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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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제발 좀 죽어주지 않을래? 책띠에 있는 저 한마디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대략 난감. 평생토록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던 부부, 하지만 헤어지면 남보다 못하다는 부부.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다.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미울 때도 많다. 그런데 직접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있다. 귀신은 뭐하나 저 인간 안잡아가고. 뒤돌아서는 뒷통수에다 확, 그냥! 주먹 몇 번 그러쥐고. 그런 부부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는가를 한번쯤은 물어야 한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안나고, 핑계없는 무덤도 없다는데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인들 있을까?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많이 망설였지만 부부범죄라는 주제가 시선을 끌었다. 별 기대없이 첫번째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빠져들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강하게 다가왔다. 짧은 소설속에 어쩌면 그리도 강하게 메세지를 담아냈는지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던 책이었다. 어디서 읽었음직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책의 말미에 작품해설을 읽으며 아하, 했다. 현재의 우리가 직면한 사회의 문제들을 하나씩 들춰내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이채로웠다. 저자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인다.

치매 노인의 심리를 다룬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왔을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맞서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에게 끝없이 휘두르는 폭력을 보면서도 누구하나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명패 따위가 열개, 스무개 걸린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0년간 단 한 건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마을’이라는 명분으로 인해 한 가족이 끝없는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을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이는 누구였을까? <비리가 너무 많다>와 <개티즌>을 통해 현시대의 우리를 보게 된다. 장난으로 '들켰다, 튀어라!' 라는 메세지를 무작위로 보냈더니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우리의 주인공. 마누라에게 손벌려가며 살아야 하는 잘 풀리지 않는 인생, 그렇게라도 한번 해보자고 명단을 작성했다. 가장 비리가 많을 것 같은 부류만 골라 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들켰다. 그러니 입막음용으로 돈을 보내라.' 세상에 돈벌기가 이리 쉬웠단 말인가? 우리 시대에는 정말로 비리가 너무 많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 한마디가 제 발등을 찍은 도끼가 될거라는 걸. 개티즌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혹은 재미삼아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회의 단면을 그렸다고 짐작했다면 얼추 정답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어떤 추리물로 태어났을까? 그 외에도 한적한 시골집을 구매한 후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 <보물찾기>,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모텔에서 살인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남자의 이야기 <내가 죽인 남자>는 정말 기발하다. 다 읽고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재미있는데 너무 짧아! 별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추리형식으로 만들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작품해설에서 변증법적 소설이라는 말이 자주 보였다. 무엇인가를 변증법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해보자는 뜻이라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 추리의 끝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어쩌면 그래서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더 공감하며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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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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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들과 함께하면서 싯다르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자아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길들을 걷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고통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를 극복하면서.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명상을 통해서, 감각을 비워 일체의 상을 버림으로써. 그는 이러저러한 길들을 배웠다. 수천 번씩이나 자아를 버렸고,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이나 자아를 떠난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아를 떠나는 길들을 걸었음에도 그는 그 길이 끝나면 다시 자아로 되돌아오고 말았다.(-32쪽)

브라만으로 살며 날마다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명상 중에 깊은 회의에 빠진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최고의 스승들,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결국 싯다르타는 참나를 찾기 위한 길을 가기로 한다. 그의 길에 친구 고빈다가 따라 나선다. 고행수도승이 된 두 사람은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 명상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그러던 중 그들은 고타마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위대한 성인이라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고타마. 제따와나 숲에서 고타마를 만났으나 싯다르타는 그의 제자가 되지 않고 깨달음의 순례를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고빈다와 헤어진다.

오! 이제 더 이상 싯다르타가 나에게서 빠져나가게 하지 않겠어. 더 이상 참나니 세상의 번뇌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나를 죽이고 갈가리 찢어서, 그 조각들 배후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요가베다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아. 아타르바베다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자들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65쪽)

가르침을 통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싯다르타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함께 지내며 대상 카마스바미에게서 부를 습득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고자했던 싯다르타. 많은 돈과 여인들과 술에 찌들어버린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역겨움을 느끼고, 꿈을 꾸게 된다. 카말라가 기르던 새가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새장을 열어보니 새가 죽어 있었다. 싯다르타가 죽은 새를 길 위로 내던지는 순간 큰 슬픔이 느껴진다. 꿈에서 깬 싯다르타는 깊은 슬픔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낀다. 삶을 무가치하게, 의미없이 보내버렸음을, 그의 손에는 살아 있는 것도, 뭔가 소중한 것도,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두고 떠난다.

고빈다야, 나는 돌을 사랑할 수 있어. 그리고 나무도 사랑할 수 있고, 나무껍질 한 조각도 사랑할 수 있어. 사람들은 사물들을 사랑할 수 있어. 그러나 말은 좋아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가르침은 단단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아. 색도 없고, 모서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어.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말뿐이야. 네가 평화를 얻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거야. 무수히 많은 말, 그것이 너의 평화를 방해하는 거야. 구원도, 미덕도, 윤회와 열반도 역시 단순히 말뿐이지. 고빈다야, 우리가 열반이라고 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단지 열반이라는 말만 있는 것이지.(-216쪽)

마침내 싯다르타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카말라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얻게 되고 부모로써의 고뇌를 한번 더 알게 되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삶의 모든 정의는 인간의 의식만으로 정해진 것이다. 싯다르타의 말 속에서 말로 된 가르침은 그저 말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또한 '네 안의 부처를 죽여라' 라는 말도 생각나게 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또다른 자신을 찾게 되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헤르만 헤세는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해 종종 고백해왔으며, 그 믿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자 했다. 그 책이 바로 『싯다르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학문에 친숙했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문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통해 불교 사상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선교사의 아들이었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는 말을 보면서 故최인호 작가의 <길없는 길>이 떠올랐었다. 작가 역시 카톨릭 신자였음에도 <길없는 길>이란 작품속에서 대한불교계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는 경허스님의 업적을 따라가고 있음이다. 우리는 보통 석가모니를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속에서는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따로 분리했다. 불교의 '不二' 는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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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 인간 -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
제이미 배런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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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이 자기계발서라 한다. 그런데 그 자기계발서라는 책의 내용은 어떤가? 다 거기서 거기다.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잘 팔릴까?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를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노력했고 그 결과로 성공했는데도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묻고 있다. 자기계발에 그토록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당신을 한번쯤 되돌아 본 적이 있느냐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가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거꾸로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로 남은 삶을 망치기도 한다. 자기 자신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자신을 타인이 인정해 줄리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기이한’ 자기계발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우리가 계발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라 치유력이며, 쟁취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는 성공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저자 역시 30대에 진입하기 전, 작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번아웃을 맞았으며 다이어트와 폭식증 사이를 오가다가 기피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수치심과 자책감을 동력으로 삼는 완벽주의가 우리를 옭아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왜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한 곳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지극히 소수인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현실을 만드는 주제는 당신의 마음이다. '괜찮다'는 건 손에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 손아귀에 잡히는 듯하다가도 손가락 사이로 스멀스멀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같다. 당신이 남의 삶에 대해 뭘 얼마나 아는가? '더 낫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해라.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경계하라. 당신이 소비한 것은, 결국 당신을 지배한다.(-133쪽)

언젠가는 내 인생도 나아질 거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계획도 수없이 세웠다. 그 계획의 기준은 내 나이였고, 경험이었고, 스스로 느끼는 자격이었으며 '이미' 일어났어야 마땅하다고 느끼는 일들이었다. 나는 남들의 삶을 내 삶의 바로미터로 삼았다. 남들에게 일어난 일이 내겐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증거였다. 그게 내가 인생을 생각할 때 사용한 공식이었다.(-224쪽)

똑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똑같은 동기부여 영상을 보고, 똑같이 한곳만을 바라보고 노력하는 것이 어떻게 ‘자기’계발일 수 있을까? 이 말은 정말 커다란 울림을 준다. 사회는 우리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하나의 기계처럼 키워졌다. 배운대로 하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가르쳐준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자는 더한 노력과 경쟁의식이 무참하게도 번아웃의 연료료 쓰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썼다는 '멋진 신세계'를 읽어 보라. 우리를 기가 막히게 기계화 시키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까닭인지 사회의 기준에 대해 그다지 많은 관심은 없다. 그러나 많은 이가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행복'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면 아마도 '만족'이 아닐까 싶다. 목소리 높여가며 떠드는 사람들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기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기준도 중요하다. 自重自愛, "스스로를 귀중이 여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는 말이 새삼스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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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의 인생 2막
버들치 지음 / 진서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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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세대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 젊은 세대가 꿈을 포기하는 시대, 너도나도 노후가 불안한 시대, 그럼에도 오래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지금의 현실이다. 의학의 기술이 쓸데없이 사람을 너무 오래 살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이 60이 되어도 살아온만큼을 더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시지프스도 아니고.... 정년퇴임이라는 말이 무섭다. 시대는 자꾸만 변해가고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은 늘어만 간다. 그럼에도 나이를 불문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퇴임후의 인생, 나이 든 삶을 책임져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위한다거나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는 말 따위는 걷어차인지 오래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수많은 고민을 앞에 두고 있다면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지게 만든다. 50대를 위한 직업론, 인생론등을 다루고 있다고 하니. 게다가 저자가 육체노동으로 재취업을 하여 소득의 공백을 돌파했다는 부제가 시선을 강하게 잡아챌 것이다.

전직이 증권맨이었다고 한다. 한 때 잘나갔다는 말과 함께. 그랬던 그가 부동산스터디 카페에 '버들치'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퇴사 후에 인생 2막을 열기 위해 11가지 기능을 습득한 과정을 썼는데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습득한 기능으로 실제 재취업까지 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33년간 증권맨으로 일했으면서 그는 왜 육체노동으로 인생 2막을 열 생각을 했을까? 사실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혹시라도 인생 2막이 아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이 있으면 어쩌나 노파심까지 일었다. 막장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막노동이라도 해서 벌어 먹으면 되지, 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하는 까닭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직업이라는 의미가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의미와는 많이 다른 듯 하다. 취업의 문이 너무 무거워 열기조차 힘든 현실앞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우리의 인식이 그만큼 깨어있지 못한 까닭인지 지금까지도 육체노동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자의 실전 경험은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50대는 정신노동보다 육체노동이 더 적합하다고. 쪽 팔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도 말라고.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쓰지 말라는 말일 터다. 공감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도전정신이 놀라웠다. 아내에게 한달에 400정도는 가져다줘야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대단했다. 저자의 말처럼 사는 게 쉬운 사람은 없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삶의 의미까지 찾고자 한다면 수없이 많은 자를 들이대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할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은 마냥 흘러갈 것이고. 미지근한 삶도 좋은 삶이라는 저자의 말이 커다란 울림을 준다. 가슴 뛰는 삶보다는 평온한 삶을 택했다는 저자의 말은 곱씹어 볼 만 하다. 나는 억세게 운 좋은 놈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운이 좋은 게 아니라 그만큼 노력했던 결과라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된다. 책의 말미에 '기능 습득 일지'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저자가 기능을 배웠던 과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도배, 건축인테리어과, 중장비 학원, 타일, 미장, 건물보수과, 전기공사과, 소방안전관리자, 학원 버스 운전, 시설관리, 조경... 모두 힘든 일이다. 시간 투자도 그렇지만 웬만한 각오가 없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전했다. 좋았던 점과 주의해야 할 점들도 함께 조언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격증을 따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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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OUT 유럽역사문명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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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고 하지만 그 전쟁의 배경에는 대부분 종교가 깔려 있다. 그만큼 종교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쥐고 흔든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기독교라는 큰 틀에서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로 나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곧 개신교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면서 천주교와 정교회는 마치 기독교가 아닌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상식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오늘날 저토록이나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남게 된 유대인의 역사도 시선을 끌었다. 수많은 고통과 서러움을 견뎌내면서 살아온 그들 또한 종교를 구심점으로 하나가 되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저들의 역사속에 등장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기독교로 인해 고대올림픽이 사라졌다는 저자의 말에 많은 아쉬움을 느껴보기도 하고 엑스포가 가진 커다란 의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 전쟁으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우크라이나의 역사도 등장한다. 소련체제하에서 우크라이나는 몇백만명의 사람들이 굶어죽었던 대기근을 겪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러시아에 지지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싸우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이야기하면 그리스신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수많은 신화로 인해 지금의 우리가 멋진 문화유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화를 배경으로 탄생하게 된 많은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픈 역사도 많이 보인다. 원래 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의 역사가 그렇다. 쫓고 쫓기는 상황속에서 머나먼 타국으로 끌려갔던 조선인은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지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한복을 입은 남자>로 불리워지는 그 조선인은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노예로 끌려가 이탈리아에 정착하며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에 담긴 서글픈 역사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답사를 다녀온 느낌을 남겨주었다. 답사는 그 문화에 대한 사실을 얼만큼 흥미롭게 이야기해 주느냐에 따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한다. 눈으로만 훑어보는 역사가 아닌 까닭이다.

추상적인 개념들보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일화를 중심으로 썼다는 책소개글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었었다. 유럽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가 편년체 형식을 들이대면 일단 따분하다. 지금은 스토리가 많이 입혀진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아닌지라 굳이 연월일을 따져가면서 역사를 볼 필요는 없는 까닭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정사와 야사를 섞어가면서 높낮이를 달리하는 목소리로 재미있게 말하는 해설을 듣고 있는 듯 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사진을 첨부하며 들려주니 따분할 틈이 없다. 말 그대로 한 잔의 커피를 옆에 두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하광용이라는 가이드를 따라 유럽여행을 다녀온 듯 하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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