이 없었다고 해도 맞는 말일것 같다. 인간과 사랑에 빠진 님프 안실리오네를 향한 아폴론의 질투심이 매개체가 되었던 것도 아니고 ( 물론 다프네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당시처럼 그 질투심 또한 에로스의 화살때문이지만 ) 신들간의 영역다툼을 그린 것도 아니고 이것이다,하고 말 할 만한 주제를 찾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순전히 모자란 내 탓이려니 하지만...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그렇게 신을 믿어왔을까? 불완전한 자아를 위해서 혹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만족시켜줄만한 어떤 존재를 찾다가 신이란 이름을 만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이란 자체는 굳이 종교적인 의식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곁에 너무도 가까이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신화소설이라는 장르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는 참 대단하다. 신화속의 주인공들을 내세워 하나의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신과의 종속적인 관계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인간의 자각을 그려주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느낌을 갖게 했다. 아라킬리온이란 책속 주인공은 제우스가 인간세상을 물속에 빠뜨렸을 때 살아 남았던 데우칼리온과 피라의 첫번째 자식으로 나온다. 그러니 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인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왜 신의 놀음에 놀아나야 하느냐고, 어찌 인간이 신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신과의 연결선을 끊으려한다. 사실은 트로이 전쟁 역시 신들의 사주에 의한 싸움이었듯이 말이다.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면 인간은 어떠한 희생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이었다고 말하며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 바로 그런 점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어떤 것들이 아니었나 싶은데...

아틀란티스.. 상상속의 섬인지 아니면 실제했다가 바다속으로 가라앉은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나타나지는 않으나 우리가 환상적인 이미지로 많이 찾아가는 곳이 바로 아틀란티스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이 책속에서 등장하는 아틀란티스 역시 너무도 멋지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유토피아 같은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안틸리우스와 안실리오네 그리고 아라킬리온이 신과의 연결선을 끊어버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아 나섰던 곳이 바로 포세이돈의 아틀란티스였으니.. 신탁으로 인하여 바다밑으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아틀란티스는 천상의 신전 올림포스로 떠나는 신들이 다시한번 인간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메세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아라킬리온과 안틸리우스, 안실리오네가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이 모험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또 무엇때문일까? 모든 것이 에로스의 화살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아폴론이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님프 안실리오네와 안틸리우스를 떼어놓기 위하여 트릭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신이란 존재는 역시 인간과 너무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인간이 신의 존재를 만들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은 언제나 하나로 통하는 거야. 우라노스가 곧 크로노스요, 크로노스가 곧 제우스이자 우라노스인 것이지. 앞으로 또 다른 세상이 열리면 그곳에서도 그는 다른 이름과 다른 형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라고 말하던 안틸리우스의 독백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어쩌면 영원히 신이란 존재를 가슴속에 품은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넋두리처럼 들려오기도 했다. 그만큼 가슴속의 욕망에 풀무질을 해가며 살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지를 받은 것 같은 이 느낌을 어이할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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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티켓
브렌든 버처드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윙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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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지만 나는 여전히 팽이파에 속해 있다. 그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자리에 멈춘채 고장난 바퀴만 탓하고 있는 내 자신과 너무도 자주 만나는 까닭에 나는 내 운전미숙을 돌아볼 마음조차도 잃어버리고 사는 모양이다. 책속에서 비유해 주었던 항해파와 팽이파의 모습은 딱, 나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항해를 하자면 바람도 만나고 거친 파도도 만나고 이런 저런 힘겨운 조건들을 만날 거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힘차게 노를 저어가는 항해파가 있는가 하면 그 힘겨운 조건들에 떠밀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제대로 앞을 향해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혹은 그 조건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조차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은 팽이파.. 나는 주저하지 않고 팽이파속에 나를 밀어넣는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내 자신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그야말로 난무(?)하고 있다. 어떤 형식을 빌어왔던간에 그것대로만 실천하면 세상에 안되는 일이 없을 것 같고, 그것이 가르쳐주는대로만 살아가면 세상에 성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자기계발서를 끊임없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맨날 그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마침내는 나의 주변에서 자기계발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자기계발서를 펼치면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다. 단지 어떤 놈을 앞에 세웠느냐에 따라 줄서기의 순서만 달라져있을 뿐..  이론만 가득 담아놓은 책보다는 그런 이론들을 실제적인 생활속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책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꿈과 이상도 중요하지만 내가 배려해 주어야 할 지금 현재의 모습도 중요했던 까닭이다. 현실에 안주하면 꿈과 이상을 쫓을 수 없다는 막연한 말보다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나의 꿈과 이상을 적절히 배합시킬 수 있도록 안내해 줄 책이 없나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의 가슴속에 깊이 들어왔다. 아주 작은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부분들을 콕콕 집어내어 나를 아프게도 했다.

이 책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이미 닳고 닳아버린 세월을 어찌하고?  이 책의 주인공 역시 그런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보여주는 것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야 만다. 자기자신에게 올인을 해버린 헨리의 변해가는 모습만을 안타까워하면서 변화를 인정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니 그럴 용기조차도 갖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누구랄 것도 없이 나와 똑같았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가슴 한켠이 싸아하게 저려오기도 했다.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게 있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살았다면 지금 행복하냐고 이 책은 묻고 있다. 행복... 그것을 어떻게 해야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나를 늘 마음 아프게 하는 말을 또다시 만나게 된다. 표현하는 것..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숨김없이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몇 개의 가면을 등뒤에 숨기고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세상속에 내민 나의 위선적인 얼굴들..

그 수많은 가면중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가면을 찾아내어 나를 숨긴채 타인을 만나고 세상속을 걸어다니는 삐에로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은 하지 않았나 되돌아 생각하게 한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40일간의 여행을 떠나있었던 주인공의 모습을 빌어 초대장도 없이 찾아간 놀이공원의 입구에서부터 나를 안내해 줄 노인 헨리를 만났을 때의 설레임과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혹은 나의 변화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존재했었던 많은 조언자들과의 기나긴 심리전.. 놀이공원으로 나를 데려가 준 책의 작가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 놀이공원에서 나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던 것 같다.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헨리의 눈길조차도 외면해 버리고 싶었을만큼.. 과거에 얽매인채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데 어찌 미래가 밝은 얼굴로 웃어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의 아픈 과거가 이 책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이 이 책속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책들과 같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느낌들이 나를 너무도 아프게 했다. 여전히 팽이파로 머물고 있는 나의 몸짓과 생각들이 내 안에 고여 어쩌면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놀이공원에 가면 정말 많은 놀이기구들이 그 높이와 크기를 달리하며 제각각 더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댄다. 좀 더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면 내게로 오세요... 좀 더 공포스런 아찔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쪽은 어떨까요? 귀가 아플정도의 시끄러움.. 뭔가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 에이, 전쟁이나 확 터져버려라.. 홧김에 아니면 늘 같은 모양새로 번복되어지는 일상이 짜증스러워서 한번쯤은 해보았던 말들이다.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몇십억의 복권이 딱 맞아주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놀이공원의 여러방을 지나쳐가면서 내가 가장 오래도록 머물렀던 곳은 롤러코스터가 있었던 곳이었다. 물론 그 스릴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던 조언자의 말때문이었다. 침묵의 사이클! 패턴화된 행동이고 고통의 롤러코스터같은... '나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성가신 존개가 되긴 싫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거기에서 발가벗기워지고 있었다. 명심하게! 만일 그 사이클을 고수한다면, 다시말해 자신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지금 돌고 있는 삶의 궤도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어. 그 사이클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멈추어야만 해... 대부분의 침묵은 과거와 연이어져 있다는 조언자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인생에서 침묵이란 언제나 최소한의 저항을 받는 길이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처할 필요도 없으니까.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할 필요 없고, 반대의견에 부딪힐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지. 하지만 내 말 명심하게. 최소한의 저항을 받는 길은 바로 저 롤러코스터의 궤도와 같다네.... 이젠 자네의 솔직한 감정과 자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표현하라구. 그래야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네. 그저 가끔씩만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지금부터 계속 그렇게 해야해."<187쪽>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느꼈던 자신의 힘겨움이 결코 아버지 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소중한 골든티켓을 사랑하는 여인 메리에게 전해주었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음을 알게 되었던 그 순간에 내가 받았던 충격은 참으로 컸다. 누가 자기에게 초대장을 준거지? 몇 달 전에 만난 사람, 어디소 왔는지도 모르지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낀다고 했어. 나를 찾아와 나와 당신을 정말 걱정하고 아낀다고 말한 사람, 예전과 다른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었어.. 메리의 대답과 눈물 사이로 잠시 망설이던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안녕, 아들아!"

골든티켓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현실을 직시하며 변화를 열망하되 부정적인 수군거림에 흔들리지 말며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을 살지 말것. 자신을 지켜줄 신념을 만들고 불길한 주문을 깨뜨릴 것.. 두 번째, 부정적인 기억과 맞서 싸우고 행복한 기억은 자주 떠올리며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살것. 세 번째는 물론 책임이다. 목표를 정확히 하고 표류자가 아닌 항해자로 나서며 침묵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는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목표를 정했으면 망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고 두려움에 맞설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많은 메세지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역시 어렵다. 여전히 나는 팽이파인가?
늘 그렇듯이 가장 마지막은 사랑이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써있다. 나를 아프게 한다고 생각했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로부터의 탈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거라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책장을 열고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나는 또하나의 내 모습을 보았다. 그야말로 뜨끔할 정도로..  자신과 대면하여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타인과 긍정적인 소통을 하지 않으면 삶은 무의미하다던 옮긴이의 말처럼 인생은 관계다. 그리고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들..
" 주변 상황만 탓하며 내 안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책장을 덮는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나는 눈을 감은채 있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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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브라질
장 크리스토프 뤼팽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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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실화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프랑스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잊혀져 있는 이야기.. 아니 어쩌면 잊고 싶어하는 이야기일런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
책장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려 주었던 책.. 그래서일까? 읽고 싶었던 처음의 그 열정을 잊지 않은채 이 책의 첫표지와 마주섰다. 붉은 브라질... 제목과 빨간색 표지가 주는 느낌은 참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모든 것이 서로 섞여들어 풍요로워지는 숲,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숲에서 그걸 배웠던 거야... 책 표지의 커다란 제목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던 문장들을 보면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프랑스가 브라질을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그 과정들을 보여주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가면서 나의 섣부른 판단을 원망해야만 했다. 결코 브라질을 정복하기위해 떠난 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진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그노들이나 순수한 마음속에 끝없이 파고 들고 싶어하는 종교적인 이념의 세계들은 왠지 역겹기까지 했다. 무엇때문일까? 가는 곳마다 정신적인 평안을 얻기 위한 종교를 빌어 자신들만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쁜 믿음이란 실체.. 결국은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종교라는 매개체를 사용하려드는 군상들 앞에서는 구역질이 났다.

빌가뇽이란 자의 방대한 계획하에 많은 사람들이 배에 태워진다. 그들중에는 어린 남매 쥐스트와 콜롱브도 통역을 위한 역할을 배우기 위하여 동행하게 되고... 하지만 남매에게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이 있었을 뿐이다. 오랜 항해끝에 과나바라만의 섬에 도착한 그들앞에 놓여진 것은 힘겨운 노동과 식인종으로 알려져 있는 인디오들과의 싸움이었다.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빌가뇽이 성을 쌓으며 요새를 만드는 중에 섬으로 밀어닥친 프로테스탄트들과의 갈등을 예고하게 된다. 그때부터 작은 섬안에서 작은 종교전쟁이 시작되지만 승리의 여신은 빌가뇽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 승리가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으니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빌가뇽은 쥐스트에게 섬을 맡긴채 다시 프랑스로 배를 돌린다. 콜롱브는 어떤가? 이미 그와같은 현실들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그녀는 인디오들의 세상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들의 열정과 순수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위선적인 섬사람들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인디오들과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콜롱브는 인디오들조차 마음의 지도자로 섬기는 파이-로라는 유럽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섞여 살면서 사람으로써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진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 역시 파이-로의 뒤를 이어 마음의 지도자가 된다.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정복하려는 자와 정복당하는 자의 입장만을 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빌가뇽이나 프로테스탄트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우리들의 모습, 쥐스트의 어정쩡한 태도속에 숨겨져 있었던 인간의 이중성, 그리고 콜롱브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우리들의 내부 깊숙히 숨겨져 있는 순수... 친남매인줄 알았으나 결국 친남매가 아닌 것을 알게 된 쥐스트와 콜롱브의 사랑이야기... 사람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자연과 함께 할 때에 진정한 인간의 내면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이기적인 모습, 이중적인 모습, 이념에 사로잡힌 아집 그 모든 것들이 순수를 이겨내지는 못했다는 거였다. 자연과 하나가 된 순수앞에서 그 모든 것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그들을 반겨주지 않았던 브라질의 땅덩어리. 물과 식량이 부족했고 또한 풍토병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옭아매었다. 그리고 인디오들을 통해 공포마져 선사해 주었으나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들은 종교라는 틀에 얽매여 그들만의 싸움을 하기에 바빴으니... 마지막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혼자 남게 된 쥐스트는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인디오의 부족들과 살고 있는 콜롱브를 찾아가게 된다. 우리를 구해줘... 구해달라, 뭘 구해달라는 거지? 그 순간만큼은 인간이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눈물나는 장면이 아닌가 싶었다. 콜롱브의 젖가슴에 그려져 있던 번개와 별을 나타내는 까맣고 빨간 그림들을 보고 뒷걸음치던 쥐스트에게 콜롱브가 말했었지.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마.. 콜롱브의 눈을 통해 뒤집힌 세상의 이미지를 보는 쥐스트. 쥐스트가 보았던 것은 태양속에서 반짝이는 거대한 푸른 하늘이었다.

투피족 인디오 세계에는 '홍수가 일어난 뒤에 그 땅에는 오누이 같은 한 쌍의 남자와 여자만 남았고, 이들 젊은 남녀의 결합에서 새 인류가 탄생했다'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실화와 전설을 솜씨 좋게 버무린 작품이라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나의 느낌으로는 문화적인 충돌보다 종교적인 갈등이 더 크게 부각되어지지 않았나 싶다. 현실을 무시한채 문화와 종교를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랬기에 파이-로의 사상이 더 큰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를일이다.

"사람들이 저지른 최대의 잘못은 신을 하늘에 들여놓고 거기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 신은 모든 존재와 모든 물체 속에 내재해 있어. 어떤 일이든 신의 의지를 표시하는 것이지."

"인디오들에게는 만물이 신성한 것이지. 꽃,바위,산에서 흐르는 물, 무수한 정령이 살면서 사물이며 풍경과 존재들을 보고해주는 세상. 이런 것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아무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이 세계의 아무것도 건드릴 수 없어."

"그들은 자연의 신성함을 벗기고 수많은 생명을 살육하는 흉악한 행위를 일삼으면서 자연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두고 있지. 그들이 섬을 어떤 꼴로 만들어놨는지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어. 거기서는 생명이 자라지 않아.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걸 봐.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된다면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놓고 말거야."

"지상의 낙원에서 쫓겨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야. 그리고 인간은 창조물을 파괴하기 위해 낙원을 점령한 것이야."  <448-449쪽>

파이-로의 말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우리들을 향한 경고의 메세지가 아닐까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혼의 깊이는 얼만큼이나 될까? 느닷없이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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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 - 원하는 것을 가져도 늘 부족한 사람들의 7가지 심리 분석
로리 애슈너.미치 메이어슨 지음, 조영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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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향해 돌진하다가 느닷없이 중단한 적이 있는가? 혹시라도 그 중단의 이유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자신의 열등감을 남으로부터 보상받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늘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할게...
행여라도 내 안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그것에 대한 위안을 받고 싶어했던 적은 없었는가?
기쁠 때 진정으로 기뻐할 줄을 알며 슬플 때 진정으로 슬퍼해본 적이 있는가?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가 지루하고 매사 싫증이 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방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일종의 무력감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비교 당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늘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찾는다고 한다. 그것은 비교를 통해 남과 다르지 않다는 안전감을 갖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속에서 만나는 질문과 대답은 몇가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의 여운은 강하다. 단지 7가지 증상과 그 증상에 따른 심리분석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게 전해져 오는 것은 그것보다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 무수히도 많은 비교대상을 만나게 되고 공연스레 위축되는 감정을 알게 된다. 잘해야 한다고, 아니 잘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며 살다보니 당연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결과가 두려워지게 된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어쩌지? 엄마가 혹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마음이 앞선다. 누구의 탓일까? 단지 그렇게 교육을 시켰던 부모의 탓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현실을 다시한번 더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렇게밖에는 키워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또 안타깝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단지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라고 말해준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본모습을 감춘 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길들여진 자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평상시 보여주는 행동보다 더 착하고, 우호적이며 협조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대한다. 비밀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어떤 면을 갖고 있다. <-30쪽>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몇이나 만나보았을까? 그렇게 솔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사실 감정을 솔직하게 다 보여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남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어떤가?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해주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짓밟히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배운데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끝도없는 모순의 연속인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조차도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자신의 속내를 다 보여주지 못하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만난 뒤에도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나부터도 온전한 나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다 보여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려면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상대방이 다 보여주길 원한다면 나부터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모든것은 내게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그러자면 내가 나를 먼저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흔한 말로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솔직해야 한다.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면서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다. 바로 지금의 내 상태를 보여줄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관계가 무참히 깨질때까지 감정들을 쌓아 놓을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있는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고. 진정한 자유는 혼자 있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고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마음을 좀더 열고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습관은 바뀐다.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감정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은 진정 누구인가? 불안하다면 자신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할 때 기꺼이 들어줄 사람이 있는가? 신뢰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느끼고 바라고 있는 것을 껴안고 받아들여야만 다른 사람들을 믿는 일도 가능하다. 세상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166쪽>

언젠가 나를 너무도 속상하게 하는 일이 생겼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던 자리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힘겹게 했던 그 일은 정말 별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나만이 그런 생각, 그런 일을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거기 모인 친구들 대부분이 마음속에 힘겨운 일 몇가지쯤은 모두 공통적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너도?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크게 웃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비슷한 그 어떤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사람과 좀 더 가깝게 느껴질수도 있게 한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에 기대어 사는 것이야말로 끔찍하고 참담한 일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할 뿐, 그럴수록 점점더 부정적이게 되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각설하고 이 책속에서 말해주고자 하는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덟가지 방법은 이렇다.
첫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보다 절벽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가.
둘째, 불만족의 증상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한다. 우리가 저지르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 대부분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며 결코 남을 달라지게 할 수 없다. 즉 우리 자신을 바꾸려면 거울을 자신을 향해 돌려놓아야만 한다.
넷째,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좌절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라. 진정한 목적을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
다섯째,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고,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나의 생각은 이러저러하다.'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섯째, 사람들과 공감대를 나눈다. 사람들과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은 편견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들거나 충고하지 않으며 그 사람 옆에 있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째, 마음의 균형을 찾는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네 개의 방이 들어 있다는 인도 속담이 있다. 육체의 방, 정신의 방, 감정의 방, 영혼의 방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의 방에서 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네 개의 방을 드나들지 않는다면 완전해질 수 없다.
여덟째, 믿음을 키운다. 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성이 중요할까? 정신은 힘의 근원이다. 그것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의 시작이며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의 출발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고의적으로 자기계발서를 피해왔다. 뻔한 말들이 싫었던 까닭이다. 결국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과서적인 이론들만 무수한 책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들녀석과의 소통을 위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왜일까? 왜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거지? 하는 끝도 없을 것 같은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린 녀석을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지쳐가고 있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해오는 그 어떤 느낌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지나쳐왔던 나의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랬구나, 내가 그렇게 살아왔던 거였구나 싶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책...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책... 
나는 이 책을 수시로 호출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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