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이건 뭐지? 했다.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냥 단순히 살아가는 남자들의 허풍과 위세? 얼마전 보았던 다큐가 생각났다. 그린란드 유목민의 생활을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삶의 형태가 이채로웠다. 그들의 삶에는 여유가 있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민족중의 하나. 뜨거워진 지구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이젠 그들에게 그들만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없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민족의 삶을 포기하고 저마다의 목표를 안은 채 도시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간혹 아버지의 삶, 혹은 할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어하는 젊은이도 있었지만 녹아내리는 북극의 얼음이 냉혹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던 장면을 통해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눈이 없으니 더 이상은 썰매도 탈 수 없었다.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것은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었지만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슬그머니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라? 이 책, 은근 재미있다. 문명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꿈속에서나 가능했을 그 남자들의 일상. 살짝 부럽기도 하다. 1년에 한 번 도착하는 보급선을 통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개 썰매를 타고 밤과 낮을 이동해야 한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와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의 극야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삶에서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혹독한 추위와 외로움이 괴롭다.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유목민들의 삶을 되돌려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가 친구였으며 모두가 가족이었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제 집을 찾은 나그네를 따스하게 맞이해 주던 그들의 모습. 길 떠난 누군가를 위해 곳곳에 지어진 천막, 천막 안의 생활 도구와 음식들. 함께 한다는 게 그리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책을 읽다가 지은이의 이력을 찾아 보았다. 일생 동안 세계 곳곳을 탐험한 작가이자 탐험가인 요른 릴의 자전 소설이라 한다. 젊은 나이(19세)에 찾아갔던 그린란드 북동부의 매력에 빠져 그곳에서 16년이나 살았단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자신이 쓴 글을 어딘가에 발표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과 함께 지냈던 북극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했을 뿐. 그래서인지 문장마다 순수함이 느껴진다. 쉽게 말하면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모여 북극이라는 커다란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책의 제목에 붙은 '5'라는 숫자 때문에 잠시 망설였었다. 시리즈로 나온 책이라면 앞을 모르니 이해하기가 힘들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탄력이 붙으니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다. 여유를 품은 남자들의 사는 이야기다. 마치 황당한 요정의 세계를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랄까? 책의 소개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전편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는 팔백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 가보면 작은 신사들을 도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 보면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한 신사나 절의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것들도 대부분은 동물의 형상이다. 그 중에서도 여우나 개, 너구리, 고양이 신이 모셔신 신들을 많이 보았다. 여우나 너구리는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도 많다. 오래전의 영화 <게이샤>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후시미이나리신사앞에도 커다란 여우 두마리가 지키고 서 있다. 곡물의 신으로 기억하는데 맞는가 모르겠다.


여우나 너구리, 고양이 이야기가 많이 떠도는 것은 아마도 변신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둔갑하는 여우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내려온다. '여우누이'나 '구미호'처럼. 옛날부터 여우를 부릴 수 있는 여우술사가 대를 이어 내려오며 그 술사들에게 충성을 다 한다는 여우 이야기. 바로 이 책의 배경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를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외모지상주의에 결합시켜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았다. 외모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었나?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외모보다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해 본 것 같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젊은 세대라는 점은 안타까움을 불러온다. 단순히 예쁘고 잘생겼다,라는 것은 잠깐의 효과일 뿐인데도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금의 현실도.


외모를 대여해 드립니다... 하지만 명심하실 것은 아주 잠깐만이라는 것이지요. 겉모습만 잠깐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원래 모습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당신의 원래 모습과 멀리 떨어지게 되면 변신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당연히 범죄에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외모 대여점>이라는 책의 제목도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한 여우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책의 주제는 여우의 변신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 따로 있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 타인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주제는 신선했을지 모르겠으나 깊이가 너무 얕다. 일본소설이 보여주던 무게감도 없어 이야기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 /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은 플라톤에서 유래합니다. 플라톤 시대의 그리스 지역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신적인 본성을 가졌는데 육체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신성(神聖)이 훼손되는 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원래 고향은 동굴 밖 형상들이 존재하는 빛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영혼이 천상으로부터 추락해 동굴 속(현상세계)에 유배되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하는 이성적인 영혼이 육체에서 비롯된 욕망과 감정을 극복해서 천상의 이데아를 깨쳐야 합니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입니다.(글의 출처:네이버지식백과)


책을 읽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처음엔 읽을 만 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 책을 괜히 읽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슬슬 밀려 든다.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 쉬웠던 건 아니다. 전체적인 전개는 어렵지 않으나 그 흐름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상당히 크고 깊다. 평생을 도자기 빚는 일만 해 온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삶은 소박하다. 딸 마르타는 아버지의 눈길만 보고도 감정을 알아챌 만큼 살겹다. '센터'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열흘마다 집으로 오는 사위 마르살도 시프리아노 알고르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이들은 곧 마르살이 '상주경비원'으로 진급을 하게 되면 '센터'에서 제공하는 아파트로 들어갈 계획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곳 '외곽'과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센터'이다. '센터'에는 쇼핑몰과 놀이동산 등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센터'는 인간성까지 파괴해가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팔고 싶지만, 우리가 반드시 팔아야 하는 물건을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더 좋겠습니다.. '센터' 전면에 붙여진 포스터의 말이다. !!!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자신의 집이 있는 외곽에서 도자기를 빚어 '센터'의 백화점에 납품을 하고 있었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자기를 매장에서 빼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당장 일을 잃게 된 그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찰흙인형이다. 마르타와 함께 인형 천 이백 개를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사위 마르살의 진급으로 인하여 '센터'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늙은 도공의 삶이 어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동굴은 상징성을 지닌 듯 하다.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백화점에서 빼낸 도자기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저장하는 마을 한쪽의 동굴과 아파트 지하에서 발견 된 또하나의 동굴이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동굴이 바로 플라톤의 동굴이란다. 약간은 뜬금없기도 하고 뭐지? 하는 기분도 든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다루었다는 이원론이라는데 쉽지 않다. 마지막부분에서 '센터'의 아파트를 나온 마르타와 마르살이 이미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되돌아 오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떠나기로 한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동굴'을 발견했고 또한 그 '동굴'속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도 결국 '현실'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것, 각박함 그 자체, 절실함 그 자체를. 삶의 또다른 이름은 '처절함' 혹은 '타는 듯한 목마름'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문장의 표현력이다. (여기서 또 한번 번역하시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많다. 그 작품들 중에서 <수도원의 비망록>,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읽어보았다. 매혹적인 글 맛이 참 좋았었다. 인간의 허울을 어쩌면 그렇게도 신랄하게 벗겨내며 비판할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었다. 꾸밈없는 직설적인 문체가 작품마다 상당히 독특한 맛을 느끼게 만든다. 현실인 듯 허구인 듯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속성을 마구 파헤치고 있음이다. <동굴>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더불어, 특정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성찰이라는 사라마구의 후반기 문학적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라는 책의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읽었던 작품들의 구성은 단순하다. 하다못해 등장인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세지의 울림은 깊고 강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인간의 속내를 잘 파헤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인상깊은 구절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책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가치가 없거나, 딱 한 번만 말하면 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 가치있는 다른 말의 자리를 차지해 버릴 것이다. 그 말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 때문에 그렇다.(-48쪽)

세상에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어딘가에 진실이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진실은 계속 변한다. 그리고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혹시 그럴듯한 거짓말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117쪽)

삶이란 온갖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항상 균형을 사랑한다. 만약 삶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면, 모든 구름 뒤에는 한줄기 밝은 빛이 있을 것이고, 오목한 곳에는 반드시 볼록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226쪽)

우리는 책을 선반에 꽂아두거나, 트렁크에 넣어두거나, 먼지가 쌓이고 좀이 슬도록 내버려두거나, 어두운 지하실에 처박아두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나도록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주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은 전혀 개의치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내용물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도록 입을 꼭 닫은 채.(-248쪽)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가 직접 이 말을 할 때도 있다,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가 이 말을 할 때나 다른 사람들이 할 때나 진심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겐 체념을 가능한 한 당당하게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다. 적어도 다른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 묻지 않는다.(-334쪽)

우리는 예절이라는 것의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어, 예의 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거미줄에 (-336쪽)

사랑이 사람들을 결합시켜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결합시켜 주는 건 아냐 (-3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한 편의 詩가 우화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동화나 우화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통해 아주 큰 울림을 준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어서 좋은 것이 동화나 우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맑고 향기로운 생각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동화나 우화일거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선뜻 이 책에 손을 내밀었다. 이 무더위를 가볍게 식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소에도 자주 필사하곤 했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역시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라는 詩가 자꾸만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마도 많은 사람이 암송하는 시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만큼의 가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 삶의 가치'다. 책띠의 말을 보자면 이렇다. 이 책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그 가치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화의 방법으로 성찰해 본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내 존재의 가치를 찾아 그 가치에 순명함으로써 뜻 깊은 인생을 완성하시길 기도한다... 작가의 말이라 한다. 그런데 왠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금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의 말미에 그러니 너도 너의 가치를 알아 그 가치에 알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다.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는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똑같은 천으로 태어나 누구는 행주가 되고 누구는 걸레가 되었다는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본 적이 있고 들은 적이 있었을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있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가치가 다르다는 이야기...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보다 구도의 길을 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해야 할 듯한 그런 느낌? 너무 큰 기대를 했었나? 물론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답이... 너무 어렵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5년 3월 20일 E411 고속도로에서 보았던 개에게...

우리가 버린 개, 가엾은 개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런 개를 생전 처음 보았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장이다. 어떤 개가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치명적인 사고를..... 그것을 보고 여섯 사람이 멈춰 섰다. 달리던 차를, 달리던 자전거를.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개가 진짜로 버려진 개였는지, 그 개가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조차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그 여섯 사람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의 이야기. 그 개를 보았던 날 문득 찾아왔던 어떤 감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머문다.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던 개는 여섯 사람에게 무엇을 묻고 갔을까?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그 개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인식했다는 것이다. 여섯 사람 모두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트럭 운전사도, 좋아하던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늙은 사제도, 애인과 이별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여자도, 일하던 가게에서 해고 당한 동성애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과부와 모든 불만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던 과부의 딸도 그 개를 통해 소리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질주하지만 사냥개 떼는 없다'는 말이 우리의 현실을 빚댄 말이 아닐까 싶다. 힘든 시간은 우리를 외롭게 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누구도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는 저 고속도로 중앙분리지대를 달려가고 있는 개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묻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다. 책의 뒷표지에 써있는 추천글조차도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어차피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테니까. 다만 이 책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만은 살짝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 날은 개의 날이었을까? 허상과 같은 개를 달리게 하여 자신의 살을 돌아보게 하였으나 고작 여섯 사람만이 차를 멈추었을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서글프게도 이 책에서는 아웃사이더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희망을 말하기에는 왠지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시간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차라리 그 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마다 붙여진 소제목이 자꾸만 시선을 붙들었다. '별 수 없음'을 인지하고 결국엔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던 이야기의 끝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아 있다. 역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기에는 가볍고 밝은 이야기가 제격인가? 차라리 그냥 단순히 잃어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을까? /아이비생각


사냥개 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미친 듯이 달려가는 개. 다만 사냥개가 없고, 아무도 추적하지 않고, 당사자만 있다. 우리도 꼭 그런 식이다. 완벽한 건강을 갖고 아주 편리한 일상적인 지식을 갖춘 젊은이인 우리들은 숨이 차도록 달린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추적하지 않으며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 우리를 찾지 않는다. 직업상의 이동의 필요가 냉혹한 힘으로 이동시키는 이 자동차들 안에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 1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